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친애하는 나의 불량배에게

by 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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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키 군, 키사키 군, 같이 가요!”

“따라오지 마.”

소라가 키사키 텟타를 쫓아다닌 지도 벌써 한 달은 족히 되었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학교 밖에서도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미 새를 쫓아다니는 새끼 새처럼 보였다. 각인 효과라고 하는 게 인간에게도 통용될 리는 없건만 소라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항상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의 모습만 보이면 쫄래쫄래 쫓아가서는 나란히 걸어가며 떠들어 대곤 했다. 편차치가 높은 사립 중학교 안에서 모두가 검은 머리─못해도 밝은 갈색 정도가 전부─인 가운데 금발 머리를 한 사람이라면 손에 꼽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가 노력하지 않아도 키사키는 눈에 띄어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는 물론이고 점심시간까지 온갖 핑계를 갖다 대면서 소라는 시간이 날 때마다 키사키를 찾아왔다. 아무리 그가 밀어낸다고 한들 순순히 물러날 소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소라를 피하고자 나름대로 시도한 행위는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한 번 그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그다음 번에는 같은 수로는 도망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요? 왜 따라가면 안 되는 건가요?”

“귀찮으니까.”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이미 귀찮게 하고 있잖아.”

1학기가 시작한 지 조금 안 된 봄이라서 소매가 긴 춘추복을 잘 갖춰 입고 스쿨백까지 들고 있으니, 누가 봐도 불량배하고는 연이 없어 보이는 이미지의 소라는 늘 누구보다 불량배다운 키사키 텟타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등교하면 그때부터 시작해서 하굣길까지 함께였다. 특히나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같이 도시락을 먹을 때까지 절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여서 그로서는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대화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었다. 위협을 해서 조금 겁을 주면 알아서 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불량배하고 엮여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쯤은 진짜 불량배와 마주하게 되면 알아서 이해하게 되리라 그렇게 믿었다. 물론 키사키가 스스로 나서서 폭력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제가 나서봤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불량배를 돈으로 매수해서 그들의 힘을 빌려 겁만 주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어디로 보나, 누가 보나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이 위협적으로 구는데도 소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서는 도리어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저… 비명 지르는 데에는 소질이 있거든요. 우는 것도 자신 있어요.”

“뭐라는 거야, 이게?”

“한 번 보여드릴까요? 곤란해지는 것은 그쪽이 될 텐데… 경찰이 보기라도 하면 누구 편을 들어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 자식, 웃기지 마. 여기에 경찰 같은 게 올 리가…”

우연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근방에서 순찰하던 순경이 불량배 무리에게 둘러싸인 소라를 보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에 불량배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튀어!”

점점 순경과 그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자 채 도착하기도 전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결국,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던 순경 덕분에 소라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끝날 수 있었다. 설령 경찰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태도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가 있을 터였다.

그는 협박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말이다. 나중에 그에게 물어보니 큰길 쪽으로 달려 나가 도움을 구할 생각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제대로 기억해 둬서 경찰에 신고할 생각까지 했다는 것을 보면 차라리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는 진정 위기의식이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이었다.

여차하면 지켜보고 있던 제 쪽에서 제지할 생각이기도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버거운 상대라는 것만 재차 확인만 하고 끝나고 말았다. 괜한 수고를 들여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알았으니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수확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납득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더불어 경찰에게 사정 설명을 하는 소라에게 우연을 가장해 다가간 키사키는 큰일로 번지지 않도록 손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 일을 사주한 장본인이었으나 지시도 대금 지급도 대면하지 않았기에 그들과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딱히 걱정할 일은 없었지만, 괜히 캐내려 들어봤자 이쪽만 골치 아픈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미리 싹은 없애두는 게 좋았다.

순경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소라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도 결국 그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무시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소라와 얽히게 되면 이런 식으로 일이 복잡해지곤 하는 게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의 집이 자기 집 근처인 덕분에 등하교까지 같이하게 된 지 오래였고, 그 때문에 지금도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쪽으로 나란히 걷고 있었다.

