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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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분석은 저희 전문이 아니긴 합니다만, 하고 남자는 선하게 웃는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분석에 필요한 장비는 갖추고 있으니 시도는 해 보겠습니다.”

네가 원하는 수준의 데이터에는 못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라는 뒷말도 덧붙였다. 서천은 물론 상세한 데이터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이 인공적으로 합성되어 인간의 신체에 영향을 끼치는 약물인지 아닌지만 파악할 수 있으면 되었다.

하여간 그게 일주일 전의 일이다. 서천이 서울 시내 백화점의 도넛 팝업스토어에서 정체불명의 정제를 발견한 게 열흘 전이니, 나름대로 발빠르게 움직였다고 할 수 있겠다. 단정하게 생긴 사설 분석 센터의 소장은 이번 주 내로 데이터를 보내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서천은 또다른 조사 결과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

마약 거래 장소로 변질된 도넛 팝업스토어에서 약을 거래하려고 했던 인물.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 중년의 남자. 나이는 마흔 중반 정도 되었을까. 그의 화상을 서천은 가지고 있었다. 그가 팝업스토어 계산대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서천이 촬영했던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아니다. 얼굴이 익숙하지도 않다. 그러니 그가 마약이 든 도넛을 사 가든 그렇지 않은 도넛을 사 가든 서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구태여 그의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긴 이유는…….

“뭐야, 이게…….”

서천의 연락을 받고 약속 장소로 나온 조사원은 반쯤 감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남자의 사진을 응시했다. 창문에서 내리쬐는 봄날의 볕이 스마트폰에 닿아 액정 밝기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모습을 서천은 바라보고 있었다.

카페에서 만나기 전 서천이 조사원 김민석에게 제공한 정보는 전무했다. 어떤 사람을 찾고 있는데 의뢰 견적을 내고 싶으니 서울 어딘가의 카페에서 보자는 연락만을 취했을 뿐이다. 과연 이런 언질만으로 그가 접선에 응해줄까 싶었지만, 그는 의외로 순순히 카페에 모습을 드러냈다.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은 그에게 서천은 아무런 인사도 설명도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도넛 팝업스토어에서 보았던 그 남자의 사진이 액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뒤로 넘겨 묶은 민석은 인사 하나 하지 않는 서천을 잠시 쏘아보다가 액정으로 시선을 떨궜다.

그리고 민석은 사진을 보자마자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뭐야 이게, 하며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신음한 건 덤이다. 아직 아무런 정보도 건네지 않았는데 반응이 있다는 건, 그가 사진 속의 남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테이블 맞은편 그의 자리 앞으로 팔을 뻗고 있던 서천은 제 스마트폰을 확 거두었다. 당황한 민석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타이밍 좋게 카페의 진동벨이 울렸다. 민석은 조금 서천의 눈치를 보다가, 그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하곤 콧숨을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길쭉한 유리잔 두 개를 트레이에 담아 온 민석에게 서천이 물었다. 제 몫의 잔에 빨대를 꽂던 민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뢰인을 노려본다.

“그 사람을 왜 찾으려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이유 같은 걸 꼭 들어야 하나? 어차피 당신 같은 인간들은 돈만 주면 뭐든 해 주잖아.”

“의뢰를 받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성격이 급하시네, 도련님.”

“그쪽이 아는 사람이라면 뒷조사도 쉬울 테니 의뢰를 안 받을 이유가 없지. 별 노력도 않고 버는 돈이 그렇게 달다며?”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않고 시선을 맞부딪히는 시간을 가졌다.

“미안한데 나도 돈이 그닥 궁하지는 않아서 말이다. 그딴 식으로 나올 거면 다른 사람 찾아 봐.”

민석은 몇 모금 마시지도 않은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두고 몸을 일으켰다. 험악한 얼굴이 되어 자리를 뜨려는 민석의 발길을 미동 없이 앉아있던 서천이 단 한 마디로 붙잡았다.

“천.”

돌아가던 조사원의 발길을 붙잡기엔 충분한 무게감이 있는 단어였다. 등을 보이던 민석은 기겁을 하며 돌아봤다.

“뭐?”

“부족해?”

“아, 아니.”

“그럼 앉아.”

민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서천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도로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의 계좌에는 일찍이 송금한 적이 있었으므로, 서천은 즉석에서 그의 계좌로 오 할에 달하는 금액을 보냈다. 스마트폰 이체 알림으로 선수금을 확인한 민석이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서천을 응시했다.

