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ERA_CM

루테라 / Variable

페닝님 커미션

아주 사소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의뢰. 받을 가치도 없고, 크게 돈이 될 것 같지도 않으며, 원한이라기엔 그 무게가 너무 가볍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자리를 빼앗긴 것일 터인데. 아, 그래서 능력자 헌터를 고용할 생각을 한 걸까. 루드비히 와일드는 저를 찾아온 멍청한 의뢰인을 무시했다. 돈도 되지 않는 것을 죽여서 뭐 한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지금의 제가 원래 여기 있을 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제거 대상은 테트라 지오메트릭. 일반인. 그러나 루드비히는 그녀가 일반인이 아닌 능력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받은 의뢰대로 그녀를 죽이지도 못했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준 끝에 애매한 관계로 남았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쓰고 싶어 하나 가르침이 필요한. 그런 하급 능력자였다.

분명 그랬건만. 왜 저는 지금 이곳에 있는가. 루드비히는 제가 알고 있던 과거의 사실이 반복되고 있는 것에 지나가다 신문 한 부를 샀다. 날짜까지도 그때와 같다. 정말 과거로 날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럼 그 직전의 난, 뭘 하고 있었지? 왜 생각이 나지 않는가. 루드비히 와일드는 의문은 뒤로 하고, 우선은 과거와 똑같이 행동해보기로 했다.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

“테트라 지오메트릭.”

그리고 사람. 루드비히는 그 이름을 한 번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직은 그녀의 앞에서 말해선 안 되었다. 가볍게. 단번에 죽일 생각으로 덮치는 것이 아니라, 저쪽이 일반인이라 생각하고 허술하게. 그렇게 접근한 순간 예상대로 입자로 된 벽이 저를 막았다. 어설프다. 급하게 막은 것이라 이 정도는 빛으로 쉽게 파훼할 수 있다. 그때의 나도 어지간히 당황했던 모양이군. 루드빅은 그것을 깰 수 있었으나 테트라가 저를 벽 안에 가두는 것을 지켜 보고, 그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쪽을 알고 있어요. 헌터잖아요?”

아뇨, 모릅니다. 이때의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하급 능력자라고는 하나 이 정도로 썩힐 능력이 아니라는 것도. 내가 누구인지도. 나는 생각보다 당신을 잘 압니다. 지금 그 표정은 사람을 가둬둔 채 하는 협박이 아니라 겁에 질린 얼굴이고, 지금 머릿속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없이 생각하는 중이라는 것도. 그나저나 그때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나. 일반인이 아닌 능력자였다는 사실에 놀라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것일까. 루드비히는 다음에 나올 말도 알고 있었다.

“저를 이렇게 공격한 거라면, 제가 타겟이고요?”

그렇죠. 아, 정말. 재미없게 똑같이 흘러가는군요. 자존심과 별개로 이렇게 얌전히 잡혀있는 것도 약간의 변수를 기대한 것이었는데. 정말로 과거로 돌아오기라도 한 것이라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까 싶어서.

“어떻게 저를 알고 오신 건가요? 누가 저를 죽이라고 했나요?”

나는 당신을 몰랐습니다. 이제는 알지만요. 당신을 죽이라고 했던 것을 일단은 받아들였으나 무시했습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한 것에 대해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 시간 동안 당신이 뭘 할지 예상이 갑니다. 또 똑같이 되풀이하면, 똑같은 관계에 다다를까요.

“당신을…….”

애초에 난, 당신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죽인다?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살려뒀으니 그건 아니고. 가르친다?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정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애매하기만 한 관계에서 확실한 즐거움이 있다. 모순되나 그게 사실인지라.

“지키라는 의뢰를 받아서.”

돌아온 이 과거에 변수가 없다면, 내가 하면 되지 않겠는가. 루드비히는 씩 웃으며 말했다. 공격했던 것은 당신이 능력자라는 것을 의뢰인이 알고 있어, 시험해봤을 뿐이라고. 그 말에 테트라는 경계하면서도 그 경계의 대상을 루드비히가 아닌 이름 모를, 존재하지도 않는 의뢰인으로 바꾸었다. 누가? 내가 능력자인 걸 알고 있었다고? 그렇게 당황한 틈을 타 루드비히는 저를 막은 입자의 벽을 쉽게도 깨뜨렸다. 쉽게 깨뜨릴 수 있음에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다는 것 같은데.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게 아니라, 죽지 않게만 둘 생각입니다.”

