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정체된 인간
24년 2-3월
서흠 노트 by 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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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체된 인간입니다.
정체되고 게으르고 안일한
그저 길가에 우뚝 멈춰선
정체된 인간일 뿐인데
바람은 나를 두고 무척이나
진취적으로,
진보적으로,
뒤를 향해 나아가
마치 내가 앞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뒤를 향해 걷는 사람들이 나를 지나칩니다
나는 정체되고 한없이 고여있기만 한데
다른 이들은 내가 한참이나 앞선 것처럼 생각합니다
세상에 속아 우쭐대기라도 하는 날에는
곧바로 나를 지나쳐 똑바로 나아가는
올바른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
내가 정체된 인간임을 상기시킵니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내가 뒤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앞을 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나아가지도 못할 것을
뒤면 어떻고 앞이면 어떻냐 싶습니다
모두가 흐르는 사이에 나만 혼자 우뚝 서서
천천히 고여갑니다
썩어갑니다
부패합니다
망그러집니다.
차라리 나무에 매달아
그 자리에서 흔들흔들
그늘이나 만들어줄까 싶습니다.
경보로 뒤로든 앞으로든
앞서나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고여있음도 나쁘지 않다고
염원을 담은 신수처럼
무수한 내가 나무에 매달아
바람에 나부낍니다
흔들립니다
방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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