“키사키 군이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구해줬겠죠?”

“그럴 리가.”

“아, 키사키 군은 약하니까 제가 지켜줘야겠네요.”

“너….”

종종 이렇게 헛소리를 하기도 하는 소라에게 허튼 소리하지 말라고 면박을 줘도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또 농담을 툭 건네고 만다. 그는 키사키와 그런 식으로 주고받는 담소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리라.

요새 부쩍 폭주족이 어떻고 하는 소문으로 흉흉한 가운데, 조금 전까지도─키사키가 꾸며낸 일이었지만─불량배 무리에게 위협을 당했는데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별일 아니었다는 듯이 굴었다. 그 불량한 무리와 키사키가 다른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그를 보고 있으면,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벌써 소라의 집 앞까지 다다랐다. 이대로 그가 집으로 들어가면 오늘의 일과도 끝이다, 라는 생각에 들어가는 모습을 배웅하고 돌아가려던 키사키였으나 우두커니 서서 미동도 하지 않는 소라를 보고 그 역시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 우물쭈물하고 있던 소라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키사키군. 불량배 그만두는 게 어때요? 불량배 같은 거 위험하니까.”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키사키 군을 좋아해서 걱정하는 거잖아요.”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네 말을 들어줘야 할 의무는 나한테 없으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는 그 자리를 떴다.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밤거리를 배회했다. 고작 중학생밖에 되지 않는 남자아이가 늦은 밤에 어슬렁거린다고 해도 겉모습을 보면 그런 부류의 인간이라고 짐작하고 거리를 두기 마련이었다. 이제 더 가져다 쓸 우연도 없는 키사키 텟타의 밤은 길었다.

* * *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일기 예보가 흘러나왔다. 여름이 시작된다는 신호. 벌써 6월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다들 하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하고 소라의 교복 역시 블레이저에서 반소매의 세라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슴께에도 리본으로 묶인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고, 머리에도 붉은 리본 장식을 달고 있으니 과하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한 번도 붉은 리본을 몸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었다.

먼저 물어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하면 귀엽잖아요, 라고 웃으며 말했던 적이 있었다. 키사키는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그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러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메일 주소 교환하지 않을래요?”

“뭐?”

“제가 한 말 안 듣고 있었죠? 메일 주소 교환하자고요.”

그러고 보면 소라와 함께 다니게 된 지도 두 달은 넘었는데 서로 메일 주소도 전화번호도 교환하지 않고 있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오는 소라 덕분이기도 했다. 등교에서부터 하교까지 한 번도 떨어질 줄을 모르고 옆에 붙어 있으니, 연락처를 교환할 필요성을 느낄 리가 만무했다. 연락은커녕 오히려 거리를 두고 싶은 쪽이었으니 어련한 일이었다.

“저도 이제 핸드폰 있으니까, 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알아서 뭐 하게?”

“연락하려고 그러죠.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고, 안 그래요?”

“그럴 일 없으니까 넣어 둬.”

쳇. 하고 보란 듯이 혀를 찬 소라는 내밀어 보였던 핸드폰을 다시 스쿨백에 집어넣었다. 입을 댓 발은 내밀고 투덜거리는 통에 하루 내내 시달려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려줄 정도로 쉬운 남자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소라 역시 그 정도로 포기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 와서 건넨 쪽지에는 그의 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쪽지를 펼쳐본 키사키를 향해 웃어 보였으나, 그 쪽지는 그대로 그의 손에 구겨져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그는 무시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마저 끈질기게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는 통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거기에 도시락 속 밥 위에다가 콩으로 ‘메일’이라고 적어놓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의 집착이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쉽게 알려줄 생각도 없었고, 저 혼자서는 알아낼 수도 없을 테지만 말이다.

하교 시간이 되자 소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키사키가 있는 교실로 찾아왔다. ‘키사키 군!’하고 기운 넘치게 큰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교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아도 같이 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가 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온종일 붙어있는데 메일 주소가 필요해 보이는가. 집에 돌아가고 나서야 해방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 필요 없었다.

