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카리타스-올리비아 외전

투르스 거리에 아페랑 카리타스가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생긴 일. 중간에 시점 전환이 있습니다.


투르스 거리에 도착할 때까진 나와 아페 사이의 대화라고 할 게 거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아페는 뛰어내리듯 마차에서 내렸고, 그 뒤를 내가 천천히 따라갔다. 봉사 장소엔 귀부인들이 미리 모여있었고, 그들은 아페가 도착하자 그를 따라 가난한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참여했지만 내 주요 임무는 이쪽이 아니었으니 금방 손을 털고 일어났다.​

“아페 저하, 잠깐 저는 가게를 시찰하고 오겠습니다.”

“네? 아, 그렇군요. 성하께서 따로 부탁하셨다고 하셨지요. 성녀님의 시종은….”

“괜찮습니다. 자주 갔던 곳이라 길도 잘 알고 있고 지금은 일손이 부족하니 혼자 다녀와도 문제없을 겁니다. 그럼.”

조금 다급하게 말하긴 했지만, 아페가 딴지를 걸어 괜히 동행이 늘어나는 것보단 나았다. 교회 직영 직물점에 도착한 나는 먼저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직영점은 1층에서 손님을 받고 2층과 3층에서 재고를 보관했다. 점장에게 실적과 운영에 대한 보고를 듣고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지만, 나는 그에게 작업자의 노동 환경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그대가 잘 운영하고 있다고 믿고 있네만, 외부인에게만 발견되는 문제점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자네가 있으면 작업자들이 부담스러워할 테니 여기 있게, 금방 돌아올 테니.”

손님들을 스쳐 지나가서 뒷문을 열자 직영점 바로 뒤에 달린 창고에선 천을 다듬는 작업자들의 수다 소리가 새어 나왔다. 창고는 직영점 뒷문으로도 갈 수 있었고, 직영점 입구 오른쪽에 있는 골목으로도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 창고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올리비아'라는 단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뭐야 왜 불러요?”

작은 목소리의 까칠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올리비아를 부른 이는 바깥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고, 곧이어 창고 문이 거칠게 열렸다. 운 좋게 숨은 나는,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직영점으로 걸어가는 올리비아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창고에서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즘, 올리비아의 등 뒤로 다가갔다.

“네가 올리비아지?”

“깜짝이야! 누구세요?”

“음….”

“오늘 직영점에 귀한 분들이 오신다곤 들었는데…, 저희랑은 상관없는 일이라서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아냐 일반 작업자들과는 일이 없었던 게 맞으니까.”

‘일반’이라는 단어에 강세를 주어서 말했더니 올리비아가 무언가 눈치챈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죠?”

“네가 누구인지만 알고 있진 않아. 네가 왜 여기 오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지.”

올리비아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소심한 성격이라고 들어서 만만하게 보고 있었는데 손아귀 힘이 예상 밖으로 강했다. 내가 눈썹을 찡그리자 올리비아는 제발 저쪽으로 가서 말하자며 골목 안을 가리켰다. 비굴하게 웃는 표정이 이 아이의 본모습이었던 건가.

‘오히려 나한테 유리한데, 다행이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올리비아는 힘을 풀었고, 먼저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부터 올리비아 시점)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창고에서 떠드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럼 우리의 대화도 저기까지 닿지 않겠지. 나는 따라 들어온 수상한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또래로 보이는 주제에, 아이는 모든 것에 통달한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계속 보고만 있길래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제가 여기 온 이유까지 알고 계신 분이 무슨 일로 여기 오신 건가요?”

“…네게서 알아내야 할 게 있어서 왔어.”

‘알아내야 할 것? 뭐지?’

 불안한 마음에 손을 꼼지락거렸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저 사람이 자꾸 뜸을 들이니 답답했지만,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초조하기도 했다. 긴장하는 바람에, ‘어, 어떤 게 궁금하신 건데요?’라고 묻는 말도 형편없이 뚝뚝 끊어졌다. 

“[입에서 뱉는 모든 말은 진실일지니, 거짓된 자는 태양 앞에 서지 못 하리.]”

“뭘… 하신 거예요?” 

