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촬

Mistletoe.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 체이고우(체이스 x 시지마 고우or고우현) 소설연성.

※일러두기※

-2014년 일본 방영작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기반 연성입니다. 본편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성인향 요소, 트리거도 없습니다! 다만 특촬 / 2.5D 기반의 BL 요소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만 15세 미만이신 분들, 혹은 BL 요소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의 열람을 절대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대충 힌트를 드리자면 체이고우가 키스를 겁나많이 합니다!!!!!)

-캐릭터의 이름은 일본어판을 기반으로 표기하였습니다.

-PO날조WER와 PO캐붕WER 주의...!!!


 

Mistletoe.

 

추위가 뭔지 잘 모른다.

이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싸우기 위해’ 태어났던 병기에게 온도를 느끼는 기능이 있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이 ‘아직까지는’ 이 현재, 즉 현실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새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요즘 자주 느끼는 감정이었다.

다른 경우는, 예를 들면-

 

“아, 추워 뒤지겠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한 말투로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그 사람이 익숙한 얼굴로 투덜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정말 춥긴 추운지, 빨갛고 도톰한 목도리를 두텁게 둘둘 싸맨 상태였다. 정말 그다운 색깔 선택이었다. 평소 입고 다니는 외투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

바로 앞까지 뛰어와서 숨을 잠시 고른 후, 시지마 고우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그의 입장에서는 매우 예상대로의 복장과 매우 예상대로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우를 들여다보는 체이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한쪽 입술을 비틀어올렸다. ‘아, 얘 또 이럴 줄 알았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야, 너는 진짜……아, 됐고. 일단 이것부터 해.”

 

고우가 손에 들고 있던 보라색 목도리를 내밀었다. 자신이 두르고 있는 것과 같은 디자인인 목도리였다.

 

“고우, 난 추위를 타지 않는다.”

“아, 그건 아니까 됐고요. 빨리 하기나 해. 보는 내가 춥다고!”

“……”

 

입으로는 궁시렁거리면서도, 고우는 체이스의 목에 목도리를 꼼꼼하게 두른 후 조금 느슨하게 매듭까지 지어주었다. 그리고 예쁘게 둘러진 목도리를 두어 번 툭툭 친 후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체이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제야 그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야 좀 겨울처럼 보이네! 아, 그래서, 왜 여기로 오라고 한 거야?”

“이거 때문이다.”

 

체이스가 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참 동안 경치를 바라보더니, 고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해가 일찍 떨어진 지금, 언덕 아래에 보이는 건 그냥 번쩍거리는 도시의 풍경 뿐이었다.

 

“어……저기 뭐가 있어? 나, 이래봬도 시력은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다, 고우. 그냥 이 풍경을 같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뭐?”

 

약간 불신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우는 다시 언덕 아래로 펼쳐진 도시 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 그를 보며, 체이스가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 봤다. 아름다운 풍경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싶어지는 법이라고.”

“너……”

 

그를 돌아본 고우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며칠 전에 이 근처를 지나갔었는데, 이런 풍경은 너와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

 

그 때, 고우가 갑자기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고우?”

“아, 저, 그게……일단 지금은 내 얼굴 보지 마.”

 

고우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억지로 일으키는 것도 조금 아닌 것 같아서, 체이스는 그런 그를 잠시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말하는, 혹은 행동하는 것이 ‘룰’일까. 아직 그에게는 모든 것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잠시 후, 고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아까보다는 덜 빨간 것 같았다.

 

“야, 넌 그런 멘트를 눈도 하나 안 깜박이고 어떻게 해? 대단하다 정말.”

“대단한 건가? 난 그냥 책에서 본 걸 얘기했을 뿐이다.”

“아니, 그게! ……아, 됐다. 그러니까……”

 

잠시 풍경을 멍하니 보더니, 고우가 다시 옆쪽을 돌아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네 눈에는 이게 ‘아름다운’ 풍경이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보고 싶은’ 풍경이야?”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가?”

“……”

 

고우가 눈썹을 찡그렸다.

 

“고우?”

