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친애하는 나의 불량배에게
소녀가 소년을 처음 본 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날은 입학식 날이었을 터이다. 고작해야 갓 중학생이 된 신입생들 사이에서 대표로서 단상에 서서 인사를 했던 소년. 소문으로 듣기에는 수석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대표를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공립이라면 몰라도 사립 학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평범해 보이는 그 소년은 주변에서 보기에 그저 우등생에 지나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수석, 신입생 대표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소년에 관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었다. 딱히 불타오른 적도 없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온 일상에서 각자 자연히 잊혀 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소문의 중심이 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하얗던 피부도 검은색 머리도 온데간데없고 그곳에는 금발 머리에 태닝을 한, 어디로 보나 불량해 보이는 소년만이 남아 있었다. 원래도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친구라고 불릴 만한 사람도 없어 보였던 소년. 키사키 텟타는 난데없이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불량배 데뷔를 하고 말았다. 그와 어울려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불량한 학생들이었고, 그 역시 수업을 빼먹기 일쑤로 불량한 학교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량배다운 면모를 보이면서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같은 시험에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에게 중학교 성적 관리는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 탓인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선생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면학 분위기를 흐리지도 않았고, 시험 기간에는 시간에 맞춰 시험을 보는 학생이라면 가만히 두는 쪽이 더 나았으리라.
왜 그가 불량배를 자처하면서도 학교생활에는 나름 성실하게 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학교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유독 튀어 보였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성적이 우수한 불량배라는 사실 만으로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뿐, 그 나이대 아이들의 관심사는 쉽게 바뀌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러브 레터를 받을 줄은 더 나아가 고백의 대상이 될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키사키 텟타였다. 편지의 주인공은 친절하게도 봉투에 받는 이의 이름—제 이름인 키사키 텟타를—을 적어두었기 때문에 잘못 넣어졌을 리가 없었다. 벌칙 게임, 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전교생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그가 아니었던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장난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생각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제 목적을 전달하기 위해서 쓰인 것처럼 편지에는 필요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키사키 텟타 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방과 후에 체육 창고 뒤로 나와주세요.
아리스가와 소라.
그런 내용의 편지를 바로 오늘 아침, 신발장 안에서 발견한 것이다. 키사키 텟타는 학교에 안 나오는 적은 있어도 늦게 나오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러니 그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때에 집어넣어 놓았을 확률이 높았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용건만 적혀 있는 편지는 내용만 본다면 러브 레터가 아니라 결투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담백했다.
더군다나 체육 창고라면 수업 시간 외에는 사용하는 일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부활동에 사용되는 물품은 각자 부실에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일부러 찾아오는 게 아니고서야 수업이 끝나고서는 그곳에 갈 사람은 없을 터였다. 늦은 시간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불러내는 단도직입적인 문장은 고백보다는 결투를 연상시키기 쉬워 보였다.
다만, 그가 그 편지를 러브 레터라고 단정 짓는 데에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일부러 꾸민 티가 나는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편지지는 마치 러브 레터라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봐달라고 호소하는 듯한 절규에 가까울 정도로 말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아리스가와 소라가 누군지는 몰라도 적어도 살면서 러브 레터 하나 써본 적 없는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그 키사키 텟타라도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누가 러브 레터를 결투장처럼 쓰겠는가. 그는 러브 레터가 고백할 상대를 부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편지에 나와 있는 요구를 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편지를 신발장에서 꺼냈을 당시만 해도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인간의 장난질에 장단을 맞춰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편지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먹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키사키 텟타는 그날 하루 내내 따가운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붉은 리본을 머리에 장식한 여자아이가 제 쪽을 보고 있다가 몸을 돌려 벽 뒤로 숨는 게 보였다. 그러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반복되자 더는 참지 못한 그가 바로 여자아이 쪽으로 다가가 도망가 버리기 전에 낚아챘다.
도망치는 것보다 그의 손길이 더 빨랐고 옷깃이 붙잡혀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 여자아이는 도망가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멈췄다. 그가 낚아챈 옷깃을 놓아주자 순순히 뒤로 돌아서는 그와 마주 보고 섰다.
“그… 편지는 잘 받았나 해서요.”
‘그 정도는 기다리라고.’
시선은 피하면서도 자신이 편지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바로 편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오는 모습을 보면 당사자가 분명했다. 고작 편지를 잘 받았는지가 궁금해서 그렇게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은 것을 참고 대신 한숨을 내쉰 키사키 텟타는 잘 받았으니까 그만 찾아오라고 했다. 이미 주변에서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수군거리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를 소라 역시 눈치챈 모양인지 그에게만 들릴 만큼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 정도의 분위기를 읽을 줄 안다면 처음부터 제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 저… 그러면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나와줘야 해요.”
