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서흠
세상에 홀로 태어나서 국가도, 가족도, 사람도 주어진 것 무엇도 없이 오직 실존의 죄악만이 범람하는 이 세계에서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오늘도 잘 버텨냈다. 침묵하는 그대들도, 분노하는 그대들도. 두 눈을 그저 감고서 그저 살아가리라 암향을 가득이 품은채 그 누구도 모르는 새에 날 찔렀던. 네놈 깊숙이에 되려 박아 꿋꿋이 살아가리라 법정 위에 홀
바에 가서 술을 시킨다 처음은 무지몽매의 위스키 둘째는 오만의 온더락, 마지막으로 속단의 칵테일. 달달하고 비릿한 쾌락의 향이 목구멍을 태우며 넘어간다 그러면 나는 부끄러움에 취해 이지러진 언어로 혼탁한 말들이나 내뱉으며 빨개진 얼굴로 술을 즐긴다. 아, 정말로 즐거운 곳.
들어가고싶다 모두가 회색의 가면을 쓰고 숯검댕이 얼굴을 가린 이곳보다는 명암의 경계가 선명하고 회색의 안개가 내 시야를 가리지 않는 순백과 순흑이 회백을 빙자하고 펜타닐 안개가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눈앞이 팽그르르르 돌고 온몸이 비틀비틀 멈칫하고 검정인지 하양인지도 모를 모두가 회색의 가면을 쓰고 숯검댕이 얼굴을 가린 이곳보다는 차라리 정직하게 나 하
나는 정체된 인간입니다. 정체되고 게으르고 안일한 그저 길가에 우뚝 멈춰선 정체된 인간일 뿐인데 바람은 나를 두고 무척이나 진취적으로, 진보적으로, 뒤를 향해 나아가 마치 내가 앞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뒤를 향해 걷는 사람들이 나를 지나칩니다 나는 정체되고 한없이 고여있기만 한데 다른 이들은 내가 한참이나 앞선 것처럼 생각합니다 세상에 속아
나를 들여다보며 세수를 한다 거울에는 여러 개의 뒤집힌 내 얼굴이 나를 들여다본다 오늘도 잘 대처했나, 틀려먹은 말은 없었나, 나는 오늘도 좋은 사람이었던가. 나 하나가 거울 속을 빤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내가 나를 되바라본다. 고개를 숙여 세면대에 얼굴을 처박는다 물고기가 된 듯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는듯이 수면에 파동이 인다 나는 다시 찬물로 세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스스로를 죽여야한다 나는 나를 죽여야만 한다! 죽어죽어죽어죽어 죽자죽자죽자죽자 나의 신념과 나의 행동이 불일치하는 이 모순된 세계 나는 스스로의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이 세계를 깨부수어야만 한다! 죽어라 죽어라 그릇된 것을 사랑하고 안일하고 멍청한 사념만을 좇는 나따위는 그냥 콱 죽어버려라. 저 뜨는 태양이 싫은 주제에 그를 찬
돼지 우리가 있다 진흙 한 점도 없이 깨끗한 돼지는 진흙목욕을 필요로 한다는데 희한하게 이 돼지새끼들은 자기네들의 우리에 진흙이 들기를 싫어한다 진흙없이는 살 수 없음을 모르고 점점 병이 들어 감을 모르고 진흙이 없다고 웃고만 있다 한 점의 오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가히 깔끔한 그의 성격이라 할 만하다 돼지는 머리가 똑똑하다던데 희한하게 이 돼지새끼들
구슬이 깨어져도 실은 끊어지지 않겠지만 실이 끊어지면 구슬은 우수수 떨어져 깨지겠지요 그러니 그대를 믿지 않고 어찌 사랑하리오 나는 그대를 진리로 믿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99.9% 비슷하대 이 얼마나 기쁜 일이야. 너와 내가 닮고 내가 너와 닮고 하늘과 땅처럼 화성과 금성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네가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한 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우리가 99.9% 비슷하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이야 내 안에 네 모습이 있고 네 안에 내 모습이 있고 서로가 서로와 같게 된다면 언젠가 서
그림도 아니 그리고 글도 아니 쓰고 그렇다고 공부마저 하고있지 않은 나를 보면 꼭 살아있는 고깃덩이 같습니다 무한정 숏츠에만 고개를 숙이고 까딱까딱 머리를 흔드는 나는 참으로 사육장에 갇힌 닭대가리 같습니다 밥도 거르며 그림을 그리던 나는 살아있었는데 정작 배도 부르고 따뜻한 곳에서 잠을 청하는 나는 꼭 차가운 송장같습니다. 창 밖을 바라봅니다.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