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기억망각사건

디스맨 윤정한 전원우

by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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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기억. 참 틀려먹은 구절이다. 잊어진과 잊힌을 모두 사용한 이중피동이며 잊다라는 말의 의미가 기억하지 못하다이니 동어반복이다. 단 두 단어로 이루어진 엉망진창으로부터 태어난 존재, 그것이 A였다.

A는 멈춘 시간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존재했다. 얼마나 오래냐면, 윤정한이 자신을 잊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윤정한이 누구인지 잊을 때까지.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때는 이미 흰 천이 그 위에 덮어져 있었다. 윤정한이 자신이 A를 잊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씌운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A를 감추자 정한은 더 빠르게 A를 잊어갔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나 A는 알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A는 그와 함께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으므로.

“A야? 왜 그런 걸 쓰고 있어?”

그래도 괜찮았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A는 선명한 정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 피어난 것은 생생한 의문이었다. 어찌나 생생했는지 썩은 과일도 그의 손에 들리자 다시 나무에 매달린 듯 생기를 품었다. A는 거기서 죽은 궁금증이 떠올랐다. 네가 나에게 다시 닿으면, 네가 나를 다시 안으면 나도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기대도 잠시일 뿐. A는 빵도, 스프도, 과일도 모두 썩은 음식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정한아. 후추를 뿌린 스프는 되돌릴 수 없다고 했잖아. 너는 기어코 썩은 스프를 입에 대는구나.

정한이 A를 덮은 천을 벗기려 가까이 왔다. A는 그로부터 도망쳤다. 그것이 정한을 위해서인지 정한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집을 떠난 A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존재를 잃은 A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던 것이 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A는 그냥 발 닿는 곳으로 갔다. 발이란 것이 아직 존재한다면 말이다. 누군가의 꿈을 지나쳐 온 것도 같은데 아무 맛도 나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불 켜진 곳을 알 수도 없이 A의 세계는 오직 흑백이었다. A는 그것이 허무했다. 무엇이 허무했냐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허무했다. 정한은 이런 자신도 찾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한이 찾는 것은 사랑하는 A이지 아무것도 아닌 흰 천이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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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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