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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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좀 따오려고요.” “…먹고 싶어?” 아침이었다. 짐을 챙기던 히르칸은 막심의 제안이 눈에 띄게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평소라면 ‘굳이?’ 그렇게 말한 다음 막심의 눈총을 받았을 텐데. 히르칸이 말을 여러 번 고르는 게 눈에 보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심 미안하기도 했다. 이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낸 데에 자신의 책임이 일부분 있는 건 부
막심.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막심은 고개를 들었다. 본가의 앞뜰에 앉아 토끼풀과 여린 꽃들을 엮고 있던 참이었다. 화관을 만들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뒷짐을 진 채 멀리 서 있던 아버지는 막심과 눈이 마주치자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막심은 자기도 모르게 만들다 만 화관을 등 뒤로 숨겼다. 그러나 아버지는 막심이 만들고 있던 것에는 별 관
미궁의 구조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미궁은 없다지만… 히르칸이 언제부턴가 오고 가는 것을 무척 서두르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고, 막심은 생각했다. 미궁 탐험에 있어서는 히르칸이 막심보다 훨씬 박식했지만 적어도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막심 또한 괴리감을 느꼈다. 학교에서 공부할 적에도 이렇게까지 제한된 구조를 갖고 있는
여느 때처럼 식사를 마친 저녁이었다. 지난번의 강행군 끝에 막심의 발이 심하게 부르튼 이후로 히르칸은 되도록이면 일찍 캠프를 차리려 했다. 막심은 돌연 성가실 만큼 그를 챙기는 히르칸의 태도에 종종 그 정도 약골은 아니라고 투덜거리곤 했지만 저녁 식사 후 이어지는 히르칸의 ‘발 마사지’는 제법 좋아했다. 히르칸도 그 시간을 좋아했다. 편안한 시간이냐
해가 뜨고 지지 않는 미궁이지만 숙련된 탐험가라면 몸의 신호와 피로도 따위를 통해 제법 정확한 시각을 가늠할 수 있다. 바깥은 아마 슬슬 노을이 지고 있을 테다. 막심과 히르칸은 잠깐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선 여태 쭉 전진해왔다. 중간에 전투가 한 번 있었고 함정도 하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앞서간 파티가 있는지 대부분의 함정이 분해되어 있었다는
“윽!” 막심의 목소리였다. 히르칸은 힘껏 꽂아 넣은 나이프를 뽑고 얼굴에 튄 피를 쓱 문질러 닦았다. 쥐를 닮은 그 마물의 목은 히르칸의 마지막 일격에 거의 끊어져, 몸뚱이를 집어 들자 흉하게 덜렁거렸다. 라투스 라투스. 4계층에 진입하는 파티가 흔히 볼 수 있는 쥐 마물이다. 정확히는 보는 게 아니라 식량 가방을 쏠아 먹은 자국이나 쥐똥을 통해 유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