“너 말야……”

 

그렇게 말하더니, 고우가 그들의 뒤쪽에 있던 벤치에 다가가 팔짱을 끼며 앉았다. 아무래도 추워서 자리가 찼는지 ‘으, 차가워!’ 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이내 다리를 꼬고 앉으며 다시 체이스를 돌아봤다. 옆에 앉으라는 듯 옆자리를 툭툭 치면서.

 

“말했잖아? 너한테 중요한 건 ‘네가’ 원하는 거라고.”

“고우.”

 

체이스 역시 그 옆에 다가가 앉자, 고우가 피식 웃었다.

 

“굳이 나나 다른 사람한테 맞춰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계속 말했지만.”

“……”

“네가 나랑 같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거면, 그걸로 됐어.”

 

그 말과 함께 고우의 시선이 다시 반짝반짝 빛나는 풍경으로 향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그들은 한동안 꺼지지 않는 도시의 밤을 응시했다. 인위적인 빛이었지만 그 빛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기 때문에, 삶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꼈던……그런 풍경이었다.

계속해서 서로의 생각을, 혹은 마음을 표현하고 입으로 전달하는 것도 좋았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산 위가 이 정도로 추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 오늘의 ‘데이트’에서 유일하게 예상치 못한 변수긴 했지만. 고우의 말대로 많이 추운 날씨인지 이따금 고우가 목에 두른 머플러와 함께 몸을 움츠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럴 때는 손을 잡아줘야 할까, 아니면 어깨를 감싸줘야 하는 걸까? 내심 핫팩을 준비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날씨를 거의 타지 않는 편인 로이뮤드의 몸으로는 미처 캐치하기 힘든 문제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슬슬 ‘후회’ 라는 감정을 느끼려던 순간,

 

“……슬슬 갈까?”

“……”

“체이스?”

 

갑자기 눈앞에 이리저리 세차게 흔들리는 손바닥이 들이밀어져, 체이스가 눈을 깜박였다.

 

“뭐야, 너도 추위 타? 안 그런 줄 알았는데.”

“그……그런 건 아니다. 미안하다.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흠……일단 알았어. 내려가자. 추워 죽겠어.”

“알았다.”

 

그 말과 함께,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고우가 몸을 돌려 내려가려 했다. 그 때, 체이스가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고 돌려 세웠다.

 

“고우, 잠깐만.”

“뭔데, 또? 우왓-”

 

얼떨결에 돌아서니, 두 사람의 거리가 한 걸음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고우의 눈이 살짝 커졌지만, 이내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뭐야, 또 할 말 있어? 그럼 딴 데 가서 해도-”

“고우, 혹시 겨우살이라는 식물을 알고 있나?”

“뭐?”

 

뭔가 생각한 후, 고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겨우살이면 이름은 가끔 들어봤지, 아마? 여기서도 자란댔나……그러고 보니 실제로 본 기억은 없네.”

 

고우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크리스마스 장식에 쓰는 거니까, 지나가면서 봤을 수도 있을 거고. 어쩌면 내 사진 어딘가에 찍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건 왜?”

“그럼, 겨우살이 아래에 서 있으면 키스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모르는 건가?”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도 있지. 영화에서 본 것 같아. 크리스마스 때……아,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 갑자기 그런 얘기를 왜- 잠깐만, 너 설마……”

 

갑자기 눈앞에 들이밀어진 자그마한 나뭇가지에 고우의 시선이 멈췄다.

 

“서, 설마……”

“저 위에 있었다.”

 

체이스가 손가락으로 그들의 머리 위에 있던 한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아, 아하하……”

 

황망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는 고우의 눈동자가 자신의 머리 위 높은 곳에 기생하고 있는 겨우살이와, 체이스의 손가락에 쥐어져 있는 겨우살이 가지를 번갈아 살폈다. 추워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한참 후에야 고우가 떨리는 입술로 웅얼거렸다.

 

“어, 그, 그래서……지금 너……”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겨우살이 아래에 서 있으면 아무나 키스해도 된다고 들었다만.”

“뭐, 뭐라고?! 야, 잠깐만 기다려 봐, 그렇다는 건, 잠깐-”

 

뭐라뭐라 일명 ‘태클’을 걸려고 하는 입술에 차갑지만 따뜻한 숨결이 스치듯이 잠시 머무는 순간, ‘시간’이 딱 멈췄다. 항상 그런 느낌이었다. 누군가와 입을 맞추는 경험을 고우 말고 다른 사람과 한 적은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심장’이 순간적으로 멈춰 버리는 느낌.

