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사랑에 빠졌다.
* 테라연 청게AU
* 계연컾 100일 기념
"테라."
드륵,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열었다. 네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섰다. 나란히 놓여있는 책상과 그 가운데에 홀로 누워 있는 너의 모습을 발견했다. 잠이라도 자나, 싶어 조용히 다가갔다. 근처에 갔을 때 자그마한 숨소리만이 들려왔고 그것으로 네가 지금 자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냐. 학교 다 끝났는데."
네가 엎드려 있는 책상의 옆에 딱 붙어 무릎을 굽히고 너와 시선을 맞추려 했으나 너의 눈은 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같이 하교 하자면서 자고 있으면 어떡해. 깨우지도 못하게. 너무 곤히 잠들어 있어 차마 너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나중에 일어나면 왜 안 깨웠느냐고 하지 않을까? 그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네가 깨지 않게 조용히 웃었다.
한 학년 아래인 너는 특이한 머리색을 가졌으나 그럼에도 모두에게 친근했다. 학년도 다른 내가 어쩌다 너와 만났는가 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떠오르지는 않는다. 굳이 첫 만남을 기억할 필요가? 그런 생각이 없잖아 있기도 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너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 당시에 알았어야 했다. 그래야 더 빨리 떠올릴 수 있었을테니까. 물론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글쎄, 잘 모르겠다.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기억 못하니까 너라도 기억해줬으면 했거든.'
어찌되었든 테라는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동생이 되었고, 호칭마저 뒤죽박죽이었다. 사실 동생이라기보단 친구라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나이를 알고 서로 같은 학교에 다른 학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호칭이 바뀌고 관계가 바뀌었느냐 한다면 그럴 일은 없었다. 테라는 여전히 나를 편하게 대했고 나 역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덕에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이름으로 불렀고, 그것은 언제가 되더라도 변함이 없을 예정이었다.
찰랑이는 머릿결이 간지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네 머릿결을 조심히 쓸어 넘겨주었다. 뽀얀 너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문득 손 끝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네 앞자리에 앉아, 너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는 창가 자리였다. 선선하게 바람도 잘 들어오는, 아주 좋은 자리.
교실의 흰 커튼이 바람결에 같이 펄럭였다. 해질녘의 노을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왔다. 네 부드러운 비단결과 같은 고운 머릿결에 붉은빛이 섞이자 보석과도 같은 빛이 났다. 반짝이는, 아름다운 보석. 눈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결과 그에 흩날리는 흰색의 반투명한 커튼. 그에 가려지는 너의 모습과 반투명한 커튼 너머로 보이는 붉은 노을빛에 물든 너의 머릿결. 상황은 완벽했고, 훌륭했다. 연출이었더라면 상이라도 받았을 터겠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뒤척이며 고개를 돌린 네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감긴 저 눈꺼풀 아래에는 잘 다듬어진 터키석과 같은 눈동자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전율이 돋았다. 나와는 다른, 아름다운 얼굴. 그 얼굴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턱을 괸 채로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오목조목하게 자리잡고 있는 눈코입이 보였다. 붉은빛에 물들어 더욱 밝게 빛나는 머릿결도 보였다. 부드러운 네 피부도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쓰고 다니는 마스크 위를 살짝 쓸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서서히 눈을 뜨고 터키석의 보석과 같은 눈동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비몽사몽인지 초점은 흐릿했으나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개운하게 낮잠을 잤고, 너는 눈을 감고 있는 것 보다는 뜨고 있는 것이 훨씬 아름다우며 잘 어울린다는 것을.
이 날, 나는 눈치챘다. 이 여름에 나는 사랑에 빠졌노라고. 이것은 사랑이며, 네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달래었다. 아, 나는 너를 좋아하는구나. 너를 사랑하는구나. 그러나 이것은 네게 들켜서는 안 되겠지. 네가 알게 된다면 너는 어떤 반응을 할까. 그 반응이 두려워서라도 네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그 해 여름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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