“알고 있는 걸 말해.”

“그 남자에 대해서?”

“당연한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민석이 대답을 고르는 사이 서천은 빨대가 꽂히지 않은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벌써부터 농도가 옅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었다.

“그 남자가 누군지는 몰라.”

“그리고?”

“그런데 그 남자를 꼭 빼닮은 다른 남자는 알지.”

“누군데?”

“있어.”

“돈값을 못하는군.”

노골적인 공격에 민석은 잠시 얼굴을 구겼다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한테 뭐라도 물어볼게. 그냥 우연찮게 닮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 닮았으면 혈연 관계……. 친척일 가능성이 있겠지.”

“친척? 닮았다는 그 사람은 형이나 남동생이 없나?”

“지금까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어. 그것도 물어보도록 하지.”

서천은 팝업스토어에서 보았던 세 남자의 면면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민석에게 조사를 맡긴, 마약을 거래하려고 들었던 남자.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닮은 또다른 남자. 세 번째는 두 번째의 옆에 붙어있었던, 눈물점만이 인상에 남는 평범하다 못해 흔해빠진 인상의 남자.

이 조사원은 두 번째 남자와 인연이 있는 건가?

높은 확률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고 서천은 짐작했다.

민간조사원, 달리 말해 현대의 탐정이 아무리 발이 넓다 한들 특정 인물과 닮은 사람을 여럿 알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탐정?

탐정.

탐정이라는 단어에 뇌리 한구석의 기억이 반응했다.

몹시 이상한 이름을 가진 남자라고 남몰래 비웃었던 추억이 갑작스레 되살아났다.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눈꺼풀을 두어 번 깜빡이던 서천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맞은편의 조사원을 응시했다.

민석은 이젠 기분이 나쁜 걸 숨기지도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빨대 꽂힌 잔을 들어 막 한 모금을 마시려 했을 때였다.

“혹시 유탐정이라는 사람 아나?”

빨대를 문 민석이 커피를 잘못 삼켜 사레가 들린 광경을 서천은 멍하니 시야에 담았다.

완연한 봄날 하늘 아래에서 백도화는 억지로 수임한 의뢰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그 성격 나쁜 곱슬머리 도련님한테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의뢰가 분명 재작년 즈음이었나. 그때는 무슨 일본인을 찾아달라고 성화였다. 일본어를 못하는 그는 일본 쪽 연결망을 찾는 데에 애를 좀 먹었다. 일본이 사립탐정 강국이라 망정이었지.

그리고 지금은, 상상도 못한 사람을 찾아내라며 거금을 툭 쥐어주곤 사라졌다.

아파트 1층 현관에서 담배를 피우던 도화는 다시금 서천에게서 전송받은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그곳에 찍혀 있었다. 한손에 포장 박스를 들고 백화점 팝업스토어의 계산대를 나서는 옆모습이 뚜렷하게도 나와있다.

김기철인가, 하고 도화는 사진을 본 순간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그와는 신체의 특징이 달랐다. 얼굴 조형도 좀 더 남성적이고 키도 약간 더 크며 팔에 덕지덕지 붙은 근육은 아무리 봐도 기철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묵직한 감이 있었다. 스타일도 미묘하게 달랐다. 대표적으로, 짧게 쳐낸 뒷머리 같은 것이.

부분부분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김기철을 꼭 닮았다. 하지만 그에게 형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십 년 전에 한참 같이 지내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 했지만 형제 얘기는 않았으니 그는 분명 외동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가까운 촌수의 친척?

던힐 육미리의 연기가 하늘하늘 공중으로 퍼져나간다. 도화의 추측도 그와 비슷한 속도로 가지를 뻗어나가기는 했으나, 터무니없이 부족한 정보는 추측에 어떤 양분도 제공하지 못했다. 도화는 반쯤 타들어간 장초를 재떨이에 던져넣곤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나…….

도화는 조사원이다. 남을 뒷조사하면서 나오는 정보를 팔아 먹고 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는 건 남의 뒷사정을 캐는 데에는 이미 선수라는 뜻도 된다. 그러니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 기철의 친척을 폭넓게 조사하는 방법도 있기야 했지만.

아무래도 내키지를 않았다.