누군가가 이 심장을 살짝 쥔 것처럼 어딘가 저릿한 느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100%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만, 이 사람을 만지는 순간에만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심장을 쥐고 속박하는 듯한 느낌.

물론, 단 한 번도 그 ‘속박 당하는’ 듯한 느낌이 싫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기쁠 뿐이었다. 자신이 조금 더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라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사랑을 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진정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기에.

물론 사랑을 하지 않고 있는 순간의 자신이 ‘살아 있지 않았다’ 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 ‘인간을 지킨다’ 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살았던 시간들을 부정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사랑을 모르고 있었을 때의 자신과 알게 된 지금의 자신이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고우가 체이스의 마음에 그 일부로 자리잡았던 그 때부터, 서로의 마음이 닿았을 때부터……이미 꽤 많은 이름을 지녔던 존재는 또다시 새로운 이름을 품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전사의 이름이었다.

체이스에게 시지마 고우라는 사람은 그런 존재였다.

완전한 병기였던 자신을 덜 완전한 인간으로 완성해 주는-

그 순간, 어떤 시선이 느껴져 체이스가 눈을 깜박였다. 고우가 평소의 그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새빨개진 상태였다.

고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그런 것까지 허락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건가?”

“아니, 그게……아냐, 됐다. 네가 항상 그렇지 뭐.”

 

여기서 고우가 말하는 ‘네가 항상 그렇지’ 는 아마도, 그들이 일명 ‘연애’를 시작하게 된 후 고우가 종종 투덜거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체이스가 가면라이더로 각성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시도때도 없이 투닥거리다가 어찌어찌 사이가 좋아져서 반쯤 얼떨결에 교제를 시작한 관계……라고는 하지만, 막상 ‘교제’를 시작하게 된 이후 그들의 연애사는 의외로 상당히 무난한……어떤 의미에서는 (꽤 무난하게 결혼에 골인한) 신노스케와 키리코의 관계와 비슷한 편이었다. 교제 전에 하도 투닥투닥 싸워대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막상 그들이 데이트라는 걸 시작한 후에는 크게 다투는 일이 없이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고우가 투덜거리며 불평을 하면 그 이유는 약 90% 정도의 확률로 고정되어 있었다. 체이스의 일명 ‘애정 표현’이 고우의 기준에서는 너무 뜬금없거나 전혀 준비되지 않은 타이밍에 튀어나와서,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심장 떨어질 것 같아!’ ……가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고우, 좋아한다는 표현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 표현도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하는 건가?”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최소한 때와 장소는 좀 가려 달라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방금 내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줘.”

“너는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게 싫은 건가?”

“뭐?!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 아니, 잠깐만……잠깐만 입 열지 말아 봐. 생각 좀 정리하게.”

“……”

 

예전에 이 문제(?)로 한바탕 말다툼……은 (고우가 박박 우긴 바에 의하면) 절대 아니고, 창과 방패 같긴 했지만 아무튼 ‘대화’를 통해 들은 고우의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애정 표현을 하는 건 하는 건데, 일단 때와 장소는 좀 가려 달라.

하는 걸 뭐라 하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이 말을 할 때의 고우에게 유독 이 ‘절대로!!!’ 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단둘이 있을 때만 표현해줬으면 좋겠다. (‘남들, 특히 우리 누나 앞이면 너무 부끄럽, 아니, 그러니까 고개를 못 들겠다고!!!’ 라고 고우가 덧붙인 바 있다.)

……그러니까, 대충 그렇게 된 거였다. (체이스에게는 이 ‘대충’이란 단어도 어딘가 낯설고 자신이 써도 되는 단어인지 의문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길게 보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상 매사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지금은 주위에 아무도 없고, 진짜로 단둘이 있을 때 키스한 거니까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는데……고우는 왜 저렇게 금방이라도 투덜거릴 것 같은 눈동자로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건지.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연애라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가면라이더로써 같은 로이뮤드를 적대하고 싸우는 게 차라리 더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이 ‘일상’을 포기하고 다시 신노스케, 고우와 함께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지금의 나날들이 조금 어렵기는 해도, 싸움에 나설 일 없이 소중한 사람과 함께 지내는 지금 이 순간순간이 체이스에게는 너무나도……소중한 시간들이니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목을 당기는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깜박이자 체이스의 목에 두른 머플러를 살짝 당기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고우와 눈이 마주쳤다.

