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est Dungeon

어떤 도둑질

보두앵(나병환자)과 오드리(무덤 도굴꾼)의 대화

a poached egg by 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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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는 심호흡을 하면서 코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소용이 전혀 없었다. 아니, 도리어 코담배의 우아한 향기가 그녀 안의 천박한 욕망을 더욱 부채질했다. 원정을 나가는 영지 곳곳의 분위기가 자신이 평소에 일하는 곳의 분위기가 다를 것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손이 근질거리는 감각이 코담배와 독주로도 달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어느 날 저녁, 그녀는 결국 일행 중 한 명의 봇짐을 뒤졌다. 그녀에게 있어 달리 특정 인물을 지목할 동기는 없었기에(주니아가 다소 밉상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 앞에서 제일 무방비하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의 짐을 골랐다.

  미안, 하고 오드리가 작게 중얼거리며 나병환자 보두앵의 짐의 매듭을 노련하게 풀어나갔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은 가벼웠다. 그녀는 지금 물건을 훔치려는 게 아니다. 지금 이건 일종의… 그러니까, "감각"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연습같은 것에 가까웠다. 아무리 자신이 무덤을 도굴하는 사람이라고는 한들 동료의 물건을 훔치려들 정도로 오드리는 품위를 잃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다른 이의 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잠결에 보두앵이 몸을 뒤척이자 오드리가 매듭을 푸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예상은 했다지만, 나병환자의 짐은 이렇다할 게 없었다. 시집 한 권, 몸에 갈아붙일 약초를 담은 유리병, 오드리의 몸을 두 번은 다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여벌의 붕대.

그리고 범상치 않아보이는 반지 하나.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던 나병환자의 눈이 떠진 건 바로 그 때였다.



  오드리는 사과를, 아니 용서를 빌었다. 동료로서 빌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오드리가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로 움직이지 않자, 보두앵이 먼저 웃으며 오드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평소에 시구를 읊조리듯 나직히 그녀에게 말했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지 않나. 너무 마음쓰지 말게.

  그 때 그녀는 그의 나직하고 담담한 어투에서 어떤 위엄을 읽었다. 높은 곳에 서 있는 자가 마땅히 갖춰야 할 지성미, 인내심, 강인함, 관대함… 오드리가 그런 것들을 곱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보두앵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이 반지를 이렇게 우연히 알게 된 건 자네 하나뿐일세. 그렇다고 난 이 반지를 들고 다니면서 내 동료들이나 내 이전의 정체를 몰랐던 영지의 사람들 모두에게 내가 이전에 누구였는지를 공표하고 다니고 싶지도 않다네. 나는 그런 과거의 영광만을 뒤좇는 사람이 아니니까 말일세. 

  보두앵은 목청을 한 번 가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기침이 세게 나와 숨을 다시 원래대로 고르기까지엔 제법 시간이 소요됐지만 그도 그녀도 개의치 않았다. 보두앵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원정 중이라 이런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을 구두로만 해야 하는 점을 양해하게나. 만약에,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들랑 이 반지는 자네 소유가 되는 것일세. 마음대로 해도 좋아. 어딘가에 팔아버려도 좋고, 귀찮다면 그냥 땅에 묻어버려도 좋고. 내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지금의 나와는 상관이 없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있을 때 이 반지 때문에 쓸데없는 소요가 일어나선 안 되진 않겠나. 그래서 들고 다니는 것뿐인, 그 때의 나를 상징하는 물건일세. 자네라면 잘 알아들었을 거라 믿네. 알겠지?


그리고 실제로 보두앵의 반지는 그대로 오드리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영지의 깊은 곳에서 동료를 대신해 그토록 원하던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보두앵이었지만, 나병환자라는 이유로 영지에 시신이 들어오자마자 제대로 된 예우도 예배도 없이 바로 시신이 부산하게 불태워지는 것 또한 겨우 살아돌아온 동료들이 감당해야 할 처우였다. 레이널드는 공황에 빠져 부산하게 보두앵의 시신을 불태우는 사람들을 향해 그대들을 향해 신의 저주가 내릴 것이라는 말까지 남겼지만 이미 더 큰 공황에 들어선 대중 앞에선 그 신성한 저주가 별 의미가 없었고, 디스마스는 팔짱을 끼고는 멍하니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길만을 쳐다보고 있었으며, 주니아는 차마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가 없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여관으로 들어가버렸다. 보두앵이 들고 다니던 시집 한 권, 양피지 한 장, 붕대와 약초 이 모든 것들이 다 화마에 삼켜져 잿더미로 변해버린 한편 손재주가 유독 좋았던 오드리가 간신히 그 반지만을 빼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적어도 지금 기준에선 한참 나중의 일이다. 아무튼지간에, 오드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서 최대한 이전의 자신의 품위와 우아함이 묻어져나오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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