루드비히는 옷을 대충 툭툭 털고, 괜히 제 구두를 살폈다. 그렇게 여유로운 그와는 달리 테트라는 여전히 고민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아, 저 얼굴. 최근에도 계속 보긴 했지만 이때는 불신까지 꽤 섞여 있군요. 그 표정을 가만히 관찰하던 루드비히는, 어느새 테트라가 제 앞에 더 가까이 다가온 것에 조금 뒤로 물러났다.

“제가 능력자라는 것도, 의뢰인이 알려줬나요?”

루드비히는 휘파람을 한 번 불었다. 촉이 있긴 하네요. 의뢰인이 알려준 것인지, 그전부터 제가 능력자인 걸 알고 헌터로서 주시하고 있었는지. 그것을 파악하려 하는 것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이런 면이 있어서 살려두고 가르쳤던 걸까. 역시 변수를 두길 잘했다고. 루드비히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건넸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테트라가 손을 내밀지 않는 것에 손을 거두고선 어깨만 으쓱였다.

“의뢰인이 누군지는 당연히…….”

“말해드릴까요?”

당연히 말하지 않겠지. 그러나 제 예상과 다르게 루드비히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불쑥 들이밀면, 테트라는 놀란 눈으로 뒤로 물러났다. 아까와는 반대로 다가가고, 물러난 상황 속에.

“농담입니다.”

루드비히는 그렇게 말하고선 소리 내어 웃었다. 비웃음이 아닌 즐거워 웃는 웃음. 그러나 오히려 소름이 올라 테트라는 얼굴을 구겼다.

“일주일. 그 정도 시간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테트라는 그 말에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만약 저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면, 일주일 동안 정리를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킨다. 믿음이 가지 않는 의뢰 내용을 말하고, 앞으로 제 곁을 맴돌겠다 당당하게 말하는 그가 왜 제게 일주일의 시간을 준다 말하는 것일까.

“저를 지키라고 의뢰한 게 누군지는 알려주지 않을 거라면…….”

그런 테트라의 의문은 상관없는지, 루드비히는 테트라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음에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지루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애매한 것이 조금 질려서 변수를 두었건만.

“제 의뢰비는 얼마였나요?”

똑같아도 왜 웃음이 나는지. 루드비히가 진지하게 듣지 않고 저를 깔보고 있다 여긴 것일까. 테트라는 주먹을 한 번 꽉 쥐었다.

“저를 지키는 의뢰에 당신은 얼마를 받았나요?”

원래라면 저 질문엔 침묵으로 일관했을 터다. 그러나 루드비히는 이번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띤 채 답했다.

“받지 않았습니다.”

“네?”

“아직 못 받았는데, 왜. 대신 내기라도 하실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럼 왜…….”

그러면, 왜? 루드비히는 그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일주일 뒤 다시 찾아오겠노라 말할 뿐이었다. 원래의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에서 침묵으로 답했을 때, 당신은 또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 작은 변수가 어떤 큰 변화가 되어 관계를 일그러뜨릴까요. 루드비히는 어느새 도로 미래로 돌아가는 것 따위는 생각않고, 돌아온 과거를 현실로 여기고 있었다.

그 뒤에도 테트라를 찾아갈 때면 테트라는 한 번씩 루드비히에게 묻곤 했다. 그것은 일전의 의뢰에 대한 것이기도, 능력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기도 했으나, 의뢰비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그러는 당신은 왜, 연구가 아니라 공성에 뛰어든 겁니까?”

그럴 때마다 루드비히는 그 질문으로 되받아치곤 했다. 피차 대답하지 않을 질문 말고, 필요한 걸 주고받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며 루드비히는 몇 번이고 테트라의 입자를 깨뜨렸다. 깨지지 않도록 하거나, 혹은 일부러 깨뜨린 뒤 적의 힘을 이용하는 법까지. 그렇게 공성에 참여하고, 그러다 평범하게 거리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변수를 두었음에도, 저희의 관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애매한 채로. 그렇기에 굳이 선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제멋대로 행동하기엔 편하다. 그러니 굳이 이 관계를 무어라 정의하지 않아도 좋다. 그럼 이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왜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나는 그런 선택을 하고, 당신은 왜.