이십 년 전의 기철은 도화와 같은 흥신소에서 일했다. 그에게도 조사원의 기질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다시 흥신소에 얼굴을 기웃거리기도 한다는 모양인데.

물론 도화는 기철 몰래 그의 뒷조사를 할 자신이 있었다. 도화는 이십 년 전부터 계속 조사원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고, 기철은 교대를 나와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살다가 최근에야 조사원으로 복직한 신출내기니까.

하지만 세상사 말이 어떻게 전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민석이 녀석이 네 뒷조사를 하고 다니더라, 하는 말이 어떤 계기로든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말이 기철에게 들린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테니까. 이미 애매해진 관계의 틈을 더 벌리고 싶지 않은 욕심이 도화에게는 있었다.

조사원 일을 하면서 인간 관계에는 무심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참 별일이라고 도화는 스스로를 비웃어 보았다.

“지난 주에 무슨 도넛 팝업스토어 간 적 있어?”

가슴의 두근거림이 이상하게 멎지를 않아서 도화는 두 대 째의 던힐을 입술 사이로 밀어넣었다. 뜬금없는 물음에도 전파 너머의 상대는 여유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다녀왔는데. 그건 왜?”

“아……. 그래.”

적당한 단어를 꺼내 말을 이어야 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얗다. 머릿속에 있어야 할 생각은 없고 던힐의 독한 연기만이 가득하다. 황당하다 못해 당혹스럽다. 도화는 괜히 목을 가다듬으면서 담배를 손가락에 끼워들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잘 지내.”

안 되겠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이게 최선의 대답이다. 할 말을 생각도 않고 무작정 전화를 건 제 불찰이다.

일단 전화를 끊고 얘기할 거리를 떠올린 다음 다시 연락하자. 좀 의심은 받을지언정 그편이 정보 수집에 낫다.

왜 이렇게 동요하는 거지? 겨우 전화 한 통 걸었을 뿐인데. 나는 무엇에 동요하고 있는 거지?

눈앞이 이상하게도 핑 돌아서, 도화는 두 눈을 꾹 감고 스마트폰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야, 야!”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뜨니 제 손가락은 통화 종료 버튼 옆의 빈 공간을 누르고 있었다. 도화는 소리 없는 한숨을 쉬며 통화를 이어나간다.

“왜?”

“맨날 이러기야?”

한숨이 계속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 이제야 동요의 원인을 알겠다.

도화가 서천에게서 들은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서천은 도넛 팝업스토어가 마약 거래의 현장으로 변질된 사실을 눈치챘다. 팝업스토어의 인파 사이에서 몇몇 마약 구매자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마약이 든 도넛을 골라냈는데, 왜인지 모르게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철이 마약 도넛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철은 마약 도넛 구매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다음으로 들어간, 기철을 닮은 남자가 문제였다. 그도 특수한 방법으로 마약 도넛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이것까지는 기철과 같았다. 그러나 계산대의 직원이 그를 제지하고야 말았다. 손님은 아까 한 번 사 가셨으니 안된다면서.

그러니까, 계산대의 직원은 마약을 사 갈 고객들의 얼굴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철을 닮은 남자가 원래 마약의 고객이었는데, 하필이면 기철이 마약을 사 가는 바람에 원래 고객이었던 그가 ‘입뺀’을 당하고 만 거다. 아무래도 마약을 두 번씩 구매하는 건 불가했나 보다.

그렇다면 기철을 닮은 남자는 이후 어떻게 행동할까? 우선 마약 판매책에게 연락을 넣을 것이다. 분명히 자기가 사려고 했는데 대체 어떤 놈한테 판 거냐면서. 그럼 계산대의 직원이 도넛 판매 내역을 뒤져보겠지. 손님을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맘먹고 찾아낸다면 찾을 수 있을 테다. 설마 기철이 현금으로 계산했을 리는 없으니 카드 결제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거고.

남의 마약을 가로챈 도둑놈이 마흔 몇 살의 중년 남성 김기철이라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명백하게 밝혀진다. 그 후에 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도화로서는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부디 온건한 방법을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니 기철은 지금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그것도 소지만으로 범죄가 되는 무서운 물건을 가로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따지자면 마약 도넛을 골라 사 간 그의 탓이자 업보이긴 하지만.

죽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도화는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쉬곤 입을 뗐다.

