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샘플
가벼운 분위기의 로맨스 샘플
(3047자)
B는 툭하면 A를 끌어안았다.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와의 접촉이 싫진 않았기에 A는 밀어내지 않았다. 먼저 부하를 품에 가두는 일도 더러 있었다.
둘이서 스킨십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A는 이제 B가 밖에서 제 허리를 감싸 안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덕분에 행인들의 눈엔 그들이 영락없는 애인 사이로 보였으나, 당사자들은 별생각이 없었다.
A는 B와 많이 친해진 것 같다며 기뻐했고, B는 A에게 점점 더 욕심이 났다. 두 사람의 마음은 서서히 비슷한 형태로 변해갔지만, 둘중 누구도 심장에 담긴 근원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B는 방법을 몰라서 헛손질한 것이었지만, A는 달랐다. 그녀는 전부 알면서 애정을 덮어두고 모르는 체했다.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온기를 탐했다. 숱하게 느껴온 간질거림을 즐겼다. 그에게 욕심부렸다.
안고 손 잡는 게 뭐가 어때서, 그런 건 친구끼리도 할 수 있잖아!
선을 넘은 적은 없으니 괜찮다며 자기합리화했다.
이 오만함이 덫이 되어 그녀를 붙잡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
어느 한가한 오후,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열린 창문 너머로 검은 머리카락을 한 남자와 갈색 머리의 여자가 보인다. 작지만 고즈넉한 여관에서 두 사람이 말없이 시간을 보낸다. B이 A의 다리 위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책이 그렇게 재밌나?
B가 골몰하고 있는 A의 옆얼굴을 구경한다. 잠옷에 반쯤 가려진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눈을 가늘게 뜨며 책을 빼곡히 채운 활자를 훑어본다.
이, 이거 혹시 어리광인가?! 강아지 같아서 귀여워…!!
B가 멈칫한다.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춘다. 굳어 있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기쁨이 심장에도 번진다. 가슴이 간질거린다. 충동적으로 고개를 튼다. A의 뺨에 입을 맞춘다.
돌연 볼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에 A가 멈칫한다. 눈을 크게 뜬다. 흐물거리는 동공을 응시한다.
로즈골드 색의 눈동자가 밝게 빛난다.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처럼 반짝인다. 깨진 술병 조각에 햇빛이 반사되면 저렇게 예쁜 색이 나왔었지. 캄캄한 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선을 그리드가 잡아챈다. ㅁㅁㅁㅁㅁ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여진다.
붉어져만 가는 욕심을 고스란히 받고 있던 B이 어깨를 움츠린다. 눈을 질끈 감는다.
A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창문이 열려 있는데도 풀벌레 울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바람 한 자락 없는 고요함 속에서 심장 소리만이 귓전을 맴돈다. 쿵, 쿵. 무거운 맥박 음이 경종을 울린다. B이 끊어질 뻔한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는다. 서둘러 눈을 뜬다. 손을 뻗어 A의 입을 막는다.
입술 위로 딱딱한 손바닥이 포개지자 A가 눈썹을 팔자로 찡그린다. 입꼬리를 끌어내린다. B의 손을 잡아 떼낸다.
“방금까지 분위기 좋지 않았나…”
B가 불퉁하게 말한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 A 씨가 착각한 거예요!”
B이 힘껏 부정한다. 얼굴을 붉히며 눈을 돌린다.
“그럼 입술은 왜 부빈 건데?”
A가 일부러 특정 단어를 생략한다.
“그, 그건…”
B이 말을 더듬는다. 책을 쥐고 있던 손이 떨려온다.
뭐라도 생각해내야 해! 아니면 A가 끈질기게 달라붙을 거야… 이대로 얼렁뚱땅 입을 맞출 순 없어.
A와 키스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B이 끙끙댄다. 사귀지 않는 사람과 입을 맞추는 건 그녀의 사전에 없는 일인 데다가, 그리드와는 선을 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깊어진 감정이 그녀의 발목을 잡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랑 키스하는 게 그렇게 싫은가… 포옹은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B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A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 인간들은 존경의 의미로 입을 맞추기도 하거든요!”
불만이 가시가 되어 B을 콕콕 찌른다. 따끔한 눈빛을 참을 수 없었던 B이 입을 연다. 오타쿠라서 살았다는 하잘것없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나를 존경해서 입술을 갖다댔다?”
확장된 동공,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 겹친 양손. B이 거짓말할 때 드러나는 모든 신호를 읽어낸 A가 입술을 비틀어 올린다. 헛웃음 짓는다. 말도 안 되는 거짓을 늘어놓는 부하의 모습에 기가 차지만, 그게 마냥 싫지만은 않다. 힘겹게 생각해 낸 핑계가 고작 저 것이라는 현실이 우스울 뿐이다. 평소에는 나이를 그닥 의식하지 않지만, 이럴 때마다 B이 그가 살아온 세월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네, 그거예요!”
이런 궤변이 먹히긴 할까?
B이 안절부절못한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A의 표정을 살핀다. 그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고선 따라 웃는다.
귀엽긴 하지만, 봐주기만 하면 버릇이 나빠지겠지.
“그럼 앞으로는 매일 그렇게 해. 넌 나를 무척 "존경”하고 있을 거 아냐?"
B을 비웃듯이, A가 존경이라는 단어에 강세를 준다.
얘기가 왜 그렇게 돼?!
B이 입을 크게 벌린다. 떨리는 턱과 함께 눈동자도 흔들린다.
“매일이요?”
“왜, 싫어?”
“싫… 진 않지만!”
… 솔직히 말하면 좋지!
“그럼 됐네.”
이게 맞아?! 어째 일이 더 꼬인 것 같은데! 고작 볼뽀뽀지만, 그걸 매일 하는 건 좀… 애인 같잖아…
B이 식은땀을 흘린다. 이제 소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A가 쩔쩔 매는 그녀를 구경하면서 가소롭다는듯 웃는다.
그러게 왜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해? 이 A 님을 속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겠어.
물론 이 모든 건 입맞춤을 얻어내기 위한 개수작에 불과했고, A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B과 입술을 맞대고 싶어 하는 진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가슴을 간지럽히는 것이 호기심과 불쾌감이라고 단정 지으며 진실을 뭉갠다.
둔감한 ㅁㅁㅁㅁㅁ는 본인이 시건방진 부하를 혼내고 있을 뿐이라고 여긴다.
그의 사리사욕만을 채운다면 B이 반성할 것이라고 믿는다. 되도 않는 거짓말을 멈출 거라며 착각한다.
B 또한 비슷한 욕망을 품고 있으리란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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