 

“고우?“

“너, 솔직히 말해. 여기 겨우살이가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몰랐다.”

“흐음……”

 

잠시 동안 체이스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더니, 고우가 그를 놓았다. 묘한 침묵이 흘렀다.

왜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건지 궁금해져서 그걸 물어보려고 체이스가 입을 연 순간,

고개를 푹 숙인 채, 고우가 체이스의 어깨를 붙잡더니 빙글 돌려세웠다. 그러더니 그를 겨우살이가 기생 중이던 나무 줄기로 밀어붙였다.

 

“고우, 지금 뭘 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뜨거운 숨결이 입가를 간지럽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입술과 입술이 다시 맞닿기 직전에, 고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어.”

 

또다시 시간이 멈추고, 무언가가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체이스의 조금 떨리는 손가락이 고우의 볼에 닿자 고우가 움찔 몸을 떨었다. 손가락이 차가워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손을 떼려는 순간, 고우의 따뜻한 손이 그를 붙잡았다. 차갑고 따뜻한 손이 맞닿으며 서로의 체온에 맞춰졌다.

그리고 입술을 떼었을 때, 두 숨결 역시 비슷한 온도로 맞춰졌다. 손이든 입술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고우와 살결이 맞닿는 모든 순간순간을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 굳이 하나만 꼽자면 정말정말 가까이 닿아 있어서 살결 뿐 아니라 숨결조차도 뒤섞이는 이 순간이 특히 좋았다. 물과 기름처럼 모든 게 다른 두 존재임에도 몸과 마음이 서로에게 맞춰지는 듯한, 마치 하나가 된 듯한 이 느낌이.

천천히 입술을 떼더니, 고우가 여전히 뭔가 부루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집중 좀 하지?”

“무엇을 말인가?”

“딴 생각 하지 말라고.”

“……”

 

고우가 다시 체이스의 목을 두른 머플러를 붙잡았다.

 

“네가 생각이 많고, 앞으로도 계속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나랑 같이 있잖아.”

“고우.”

“그러니까, 생각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하라는 거야, 내 말은. 내 앞에서 멍 때리지 말고.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네 얼굴만 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고?”

“……”

“‘친구……’ 아니, 그러니까, ‘연인’이잖아? 우리.”

 

그렇게 말하는 고우의 얼굴은 여전히 새빨갰지만, 목소리에 어떤 감정이 묻어나 있었다. 본인이 인정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게 흔히 말하는 ‘어리광’인 것 같았다. 고우가 이런 식으로 (이런 단어가 적절한지는 알 수 없으나) ‘절박한’ 감정을 드러내는 상대는 이 세상을 통틀어서도 극히 드물 터였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친누나에게도 숨기려 했던 감정이겠지. 너무나 빨리 세상의 어둠을 알아버린 소년이, 자신의 추악하고 부정적인 면까지도 받아들여 주는 상대에게만 내보일 수 있는 감정이었다. 본인에게 이런 말을 하면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어딘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심장이 간지러웠다. 체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렇게 말하는 자신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의 충만함이라는 건 지금 이 순간을 말하는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사는 집 근처의 골목까지 걸어왔을 때, 문득 고우가 멈춰 서더니 위를 올려다봤다.

 

“눈 오네?”

 

그 말에 위를 올려다보자 도시의 불빛을 수놓은 밤하늘이 하얀 눈을 흩뿌리고 있었다. 함박눈인지, 눈송이가 금세 커지더니 발밑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올리자 손바닥에 눈송이가 앉았다. 체온이라고 할 게 존재하지 않는 몸이라 그런지, 체이스의 손바닥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녹지 않고 그 모양을 계속 간직했다. 인간은 절대 만들어낼 수 없을,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 왜 그래?”

 

자신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눈을 깜박이자 두 쌍의 눈이 마주쳤다. 흰 꽃잎처럼 하나하나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 사이로 이미 성인이지만 아직 앳되어 보이는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아무것도 아니다’ 라 말하려 했지만, 고우의 눈동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가슴 속에서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체이스의 마음을 부추기는 감각이 느껴졌다. 언어로 치환하자면 ‘충동’ 같은 걸까.