서늘한 기운이 몸을 한번 감쌌다가 사라졌다. 분명 신성력인데 이게 원래 이렇게,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 나는 힘이었던가? 상식을 뒤집은 감각에 몸을 떨었지만, 여전히 아이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스산한 오후의 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네가 진실한 이이길 기원했을 뿐, 별 것 아니었어.”

“…세쿠리스 사제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이랑 비슷하네요. 언제나 저한테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셨는데, 그럼 당신은 그분께서 보내셨나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쿠리스 사제님이 보내셨다면, 저 애는 나에게 교회로 돌아갈 기회를 주러 온 게 아닐까? 솔직히 코지를 찌른 건 미안했지만, 그 애가 계속 내 화를 돋운 잘못도 있었다. 세쿠리스 님이 애초에 나와 코지를 착각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이상한 감시역을 맡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쥐새끼처럼 몰래 교회와 거주관 사이를 왕래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코지는 그걸 말했을 때 대놓고 콧방귀를 뀌며 나를 무시했다. 그게 너무 재수가 없어서 욱했을 땐 이미 일이 벌어졌었던 거고. 

“역시 제 억울함을 알아주셨던 거군요! 그 애한테는 미안했지만 그건 정말 실수였다고요. 혹시 저… 다시 교회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글쎄, 그건 질문에 답하는 네 태도에 달렸겠지.”

 위압적인 모습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손을 앞으로 모았다. 조금 더 간절해 보이도록, 내가 교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낮출 수 있었다. 아이의 눈이 그늘 속에서 유난히 빛났다. 

“코지를 왜 찔렀지?” 

이거라면 바로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세쿠리스 님을 부정적으로 말하면 당연히 저 사람은 날 아니꼽게 보겠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실수였어요. 그 애가 평소에 절 아니꼽게 대했는데 그게 쌓였다가 그날 우연히 터진 거였어요.”

“정말 그것뿐이야?”

“…당연하죠. 그 외에 뭐 더 말씀드릴 게, 아야!”

 작은 한숨 소리가 스친 것 같았지만 거기에 반응할 수 없었다. 무릎 근처까지 올라온 하얀 나뭇가지들이 나를 가두고, 그 짧은 가지로 내 다리를 이곳저곳 찔러댔다. 탈출하려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봤지만, 가지가 더 깊숙이 파고들어 고통이 더 커질 뿐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이거 풀어줘요, 안 그러면 소리 지를 거야!”

“네가 소리쳐봤자 소용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사람들이 뛰쳐나와서 당장 이런 이상한 짓거린 그만두라고 하겠지.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른 상상을 하는지, 아이는 웃고 있었다. 입꼬리만 올린 채, 눈은 여전히 짐승처럼 형형하게 빛나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불러. 왜 가만히 있지?”

“….” 

한 발짝 더 다가온 아이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통 때문에 말린 몸을 간신히 들어 올리자마자 그의 얼굴을 마주쳤다. 어느새 내 몸부림은 멈췄고, 나는 내 다리를 감싼 나뭇가지들을 뿌리로 삼아, 나무처럼 그 자리에 박혔다. 이 사람은 나를 교회로 돌려보내 주려고 온 사람이 맞을까? 의심을 뱉는 내 목소리가 너무 떨려서 한심할 지경이었다. 

“당신, 당신 뭐 하는 사람이에요? 저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너는 거짓을 말하면서 내게 정체를 묻는구나.”

‘눈이 돌아갔잖아, 미친 거 아냐? 함부로 사람들을 부를 수도 없고… 일단 끝까지 잡아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저는 분명 진실을 말했….”

 나무가 순식간에 더 자라서 허벅지를 찔러대자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휘청거리는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엎어졌고, 눈앞엔 나무 끝이 하얗게 날을 세우며 번쩍였다. 너무 아파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고, 입에선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기이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파… 아프다고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건데….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네게 찔린 아이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텐데. 아직도 네 고통만 생각하고 있구나.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진실을 말해.”

“윽….”

“나무가 거기서 더 자라면 이번엔 어디를 찌를지… 눈이 있다면 알겠지.” 