“아, 키사키 군이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좋을 텐데.”

“….”

“정말 좋을 텐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함께인 상황에서 얼마나 더 제 옆에 붙어있을 작정으로 그러는 것인지 그런 소라를 보고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무신경한 소라는 은근슬쩍 핸드폰이나 메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곤 했다. 이런 상황은 키사키가 제 메일 주소를 소라에게 알려주기 전까지는 계속될 전망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게 기대에 가득 찬 그의 눈빛은 조금도 거절을 의심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백에 대한 답이 거절이었는데도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고백해 오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소라는 쉽게 포기할 성정이 되지 못했고, 메일 주소를 알려줄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매번 이런 식으로 키사키 텟타는 소라의 수에 말려들고 있었다. 수라고, 해 봤자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게 전부였다. 수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닌 셈이다. 거기에 그가 얻는 것이라고 해 봤자 고작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 정도에 불과할 텐데도 그는 포기하는 법을 몰랐다.

며칠을 내내 그렇게 소라에게 시달리자, 이번에도 먼저 백기를 든 쪽은 키사키 텟타였다.

“좋아, 메일 주소는 알려 주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찾아온 소라에게 항복 선언과 다름없는 말을 하며 손을 내밀자, 곧바로 쾌재를 외치며 좋아했다. 누가 보더라도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생글생글하고 있다가 아차, 하며 스쿨백을 뒤적이다 원하는 물건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가방 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손을 쑥 집어넣어 마구잡이로 뒤지고 나서야 소라의 손에 잡혀 나온 것은 작은 수첩이었다. 볼펜과 함께 수첩을 손을 내밀고 있던 키사키에게 건넸으나, 그가 요구한 게 아닌 모양인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라가 의아한 표정을 하고서 멀뚱멀뚱하게 서 있으니 다시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핸드폰 줘 봐.”

“핸드폰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라는 다시 가방 속을 뒤적이며 어찌저찌 손에 닿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마저도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그에게 가방 속을 제대로 정리해 두라고 잔소리까지 들었지만, 뭐 잘 꺼냈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니냐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결과만 좋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어디에 빠뜨려서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가방 안에만 들어 있으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으니, 소라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소라를 보며 소귀에 경 읽기라고 생각했는지 키사키도 더는 말을 얹지 않기로 했다.

적외선 통신은 빠르고 쉽게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는 방법이었다. 메모로 적어서 교환하는 것보다야 훨씬 간편하니, 따지고 보면 그쪽을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키사키는 소라에게서 받은 그의 핸드폰을 조작한 후에 다시 돌려주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핸드폰을 마주 놓고 흔드는 것으로 메일 주소를 교환할 수 있었다.

“필요할 때만 보내. 시도 때도 없이 보내지 말고.”

“네! 꼭 필요할 때만 보낼게요!”

그렇게 신신당부한 게 바로 몇 시간 전인데, 하루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쌓인 문자 메시지만으로 십몇 통이 넘어가고 있었다. 필요한 때라는 게 종일이냐며 호통을 친다 한들 소라의 귀에 가 닿을 리가 없었기에 키사키는 속으로만 삭일 수밖에 없었다. 답장으로 적당히 하라고 보내기는 했지만, 그의 말을 들을 사람이었다면 이미 그만큼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을 터이다.

제멋대로 필요한 때라는 핑계를 대가며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져서는 도무지 끊길 줄을 몰랐다. 그렇게 보내다가 얼마쯤 지나서는 소재가 떨어졌는지 조금 잠잠해지기는 했으나, 아침 인사부터 저녁 인사까지는 꼬박꼬박 해오는 통에 키사키는 본의 아니게 소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하루 내내 오는 문자 알림음 때문에 키사키는 몇 번씩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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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6/26 日 14:52

From:

mail to: sora.0310@doomo.jp

Sub: (⌐▨_▨)

오늘 키사키 군 닮은 거 봤어요

내일 학교에 오면 보여줄게요

진짜 딱 키사키 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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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별 볼 일 없는 이야기일 게 분명하다고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키사키는 소라의 메시지를 그냥 지나친 적은 없었다. 왜 그의 메시지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지 저로서도 알 수가 없었지만, 무시했다가 나중에 귀찮아질 게 뻔하니까, 라는 말을 핑계 삼아 넘어가곤 했다. 별 내용도 아닌 문자 메시지에 빌미를 잡혀 소라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편이 제게도 이득이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다.