“루드비히?”

이런 눈을 하지? 혐오하고, 경계하고, 그런 눈빛 사이로 다른 것이 섞였다. 관계는 다르지 않으나 내가 저지른 변수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왜? 무엇이 달라서? 그리고 왜 나는 이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가.

그런 의문에 걷다가 멈춘 순간, 퍼억. 무언가가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주먹이었다. 다시 한번, 퍽. 이번엔 반대쪽을 후려쳤다. 이게 무슨. 누군가가 제 얼굴을 주먹으로 잘도 때리고 있는 것에 루드빅은 눈을 한 번 꾹 감았다가 떴다. 그러면 그가 있는 곳은 거리가 아니었다. 매캐한 공기,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 그리고 주먹. 아, 주먹? 퍽, 이번엔 얼굴이 아닌 루드빅의 손이 그 주먹을 붙잡았다. 제법 얼얼했다. 그러나 얼굴만큼은 아니었다.

“테트라?”

어. 이름을 불린 테트라는 반대쪽 주먹도 들었던 것을 멈추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루드빅의 위로 아예 올라타선 뺨을 치다, 그래도 대답이 없는 것에 주먹질을 한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루드빅은 멍한 얼굴로 보고 있다, 테트라가 놔달라며 팔을 흔드는 것에도 그 주먹을 꽉 쥔 채 노려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사람 위에 올라타서 이렇게 때려놓고 태연하기는. 사람을 태연하게 죽이는 헌터가 할 말은 아닌가 싶었으나, 루드빅은 그런 것보단 후련하다는 얼굴로 제 위에서 일어나는 테트라를 어이없게 쳐다보았다. 정신도 못 차리고 누워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이 꿈인지, 이렇게 처맞아서 깨어난 이쪽이 꿈인지. 당연히 맞고 깨어난 쪽이 현실이었다. 아프니까. 그러나 루드빅은 몸을 일으켜 앉은 뒤에도 멍한 채였다.

“언제는 막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면서요?”

입자를 굳히고, 벽을 만들어 막고, 가두고. 그것만으로 다 될 리가. 상대를 해치고 싶지 않은가?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것을 무기로 쓸 방법까지 가르쳤다, 내가. 차라리 그걸 써먹었으면 모를까. 정신을 잃은 제게 주먹질을 했다는 사실이 아직 어이가 없는지, 루드빅은 조금 지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 태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네요.”

태운다. 내가 마지막으로 태웠던 것. 루드비히 와일드는 이곳이 아직 전장의 한복판임을 알았다. 안개가 자욱한 곳까지 저를 끌고 와 몇 번을 깨우고, 그러다 뺨을 치고, 주먹질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는 과거로 돌아갔다 믿은 채, 온통 변수뿐이었던 그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걸 보고 있었다.

그래, 정신계 능력자. 거울 같은 것을 허공에 띄워 사람의 정신을 흔들어 놓던 것을, 그냥 깨트리고 태웠다. 흔들어 놓을 틈도 없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위험성이 있다고 옆에서 테트라가 말했음에도 루드빅은 저를 덮치는 거울. 아니지, 창에 가까운 무언가를 깨뜨려 부수고 태워 녹였다. 그 갈라진 틈으로 잠시 본 것은 결국 과거도 뭣도 아닌.

“……하!”

망상이다. 휘말린 것은 저뿐이니, 테트라 지오메트릭이 무언가 영향을 준 것도 아니다. 그저 저 혼자 과거를 회상하고, 그 안에서 바꾸고자 했으며, 그렇게 바뀐 결과 속에서 무언가 만족을 얻었다.

“내가 제법, 세게 맞은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맷집은 약한가 보죠?”

그 사실을 자각하고나니 맞은 곳이 더 아려온다. 테트라가 깨어났으니 됐다며, 마저 이동해야 한다 말하는 것에 루드빅은 혼자 중얼거리기만 했다.

“약한 편이 나았겠어.”

그러면 쓸데없는 짓도, 소용없는 짓도, 헛된 것도 하지 않았을 테지. 그가 웃던 얼굴을 이내 굳혔다. 테트라는 그가 보고 싶지 않은 과거라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짐작하고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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