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증 下

by 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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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무언가 마찰하는 소리가 연신 들린다. ……. 안녕. …안녕하세요. ……. 오늘도 그림 그리고 있구나. …네. 십자가를 그리고 있어요. …십자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신부님. 뭐해요? ……. 응? 어제처럼 인터뷰하는 거야. …아뇨. 뒤에 있는 신부님 주머니에. 그거 뭐예요? ……. 난 모르겠는데. …그거 녹음기 맞죠.

한동안 미세한 노이즈만 들린다. ……. 그거 저 주세요. …이, 이건 자비에 네 것이 아니잖아. ……. 주세요. …자비에, 네 스케치북을 주면…… Gib se mir! 전등이 파지직거리며 깨지는 소리가 난다. Sono venuto per spegnere la luce del mondo!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심한 노이즈가 들린다. ……. 세상의 빛을 끄러 왔다. Îți cunosc păcatele! ……. 네 죄를 안다. 천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들린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를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구하여 주시고 사탄에 미혹되지 않도록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하소서. 저희 영혼의 치유가이시며 당신을 찾는 이들의 구원이신 분이시여. 당신께 청하오니 인간들을 속인 적들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하시고 하느님의 능하신 손 아래 굴복하게 하소서.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자비에의 낮은 신음이 들린다. 그러다 곧 비명이 들린다. Eure Gebete sind nutzlos! 무언가 들끓으며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다시 비명이 들린다. 그 비명이 이내 여자아이의 소리에서 매우 늙은 남성의 목소리로 바뀐다. 그리고 비올라가 다급하게 정지 버튼을 눌렀다.

“증거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마 사제님.”

침대에 누워있던 수석 구마 사제가 토해내듯 한참을 기침했다. 그러다 겨우 마른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네… 그런 것 같군요……. 교회에 서신을 보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구마 사제님은……”

“어쩌면 이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 믿고 싶습니다.”

*

달빛이 고요를 감싼 밤이었다. 세상을 녹일 듯이 내리던 비는 멎어 들고 이슬 흐르는 소리만이 세상을 간지럽혔다. 밤바다는 성실히 새까만 주름을 빚어냈다. 에델바이스는 창밖을 한참 동안이나 내려다보다가 곧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성경구절을 필사했다.

그렇게 달이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동안 연필의 흑심을 마모시켰다. 누군가가 에델바이스의 방 문을 두드린 것은 그때였다. 올 사람이 없을뿐더러 혹시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대 침묵 시간이기에 침묵을 지켜야 마땅했다.

다시 한번 더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에델바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지금이 대 침묵 시간인 것을 모르는 사제는 없을 터였다. 에델바이스가 문가에 서서 주춤거리는 사이 다시금 노크 소리가 울렸다. 에델바이스는 결국 문을 열었다. 앞에는 비올라가 잠옷을 입은 채로 서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입을 떼려다 침묵했다. 비올라는 그런 에델바이스를 보고 피식 웃었다.

“대 침묵 시간이라?”

에델바이스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검지를 곧게 펴서 입가에 가져다 대기도 했다.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사이로 난 문틈으로 지나가려고 했고 에델바이스가 재빠르게 움직여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쭈?”

“…….”

“비켜. 안 비켜? 소리 지른다?”

에델바이스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비올라는 쉽게 물러설 인물이 아니었다. 에델바이스는 거듭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말렸다. 그러자 비올라가 소리 지르는 척을 하였다. 에델바이스는 잽싸게 그의 입을 틀어막고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찾아오면 안 돼요….”

비올라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에델바이스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에델바이스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치워 주었다. 에델바이스의 손아귀에 비올라의 숨결이 여지껏 생생했다.

“그럼. 나만 혼나라고? 네가 들여보내 주면 될 일인데.”

비올라는 얄밉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에델바이스는 난처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알겠어요…. 들어오세요. 그리고 그런 협박은 그만둬 주세요….”

비올라는 성호를 긋고 잠시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주님이 다 사하여 주셨으니 괜찮아.”