다음 날, 소라가 원하는 대로 키사키는 학교에 왔지만, 순순히 그의 말을 들어 학교에 나왔다는 부분에서 스스로 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미 학교에 왔으니 도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예상대로 시답잖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이 단둘이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 유일했고, 그때가 되어서야 소라가 보여준다던 게 고작 열쇠고리에 달린 인형임을 알게 되었다. 예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소라는 제 손가락에 열쇠고리를 걸고 자랑하듯이 흔들어 보였다.

인형은 그가 흔들면 흔드는 대로 거기에 맞추어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다지 귀여워 보이지는 않은 캐릭터 인형인 데다가 어디를 닮은 것인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저히 닮았다는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키사키 군과 완전 딱 닮았지 않아요?”

“지금 이게 날 닮았다고 하는 거냐.”

“진짜 잘 어울리죠. 심술이 가득해 보이지만, 사실은 주위를 잘 챙기는 좋은 친구래요.”

“하?”

“키사키 군이 그런 친구가 되어준다면 저도 여한이 없을 텐데….”

소라가 도통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키사키도 그가 농담으로 하는 소리라는 것쯤은 알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인 소리였다.

귀여우니까 가지고 다니는 게 어떠냐며 소라가 열쇠고리를 멋대로 들이밀자, 엉겁결에 받아 들기는 했지만, 불량배가 캐릭터 굿즈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어울리지도 않는 짓이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열쇠고리를 노려보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본 소라가 큰소리로 웃으며 아주 똑같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진짜 똑같이 생겼어요.”

“너는 이런 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물론이죠. 정말 키사키 군에게 잘 어울리는 인형이에요!”

아마도 소라는 제가 키사키에게 차였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고서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걸고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귀찮게 굴고, 열쇠고리를 선물이랍시고 건네기까지 할 리가 없었다.

키사키는 소라의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된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사람일 터였다. 냉랭한 태도에도 좋다고 웃고, 싫은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보통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저 그가 남들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본다면 앞뒤가 맞아떨어졌으니까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제 일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그가 멋대로 군다고 해도 그 정도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제 일을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내가 말했을 텐데, 방해하지 말라고.”

“제, 제가 뭐, 뭘 했다고요.”

학교 안에서라면 몰라도 학교 밖에서까지 아는 척을 해 오면 키사키로서도 곤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운 좋게 여태까지는 남들에게 보인 적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기는 했으나 예견된 일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그가 어울려 다니는 폭주족 무리를 생각해 보면 소라가 그들과 만나서 하등 좋을 게 없었다. 나쁜 영향을 주면 몰라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소라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피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분명히 그러했다.

지금처럼 뫼비우스의 멤버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도 소라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리라고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특공복을 입고 있는 폭주족 무리를 보고도 지나치지 않고 겁도 없이 다가온 탓에 상황이 꼬여버렸다. 일단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였다. 수를 읽히는 것도 문제였지만,

“키, 키사키 군이 옆에 있어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 얘기가 아닐 텐데.”

무서우면 피하면 될 일인데도 소라는 키사키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잡고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그가 움직일 때마다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제가 불량배임을 알고서도 거리낌 없이 들이댄 쪽도 소라였고, 폭주족 무리 한가운데로 먼저 들이닥친 주제에 슬금슬금 제 뒤로 숨어서는 움츠러든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미 다 드러난 마당에 더 숨길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다 드러내고 알려줄 필요도 없었기에 ‘볼일’이 있다는 이유로 자리를 피했다. 키사키가 소라의 손목을 낚아채 끌고 가면 순순히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의심할 줄도 모르고, 보폭을 맞춰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 사람들 키사키 군의 여자친구냐고 물어본 거죠?”

