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

챌린지 by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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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은 악당이었다.

입만 열면 지겨운 잔소리뿐이다.

‘너희 할머니한테 안부전화했니? 생신은 챙겨드렸니?’

가족들에게는 관심이 없는지 학교는 잘 다녀왔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진학은 어디로 하는지, 대학 등록금은 어느 돈으로 하는지…묻는 법이 없었다.

오로지 입만 열면 본인의 친가 얘기뿐이었다. 저절로 가족들은 아빠를 기피하게 되었고 식사도 따로 갖게 되었다.

사실 그뿐이라면 악당이 아니겠지. 아빠는 흔히들 갖는 저장 강박증이 있었다.

길거리를 다니다 전혀 쓸모가 없어도, 낡디 낡아서 버려야할 물건도 본인이 쓸모있다고 여길때 무엇이든 집으로 가져왔다. 10년도 넘어보이는 구식 밥솥, 공구, 화분, 헌옷, 목재 호랑이상, 운동기구.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창고를 채우고 작은 방을 채우고 안방을 채웠다.

그것이 보기 싫었던 엄마는 몰래 갖다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 물건을 찾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찾지 못하고 버렸다고 생각하면(실제로 버렸고 모른 척 했다. 아닐때도 있었다.) 자신의 옷과 물건을 현관 밖으로 버리며 자기파괴적이고 위협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나가 죽어야지. 이렇게 물건 갖다버리고 죽으라는 뜻이네!!”

어렸던 나와 동생은 소리치는 아빠가 무서웠고 울며불며 옆에서 무릎 꿇고 발못했다고 빌었다. 악몽같은 순간이 지나고 버린다고 현관밖으로 꺼낸 물건들을 내버려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불길이 꺼진 순간 얼굴을 추수리고 아빠 물건을 조용히 집 안으로 엄마와 동생과 함께 남은 가족들이 옮겨야 했다.

그러한 소동과 비슷하게 시골 가서 살라며 나와 동생의 장난감 등을 차에 실어 온동네방네 시끄럽게 소리친 적도 있었다.

***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객사했다. 여름밤에 개울가에 나가 다슬기 잡겠다고 하다가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치고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시골집을 정리하며 아빠는 삶의 희망이 없다며 죽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였을까. 병의 증후가 보여도 병원에 가지 않았고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1년 후에 병원을 찾았을때 대장암 4기를 판정 받았다.

암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병원밥이 맛없다고 탈출하고 간호사와 말씨름하기 일수였고 약도 잘 챙겨먹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더 빨리 끄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받던 항암치료 1년 반이 넘어갔을때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사실 그때의 모든 기억들이 희미하다. 힘들었던 어린 시설과 암투병 생활을 도왔던 기억들은 상처라 묻고 묻고 또 묻었다. 욕하고 그때 힘들었다고 위안하며 말을 건네받는 것조차 하기 싫었다. 그냥 잊고 싶었다. 그렇게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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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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