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 빙의 나페스(울티마 툴레편)
메이 윈스터
모두가 행복한 시간에서 이야기를 멈추자.
우리 그냥 행복한 세계에서 살자.
나아가지 말자.
행복한 그때에 그대로 멈춰있자.
모두가 행복하고 큰 위협따위는 없는 그때 그날로.
야슈톨라와 위리앙제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 다음 장소로 건너왔다. 이아들의 땅 다음은 분명 드래곤의 별을 침략한 로봇들의 땅. …이었을텐데 여기는 뭐지?
“ 여긴..어쩐지 다른곳들보다 활기가 띄는데? ”
“ 그러게. 도저히 멸망한 별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
그라하와 알리제의 말처럼 우리가 발을 디딘 곳은 아이테리스처럼 찬란한 햇빛이 내리쬐고 꽃과 풀내음이 가득한 생명력이 넘치는 땅이었다. 울티마 툴레에서 이런 스테이지는 나는 본적이 없어. 어떻게 된거지? 꽃밭을 너머 조금 걸었을까 사람들의 활기가 띄는 광장이 나왔다.
“ 일단 각자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아보세. ”
우선은 정보 수집이 먼저였기에 알피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 끝나면 광장으로 다시 모이기로 하면서. 조금 걸어가니 장터같이 보이는 곳이 나왔다.
‘ 이봐 아가씨! 오늘 저녁은 생선 어때 생선! 막 잡아올린 생선들이야 한번 보고 가! ’
‘ 오늘만 특별할인~ 모든 물건 10얀 깎아드립니다~ ’
울티마 툴레에 이런 스테이지가 있는건 둘째치고 이렇게 평화로워보이는 곳이 멸망했다고? 어째서? 멸망의 원인이 되는 사람을 이중에서 어떻게 찾지? 걷다보니 장터를 벗어난지 꽤 되었는지 주변에는 드문드문 주택이 보였고 도저히 누군가를 찾을수도 없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하늘의 한 구석이 어그러져보이는 듯 해 고개를 기울였다.
“ 저게 뭐지? ”
마치 홀로그램이 에러를 일으키는듯한, 혹은 무언가 불투명한 막으로 가리고있는 것처럼. 가리다니 무엇을? 그 막은 위에서부터 내려와 땅까지 이어져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느 일대 주변을 다 감싸고 있는 것 처럼. 저 너머에 이 별이 멸망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빠르게 해 막의 가까이 달려갔다. 이 너머라면-
탁.
그 순간 누군가 자신의 팔을 낚아채며 달려가는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 이봐. 이 앞은 출입금지야. ”
“ 뭐? ”
“ ‘ 밖 ’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
제 팔을 잡고 놔주지 않는 사내는 검은 머리의 긴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나오는 만화의 영웅처럼 진갈색의 긴 망토를 두른채 혹시라도 팔을 놓으면 내가 뛰쳐나가기라도 할거라고 생각했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자 그 이유를 묻는거라 생각했는지 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 마물들한테 물어뜯겨 죽고싶은게 아니라면 이 안에 있어. ”
“ 마물같은게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
“ 안돼. ”
그 말과 동시에 제 팔을 잡고있는 사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픈것보다도 어쩐지 간절하면서도 강박적인 집착에 눈살을 찌푸렸다.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도 누군가 그 사내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동료들인 것 같은 모습에 그 사내는 평온하게 웃으며 나를 끌고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 ■■, 안보여서 찾았잖아. ’
“ 아, 이사람이 길을 헤매고 있길래. ”
? 방금 이사람을 부르지 않았나? 그런데 왜 이름이..
‘ 이런곳에서? 하긴 여기는 외지라 사람들이 잘 안오니까 모를만 하지. ’
“ 여기서 제일 가까운게 장터니까 거기까지만 데려다줄래? ”
‘ ■■ 너는? ‘
또다. 또 저사람의 이름만 뭉개져서 들리지 않았어. 대체 어떻게 된거지?