“…최근에 신변에 문제는 없었고?”

전파 너머의 기철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흐흥하고 웃었다.

짚이는 게 있구만, 이 인간.

“가져간 약은 어떻게 했어?”

“아직 있어~”

아직 있다는 건 경찰에 넘기진 않았다는 소릴까. 그의 성격 상 그럴 것도 같았다. 경찰에 사건을 인도하는 순간부터 기철은 사건의 재미있는 부분에 손을 대지 못하게 되니까.

“돌려놓는 게 좋을걸. 그쪽 형님이 화나신 것 같으니까.”

어떻게 하면 돌려놓을 수 있을지 도화는 알지 못한다. 서천의 말로 그 도넛 팝업스토어는 애저녁에 철수하고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일단은 그에게 형제가 있는지 적당히 떠 보는 게 우선이다.

“…형? 무슨 형?”

없어?

“…형 없어? 하다못해 사촌 형이라도?”

“검사 형은 있는데…….”

밑바닥 조사원에게는 버거운 수준의 직업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왔다. 검사가 다른 곳도 아니고 도넛 팝업스토어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차라리 보안이 잘 된 폐쇄적인 공간에서 하면 모를까.

“검사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 없어?”

기철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자신의 가족관계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둘 정도 더 있는데……. 잘은 몰라.”

이번에는 도화가 고민에 빠질 차례였다. 그에게 사진을 보내서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게 나을까. 이 정보를 기철에게 공유해서 그가 얻는 불이익이 있을까. 전자의 고민에 대한 답은 그렇다였으며 후자의 고민에 대한 답은 아니다였다.

도화는 빠르게 그의 메신저로 사진을 보냈다. 전파 건너편에서 툭툭대며 액정을 터치하는 소리가 났다.

“…아.”

“누군지 알아?”

“아니, 엄청 닮았다 싶어서~”

김이 빠진 도화는 땅바닥에 담배꽁초를 투기했다.

“그래도 짚이는 데가 있기는 하네. 이 얼굴이라면.”

“뭔데?”

전파 너머의 기철은 또다시 흐흥하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까 내 신변에 문제 없었냐고 했지?”

“…그런데?'”

“조금만 더 기다려 볼게. 민석이 너도 기다리고 있어.”

“다, 당신!”

통화는 작별인사 하나 없이 끊겼다. 최근의 인간들은 왜 이리 인사에 궁핍한 건지, 하고 도화는 두근거림이 멎지 않는 가슴을 토닥이면서 생각했다.

사설 분석 센터 소장이 데이터를 보내주기로 했던 주의 수요일 오후. 서천은 가산에 위치한 사설 분석 센터의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데이터를 메일로 보내준다 했던 소장은 별안간 약속을 바꾸어 분석 결과를 대면으로 설명해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이제는 연구실에도 나갈 일이 없어 그저 시간을 죽이는 데 혈안이었던 서천은 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약속 시간이 얼추 다 되어 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나와 회의실로 안내해 주었다. 열 명은 넘게 앉을 수 있을 법한 기다란 테이블 한가운데에 분석 센터의 소장 이대림은 혼자 앉아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서천이 들어오는 걸 보고 가볍게 눈인사를 하더니 제 옆의 의자를 빼어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원래는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 좀 늦어졌네요.”

대림은 곱게 내린 앞머리를 쓱 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약물 분석이 전문이 아니기는 하지만, 서천 씨도 학위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단순 시료 분석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거 아시죠. 기기에 시료를 넣고 조사하면 라이브러리와 비교해서 해당 시료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지 잘 알려주잖아요? 세상이 참 좋아져서…….”

“아, 예.”

서천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눈으로 훑었다. 척 보기에도 그의 말마따나 단순 분석에 지나지 않는 데이터들이 용지 위에 그려져 있었다.

“간단한 일이라서 되도록이면 지난 주에 데이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 묘한 피크peak가 나와서요. 오늘 서천 씨를 굳이 센터까지 부른 것도 그 때문인데요.”

대림은 서천의 앞으로 제가 들고 있던 서류를 밀어놓았다. 서천이 맡긴 정제의 분석 결과다. 여러 기기에서 얻어진 데이터가 하나의 서류로 잘 정리되어 있어 시료의 특징을 한눈에 파악하기 쉬웠다.

그래서 서천은 단숨에 얼굴을 구겼다.