정말 다 말해야 하나? 정말로? 그걸 궁금해하는 게 맞는 걸까? 세쿠리스 사제님과 아는 사이가 맞기는 한 건가? 맞다면 이런 걸 물어볼 이유가 없지 않아? 그럼 이 애는 뭐지? 머릿속에서 온갖 물음이 휘몰아치면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면 안 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저 사람이 듣길 원하는 건 진실이라고 했다. 그냥 전부 말해버리면…. 

“…세쿠리스 사제님께서 제게 쓸모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원래 일을 같이하려던 아이는 저처럼 멍청한 애가 아니라 코지라는, 똑똑한 아이라고 하셨죠. 그 애라면 항상 시도폰 옆에 붙어있으니 그 애에게 일이 생기면 바로 알아차리고 자신에게 알려줬을 텐데. 왜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냐고 자주 혼이 났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저는 코지가 원망스러웠어요.” 

다 쏟아내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나무가 더 자라지 않았다. 진실. 그렇게 당신이 원하던 진실을 말했잖아. 이제 풀어달라고.

“시도폰에게 굳이 주목한 이유는?”

“그야… 시도폰이 성녀님에게 달라붙었으니까요. 주제도 모르고, 감히 신성한 분께…. 그래서 세쿠리스 사제님은 혹여 그 애가 성녀님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되어서 제게 이 일을 맡기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빌듯이 말을 끝맺으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이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탈출할 기회는 저 사람뿐이야.

“저기, 저 좀 도와주세요. 이 사람 정말 이상하다고요!”

“….” 

하늘색 눈동자가 내가 아닌 저 너머의 사람을 향해 돌아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고 느꼈을 때 멀리 있는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께선… 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던 건가요. 시찰을 나간다고 하셨잖아요.”

그는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똑똑히 물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내 앞의 사람은 말이 없었다. 천천히 하늘색 눈동자가 다시 나를 향하자, 멀리 있던 사람은 급하게 뒤돌아서 도망쳤고, 이렇게 내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망할 세쿠리스, 왜 사람을 착각해서 이 사단을 만든 거야. 저 사람은 왜 도망치는 건데, 난 왜 아직도 이 꼴로 있어야 하는 거야. 이리저리 찔린 다리는 이제 감각이랄게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다쳤을지 확인하기도 무서워서 눈을 뜰 수 없었다.

“이 이상으로 네게 물어볼 건 없는 것 같네. 아는 게 그것뿐이라니, 정말 도구로만 쓰고 버릴 패였나 봐.”

“….”

“세쿠리스 사제가 그렇게 날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리에 느껴지던 구속감이 사라지고 눈이 번쩍 뜨였다. 하얀 나뭇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다리는 멀쩡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당신이 성녀님이라고? 모두를 위해 매일 기도를 올리고, 온갖 축성을 도맡은 사람이 당신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내가 아까 본 모습은 전혀 ‘성녀’의 것이 아니었는데.

“성녀님이라고, 당신이? 하, 이런 짓을 하고도 신께서 당신을 가만히 둘 것 같아? 벌 받을 거라고! 그리고, 사람들한테 이걸 말하면….”

“누가 네 말을 믿을까?”

“그야 당연히 사제님들이 진실을 분간해주시겠지!” 

내지른 말에 성녀는 소리 없이 웃었다.

“아,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도 아직 그들을 믿는구나. 그래, 너처럼 우매한 신자들이 있으니 이 세상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거겠지.”

그는 뒤돌아서서 천천히 양지를 향해 걸어갔다. 다리는 풀렸지만, 여전히 걸을 순 없어서 엎드려 있는 나를 두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더니, 이젠 웃지 않는 성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그 애를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구나, 고맙게 생각해. 그러니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하지. 오늘 일은 잊어. 그리고 조용히, 네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면서 살아.”

“….”

“올리비아 얘는 빗자루 가지러 나가서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아줌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며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성녀는 고개를 까딱이며 일어나라는 듯 눈치를 주었고,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엉거주춤하게 그의 앞에 섰다. 화가 잔뜩 난 듯한 아주머니는 나와 성녀를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부드러운 말투로 성녀에게 공손히 인사했고, 성녀는 자애로운 얼굴로 그 인사를 받았다. 소름 끼치는 연기에 저절로 표정이 나빠졌는지, 아줌마는 ‘그게 무슨 불경한 표정이니!’라며 내 등을 세게 쳤다.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혼내지 마세요, 부인. 아직 어리니까요.”

