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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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밀밭에 다채롭게 세워진 허수아비. 아이가 조막손으로 가족과 함께 만든 엉성한 허수아비, 조각가가 심혈을 기울여 조형을 잡은 멋쟁이 허수아비, 간간이 마을까지 내려오는 몬스터에 의해 여기저기 두들겨 맞은 흔적이 있는 애환 서린 허수아비들. 그중에서도 특별한 것 없어 보이지만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 드는 허수아비가 마을 입구 가까이에 세워져 있었다. 세월
꼭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원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방향으로 몸이 향하다니. 나를 부르는 것은 죽은 이의 혼인가, 인간을 잡아먹는 정령인가? 푸른 이끼와 초목, 희귀한 꽃과 열매로 연결된 길은 길이라 할 수 없을 만큼 혼잡하고 아름다운 온전한 자연 그대로였건만, 나는 이끌림을 따라 분명하게 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숲을 지고 사는 만큼 숲의 위험성
옆집에 새로 사람이 이사 온 듯했다. 이른 아침 열어본 우편함에 소심하게 들어있던 백설기와 앙증맞은 메모지. 둥글둥글한 글씨체로 간략하게 적혀있는 잘 부탁드린다는 내용. 매일 점심쯤이면 들려오는 엉망진창인 바이올린 연주 소리. 아직 마주친 적은 없지만 심심찮게 느껴지는 인기척. 가끔 나갈 때마다 집 근처에 생긴 화단이 점점 화려하게 살아나는 것까지. 솔직
말을 할 수 있다면 저는 정말 행복했다고 언니에게 전할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기억을 소중히 품어주세요. 볼품 없는 마지막 모습을 가슴에 새기지 말아주세요. 이제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오르지 않고 다리가 찌르르한 느낌이 없어요. 꼭 어릴 적으로 되돌아온 것만 같아요. 언니도 제가 이렇게 건강한 걸 보면 틀림없이 기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