바로 옆자리에서 서천을 바라보던 대림이 힘빠지는 소리로 하하, 하고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성분들이 섞여 있는 게 보이시죠? 저도 처음에는 시료가 오염되어서 오류 데이터를 내놓은 게 아닌가 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를 몇 번 씩 다시 찍느라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었고요. 그런데도 분석 기기는 이게 옳은 데이터라고 주장하더군요.”

대림이 데이터의 한 부분을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마약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조작된 쾌락을 선사하는가? 쾌락을 담당하는 수용체에 결합한다거나 신경에 자극을 줘 효소 분비를 억제시킨다거나 원래대로라면 분해되어야 할 물질을 분해시키지 않고 잡아둔다거나……. 수많은 방식이 있지만 어쨌거나 그들이 인간 신체와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마약은 대부분이 체내 상호작용에 용이한 유기화합물의 모습을 띤다. 그곳에는 탄소와 수소, 미량의 산소 질소 따위가 얼기설기 엮여있을 뿐이지 그 외의 물질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특히나 유기물이 아닌 무기물의 영역이라면 부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천의 눈앞에 놓인 미지 시료의 데이터는 달랐다.

“…비소황화물?”

“네, 비소황화물.”

비소. 화학에 그다지 연이 없어도 그 정체가 독극물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원소. 서천은 인상을 찌푸리고 서류를 자세히 훑었다. 치사량 정도의 양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양을 꾸준히 복용한다면 단명을 피할 수는 없을 듯했다.

“그거랑 또, 칼슘에 규소에……. 미네랄이 참 많네요. 성분만 보면 마약이라기보단 종합비타민에 가깝습니다. 물론 비소는 어떤 비타민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만.”

서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서천은 대림을 곁눈질했다. 의미를 읽을 수 없는 미소가 선한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사람 좋게 처진 눈에 기묘한 빛이 도는 것도 같았다.

“…이게 어떤 약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소장님은.”

서천이 본능적인 경계감을 느끼며 물었다. 대림은 어지럽게 널려 있던 서류를 하나로 모아 정리했다.

“저도 데이터가 이해가 안 되어서 이것저것 찾아봤죠. 서천 씨가 정제를 맡겼을 때만 해도 아마 신종 마약이 아닌가 싶었는데, 정작 데이터를 따 보니 온갖 미네랄에 비소까지 들어있으니. 마약이라고 보기엔 성분이 괴랄하고 종합비타민이라고 보기엔 비소가 이상하게 튑니다.”

말이 많은 인간이다. 서천은 적당히 고개를 주억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서치를 좀 해 본 결과……. 서천 씨, 혹시 마약의 역사에 대해 아십니까?”

“아뇨. 그쪽 전공은 아니어서.”

독성학 전공이라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는 있지만 일단은 얼버무렸다.

“초기의 마약이라고 하면 역시 아편이겠군요. 기원전 고대 수메르인들은 재배한 아편에게 기쁨의 선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했답니다. 그 다음 동양에서는 약초로 쓰인 대마초가 있을 수 있겠고.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인디언들이 발견한 코카잎에서 코카인을 추출해내고 아편에서는 또 모르핀을 분해해냅니다. 이 모르핀에서 또다시 변형된 것이 헤로인이죠. 겨우 오륙십 년 전에는 LSD와 같은 환각제가 인기를 끌었는데요…….”

대림은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마약의 역사를 줄줄이 설명했다. 이런 부차적인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소장이라는 사람에게 있는 건가. 서천은 잠시 그의 기업체의 경영 상황을 짐작해 본다. 그 사이 대림은 죽 이어지던 말에서 핵심을 꺼냈다.

“이렇게 마약은 근본이 되는 약물을 가공하고 변형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그런 개선의 선택을 받지 못한 약물들도 있죠. 당시의 기술로는 영 정제하기 어려웠거나, 정제한다 해도 가성비가 좋지 못해 버려지고 잊혀진 약물들이요.”

그 중 하나가 오석산이라는 고대의 약물입니다, 하고 대림은 이야기했다.

“오석산, 이요?”