“아유 정말, 아량도 넓으시지. 작업장을 보러 오셨나요?”

“네, 그러려다가 올리비아가 참 재밌는 아이라서 대화를 하다 보니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네요. 저 때문에 혼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애가 소심해서 말을 잘 안 하던데 성녀님께서 연배가 비슷하니 편하게 느꼈나 보네요. 애 올리비아, 아무리 그래도 귀하신 분을 밖에 오래 두면 어떡하니.”

‘자, 안으로 들어오세요.’라며 아줌마는 미소 띤 얼굴로 성녀를 안내했고 나는 입술을 문 채 그 뒤를 따랐다. 형형한 기운이 이마를 쿡 찌르고 사라져서 고개를 들자, 성녀는 자신의 말을 기억하라는 듯 제 관자놀이를 살짝 찌르고 다시 앞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말없이 작업장 문을 닫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래는 원래 써뒀던 건데 카리타스 말투만 수정하는 걸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아예 삭제.. 말투가 너무 상냥하고 가벼움. 캐해 잘못했어요

​무례하다고 혼내지도 않았는데 올리비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설설 기었다. 이러면 이야기는 더 쉬울 것이다.​

"아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대신, 뭐 하나만 물어보려고 하는데."​

올리비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뜸을 들이자 불안한 듯, 올리비아는 손 끝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자신은 지금 바쁘니 빨리 보내달라고 말했다. 말을 조금씩 더듬는 올리비아의 모습은 코지를 찔렀다는 잔인한 동급생과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입에서 뱉는 모든 말은 진실일지어니, 거짓된 자는 태양 앞에 서지 못하리.]"

"뭘 하신 거예요?"​

자신의 몸을 한번 감쌌다 사라지는 신성력에, 올리비아가 기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하게도 우리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별 거 아니야.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 아… 여기서 얘기하긴 좀 곤란한 이야기가 될 거 같은데 저쪽으로 잠깐 가자, 너도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싫을 거 아니니? 예를 들면, 네가 여기 왜 왔는지 같은 거 말이지."​

나는 창고 옆의 막다른 골목 안쪽을 가리켰다. 올리비아는 내가 그 일을 추궁할 걸 예상했는지 순순히 그쪽으로 걸어들어갔고, 그 맞은편에서 퇴로를 차단할 생각으로 내가 자리를 잡았다. 스산한 오후의 그늘이 바람에 잠깐 흔들린 것말고는 적막했다.

​"저… 세쿠리스 사제님께서 보내셨나요? 혹시 제가 다시 교회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글쎄, 그건 내 질문에 대답하는 네 태도에 달렸겠지."

​세쿠리스와 안면만 튼 사이였기에, 그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며 대충 대답했다. 그나저나 올리비아는 아직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이렇게 된 게 억울하다고만 생각하고 있구나. 힘 조절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침착해진 올리비아의 손은 공손하게 앞으로 모였고,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온순해졌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코지를 왜 찔렀어?"​

망설이던 올리비아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대답했다. 이거, 콘피테오르가 없었어도 진실과 거짓은 구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선 이미 하얀 새장에 갇힌 꼴이 된 올리비아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 애는 평소에 절 아니꼽게 대했어요.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아얏!"

"처음부터 거짓말이라니 베짱도 좋네, 죽을 정도로 아파? 음, 아냐 그정도는 아니니까 견딜 수 있을 거야."

"무슨 소리에요! 엄청 아프잖아요. 당신 뭐하는 사람인데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건데요. 이거 허락 받은 거예요?"

"그런 의심을 하기엔 너무 늦었잖아, 진작에 물어보지 그랬어. 아니면 신전에 올라왔을 때 좀 더 주위를 잘 살펴봤었어야지."

'눈이 완전 돌아갔잖아. 미친 거 아냐? 걔가 뭐라고 이런 짓까지 하는 건데.'