비올라는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에델바이스와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에델바이스는 그를 차마 붙잡지 못했다. 두 사람은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책상으로 가 슥 훑어보았다. 열심히 하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의자를 빼 앉았다. 에델바이스는 한숨을 쉬며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았다.

“단순히 수다 떨러 오신 거라면 내일 날이 밝은 후가 더 적절할 것 같은데요.”

“그런 게 아니야.”

비올라는 의자를 뒤로 까딱거리다가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두 시선이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비올라는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굳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왜 이야기 안 했어?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답지 않게 그는 말을 고르고 있었다. 그것은 에델바이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올라는 그런 에델바이스를 유심히 살펴보며 그가 말하기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비올라는 유연하게 말을 돌렸다.

“구마 사제님은 여전히 편찮으셔.”

“…….”

“일단 교회에 증거를 제출하긴 했는데… 이틀 뒤에 결과가 나올 거란 말이지. 하지만, 그사이에 구마 사제님이 완전히 회복할 거란 확신도 없어. 구마 예식 때 네가 보조 사제로 참석해야 할 수도 있어.”

“네? 제, 제가 보조 사제요?”

“오늘 기도문 잘 외우던데? 구마 사제님이 허락하셨어. 그때는 내가 구마 사제로 들어가는 거고.”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기도문만 외울 수 있으면 돼. 그래서 말인데 미리 고해 성사 베풀려고 왔다.”

“저 말인가요?”

“너 아니면 누구야? 나는 떳떳해. 고해 성사할 게 없어. 그런데 너는 오늘……”

“아, 알겠어요….”

둘은 의자의 등받이가 서로 마주 보도록 하고 앉았다. 불 꺼진 방에는 얕은 촛불만 고고하게 빛났다. 에델바이스는 한참이고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기도했다. 겨우내 지난 초봄의 새싹처럼 그가 입을 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아멘…. 고해한 지 5일 됩니다.”

비올라는 고해 기간으로 에델바이스가 얼마나 신실한 사제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다시금 뜸을 들였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묵주를 이리저리 꼬기도 하고 손등을 두드리기도 했다.

“죄송해요, 비올라. 제게도 떳떳하진 못한 이야기를 타인에게도 하기가 꺼려져서…….”

“이시도르 신부님은 고해성사를 왜 한다고 생각합니까.”

“…….”

침묵이 감돌았다. 양초가 산소와 함께 스스로를 태우며 마찰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죄를 지은 자에게 주는 구원의 기회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네요.”

“…알았어요. 말할게요……. 저는… 같은……. 저는 동성을 좋아합니다. 깨달은 지는 오래입니다. 저도 저를 어떻게 할 수가……. 그저 죄스럽기만 합니다.”

문장을 끝맺고도 에델바이스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비올라는 그를 충분히 기다려주었다. 깨진 묵주 대신 에델바이스의 새로운 묵주가 잘그락거렸다.

“…할 말이 없네요.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죄를 고했습니까?”

“네?”

“제가 듣기엔 죄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귀로 당신의 말을 들었을 때도 이는 같습니다.”

다시 한참이고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풀벌레 우는 소리만 이따금씩 들려왔다. 에델바이스는 목이 메인 듯 막힌 소리로 말했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당신이 죄라 여긴다면 하느님의 뜻으로 사하여 줌으로써 당신의 짐을 나눠 들 수 있겠지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용서합니다.”

“아, 아멘….”

“주님은 좋으신 분이니 찬미합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올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델바이스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는 방을 나갔다. 적막이 쓸쓸하게 드리웠다. 에델바이스는 그때처럼 한참이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추어 있었다.

*

이틀 뒤 교회의 처분이 내려졌다. 에델바이스와 비올라의 바람과 달리 수석 구마 사제의 병환이 깊어졌고,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자비에의 병환도 마찬가지였다. 별다른 차도는 없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알 수 없는 신체 변형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그 외에 설명할 수 없는 증상들도 다수 발생했다.