“ 나는 혹시 모르니까 주위를 더 둘러보고 갈게. 길 잃은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잖아. ”
‘ 누가 영웅 아니랄까봐 착실하다니까. 너무 늦지마. ’
“ 알았어. ”
“ 잠깐, 방금 뭐라고..! ”
방금 분명 영웅이라고 했는데? 궁금한 것만 잔뜩 남긴채로 나는 어느새 그 사내의 동료들과 함께 장터로 돌아와있었다.
‘ 자, 이 앞 광장에 도시 지도가 있으니 거기서 길을 찾아가면 쉬울거다. ’
“ 있잖아. 혹시 당신들은 영웅의 동료야? ”
‘ 응? 그렇지. 언젠가 꼭 이 세계를 구해내자고 약속해서 지금까지 같이 모험을 하고있지. “
“ 세계를 구한다니? ”
‘ 이 앞으로 두개의 마을만 넘어가면 마족과의 전쟁터야. 우리는 그 너머로 가서 마왕성을 타파할거다. ’
정말 판타지 게임의 정석같은 스토리네.
“ 그런데 왜 여기에서 머물고 있어? ”
‘ 그건… ’
..치지직-
‘ 자, 이 앞 광장에 도시 지도가 있으니 거기서 길을 찾아가면 쉬울거다. ’
‘ 조심해서 잘 가라고~ ’
그 순간 무언가 말하려던 동료들의 얼굴에 노이즈가 낀듯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도로 돌아와서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등을 돌린채 나와 함께 돌아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태엽감기 인형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막. 그리고 수상한 사내와 알 수 없는 그의 동료들. 일단 모두와 이야기 하는게 좋을 것 같아 광장으로 돌아갔다.
광장에 들어서니 메테오와 그라하, 알피노와 알리제가 먼저 도착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피노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모두가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가자마자 알리제가 다가와 소리쳤다.
“ 여기 이상하지 않아?! ”
“ 으응? ”
내가 당황하는사이 알피노가 알리제를 진정시키고 메테오부터 돌아가면서 발견한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 도시가 활기를 띄는거랑은 다르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었어. ”
“ 맞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구는것 같더군. ”
“ 그리고 다들 봤지? 이 마을 무슨 막으로 뒤덮혀있었잖아. ”
“ 그래. 막의 너머를 ‘ 밖 ’이라고 부르며 나가면 안된다고하는것도. ”
“ 메이, 너도 똑같았어? ”
내가 조사한 것과 비슷해서 달리 할 말이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이다가 영웅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 아, 그러고보니 이 도시에 영웅이 있었어. ”
“ 영웅? ”
“ 응. 내가 막 가까이 가려고 하니까 ‘ 밖 ’으로 나가면 안된다고 막더라. ”
역시 영웅덕후 아니랄까봐 영웅소리에 그라하의 귀가 쫑긋솟아났다.
“ 그리고 자기 동료들한테 나를 이 근처까지 데려다 주라고 넘기고 가더라. 저 너머는 마족들의 전쟁터라는것 같았어. ”
내 말에 알리제가 놀란듯이 내 팔을 덥썩 잡았다. 영웅의 동료들이라고 하니 보고싶기라도 한걸까? 그렇게 따지면 알리제도 메테오의 동료니까 같은 포지션일텐데.
“ 동료들이라니, 그게 사실이야?! ”
“ 어? 어어.. ”
“ 그럴리가 없네. 영웅의 동료들은 이미 몇 달 전에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던데. ”
“ 맞아. 마족군의 일부를 일망타진하고 영웅만 겨우 살아돌아왔다고 했어. ”
그럼 나를 데려다 준 사람들은 누구라는거지? 영웅의 새로운 동료들인가? 그럴리가 없는데.
그 순간 오류가 난 것처럼 노이즈가 낀 영웅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막의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도시,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워보이는 사람들, 이미 죽은 동료들, 들리지 않는 영웅의 이름, 겨우 살아돌아온 영웅, ‘ 밖 ’으로 나가지 않는 영웅.
