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아펠] 사랑하는 어머니께

언제나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 세트라이가

어머니, 저 세트에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영혼 세계로 넘어 온 이후부터 시간 감각이 흐려져서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그곳은 아마 겨울이겠네요. 그렇다면 날이 많이 추워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이오니아의 겨울도 꽤 혹독한 편이죠. 부디 감기 안 걸리게 몸조심하세요. 아,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은 밤의 쌍둥이 영혼을 만났어요. 무기를 써서 밤하늘을 만든다고 전해지던 영혼 말이에요. 제가 여태껏 살면서 밤하늘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를 처음 본 순간……. 감상이 달라지더라구요. 이걸 그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아름답다고 느꼈다 해야 하나? 그 전까지는 지금이 낮이든 밤이든 아무래도 상관 없었는데……. 이렇게 혼란스러운 감정은 난생 처음이에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전 대체 뭘 느낀 걸까요?

어머니, 연락이 늦어져서 죄송해요. 좀 사정이 있었어요. 앞으로는 꾸준히 편지를 보낼게요.

아이오니아는 어떤가요? 여전히 엉망진창인 녀석들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나요? 농담이에요. 어머니가 계신 곳이 늘 평안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에요.

혹시 제가 전에 얘기했던 밤의 쌍둥이 영혼을 기억하시나요? 그를 몇 번 찾아가 봤어요. 그러면서 느낀 건데 그는 뭐라고 해야 할까……. 태양이 떠오르면 숨어버리는 달 같아요. 제가 다가가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여동생 뒤로 숨어버리거나 아예 도망쳐 버리더라구요. (제가 그렇게 험악하게 생겼나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죠. 저는 원하는 게 바로 제 손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화가 솟구치는 사람이었는데, 귀까지 빨개져서도 필사적으로 저를 피하는 그를 보고 있자 하니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와요.

어머니, 이게 바로 사랑이라는 건가요?

 

추신

그의 쌍둥이 여동생은 저랑 마주칠 때마다 잡아 먹을 듯이 저를 노려 봐요. 눈빛 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구요. 그와는 앞으로 더 깊은 사이가 될 테니 여동생한테도 잘 보여야 할 텐데! 큰일이에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머니, 저 세트에요. 지금도 계속 심호흡을 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이렇게 고동이 빠른데 파열하지 않는 걸 보면 심장은 잘 터지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가봐요.

저번에 그에게 제 마음을 전했어요.(그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계시죠?) 그가 놀란 눈을 하고 저를 쳐다보는데 생긴 게 꼭 달에 사는 토끼 같더라구요. 귀여웠어요. 한번 깨물어보고 싶을 정도로요. 생각만 했어요. 실제로 깨물 정도로 경우 없지는 않아요. 아니,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사실 고백 전에 되게 긴장했었고 거절 당할 각오도 했었는데(실제로 거절 당한다면 좌절했을 거예요.), 그가 제 손을 뿌리치지 않았어요. 도망가지도 않았구요. 그냥 저를 마주 보면서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던 그가 제 손을 끌어다가 자기 뺨을 만지게 해줬는데……. 제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만지기 미안할 정도로 부드러운 살결이었어요. 이상하죠? 전 흉터 투성이인 제 손을 자랑으로 여겼는데 말이에요.

어머니, 저는 그를 사랑해요.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닐 리 없다고 믿어요.

또 편지 드릴게요. 늘 건강하세요.

어머니, 오랜 만에 편지를 드려요. 자주 쓰겠다고 했는데 그게 잘 지켜지지가 않네요.

저번에 편지를 보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직까지 한 번도 어머니께 그의 이름을 말씀 드린 적이 없었더라구요. 그래서 이 참에 여러 가지를 말씀 드리려고 해요.

우선 그의 이름부터 말씀 드릴게요. 그는 '아펠리오스'라고 해요. 이름도 아름답지 않나요? 어머니도 부디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머니, 좀 불편하실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이제 와서 말해 죄송하지만… 저는 저에게 안식이 찾아오리라 생각한 적 없어요. 앞으로도 평생 이런 식으로 살겠거니 했었죠. 안식을 찾으면 돌아가겠다는 말도 사실은 걱정하실까봐 둘러댄 말이었어요.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이미 다 정리된 일이니까 솔직하게 말할게요. 제 영혼은 방황하고 있었어요. 안식이란 게 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죠. 절 살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분노였으니까요. 그 망할 인, 아니 아버지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었죠. 지금도 뭐 그런 맘이 없는 건 아니에요. 말리셔도 소용 없구요. 만나면 꼭 안면에다가 한 방 먹여줄 거예요. 그 정도는 해야 속이 풀리지 않겠어요? 아, 이게 아닌데…….

어머니, 저는 지금에서야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안식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노의 불길이 꺼지면 저도 죽어버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평생 평온과는 담을 쌓았던 제가이런 말을 하니 좀 우스우신가요? 아니면 기뻐하시려나요?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재밌는 일이 없어도 웃음이 나요. 그가 눈물을 흘리면 제 가슴도 찢어져요. 하늘에 떠오른 달을 바라볼 때마다 그를 생각하고, 태양을 바라보더라도 태양 뒤에 숨은 달을 생각해요. 좋은 걸 보면 그에게도 보여주고 싶고, 좋은 걸 먹으면 그에게도 먹여주고 싶어요. 아무리 시시콜콜한 일상이라도 그와 함께 하면 모든 게 새롭게 느껴져요.

사랑이란 게 이렇게 가슴 벅차는 일인지 미처 몰랐어요.

어머니, 저는 그와 남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요. 그 또한 그걸 바라리라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해야 할 일을 내팽겨 치지는 않아요. 그 또한 그러겠죠. 그냥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서로의 곁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이게 제가 찾은 안식이에요.

곧 찾아 뵐게요. 사랑해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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