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th

After

(1-2)

“니므, 프랑스에 가자!”

그 말을 시작으로,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가 학기를 마치고 킹스크로스역에 돌아올 때면 매번 새로운 행선지가 정해졌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에 가는 거야, 니므.”

“스웨덴에서 겨울을 보낼 예정이란다.”

“오스트리아로 가자, 니므.”

니므는 킹스크로스역에 내리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과 해후를 나누고, 호그와트에서 챙겨온 짐을 그대로 들고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 엄마와 아빠는 항상 아일랜드 남부에 있다는 아빠의 고향 집 대신, 영국 밖으로 떠돌기를 택했다. 마치 니므를 어디로든 데려가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뿐인 딸의 방학이 시작되면 레드몬드 가족은 이방인이 되어 새로운 땅에 발을 디뎠다. 몇 번이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양. 아는 이 하나 없는, 누구도 그들을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 니므는 군말 없이 그 여정에 동참했다. 어린아이가 가족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여행은 즐겁다. 그렇기에 거리낄 이유가 없다. 어린 니므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 범위 내에서는 불만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자란다. 그렇게 니므도 자랐다. 생각의 범위가 넓어졌다. ‘어른스러운 아이’가 볼 수 있는 것 이상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니므는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깨달았다.

엄마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 건 영국인 엄마와 아일랜드인 아빠를 둔, 마녀 엄마와 머글 아빠를 둔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걸.

내가 속으로는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머글인지 마녀인지, 아일랜드인인지 영국인인지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엄마가 눈치챘기 때문이라는 걸.

내가 늘 두 발이 땅에 닿지 못한 채로 허공을 부유하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그런 나를 위해 가족 모두가 이방인인 곳을 찾아 떠돌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그리고 니므에게 이런 깨달음이 찾아올 무렵, 레드몬드 가족의 유랑도 끝이 났다. 니므가 3학년을 마치고 킹스크로스역으로 돌아온 여름, 늘 그랬듯이 니므를 기다리고 있던 레드몬드 부부는 다정히 웃으며 이리 말했다.

“집에 가자, 니므.”

그렇게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는 아일랜드로 향했다. 다섯 살 이후로 방문한 적 없는 고향 땅을.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니므 레드몬드의 출생지는 잉글랜드의 땅인 아일랜드 북부 지방 벨파스트였기에, 온전히 ‘아일랜드’인 아일랜드 남부는 니므에게 고향 땅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했다. 그러나 아빠의 고향이라는, 어쨌든 자신의 뿌리가 시작된 땅. 그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잉글랜드와는 확연히 다른 공기가 감도는 낯선 고향을. 여름임에도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런던보다 훨씬 싸늘하고, 축축한 그곳을.

니므 윈슬로 레드몬드. 이 이름은 런던의 니므에게 하나의 낙인 비슷한 것이었다. 모두가 이 이름을 듣는 순간 ‘아’하는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누군가는 동정하는 눈빛을 하기도, 누군가는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촌스럽고 무식한 아일랜드 계집애. 아일랜드 억양이 전혀 없어서 몰랐네! 맞아, 머리색도 빨간색이 아니고, 주근깨도 없잖아. 아, 어쩐지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곱슬거리더라. 그치만 레드몬드네는 가난하지도 않던데! 넌 그럼 아일랜드인이야? 아니, 영국인이야. 이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자신을 멸시하려는 이들에게 몇 번이나 따지고, 보복했던가? 이제 니므는 그 이름이 시작된 땅에 있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니므의 존재는—

재수 없는 런던 계집애.

말하는 거 들어봤어? 꼴에 RP 억양 쓰는 것 하고는.

니므는 새삼 상처받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을 뿐이다. 그렇다 하여 원망이 피어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니므는 어른스러웠고, 똑똑했기에, 이 원망을 아무렇게나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무에게나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 원망을 속으로 품고만 있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니므는 아직 그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을뿐더러 그만큼 순한 성격 또한 되지 못했다. 해소되지 못한 원망은 쉽사리 번진다. 그것은 아일랜드니, 영국이니 하는 것을 넘어서, 결국 마법사니, 머글이니 하는 곳까지 닿았다. 마법 세계의 그 멍청한 법만 없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아일랜드로 강제적인 이사를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나는 런던에 남아 내가 공들이고 싸워가며 이루어낸 내 안락한 터전과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였을까?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 어느 날, 니므는 돌연 시내의 미용실에 달려가 의자에 앉고 요구한다. 이런 것은 마법으로 하면 간단하겠지만, 엄마에게 부탁하면 순식간에 해결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딴 마법의 도움 따위 받나 봐라!

“생머리로 만들어주세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요.”

카테고리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