이것도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가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면, 그 유혹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이것도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라면, 이것도 표현하는 과정 중 일부라면, 기꺼이-

체이스가 손을 뻗어 고우의 머리카락을 잠깐 어루만지더니, 무언가를 눈앞에 들어올렸다.

 

“뭐, 뭔데, 갑자기?”

“머리에 묻어 있었다.”

“……?”

 

고우의 시선이 체이스의 손가락에 있던 무언가로 향하더니 눈이 가늘어졌다. 아까와는 다르게 생겼지만 확실히 겨우살이의 그것은 맞는……자그마한 나뭇가지에 그새 굵어진 눈송이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고우의 얼굴이 금세 확 달아올랐다.

 

“……지, 진심이야? 이게 내 머리에 붙어 있었다고?!”

“그렇다.”

“아니, 잠깐만, 잠깐 기다려, 너 솔직히 말해. 이거 원래부터 네 손에 있던 거 아냐?!”

 

체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우가 손사래를 치며 되는 대로 소리치고 있다는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상태였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게 네 머리에 붙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뭔 소리야, 그건 또?!!!! 야, 잠깐만-”

 

또 고우의 ‘태클’이 되돌아왔지만 기계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 담벼락으로 밀어붙이는 체이스의 손이 더 빨랐다. 고우의 당황해서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에 잠깐 ‘공포’라는 감정이 스쳤던 것 같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이게 우선이니까.

 

“흐-”

 

충동적인 행동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의 키스는 조금 더 격렬했다. 평소의 ‘가벼운’ 애정표현 용 키스도 좋았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조금 거칠게, ‘잡아먹을 것 같은’ 입맞춤도……좋았다. 이런 자신의 어쩐지 야성적인 면이 자신조차도 놀라울 정도로. 잠시 입술을 떼고, 고우의 뜨거운 숨결이 자신을 간지럽히는 걸 가만히 느끼다가 다시 입술을 겹치며 체이스가 생각했다. 물론 입을 맞추는 순간에 머릿속 생각이란 생각은 모두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지만, 고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 게 뭐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그리고 아낌없이 표현한다.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게 된 전사가 인간이 되고, 사랑을 하는 방식이었다.

알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 자신의 모습이나 행동이 인간인 고우의 눈에 정말 무섭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시지마 고우는 정말 속이 깊고 상냥한 사람이라, 이런 면까지도 모두 받아들여 주지만……그래도 어떤 순간순간의 눈빛을 감추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가면을 쓴 연인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인간의 것이 아닌 몸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려다 더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때의……“두려움” 이라는 감정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 뒤쪽에 숨어 있다가 가끔씩 삐져나오는 인외(人外)의 모습까지도 받아들여 주는 그의 “상냥함” 을.

그렇지만 소중한 사람이 망가져 버리는 게 싫어서 평소에는 꾹꾹 눌러 담아 두는 충동을, 가끔이라도 발산하는 이 느낌이 충격적으로 기분 좋았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한 욕심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응석, 혹은 이기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론 이게 꼭 그가 인간이 아닌 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느끼는 욕망이 아니라는 사실도, 사랑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를 망가뜨리고 모든 것을 빼앗고 싶어지는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가르쳐준 사람 역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었다.

 

“인간은 원래 어둡고 추악해. 계속 무언가를 빼앗으면서 살아. 그래서 더 복잡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아, 물론 너까지 나처럼 되라는 소리는 아니야? 오해하지 마라?”

“……알겠다.”

“그치만 네가 지금 하는 생각이라던가, 감정이라던가, 를 굳이 감출 필요도 없어. 생각보다 강하거든. 인간이라는 건.”

“……”

“아, 그, 물론 우리 둘만 있을 때라면, 이지만?!”

 

그게, 그러니까, 다 받아들이기로 했잖아? 우리. ……라고 황급히 덧붙이며 괜히 눈을 피했었다. 그때의 너는.

그런 네가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했다.