약속 장소에 나간다는 게 고백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는 아닌데도 소라는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게 빤히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꼭 나와달라는 말을 다시 한번 더 덧붙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금방 제 반으로 돌아갔고 주변에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모여있던 구경꾼들도 각자 제 반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안도한 키사키 텟타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 * *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까 약속했던 대로 키사키 텟타는 체육 창고로 향했다. 종례 후, 부활동이 시작하기 전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고백하려던 소라였기 때문에 제시간에 맞추어 그가 와주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백하려는 사람치고는 왠지 모르게 비장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제게 다가오는 키사키 텟타를 마치 노려보듯이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지 그렇게 보고 있다는 느낌 뿐이기는 했지만, 두근거리는 소녀의 사랑 고백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조금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역시 그 편지를 결투장으로 여기는 게 옳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키사키 텟타가 소라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 마주 서자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나서 고개를 숙이며 예상대로 좋아한다는 말을 꺼냈다.
“키사키 군, 좋아해요. 저랑 사귀어 주세요!”
여기까지는 그의 예상 범위 안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랑 사귈 마음이 없어.”
“왜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예상 밖의 질문이었다. 고백을 거절했다고 해서 물음이 돌아올 줄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할 말이 없지는 않았기에 입 밖으로 꺼내려던 찰나.
“그건….”
“알겠어요.”
한마디의 그 짧은 대답만으로도 다 알겠다는 듯이 소라는 한 손을 뻗어 멈추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키사키 텟타의 뒷말을 막았다. 그는 싱겁게 끝났다는 생각에 뒤이어 다가올 말은 또 예상과 다른 말이었다.
“대답은 잠시 보류해 주세요.”
“그런다고 달라지지는 않는….”
“키사키 군이 저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아직은 관심이 없겠지만… 반드시 좋아하게 만들어 보일게요!”
그럼 너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그 말이 목까지 차 올라왔지만,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해 봤자 소용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대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관심에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다. 그 생각이 안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키사키 텟타였지만, 지금은 그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 뒤로도 소라의 고백은 계속되었다. 매번 키사키 텟타는 제 신발장 안에서 러브 레터라는 명목으로 시간과 장소가 적힌 편지를 마주해야만 했다. 신발장을 열기도 전부터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때는 십중팔구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쯤 되면 러브 레터가 아니라 예고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터였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디에 나오겠다고 밝히는 점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도 않아 보였다.
차라리 고백뿐이었다면 키사키 텟타 역시 귀찮게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소라는 반드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친 만큼, 스스럼 없이 다가와서는 그의 일상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라가 그의 교실로 찾아오는 것은 일과나 마찬가지였다.
“키사키 군, 좋은 아침이에요!”
한 손에는 스쿨백을 들고 다른 한 손을 들어 붕붕 좌우로 휘두르며 반가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등교 중이던 그의 옆으로 다가온 소라는 옆에서 나란히 걸으면서 조잘조잘 떠들곤 했다. 그의 의사나 관심사와는 동떨어져 있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는 소라에게 제 나름대로 험악한 표정을 하고 밀어내 보기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에게서 무슨 말을 들어도 시종 웃는 얼굴로 흘려 넘겼다.
“반이 달라서 너무 아쉬워요. 저도 그렇게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닌데….”
성적순으로 반을 나누었다는 사실만이 지금 제게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까지는 함께였지만, 교실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같이 있고 싶다고 하더라도—키사키 텟타는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서로 다른 교실로 들어가야 하니 자연히 복도까지를 마지막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석으로 입학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으며 지금까지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소라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의 말대로 못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특출나게 잘한다고 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소라가 아니었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잠시뿐 쉬는 시간만 되면 키사키 텟타를 찾아오는 탓에 같은 반 학생들이 소라가 찾아왔다 하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곤 했다. 덕분에 숨 돌릴 틈도 없이 소라와 함께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점심시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라는 보통 제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지만, 학교를 자주 빼먹는 키사키 텟타가 드물게 등교하는 날에는 무조건 그와 함께 점심을 먹겠다고 점심시간만 되면 반드시 찾아왔다. 매점에서 빵으로 때운다든가 거르는 편이었던 그에게 가장 귀찮은 부분이었다.
“그렇게 먹으면 죽어요!”
키사키 텟타의 점심 메뉴를 보고 저절로 입이 벌어진 소라가 한 말이었다. 그 정도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고 말해 봐도 이미 마음속에서는 부실한 점심 식사를 죽음과 등치시켜버린 소라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성장기의 중학생이 그렇게 먹어서는 안 된다며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얼굴로 화가 난 것처럼 따지고 드니 키사키 텟타는 할 말이 없어졌다. 실실거리며 웃기만 하던 소라가 정색하며 말한 게 밥이라는 게 우스웠지만, 웃을 수도 없는 분위기를 풍긴 탓에 더욱 그러했다.
“밥은 잘 챙겨 먹는 게 좋아요. 이것 봐요. 뼈밖에 없잖아요.”
