어둠과 여명 이야기

어둠만이 존재했다1

처음 그날부터, 그녀는 울고 있었다

허무(虛無)로 가득한 이곳은 그야말로 조용하고 쓸쓸해서,

외롭다는 감정을 이해하기도 전부터 어쩐지 알고 있었나 보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은 ‘나’이자 ‘나의 것’이었기에.

.

.

.

뚝뚝. 조용히 떨어지는 소리에 무덤덤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던 아이가 느릿하게 올려봤다. 새하얀 고운 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머리칼을 따라 저 뒤에 동그랗게 떠 있는 것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그녀는 오늘도 울고 있었다.

한 번은 왜 그러느냐 의문을 가졌다. 별말 없이 미소만 보일 뿐인 그녀를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답을 피하고 있음을 깨닫고 구태여 질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눈물을 보였던 그녀를 오랜 세월 지켜보면서 아이는 언젠가부터 더는 그녀가 울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인지했다. 이토록 매일같이 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멈추지. 막연히 생각하는 나날들이 이어졌고, 그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시간은 의미 없이 흐르고 무엇 하나 다름없이 스쳐 가야만 했던 그런 날, ‘그들’은 불현듯 찾아왔고 어쩌면. 저도 모르는 사이 그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𝕲𝖎𝖛𝖊 𝖚𝖘 𝖘𝖙𝖗𝖊𝖓𝖌𝖙𝖍, 𝖕𝖚𝖗𝖊 𝕲𝖔𝖉 𝖔𝖋 𝕯𝖆𝖗𝖐𝖓𝖊𝖘𝖘.

요동치는 심연의 웅얼거림. 무언가를 호소하듯 뻗어오는 검은 손길과 목소리에 놀라고–끝없는 이 허무 속에서 아이가 본 최초에 ‘이방인’이었다- 새로웠으며, 호기심이 잠깐 동하였으나 그들과 접촉하기도 전에 아이는 번뜩였던 관심을 곧장 버려야만 했다. 그녀가 화를 낸 것이다.

𝕲𝖔𝖉 𝖔𝖋 𝕯𝖆𝖗𝖐𝖓𝖊𝖘𝖘,

“내 아이에게 접근하지 마.”

𝕹𝖔, 𝖍𝖊'𝖘 𝖔𝖚𝖗𝖘.

“안 들려?”

𝕴 𝖜𝖆𝖓𝖙 𝖘𝖙𝖗𝖊𝖓𝖌𝖙𝖍, 𝕴 𝖜𝖆𝖓𝖙 𝖍𝖎𝖘 𝖘𝖙𝖗𝖊𝖓𝖌𝖙𝖍.

“꺼지라고.”

“그럼, 꺼지게 해야지.”

후웅. 허공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에 웅얼거림이 가득했던 주변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외마디와 함께 사라졌다. 늘 그래왔던 대로. 고요하게. 그리고.

“후, 늦지 않았나 봐.”

철컥. 의문의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올린다.

“…어떻게?”

“어스가 가보라고 해서.”

“…….”

처음 들었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아닌 다소 놀란 억양으로 그녀가 묻자 조금 전 그 검은 것들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가진 이가 별일 아니라는 듯, 툭 답하더니 이내 말소리가 지워졌다.

“…그러실 필요 없었어요.”

조금 늦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

“알죠, 여신님.”

가볍게 대응하는 목소리. 아이는 묵묵히 상황을 살폈다.

“플루토 님.”

이 먼 곳까지 선뜻 찾아왔다는 점에서 여러 생각이 몰려와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쩜 저리도 처음 만났을 때와 한결같으신지.

“루나. 언제부터야?”

“…….”

언제부터 저것들이 온 것이냐고. 가볍기만 하던 음이 제법 엄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진중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루나는 무심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금방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플루토라 불린 남자는 흠 소리를 내며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걱정 어린 작디작은 한숨 소리까지 들려오자 루나는 결국 제 잘못을 인정했다.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음… 그거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알았어요.”

말하지 않은 거 사과드릴게요. 이어지는 그녀의 툴툴거림이 반쯤 섞인 사과에 플루토는 피식 웃다 어깨를 으쓱인다. 나 말고 어스한테 해. 한동안 서운해할걸. 루나는 그제야 미소를 보였다. ‘어머니’도 한결같아 웃음이 나온 탓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왜 내 얼굴만 봐? 뭐가 묻었나?”

“….”

“저, 이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을 일찍이 눈치채고 있었는지 그가 상체를 숙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왔다. 아이는 질문에 대답하기는커녕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간이 안 되는 듯,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흐릿한 아이의 눈동자 색도 그렇고. 무덤덤한 표정도 그렇고. 아직 어려서 그런가 싶지만, 뭔가 다르다. 제 직감이 그렇다. 아, 그런 건가? 이 아이는―.

저희와는 본질이 다르다.

“흠. 이럴 수도 있나.”

“플루토 님.”

“그래, 이해했어.”

이 아이구나? 근래에 신경 쓰던 아이가. 그래서 이리로 보냈나. 단순히 ‘놈’들을 처리하라는 목적이 아닌 거 같더라니–물론 그럴 성격이 아니거니와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지만- 혼자 만족하는 결론을 내리고는 끄덕였다. 하긴. 녀석들을 쫓아내는 건 여러 의미로 보나 저보다 루나가 가진 힘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게 참 아쉽다. 음? 근데 잠깐.

그거랑 지금 아이가 반응이 없는 거랑은 무슨 관련이 있지?

그가 마침 떠올린 의문을 예측하기라도 한 것처럼 루나는 어느새 가라앉은 얼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귓가에 속삭이듯이 자그마한 소리로 얘기를 전해 들은 플루토 역시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녀가 설명하는 것들 하나하나가 크게 와닿지 못해서 그랬다. 하지만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우선 이거 한 가지는 말해둘게.”

“….”

“다시는, 아까 찾아온 녀석들에게 관심 주지 마.”

“….”

“왜 그래야 하냐는 거 같네, 기분 탓인가.”

“음, 기분 탓 아닌 거 같네요.”

루나 역시 제 아이의 의사 표현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물며 처음 만난 그가 바로 알기란 더욱 어렵겠지. 그만큼 아이의 전달력은 희미했고, 눈에 띄지 않았다. 음, 그렇다면 어쩌면 좋을까. 그렇지. 일단 이 아이에게는 지금 설명하기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음, 루나가 슬퍼하니까?”

“….”

“플루토 님.”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저에게 무어라 말을 걸어오던 이들을 아이는 떠올렸다. 혼란스럽긴 했지만 사실 궁금하기도 했는데 낯선 이는 루나가 슬퍼할 거라 말한다. 그래서 화를 내었나. 그토록 경계하며 다가오지 말라 했었나. 생각을 정리하곤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흐름을 느끼고 판단하는 점에서 영특했던 아이는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사실에 고민은 없었다. 그녀, 루나가 울지 않기를 바랐던 아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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