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그리고 안녕.

기억하는 것

시계 by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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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 수 있다면 저는 정말 행복했다고 언니에게 전할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기억을 소중히 품어주세요. 볼품 없는 마지막 모습을 가슴에 새기지 말아주세요. 이제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오르지 않고 다리가 찌르르한 느낌이 없어요. 꼭 어릴 적으로 되돌아온 것만 같아요. 언니도 제가 이렇게 건강한 걸 보면 틀림없이 기뻐하겠죠. 아플 때마다 곁을 지켜주셨잖아요. 모든 게 흐릿해진 세상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어요. 심장께 지척에 닿던 뜨거운 숨, 몸을 쓸어주던 조심스러운 손길. 그때마다 깊은 슬픔의 향이 전해져왔어요. 지키는 건 제 역할인데, 지킬 수 없었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떠나지 말아달라고 졸라서 미안해요. 아파서 미안해요. 두고 가서 미안해요. 너 없이 어떻게 살겠냐는 목소리가 머리를 맴도네요. 실제로 듣지 못하게 된 지는 꽤 됐지만요. 언니랑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었는데 버티기 힘들었어요. 혼내진 않으실거죠? 눈도 귀도 한참 전에 닫혀버려서 얼굴도 목소리도 보고 들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지만 손은 변함 없이 따스했어요. 언제나 저를 쓰다듬어주던 다정한 손길이 그리울 거예요.

이곳을 관리하는 분이 말하길 다리를 건너면 또 다시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해요. 색색깔의 반짝거리는 다리는 산책하던 날 가끔씩 하늘에 보이던 것과 비슷했어요. 언니가 저를 안아들고 무지개 떴다고 기분 좋게 외치던 것이 생각나요. 이 다리를 건너면 그 풍경을 다시 함께 즐길 수 있을까요?

...그러고 싶다는 욕심이 있지만 기다리기로 했어요.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되겠지만 저는 기다리는 걸 제일 잘하니까요. 동생을 들여도 괜찮아요. 그걸로 상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다면 괜찮아요. 새로운 행복을 가져도 괜찮아요. 질투도 나지만 언니의 첫 동생은 저니까요. 제일 먼저 이 다리를 뛰어서 맞이할게요. 언니는 분명 깜짝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를 거예요. 그러고는 아프지 않던 시절처럼 있는 힘껏 안아주시겠죠. 언니의 포근한 향, 따스한 품, 율무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차올라서 기다릴 힘이 나요. 이곳은 처음 보는 공도 인형도 많아요. 언니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해요. 언니가 좋아하는 제가 존재해요. 이건 언니가 저를 잊지 않듯이 제가 언니를 잊지 않는 방식이에요.

안녕, 그리고 안녕. 내 사랑. 내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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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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