“ 아모로트...? ”
어째서인지 아모로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아모로트와 같이 어떠한 시간에 머물러있구나.
“ 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야할지 알 것 같아. ”
.
.
.
.
우리는 장터와 주택가를 지나쳐 막이 눈 앞에 보이는 경계에 도착했다. 아까 이 근처를 돌아보겠다고 했으니 보고있다면 나타나겠지.
“ 또 너야? ”
검은 긴 생머리에 진갈색 긴 망토를 두른 사내가 어느새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사내가.
“ 역시. 여기 있을 줄 알았어. ”
“ ‘ 밖 ’에는 나가면 안된다고 했잖아. ”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메테오와 그라하, 알피노와 알리제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면서 그 사내의 앞으로 나아갔다.
“ 왜 나가면 안되는데? 그 안되는 사람에 너도 포함이야? 네 동료들이랑 세계를 구하기로 한 약속은? ”
“ 네가 그걸 어떻게.. ”
“ 네 동료들이 말해주더라고. ”
내 말을 들은 사내는 주먹을 꽉 쥐면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 전쟁은 이미 끝났어. 마족의 승리로. ”
“ 영웅인 네가 있잖아. 사람들도 다.. ”
“ 나는 졌어! 들었으면 이미 알거아냐! 동료들도 모두 잃었다! 나한테 남은건 허울좋은 영웅이라는 이름표 뿐이야! ”
“ 그래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다 이곳에 가둬둔거야? 네 동료들의 환상까지 만들어가면서. ”
“ 보호하는거다! ‘ 밖 ’은 위험하니까. 적어도 이 안에 있으면 누가 목숨을 잃을 일도 없어. 모두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테니!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것 밖에는- ”
“ 도망치는거잖아. ”
영웅이라 불리는 이 사내는. 나랑 닮았다. 소중한 친구를 잃고, 동료를 잃고 그 자리에서 무너져 일어나고 싶지 않았던 시절의, 플레이어였던 시절의 나와 닮았다. 게임을 진행해야했기에 억지로 앞으로 나아가야했던 나는 늘 뒤를 돌아보고 지나온 이야기를 그리워했다. 그 시간에 머물고 싶어했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영웅은 앞으로 나아가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야만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것을.
“ 사실은 너도 알고 있잖아. 네가 도망치고 있다는 걸. ”
“ ... ”
“ 나도 알아. 영웅의 일대기는 괴롭고 험난하지. 또 누군가를 잃을지도 몰라. 하지만, ”
“ … ”
“ 동료들과의 약속을, 친구들이 사랑한 세계를 지키려면 그들의 슬픔을 딛고 걸어가야하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있잖아. ”
“ … ”
“ 일어서지 못하겠다면 내가 손을 뻗어줄게. 나아가지 못하겠다면 내가 너를 끌어당겨줄게. 그러니까. ”
그 순간 사내의 몸이 사라지면서 검은 새가 날아올랐다. 검은 새가 날개짓을 하기 시작하자 검은 회오리가 새와 내 주변을 감쌌고 나는 그대로 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우리 다시 같이 모험을 하자! ”
검은 회오리는 그대로 메이를 집어삼켰다. 메이와 영웅이라 불리던 사내가 서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대신 도시를 감싸고 있던 막이 사라지며 그 너머로 이어진 길에 투명한 얼음으로 된 계단이 위로 뻗어졌다. 그 계단을 바라보던 알리제가 바닥을 세게 차며 화를냈다.
“ 또..또 이렇게! 멋대로 사라지고! ”
“ 알리제... ”
“ 메이의 말대로 우리도 앞으로 나아가자. 종말을 막아내고 모두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거야. ”
그라하의 말을 들은 메테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그라하가 따랐고 주먹을 꾹 말아쥐던 알리제가 얼음으로 된 계단을 노려보듯이 바라보다가 알피노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다들 돌아오기만 해봐. 가만안둘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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