“네, 오석산. 고대 중국에서 유행했던 일종의 한약이라는군요. 다섯 개의 광물을 갈아 만들었다고 해서 오석산이라고 한답니다. 이걸 섭취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머릿속이 깨끗해져서 당시의 학자들도 틈만 나면 복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광물을 갈아 만들다 보니 중금속 중독의 위험이 아주 높았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돌을 갈아 만든 약이라는 소리다. 서천은 다시 한번 서류로 눈을 돌렸다. 각종 미네랄이 서로 질세라 손을 들고 삐죽삐죽 피크를 그려내고 있었다.

“소장님의 말씀은, 제가 의뢰한 약물이 오석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

“데이터를 보면 아시겠지만 평범한 마약이라고 보기에는 좀 어려운 조성이죠. 그런데 이걸 누군가가 비밀스럽게 거래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마약에 준하는 기능을 가진 미상의 약물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겠어요?”

그런 가설을 갖고 서치를 해 보니 오석산이라는 키워드가 튀어나왔다. 중금속 중독의 위험이 있어 현대에는 그 누구도 만들지 않는 마약. 달리 말하자면, 잊혀진 마약.

“현대에 되살아난 잊혀진 마약이라는 말입니다. 고대와는 다르게 과학 기술이 월등하게 발전했으니 어떤 재능 있는 과학자가 중금속의 위험성을 최소화한 오석산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르죠. 이게 인간의 체내로 들어가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단순히 분석만을 실시하는 저희 실험실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다음에도 맡기실 일이 있다면 부담 없이 연락 달라는 소장을 뒤로한 다음 날, 이제는 조사원이 연락을 취해 왔다. 전에 만났던 카페에서 다시 보자고 하기에 서천은 그러시라는 답변을 남겼다.

그리고 그때와 같이 민석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트레이에 담아 왔다. 빨대는 가져오지 않았다.

“내가 알던 사람의 잊혀진 사촌 형이었어.”

민석은 낮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새 얼굴에 피곤이 눌어붙은 것 같았다.

“이름은 김류호. 한 이십 년 전에 의대 졸업하고 국시 준비를 하다가 실종됐어. 친구들이랑 바다에 배를 타고 낚시를 갔었는데 기상 악화로 배가 난파된 모양이더군. 그때 시신도 못 찾고 그냥 실종자 명단에 올라 있다가,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에 가족 측에서 사망 처리를 했지.”

“그런데 왜 거기서 약을 거래하고 있었던 거지?”

“낸들 아나. 기억을 잃은 채로 해변에 떠밀려가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살았다든가.”

“한국은 모든 국민의 지문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텐데.”

“파도 때문에 일본까지 떠밀려 갔나보지.”

“한국 영해에서 일본까지 떠밀려 갔는데 죽지 않았다?”

서천의 한심하다는 눈빛을 받은 민석이 신경질적으로 커피 잔을 기울였다.

“그 사람의 뒷사정까지 캐라고 한 건 아니었잖아? 그냥 신분만 알면 됐던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서천은 잠시 말을 않았다. 시선을 허공으로 보내선, 이십 년 전 실종되었던 인간의 부활과 도넛 팝업스토어의 마약 밀매에 대해 생각했다. 쓸만한 링크는 떠오르지 않았다. 약의 정체가 파악되었고 남자의 신분을 알아낸 이상 실상 자신이 생각할 것도 아니긴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사건에 이렇게까지 깊이 관여했는가?

그 까닭은, 실종되었던 남자니 마약이니 하는 이야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외부의 요소에서 기인한다.

서천은 방황하던 시선을 민석에게로 돌렸다. 오늘도 역시 머리를 싹 넘겨 하나로 묶은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유탐정이라고 했나?”

민석은 잠시 서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멍한 시선을 보였다.

“김류호를 닮은 남자. 그러니까 당신이 알고 있었던 남자. 그 옆에서 알짱거리던 무색무취한 인간. 그 인간도 당신은 알고 있지?”

민석은 단숨에 얼굴에 경계의 빛을 띄웠다.

“그건 왜?”

“좀 만나보고 싶어서.”

“…그쪽이 대체 왜?”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인연이라고?”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과거의 인연이…….”

민석은 미간을 훅 찌푸리다가, 절반도 남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위장 안으로 털어넣고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유탐정이라는 이름이 흔할 것 같아? 네이버에 검색해서 직접 찾아봐.”

이쪽으로는 손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조사원은 인간 관계가 드러나는 걸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 건가, 하고 서천은 막연하게 짐작했다.

얼음이 덜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나마 맛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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