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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Summer

(1-1)

킹스크로스역은 언제나 각양각색의 사람으로 붐빈다. 하지만 그 ‘각양각색’의 사람에도 ‘마법사’나 ‘마녀’는 포함되지 않겠지. 니므 레드몬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차에서 내렸다. 킹스크로스역은 달라진 점 하나 없이 굳건했다. 여전한 기차들과 역무원, 무어라 소리치는 사람들, 오래된 플랫폼, 출발 시간을 알리는 게시판과 티켓 부스. 애초에 변화가 있었다 한들 열한 살 먹은 어린아이의 시선이 잡아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자 작은 구두굽이 돌바닥과 부딪혀 만들어내는 작은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소란 속에서도 명확히 들리는 타격음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니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확실히 트롤리도 없이 한 손에는 자기 몸의 반만한 트렁크를, 다른 한 손에는 부엉이가 든 커다란 새장을 힘겹게 든 채 제 뒤를 따르는 풍채 좋은 검은 고양이에게 말을 거는 어린 여자아이는 무시하기 힘든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니므가 몹시 바라지 않는 일이었지만, ‘마법 사회’와 관련된 물건들은 하나같이 평범함을 거부했다. 그리고 ‘니므 레드몬드’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마법 사회의 일원이 되고 그곳에서 막 귀환한 이상 주목은 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 존재감 덕분에 인파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으니 다행일까? 플랫폼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오는 훤칠한 두 인영은 니므에게 누구보다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니므!”

“우리 공주님!”

더없이 화목한 가정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여자아이의 부모가 확실한 남녀가 달려와 아이의 볼에 몇 번이고 키스하고, 포옹한 뒤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를 가뿐히 들어올려 목말을 태우기까지 한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호들갑스러운 제 부모와는 달리, 이런 애정이 익숙하다는 듯 예의 그 뚱한 표정 그대로 제 부모의 뺨에 입 맞추고 포옹한 뒤, 자연스레 남자의 어깨에 걸터 앉는다. 그런 다음 입을 열더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니고 우리 아빠는 필립 공이 아닌데요.”

그러자 아이를 목말 태운 남자는 기분 나쁜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며 이리 답한다.

“그럼 마법 세계의 공주님인 모양이구나!”

아이는 지지 않고 또 대꾸한다.

“마법 세계에는 여왕이 없어요.”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인듯, 아이의 엄마가 분명한 여자는 웃으며 다시 한 번 아이의 볼에 키스한다. 지나가는 이들이 흐뭇함에 한 번쯤 뒤를 돌아볼만한 광경이었다.

“친구는 많이 생겼니, 니므?”

“잘 모르겠어요.”

“저런. 그래도 즐거운 일들도 분명 있었지?”

“…즐거운 일이 하나 있으면 화가 나는 일이 두 개씩 있었어요.”

“그래도 즐거운 일이 하나씩은 생겼으니 다행이구나.”

“네. 친구라 부를만한 애들인지 잘 모르겠어요. 예전 친구들만큼 좋은 애들을 사귈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 안 했는데,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그것 참 잘 된 일이네!”

여자는 아이를 뿌듯하게 바라보고는 또 한 번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마치 딸의 그 무뚝뚝한 대답이 제 나름 최선의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안다는 듯이, 제 딸이 꽤 괜찮은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는 듯이.

“후플푸프가 싫다더니, 이젠 완전히 정을 붙인 모양이야.”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런, 이젠 이 아빠도 몇 가지는 알지. ‘머글’이라도 ‘부인과 딸이 마녀인 머글’이니까 말이야.”

“엄마가 말했지? 넌 어느 기숙사에서든 잘 할 거라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서 아이를 들어 올리더니 눈을 맞추고 빙글 도는 묘기를 선보이더니 말한다.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 위대한 마녀 윈슬로와 위대한 머글 레드몬드의 딸! 넌 어디서든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란다, 니므."

여자아이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제 엄마를 바라본다. 흘러 넘치는 확신으로 반짝거리는 사람을,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개를 돌려 제 아빠를 바라본다. 어느새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어깨에 검은 고양이를 올리고 있는 남자를.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사람, 누구보다 혼란스러웠을 사람. 그럼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 가득 띄우고 제 부인과 딸을 향해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니므 레드몬드는 어른스러운 아이다. 열한 살 답지 않은 면이 한두가지가 아닌. 그런 아이에게는 보이는 게 많다. 그렇기에 니므는 이번에도 볼 수 있었다. 제 아빠의 밝은 표정을. 단단한 결심을 마친 뒤 찾아온 개운함을.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은 니므 뿐이었다. 혹은 준비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에 빠진 니므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은 엄마의 쾌활한 외침이었다.

“프랑스에 가자, 니므!”

니므는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네?”

“니므, 프랑스에 가는 거야. 여름 휴가로 딱 좋지 않겠니? 프랑스 남부에 별장을 빌렸단다. 그곳에서 여름을 날 거야. 네가 호그와트로 돌아가기 전까지 말이야.”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모든 준비와 계획이 끝났다는 뜻이다. 프랑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프랑스로 떠난다니,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영국을 벗어나면 법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마법 사회’니, ‘머글 사회’니, 하는 구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마녀이니 머글이니 하는 것들을, 영국인이니 아일랜드인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여전히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인 채 있을 수 있다. 그런 얕은 생각이 흘러갔다. 사고의 결과라기보다는 직감에 가까웠을 것이다. 니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따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살아갈 곳을 택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 언젠가 니므가 직접 선택할 날이 왔을 때, 엄마는 니므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동시에 염증으로 가득해 보였다. 니므는 이번에는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아빠의 손을 쥔 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가족이, 세 사람이, 두 명의 마녀와 한 명의 머글이 킹스크로스역을 떠났다. 아무런 마법적 일도 일어난 적 없다는 듯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맞물린 적은 꿈에도 없다는 양. 기차역의 인파와 소음이 그들의 뒷모습을 가리고, 흔적을 지운다. 기차역은 여름 휴가를 떠나려는 이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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