너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동시에 너의 모든 것을 탐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입술이 서로 멀어지고 눈이 마주치자, 고우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조금 가쁜 숨을 쉬는 얼굴이 홍당무보다도 더 빨개져 있었고, 왠지 자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다소 거칠게 입을 맞추다가 실수로 깨물기라도 한 걸까?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어 얼른 그의 입술로 손을 뻗었다.

 

“고우? 설마 내가 다치게 한 건가? 그러면-”

“그, 그런 거 아냐! 그게-”

 

입술에 닿은 차가운 손을 붙잡는 따스한 손길과 함께, 다시 새빨간 얼굴과 시선이 마주쳤다.

 

“계속 말하잖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그게 정~말로 이상한 행동이 아닌 이상 받아들일 수 있다고. 굳이 배려 같은 거 안 해도 된다고.”

“……그랬었다.”

“그랬었지. 그런데 말야-”

 

고우의 시선이 잠시 아래로 향하더니, 갑자기 하,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체이스의 손에 쥐어져 있던 작은 겨우살이 가지를 홱 낚아채어 들더니 눈높이로 들어올렸다. 그 특유의 가소롭다는 듯한, 혹은 장난스럽고 도발적인 눈빛이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도 저런 표정을 지었던가.

 

“고우-”

“꼭 이런 게 있어야 해?”

“……”

 

여전히 체이스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한 채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 웃으며, 고우가 작은 겨우살이 가지를 바닥에 휙 던져 버렸다. 체이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했다. 자그마한 나뭇가지 위에 그보다 큰 눈송이들이 살포시 내려앉으며 조금씩 그 모습을 감춰 나가는 게 보였다.

그 때,

 

“저런 거, 필요 없잖아.”

“하지만-”

“내 말이 틀려?”

 

그 도발적인 말투에 체이스의 시선이 다시 고우의 얼굴을 향하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고우의 행동이 더 빨랐다. 고우의 손이 체이스의 목에 두른 목도리를 꽉 쥐더니 그대로 끌어당기면서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나눴던 입맞춤이니 이렇게까지 충격적일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얼굴을 감싸며 어루만지는 손길이 뜨거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몸 속 어딘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짜릿하다 싶을 정도의 행복감이 느껴졌다. ‘몸서리쳐질 정도로 행복하다’ 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지금이라면 알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인간들도 이런 식으로 사랑을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면 모두 받아들여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더더욱 애틋한 존재였다.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입술과 숨결을 모두 집어삼킬 것처럼 입을 맞추고, 그의 몸을 끌어당겨 안으며 체이스가 생각했다.

다시 입술을 떼자 고우의 입에서 새어나온 하얀 입김이 얼굴을 간질였다.

잠시 상기된 얼굴로 체이스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고우가 문득 고개를 들더니 풋! 하고 웃었다.

 

“왜 그러지?”

“아, 미안, 그게-”

 

손을 들어 체이스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툭툭 털며 고우가 킥킥 웃었다.

 

“눈사람 같아서.”

 

그 말에 체이스의 시선이 고우의 어깨를 향하더니 이내 발 밑을 향했다. 입을 맞추는 동안 고우를 꽉 감싸안고 있었던 덕인지 고우의 머리와 어깨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지만……그새 눈발이 꽤 굵어져서 바닥에 쌓이는 눈이 바닥의 색깔을 하얗게 가리고 있었다. 키스에 열중하느라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기계’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사랑에 너무 빠져들게 되면 이런 것에도 둔해지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싫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지만. 체이스가 고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어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네가 감기에 걸리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

“그, 그러게……그……고마워.”

“고마울 필요는 없다. 당연한 거다.”

“네, 네, 그렇겠죠~”

 

빈정대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렇게 말하는 고우의 입가에 어이없다는 듯한, 혹은 기쁘다는 듯한 미소가 떠오른 게 시선에 들어왔다.

 

몇 분 후.

집으로 향하던 도중, 문득 체이스의 시선이 발밑에 소복소복 쌓이고 있는 눈을 향하더니 그대로 멈춰 섰다. 고우 역시 걸음을 멈추며 그를 돌아봤다.

 

“왜 그래?“

“고우,“

“어? 왜?”

 

잠시 고우의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응시하더니, 체이스가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눈사람이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 갑자기 뭔 소리야?”

“너의 색깔이니까.“

“……뭐라고?!!!!”

