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한 때
유린바람 7살 시절 로그!
잊혀진 한 때.
유린은 자신이 활로 처음 소리를 내었던 때를 기억했다. 어설프게 울리는 소리는 명징히 어른들의 귀에 들어가서. 그녀는 눈이 웃음소리와 탄성을 잊지 못해 여전히 바이올린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루는 유린이 바이올린 선생님으로부터 심히 꾸중을 들은 날이었다. 같은 곡을 반복하던 유린은 싫증을 크게 내었다. 더 어려운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아이는 결국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학원의 선생님은 머리를 식히라는 말과 함께 유린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유린은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 앉았다. 옆 방에서는 다른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아이들의 연주를 멍하니 들으며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야곡을 가볍게 편곡한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데록 굴리던 유린은 제 양갈래 머리를 한 번 매만지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이 탁탁 끌리는 소리를 잊고서 방 바깥으로 나가면 열심히 연주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푸른 머리를 한 아이는 피아노에 몰두해 악보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린이 바라보는 것도 모른 채로 아이는 한 차례 곡을 완주하였다. 좁은 유리창 너머로 방 안을 바라보던 유린은 아이가 고개를 돌리자 흠칫했다. 아이는 선생님이 피아노 위에 올려둔 진도표와 사탕을 번갈아 보았다. 이내 그것을 손에 쥐고 다가왔다.
“이거 먹으려고?”
“어? 아, 아니?”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아이는 유린의 손에 사탕을 쥐여주었다. 껍질만 다른 곳에 잘 버려줘. 그런 말과 함께 아이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유린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새 곡을 연주하러 가야한다며 아이는 유린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면 그녀는 상대에게 물었다. 자기도 연주하고 나서 들으러 와도 되겠냐고. 그러면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울던 것 같은데, 괜찮아? 그런 물음을 던진 상대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제서야 눈물이 말라붙은 감각을 느낀 유린은 볼을 붉혔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얼른 연주하러 가보겠다고 하는 그녀였다. 이내 레슨실로 돌아온 유린은 다시 바이올린 활을 집어들었다. 유린은 지루하더라도, 상대의 연주를 다시 들으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밝아졌다. 다시 활을 놀리면 선생님이 느릿하게 레슨실로 들어왔다. 한 곡이 끝나고 나면 유린의 눈가를 문질러주는 손길이 있었다. 선생님은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유린아. 안유린, 여기 볼래?”
“네...”
“유린이 연주 참 잘하지. 선생님도 잘 알아.”
그런 말을 한 선생님은 악보를 덮곤,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선생님도 유린이처럼 막 멋진 곡을 한번에 연주해보고싶을 때가 있어.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의 목소리는 퍽 다정하였다. 핸드폰에서 어느 연주곡을 찾아, 틀어주면 그 곡은 꽤나 엉성했다. 중간중간 이탈하는 음. 그에 유린은 가볍게 웃었다. 선생님 역시 웃고 있었다. 머리를 정리한 선생님은 그것이 자신의 12살 무렵 연주곡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자신도 늘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이 싫었다며. 결국 콩쿨에 몇 번 나가 같은 부분을 실수하고 나서야 그것을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유린은 조금 놀란 표정을 한 채였다. 선생님의 실수라는 것은 상상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내 선생님은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유린은 나중에 관현악단이나 독무대에 설 것이라며. 그 때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그제서야 유린은 고개를 뾰로통한 기운을 완전히 물려냈다. 고개를 끄덕인 유린은 다시 바이올린을 턱에 괴었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볼 것을 생각하며.
-
“유린, 안유린-”
목소리에 눈을 뜨면 그곳엔 바람이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온 것인지, 팔찌를 고쳐메고서 유린의 머리를 다듬어주는 것이었다. 무슨 꿈이라도 꿨어? 그런 말과 함께 그녀는 유린의 눈을 마주쳤다. 그러면 유린은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이 눈이 동그래졌다. 무언가 자면서도 중얼거리더라는 말에 얼굴을 문지르는 유린이었다. 그녀는 조금 시간이 흐를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말을 잇는 순간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잊혀진 기억을 떠올린 것이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향수를 자극하는 피아노소리가 교정에 울리고 있었다. 바람이 갸웃거렸지만 쉬이 알려줄 생각이 없는 유린은 장난스레 웃음을 지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말과 함께, 유린은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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