따라서 교회의 처분은 이러했다. 현재 장마가 심하여 해안도로를 통제 중이라 아네모네 성당에 다른 구마 사제를 보낼 수 없으므로, 발테르 신부가 구마 사제가 되어 구마 예식을 진행하고, 이시도르 신부가 보조 사제로서 그를 도울 것. 부마자의 상태가 심각하므로 최대한 신속히 진행할 것. 그리하여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제구를 준비하여 자비에의 병실로 향했다.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에게 노트와 펜을 건넸다.

“이건 서취노트. 뭔지 알지? 부마자가 말하면 받아 적는 거야. 그리고 구마 예식은 기본적으로 악령의 이름을 알아내는 게 목적이야. 지금부터는 네가 듣지도 보지도 말아라. 하느님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보아야 한다. 안 그러면 영이 공격받아. 마지막으로 무슨 상황에서든 선을 넘지 마라. 그 선이 널 지켜주는 최소한의 줄이다. …아. 진짜 마지막으로. 너 기도문 외울 수 있는 거 뭐냐?”

“…어, 그게……”

“이렇게 얼타는 것도 금지야. 성 미카엘 대천사 기도문 외우고 구마 예식 시작. 보호 기도는 악을 대항한 기도.”

“네….”

비올라는 에델바이스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에델바이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비올라가 병실의 문을 열었다. 발끝이 곱아드는 냉기와 함께 악취가 겨울바람처럼 훅 끼쳐왔다. 그들이 병실에 들어가자, 침상 머리맡 벽에 애써 걸어두었던 십자고상이 추락했다. 징후가 좋지 않았다.

에델바이스는 제구를 축성했고, 비올라는 부마자의 팔다리를 결박했다. 자타해의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에델바이스는 병실 한가운데 말피를 부어 선을 만들었다. 기도 공간과 구마 공간을 분리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에델바이스는 향로에 향을 피운 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향을 퍼뜨렸다. 둘은 함께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성 미카엘 대천사님 싸움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여 주시고, 사탄의 악의와 간계에 대한 저희의 보호자가 되소서……”

자비에가 크게 숨을 쉬며 눈을 떴다. 그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한 듯 침대 헤드에 결박된 자신의 양 손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울상을 지으며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신부님… 무서워요…. 하지 마세요….”

에델바이스는 기도문 외우는 것을 잠시 주춤거렸다. 비올라는 기도문 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뭐하냐는 듯 에델바이스를 바라보았다. 에델바이스는 머뭇거리다 다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상 군대의 영도자시여, 사탄과 모든 마귀를,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그들을 하느님의 힘으로 지옥으로 쫓아버리소서. 아멘….”

“신부님…! 풀어주세요!”

“듣지 마!”

에델바이스가 계속해서 망설이자, 비올라가 소리쳤다. 비올라는 자비에의 눈을 가리고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에델바이스 또한 함께 기도문을 외웠다.

“주님, 모든 악마의 협박과 유혹을 쫓아주시고 악의 힘이 저희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소서. 모든 저주에서 저희를 해방시켜 영원히 당신의 평화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리멸렬한 비명과도 같은 비웃음이 울려 퍼졌다.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순간 기도를 멈추었다. 자비에는 끝없이 웃으며 상체를 들썩였다. 목소리의 높낮이가 시시각각 바뀌었다.

“Noli mihi preadicare!”

에델바이스는 급히 서취노트를 펼치고 자비에가 한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Noli mihi preadicare…….

“내게 설교하지 마라.”

“네 이름은 무엇이지?”

“나의 이름은 군단이다! E io Sono la tua paura e la tua fine!”

“…그리고 나는 너의 두려움이자 종말이다.”

자비에는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를 조롱하듯 다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온몸의 관절을 이리저리 꺾어댔다.

“보인다…! 네 죄가 보이는구나, 발테르! 하느님도 사하여주지 못하는 네 죄가 너를 찾을 것이다! 네 죄는 도망친 것이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 하느님,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세기의 주이신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7 3! 환이 되며 서로 며, 7월 12, 서로를 증한 끝내 을 저 고, 7월 28, 인아니라 세상 또증오할 니! 8 8 균열이 , 8 16일, 균터 온갖 잡것들이 스며들, 8 27일,괴되고 멸할간 또할 것다! 9 15침내 어니! 9 23 님의 하고, 무저갱터 30개의 악 !! 9월 30일, 에 뿌리내려 우매한로 몰아넣어 리를 쟁! 10월 10일 끝내 상의 종찾아고 악대가 도래!어라! 인간여! 너희의십자!!!”