 

체이스의 하얀 손가락이 고우의 흰색 점퍼를 가리켰다.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도 어두운 색깔 뿐이라, 네 색깔을 담을 수 있다면……눈사람인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

 

고우의 시선이 자신의 옷과 체이스의 손가락,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연인을 번갈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뭐라는 거야, 눈사람이 되면 봄에는 녹아 버리겠다는 소리냐고.”

“그건-”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그 때, 고우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지더니, 자신을 향하고 있던 체이스의 손을 확 낚아채며 끌어당겼다. 그의 표정이 어쩐지 굳어 있었다.

 

“고우?”

“난 그 꼴 절대 못 본다?”

“……”

“그리고 너는……”

 

잠시 입을 다물고 뭔가 말을 고르더니, 고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계속 말했잖아? 너는 지금 그대로도 좋다고.”

“……”

“누가 그러던데, 사랑하면 닮아간다고. 어, 잠깐, 그게, 그러니까……그건 좋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소리야.”

“고우.”

“……애초에 눈은 나중에 까매지잖아.

 

어째서인지 고우가 갑자기 말을 더듬더니, 마지막에는 사실상 횡설수설에 목소리도 작아서 거의 들리지도 않았지만……별 말 하지 않기로 했다. 고우가 체이스의 손을 잡은 채로 빠르게 걷기 시작해서 얼른 따라가야 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들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고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모기만한 목소리로 체이스의 이름을 불렀다. 가까이 있지 않으면 절대 못 들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고우, 아까부터 네 목소리가 너무 작게 들린다. 혹시 이상이 있는 건-”

“그, 그런 거 아니거든?! 그, 그게-”

“……?”

 

또다시 침묵이 흐르더니, 고우가 다시 모기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말을 더듬거나 횡설수설하지 않는……평소처럼 또박또박 진지한 말투였다.

 

“다음에는……굳이 안 써도 돼.”

“무엇을 안 써도 된다는 거지?”

 

고우가 뒤를 살짝 돌아봤다. 그의 얼굴이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겨우살이.”

“겨우살이?”

 

체이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자 고우가 흠칫 놀라더니 다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러더니 체이스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현관문을 열더니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현관문이 하필이면 자동으로 닫히는 방식이라, 고우를 집 안으로 들여보낸 문은 체이스의 눈앞에서 그대로 닫혀 버렸다.

열쇠를 하나씩 나눠 가졌으니까 문이야 다시 열면 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따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으려니 문 뒤에서 눈을 툭툭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평소보다 더 요란한 소리였다. 저 정도 소음이면 그냥 몸에 묻은 눈을 툭툭 터는 게 아니라 아예 옷이나 신발을 벽에 쾅쾅 내려치는 게 맞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니면 다른 걸 내려치고 있거나.

왜 저러는 거지……?

그것도 그렇고, 겨우살이를 안 써도 된다는 게 무슨 말이지……? 눈을 깜박이며 가만히 생각했다.

순간, 머리속에서 오늘 있었던 일이 플래시백처럼 떠올랐다. 자신이 고우의 머리 위에 살짝 올려 두었던 자그마한 나뭇가지의 모습이었다.

……그런 건가. 체이스의 조금 떨리는 손이 문고리를 잡았다.

아마 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체이스 특유의 덤덤하고 직설적인 말투로 물어보면 고우는 또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확인할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그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고……무엇보다 그의 연인이 그래도 된다고, 아니, 표현하고 싶은 건 바로바로 표현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니까.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장난기’ 같은 걸까.

장난기라면 체이스보다는 고우가 좀더 많이 갖고 있는 면일 텐데, 이것도 고우의 말처럼 ‘사랑하다 보니 닮아가고’ 있다는 증거인 걸까.

물론, 이 의문도 차차 알아가면 될 터였다.

 

어차피 오늘 밤에도 계속 단둘이 지내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겨울 밤은 기니까.

 

-END-


후기.

와! 도라이부 완주(=체이고우 입덕) 5년 만에 >처음으로(진짜)< 완성해서 업로드하는 체이고우 연성이에요!!!!!