​올리비아는 자신을 둘러싼 낮은 자작나무들에 갇혀, 그것들의 가지에 이리저리 찔리고 있었다. 그물망에 갇힌 새가 퍼덕거리는 것처럼 올리비아가 몸을 뒤틀자, 가지가 점점 더 억세게 그의 몸을 조였고 그걸 깨달은 올리비아가 다시 얌전해졌다. 아까처럼 온순했던 얼굴은 사라졌고, 그의 얼굴엔 나를 향한 두려움과 … 경멸이 서려있었다.

​"아파… 아프다고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다시 진실을 말할 기회를 줄게. 한번 더 거짓말을 한다면 나무의 키가 자랄 거야. 그러면 가지가 잘못해서, 아주 우연히도 네 눈과 귀를 찌를 수도 있겠지."

"…."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다 알고도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뭔지 잘 생각해봐. 간단해,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말을 고르고 있는지 올리비아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빠르게 굴렸다. 덜덜 떠는 몸뚱아리는,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더라면 지나가는 누구라도 동정할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 전까지 빨리 올리비아가 말을 해야 할텐데.​

"…세쿠리스 사제님께서 제게 쓸모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원래 일을 같이 하려던 아이는 저처럼 멍청한 애가 아니라 똑똑한 코지라는 아이였다고 했어요. 그 애라면 항상 시도폰 옆에 붙어있으니까, 시도폰에게 특별한 일이 생긴다면 바로 알아차리고 자신에게 알려줬을 거라고요."

"시도폰에게 굳이 주목한 이유도 알고 있지?"​

삐쭉 선 가지 끝에서 눈을 돌리고, 올리비아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맞, 맞아요. 시도폰이 성녀님과 친하다고, 혹여 그 애가 성녀님을 다치게 할까봐 걱정되어서 이 일을 맡긴다고 하셨어요. 이건 진실이에요, 믿어주세요. 아, 저, 저기… 저 좀 도와주세요. 이 사람 정말 이상하다고요!"​

그제야 거대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그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도 남을 거리였는데, 올리비아한테 집중하느라 전혀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절망에 잠겨있던 올리비아의 눈이 이채를 띠며 누군가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페의 발끝이 보였다. 눈알을 위로 굴리자, 떨리는 손, 당황해서 굳은 입, 공포에 질린 눈동자를 차례로 볼 수 있었다. 올리비아에겐 미안하지만, 아페는 그를 도와줄 수 없을 것이다.

​"당신께선… 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던 건가요?"

"…."

침묵을 지키자, 아페는 예상대로 더 캐묻지 않고 뒤돌았다. 당신에게 설명할 필요 없는 일이니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올리비아는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 절망으로 떨어졌고 세쿠리스를 향한 알아듣지 못할 저주를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더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보였다.

​"나를 그정도로 걱정해주는 분인 줄은 몰랐네. 그래, 필요한 건 다 들은 것 같으니까 놓아줄게."

"네? 네? 당신이 설마…."​

콘피테오르를 해제하며 자작나무를 신성력으로 되돌렸다. 올리비아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와, 자신의 멀쩡한 몸과, 자작나무가 있었던 땅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간신히 올리비아의 목에서 기어나온 목소리는 아주 초라했다.​

"성녀라는 사람이 이렇게 해도 괜찮을 줄 알아요? 신께서 당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괜찮아, 익숙하니까. 그보다 난 네 덕분에, 이제 그 애를 지키려면 정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러니 여기서 더 뭔가를 하진 않겠지만…."

"…."

"올리비아 얘는 빗자루 가지러 나가서 도대체 어딜 간 거야?"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나. 나는 먼저 구석을 빠져나가며 올리비아를 돌아보았다. 스스로의 입을 막고 있는 꼴이 우스웠지만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우린 여기서 아무 일 없었던 거야. 그렇게 기억하고 조용히 살아."​

고개를 떨구듯 끄덕인 올리비아에게서 등을 돌리고, 화가 난 작업자에게 인사를 받은 뒤, 나는 직영점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다시 만난 아페도 그 일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고, 교회로 돌아가는 마차 안은 오전처럼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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