“지금 그게 중요해?”

“아니 뭐, 그거는 아닌데….”

갑자기 멈춰 선 키사키의 등에 얼굴을 부딪쳐서 말을 미처 다 끝마치지도 못한 소라가 얼얼한 제 코를 문지르다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핸드폰을 열어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모양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인지 통화 연결음도, 상대방의 목소리도 작게나마 소라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통화 상대가 누군지 분간할 정도는 아니었고, 짐작하기도 어려웠으나 얼핏 들린 목소리로 남자일 것으로 추측해 볼 뿐이었다. 통화를 끝낸 그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소라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4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소라와 키사키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주문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드링크 바 세트를 주문하기는 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있었다. 소라는 가져온 메론 소다를 제 앞에 두고 그의 눈치를 봤다. 한 모금 마시고 그의 얼굴을 보고, 또 한 모금 마시고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가 먼저 한숨을 내쉰 뒤에 입을 열었다.

“마셔. 이런 거는 일일이 허락받지 않아도 되잖아.”

“그래도 돼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아, 키사키 군은 뭐 마실래요?”

“나는 됐어.”

“그러지 말고, 커피는 어때요? 키사키 군하고 왠지 잘 어울리는 이미지?”

그러고 한참을 있으면, 패밀리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사람. 키가 큰 탓도 있지만 두 손에 새긴 죄罪와 벌罰이라는 문신은 눈에 안 띄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한 손에 하나씩 한자를 새겨놓는 것도 모자라 손등을 가득 채울만한 크기였으니 말이다. 키사키 텟타가 통화를 끝낸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들어와 터벅터벅 걸어오다가 그를 발견하자마자 두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한걸음에 다가왔다.

“어라, 데이트 중?”

“그럴 리가.”

남자는 키사키 텟타와 소라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더니 손가락으로 소라를 가리키며 물어봤다. 그의 물음에 키사키는 여전히 인상을 쓴 채로 그런 게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남자에게 앉으라고 권하자,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 소라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동시에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왜 거기(여기)에 앉는 거지?’

한 팔은 좌석 뒤로 넘기고 다른 한 팔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있는 남자를 피해 소라가 옆으로 옮기려고 하니 또 바짝 붙어왔다. 그 때문에 그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옆에서 노려보든지 말든지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로 키사키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키사키가 여자애랑 있다니 신기하네~.”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한마.”

한마라고 불린 남자는 여전히 가벼운 태도로 일관했고, 소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조금 전까지 무서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적대감만 드러내고 있었다. 초면인 사람에게 난데없이 적의를 드러내는 모습이 생소하기도 하고 볼만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므로 차치하기로 했다.

키사키는 소라가 자신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끔 관리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조금 전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할 목적이었고, 그 일을 맡아줄 사람으로 한마 슈지를 골랐다. 딱히 그가 적임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달리 마땅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었다.

“너는 이 녀석의 감시역이다.”

“에~, 어째서?”

“왜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입을 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불만을 표한 쪽은 소라였다. 강력하게 제 의사를 주장하면서 말이다. 통성명도 하지 않아 ‘한마’가 이름인지 성인지 조차도 알 수가 없는 신원불명의 남자. 거기에 손등 가득 문신을 새겨서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람하고는 같이 있을 수 없다며 온갖 이유를 들먹이면서 반대하고 나섰다.

“키사키 군은 좋지만, 이 사람은 싫어요. 결사반대예요.”

“하아?”

“폭력도 반대예요!”

“나도 애 보기 같은 거 딱 질색이라고. 좀 봐주라.”

두 손을 크게 엑스자로 그려 보이며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치는 소라더러 시끄럽다고 하자 금세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지만,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한마 슈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7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두 사람의 질긴 악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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