트위터에서 하도 얘네 썰을 많이 풀었으니 '이게 처음이라고?!' 라는 느낌으로 안 믿으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놀랍게도 진짜입니다!!!!! 물론 얘네"만" 등장하는 글연성을 한 적은 있는데 커플링 요소는 단 1도 안들어간 녀석이라 노카운트예요. (나중에 펜쓸에도 올리긴 할 건데 합작 참가작이었어요 ㅠㅠ 커플링 요소를 넣었다간 저 짤리고 싸불당해요 ㅠㅠ)

뭔가 체이고우로 찌던 (미공개) 연성은 많았는데......죄다 이런저런 이유로 완결을 제대로 낸 적이 없어서 어찌어찌하다보니 이 녀석을 첫 연성으로 올리게 되었네요. 그러니까 <Mistletoe>보다 더 일찍부터 쓰던 글이 없지는 않은데 제대로 완성해서 올리는 건 얘가 처음입니다. 참고로 얘도 제 원본 파일을 보면 첫 작성시작 날짜가 >>>2020년 12월 17일<<< 로 떠요......어쩌다 이렇게 된 건가 싶지만 그렇게 됐네요. (......)

뭐 암튼. 벌려놓은 게 많긴 했지만 첫 연성은 읽으시는 분들이 내 캐해는 이런 느낌이다~ 라고 파악하시도록 하는 느낌으로 올려야 하니까, 뭘로 올릴까~ 하다가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니까 겨울이 배경인 이 글을 끝까지 쫙 써서 업로드합니다. 처음이니까 일부러 본편 스포일러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본편 엔딩 이후 언젠가의 언젠가에 신키리가 결혼하고 체이고우가 사귀기 시작한 후' 라고 간주하고 세팅했습니다만 대충 아무렇게나 상상하셔도 됩니다. (ㅈㄴ)

사실 체이고우가 제 인생 최애컾이긴 한데......얘네로 연애사를 쓰는 건 정말 엄청나게 어렵다는 걸 깨닫는 글이기도 했네요(......).

아니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저는 글연성을 할 때 화자를 '나'라고 설정하지는 않지만 심리묘사를 캐릭터들 중 누군가에게 중점을 두면서 찌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글은 체이스 시점에서 찐 연성이고......그......이 친구는 '대사'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을 더 많이 표현하는 캐릭터이며 성격도 말투도 좀 딱딱하니까요. 얘 시점에서 하는 서술의 난이도도 높은 편이에요. 괜히 공식소설이 고우 1인칭 시점인 게 아니여<< 개인적으로 둘 중에서는 고우 시점에서 서술과 묘사를 해나가는 게 더 쉬운데 본의 아니게 1회차부터 하드코어 난이도! 를 선택하는 바람에......뭐 그렇게 됐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안티 아님! 이래봬도 특촬 인생최애입니다! 나한테는 이런 캐릭터 정말 귀하다고!!!!! 10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레벨이라니까?!!!!) 심지어 둘이 >사랑을 하는< 얘기라 간질간질~한 묘사도 많이 넣어야 해서 캐해가 좀 요상해졌지만 어차피 2차 연성이니까 '이런 캐해도 있구나~' 라고 대충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돌아버림!) 내 특촬 인생최애한테는 정말정말 미안하지만 다음에는 무조건 고우 시점으로 쓸 것이다. 무조건! (돌아버림2!)

후기 쓰는 김에 TMI 몇 개......

초반부에 체이스가 '아름다운 풍경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보고 싶어지는' 거라면서 책에서 읽었다고 얘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사실 이건 제가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걸 정확히 >어느 책< 에서 본 건지 까먹었다는 거네요......여행책? 혹은 에세이? 였던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납니다. 애초에 이 연성을 처음 찌기 시작한 게 2020년이니까 대충 그 무렵에 읽은 책이라는 건데......뭐였을까요......

그리고 저도 고우처럼 미쿡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지만, 정작 겨우살이랑 키스 관련 썰은 미쿡 다녀오기 한~참 전에 알게 됐답니다~ (아마 해X X터 시리즈에서 처음 봤던 것 같은데......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으니 그냥 어릴 때 알게 됐다고만 하겠습니다)

어......마무리 뭐라고 하지. 2024년의 나 화이팅? 도라이부 10주년이니까 체이고우는 더더욱 화이팅????? (ㅈㄴ아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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