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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샤사
"에드거. 하나 묻지."
"그때 내게 삶을 제안한 것. 후회하지 않나?"
제 말에 반짝 바라보는 낯이 퍽 여상하다. 예상하지 못한 물음에 놀란 얼굴 같기도 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머리속에 떠도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락샤사의 머리속은 그 사실로 복잡하기만 했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난 '이스칸다르'가 '락샤사 디야브'가 되기 까지의 삶도 순탄치는 않았다만, 이름 뒤에 붙은 '디야브'라는 성을 떼는 것은 더 지난한 일이었다. 과거를 죽였고, 피붙이에게 아비의 존재를 빼앗아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하기까지. 그리고 다시 그 말도 안되는 희극을 끝내기 위한 설계까지. 모든 것은 디야브의, 자신의 마지막 핏줄에게 더 안전하고 안온한 삶을 주려고 한 이유도 있었지만, 저 자신의 죽음까지 체스 말로 올려 설계한 것은 개인의 욕심이나 사감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돌아오지 않을 기약없는 기다림이나 상실의 무게를 요령도 없이 꾸역꾸역 지고 사는 것에 익숙했고, 동시에 그것에 지쳤었다. 죽고싶다거나, 죽음을 그리워 하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그런 열망이나 의지조차 없었다. 자신의 죽음은 그저 당연히 밟아야하는 수순이고 조금 더 계획을 매끄럽게 만들 장치에 불과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얻는 이득은 안온한 평온. 죽음이라는 이름의 도피처이자 휴식처.
물론 그라고 해서 생존의지나 본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본능에 각인되어 있는 가장 첫번째 시그널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포탄이 떨어지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살아남았고, 소리없는 전장으로 편입되었을 때도 그는 능숙하게 그곳에서 살아남는 처신을 보였다. 그런 그가 이제와서.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서 제 생존의지를 박박 깎아 무디게 만든 것은 그저 지난 삶의 흔적이고 겪은 풍파의 흉이었다.
기묘한 친우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설계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들보다 가장 이것이 최선이니 반다스가 완성에 이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디야브의 유일한 후계자에게, 친아비인 이스칸다르를 죽인 새아비 락샤사 디야브가 죽으면 가장 완벽한 복수의 서사가 완성되는 일이니까.
물론 완벽한 복수의 서사는 이루어졌다. 어디까지나 그 서사의 선물을 받는 아샤 디야브에게.
계획의 이행은 실패했다. 락샤사 디야브의 계획에서는.
똑똑한 제 친우는 마지막 완성을 앞둔 시점에서 자신을 만나러 왔었다. 10년을 넘게 후계의 자리에서 머무는 모습 때문이었나. 아니면 빌어먹을 회장이 언질이라도 했나. 사실 지금에서까지도 어쩌다 눈치챈건지는 정확히 알지 못 했다. 그저 머리가 비상한 이니 자신이 생각지 못한 단서로 유추하고 연산해 답을 도출했겠지. 그렇게 여겼다.
그러면 말 해봐 친구. 너는 살아서 무엇을 하고싶지?
.
.
.
아무것도.
그리고 이제는 안다. 어떤 과정과 연산으로. 어떻게 결과값에 근접했고, 어떤 답을 도출했는지.
그저 서로의 위치와 장소, 대상만 대칭적으로 변했을 뿐이다. 하나 다른게 있다면, 당시 에드거는 그 사실에 대해 따질 수 있는 당당함이 있었고, 자신은 없다. 반다스 프로젝트. 플루토 프로젝트. 이름만 바뀌고 대상의 대칭성만 바뀐 관계에서. 자신 또한 숨긴채 그의 도움을 받았으니 에드거에게 속였느냐며 따질 수 없다. 애초에 그는 속인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머리에 열이 오르고 가슴께가 뻐근해지며 불덩이라도 삼킨것처럼 속이 아려오는 감각은 고스란히 느꼈다. 명명한다면 감히 배신감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었다. 기대를 했나? 제 남은 삶이 더 이상 외롭지 않을거라 여겼나? 무엇이든 오로지 제 불찰이었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했다. 무엇이든 입밖에 내는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고 원망이라도 주워 삼켜 올려둘 것만 같았다.
그랬는데.
"그래? 나는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어."
정말 묻고 싶었던 말은 '대체 내게 왜 삶을 살아가라고 했나' 였지만 최소한의 인간성으로. 필사적으로 잡고 있던 인내심으로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에드거. 에드거 라얀 오뷔에. 조금은 정신없고, 조금은 기묘한 친우는 사실 많이 물러서, 분명 묵살해도 좋은 투정같은 말에 쉬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두어달을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동안 락샤사의 머리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어째서 자신에게 삶을 주려 했나? 자신이 지고 살아야할 이름의 목록을 하나 더 만들어주고 싶었나. 한편으로는 그럴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지친 탓에. 다시금 익숙하고 씁쓸한 맛의 상실이 자신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탓에. 답지 않게 안하던 짓을 했다.
그 대가는 즉각적이었다. 제 후회가 네겐 큰 실패인걸까. 네 표정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네가 내게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인것만 같았다.
"미안해."
"...후회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아니야. 내 후회는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야. 지금은 네게 후회한다고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어.
그저 조금, 미리 슬퍼하는 것 뿐이야.
"내 잘못이야."
"더 좋은 삶을 줄테니까."
"...노력할테니까. 기회를 줘. "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분노와 실망, 슬픔과 절망이 혼재되어 섣불리 입술을 열기 힘들었다. 에드거의 어깨에 이마를 댄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무엇을 말해야할까.
네 잘못이 아니야.
락샤사 디야브가 아닌 락샤사로서 존재하는 삶을 준 것만으로 이미 과분해.
더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돼.
내게 기회를 줘.
내가 다시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해줘.
나는.
"...에디."
이 삶의 공허가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것이 되고 싶지는 않아. 락샤사로서의 삶은 그저 어쩌다 얻게된 삶이니 네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실언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의미로 한 말이 아니야."
"내가 네게 화를 낼 자격은 없지.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저...너와 함께한 시간들이 내게 퍽 편했나봐. 이런 말을 하는걸 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덧붙이며 제 어깨를 끌어안은 손을 다독였다. 전달할 말을 고르느라 잠시 머문 간극 속에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살폈다. 함께 살기로, 유령이나 마찬가지인 제 삶에 지평이 되어주려 제안했던 것이 아닌가. 아니면 혹, 본인이 삶을 잃어도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거라 생각했나. 어느쪽이든 둘 중 하나가 잘못 짚고있었던 것은 맞을테다.
"개의치 않아도 돼. 정말 실언이었어."
평생을 누군가의 도구로 살아왔기에, 도구가 아닌 삶을 선물처럼 받았을 때. 그저 의심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을 막 깨달은 참이거든.
난 도구에서 인간으로 삶이 고쳐졌는데, 넌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해서, 놀라서. 네가 아닌 내게 실망하고 후회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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