자비에는 허공에 맹렬히 저주를 퍼부으며 몸을 들썩였다. 끝내 비올라를 뿌리치고 창문이 있는 곳으로 날려버렸다. 깨질 리 없던 유리창에 균열이 가며 산산조각 났다. 비올라는 욕을 읊조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에델바이스가 그에게 다가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비올라가 소리 질렀다.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에델바이스는 얼어붙었다. 그러자 자비에는 상체를 비올라에게 향하게 한 뒤로 기괴스럽게 목을 180도 꺾었다. 에델바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어리석은 인간아. 그 선도 못 넘어오느냐?”

“못 넘어 가는 게 아니라… 나는……”

“야! 듣지 말랬지!”

“아……”

침대가 크게 덜컹거리며 그어놓은 말피 앞까지 움직였다. 침대에 묶여있던 자비에는 상체를 에델바이스에게로 꺾었다. 관절이 기형적으로 비틀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것이 정신 사납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같은 거 달린 게 그렇게 좋냐?

비올라가 몸을 일으켜 자비에의 머리를 쥐고 눈을 가렸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 하느님,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세기의 주이신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시나이다. 당신은 바빌론의 일곱 배로 불타는 가마의 불길을 이슬로 바꾸시고 당신의 거룩한,”

“Deja de rezar y ve a chuparle la polla a un hombre!”

에델바이스는 떨리는 손으로 서취노트를 다시 펼쳐 그것이 한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Deja de rezar y ve a chuparle la polla a un hombre……

“기도는 그만두고 가서 남자……”

에델바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비올라는 거듭 욕지거리를 읊조리며 기도를 멈추고 그것에게 말 걸기 시작했다.

“사특한 악령이여, 주님 앞에서 저항은 헛된 것임을 받아들이고 이름을 말해라.”

“아하하하!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말하거라.”

제가알게된죄는회의감을느끼는것입니다구마보조사제로있는것에회의감이듭니다제믿음에의심이가기시작합니다이밖에알아내지못한죄도모두용서하여주십시오, 풉…!”

“…….”

허망하게느껴집니다구마보조사제로있는일이요그래서제신앙심에의심이가고제가구마보조사제가아니라이시도르신부님처럼고해사제가되었으면어땠을까하고이곳에온후로더자주생각합니다목전에닥치니그런생각이더드는것같습니다! 아하하하하!! 가엾어라!”

자비에는 비올라의 고해성사 내용을 빠르게 읊으며 비웃었다. 그러다 비올라를 노려보고는 악에 받친 비명을 질렀다. 순간 거대한 바람이 일더니 비올라의 목에 알 수 없는 힘이 가해졌다. 비올라는 자신의 목을 잡고 비틀거렸다. 곧 비올라의 몸이 점점 허공으로 뜨기 시작했다. 비올라는 고통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자신의 목을 할퀴고 발버둥 쳤다.

“비올라!”

에델바이스는 이번에야말로 선을 넘고 말았다. 바닥에 검붉게 그어진 말의 피가 에델바이스의 구두에 의해 지워지듯 번졌다. 그 순간 비올라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비올라는 바닥에 떨어지자 숨을 토해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에델바이스의 목덜미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침상 머리맡 벽에 부딪히게 만들었다. 본래는 십자고상이 걸려있던 자리였다. 저항할 수 없는 기이한 힘에 의해 에델바이스의 팔이 양쪽으로 서서히 벌려졌다. 그 사이 비올라의 불안정했던 호흡이 점차 진정되었다. 비올라는 몸을 일으켜 에델바이스를 바라봤다.

“비올라.”