“내버려 둬.”
“키사키 군은 잘 챙겨 먹을 필요가 있어요.”
남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오히려 부끄러워진 쪽은 키사키 텟타였다. 그는 소라에게 잡혔던 팔목을 휙 뿌리치면서 빼내고는 기분 나쁜 모습을 감추지도 않고 드러냈다. 그런 그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태도를 보니 화를 내려던 마음도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디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지만 키사키 텟타는 소라의 행동에 일일이 태클을 거는 것도 지치기 시작했다.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보통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아무리 그라도 알고 있을 터였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단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점은 아무리 그가 제게 차갑게 대한다고 해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러니 소라의 그 이상한 행동을 키사키 텟타는 조금 이상한 여자아이의 독특한 사랑 방식이라고 단정 짓기로 했다. 오차가 있을지는 몰라도 틀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점심 메뉴를 가지고 소라와 논쟁을 벌일 이유도 없었다. 그저 그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했으나, 포기하는 법이 없는 소라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탓에 그 방법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러려니 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되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소라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니 그는 키사키 텟타 몫만큼의 도시락을 챙겨오기 시작했다.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두 사람 몫의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기를 권하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네, 그러니 안심하고 먹어도 돼요!”
안심할 만한 이유가 어디에도 없는데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소라는 도시락을 키사키 텟타에게 내밀었다. 굳이 남이 만들어 온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이유도 없을뿐더러 지나치게 과한 친절을 바란 적도 없었던 그에게는 쓸데없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매일 학교를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매번 등교하는 날 점심시간만 되면 찾아와서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어지간히 할 일도 없는 녀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심각하게 집요했다. 그의 옆에 앉아서 먹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며칠 학교를 빠지고서 돌아온 키사키 텟타의 점심 식사는 여전히 소라가 만든 도시락이었다. 자신이 없으면 도시락의 행방은 어떻게 되는지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물어볼 정도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지금도 원하지 않았던 제 몫의 도시락을 눈앞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나름 배려랍시고 못 먹는 음식은 없는지, 가리는 것은 없는지, 알레르기가 있지는 않은지, 꼬치꼬치 캐물어 가며 만들어진 도시락이었다. 그러니 그런 소라의 질문에 그가 일일이 대답해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소리였다.
“너는 지겹지도 않나. 이런 귀찮은 일을…”
“키사키 군이 맛있게 먹어주면 충분하죠. 맛은 장담 못 하지만… 그렇게 맛이 없지는 않죠?”
그 말대로 맛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맛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 독특한 입맛을 가진 게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그랬다면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다행인 일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처음 도시락을 받았을 때는 먹지도 않고 거절했지만, 점점 횟수가 거듭될수록 거절하는 게 더 귀찮다는 것을 학습한 키사키 텟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도시락을 받아먹어야만 했다. 남이 만들어 준 도시락을 마지막으로 먹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가운데 소라가 만든 요리의 맛으로 비어있던 기억 속 빈 곳이 채워져 갔다.
딱히 좋은 기억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야 이제껏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키사키 텟타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고 보여주려는 듯이 행동한다는 것쯤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터였다. 일부러 발품을 팔아가면서 할 일인가 하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싶은 것이었다. 단발성 이벤트로 하는 것도 아니었고 매번 두 사람 몫의 도시락을 싸는 게 품이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힘든 티를 내지도 않고 당연한 듯이 가져오는 이유가, 소라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야 좋아하니까요.”
“괜한 것을 물어봤군.”
“그리고… 정말 뼈밖에 없어서 걱정이에요.”
“헛소리하지 마라.”
바라던 답은 나오지 않고 돌아온 대답은 우스갯소리뿐이니 기운이 빠진 키사키 텟타였다. 거기에, 차마 저번처럼 팔은 잡지 못하고 시선만 보내는 소라와 이 상황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봤자 소라의 안타까움을 담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 위에서 떠나질 않았다. 팔을 거두자 덩달아 시선도 그대로 따라갔으나 이내 포기하고 돌아와 다시 그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부담스러우니까 그만해.”
“그럴 순 없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그리고… 좋게 봐주면 더 좋고요. 말하자면 물량 공세 같은 거니까요.”
부담스러운 게 소라의 눈빛인지 아니면 매번 조공하듯이 갖다 바치는 도시락인지는 몰라도 당연히 어느 쪽이든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보란 듯이 활짝 웃어 보였다. 웃는 사람의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고 했던가, 키사키 텟타도 그에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없었다기보다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쪽에 가까웠지만, 막무가내인 그 행동을 막을 방도조차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받아들이는 일밖에 없었다. 차라리 위협으로 해결되는 일이었다면 고민할 일도 아니었으리라. 소라는 그런 게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럴수록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쪽이었다.
고백을 거절당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던 셈이다. 미리 알아챘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꿀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으니 체념은 빠를수록 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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