에델바이스의 음성으로 자비에가 비올라를 불렀다. 에델바이스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비올라가 자비에를 바라봤을 때 깨진 유리창 조각이 보였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것은 인류에게 지나치게 세뇌된 감정과도 같았다. 비올라는 손에 묵주를 휘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문을 주술과도 같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의 허리에 진리의 띠를 띄고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취하고 예수의 빛으로 보호받을 것이며, 나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광이 깃드니… 어린 양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고 다시 오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를 대적하노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를 대적하노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를 엄히 꾸짖고 명하노니 이름을 말하라.”

그것은 눈을 부릅뜨며 비올라를 노려보았고, 유리 조각이 비올라의 눈앞까지 화살처럼 빠르게 움직이다가 이내 무언가에 박힌 것처럼 멈췄다. 유리 조각은 더 머물지 않고 에델바이스에게로 향했다. 역시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에델바이스는 눈을 질끈 감고 기도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이성적인 소리로 고함치듯 비명을 질렀다. 유리 조각이 공중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다 깨져버렸다.

에델바이스는 끝없이 기도문을 중얼거린 끝에 사특한 힘에서 겨우 풀려나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것은 비명을 지르던 것을 멈추고 비올라의 눈동자를 꿰뚫듯이 바라보았다. 사악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번개의 빛으로 번뜩였다. 그것은 쉴 새 없이 입을 벌렸다. 다물으며 비올라에게 저주를 속삭였다.

“Ignavus bastardus! Omnes mortui sunt, quia fugisti conare iterum fugere. videte ut horrendum moriatur. Ego ostendam tibi visio nocturna iterum? clama quod terres!”

에델바이스는 손을 뻗어 서취노트와 펜을 주웠다. 그리고 그것이 하는 말들을 받아 적었다. 겁쟁이 새끼! 네가 도망가 버려서 모두가 죽은 거야. 이번에도 도망쳐 봐. 그가 처참하게 죽는 걸 구경만 하라고. 네 악몽을 다시 한번 보여줄까? 두렵다고 해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에델바이스는 서취노트를 내리고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비올라는 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허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여전히 두 손을 모은 채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완전히 초점이 나간 보랏빛 눈동자가 보였다. 에델바이스는 목제 십자가를 주워 비올라의 가슴에 대었다.

“성 미카엘 대천사시여, 싸움 중의 우리를 보호하시고, 마귀의 간악함과 올가미를 막는 보루가 되소서. 하느님께 명하시기를, 우리는 간절히 청하오니, 당신은, 천상 군대의 지휘자는, 사탄과 다른 악령들, 영혼을 파괴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이들을 하느님의 힘으로 지옥으로 쫓으소서. 아멘.”

비올라는 물에서 뭍으로 건져 올려진 사람처럼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가 허리를 숙여 급히 검은 액체를 토해냈다. 그러자 자비에는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에델바이스는 들고 있던 십자가를 자비에의 이마 위에 가져다 대었다. 살이 들끓는 소리가 났고, 게다가 악취가 심해졌다. 에델바이스는 소리쳤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명한다. 네가 불리는 이름이 무엇이냐!”

자비에의 몸에서는 관절을 붕괴시키다 못해 근육 하나하나를 찢어발기는 듯한 괴멸적인 소리가 났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비에의 입이 부정형하게 벌어지더니 피가 솟구쳐 올랐다. 마치 모든 장기를 다 토해내는 듯한, 모든 묘사가 무의미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한참을 토해낸 끝에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쉰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나는 지옥의 후작, 사미기나! 인간들을 멸할 것이다!”

그것이 이름을 밝히자, 비올라와 에델바이스는 서로를 바라보고 신호를 주고받았다. 에델바이스는 여전히 자비에의 이마에 십자가를 올려둔 채 비올라와 기도를 외웠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느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흠 없는 어린 양의 이름으로 심판하노라. 육신을 만드신 말씀이 너에게 명한다. 사미기나! 나사렛 예수께서 너에게 명한다. 이제 내가 그의 이름으로 널 심판하노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님 앞에 엎드려라!”

에델바이스의 손에 들린 십자가가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에델바이스는 피부를 파고드는 작열감에도 굴하지 않고 자비에의 이마에 목제 십자가를 밀착시켰다. 곧 십자가가 푸른 불꽃을 내뿜으며 전소했다. 자비에의 이마로부터 피어오른 검은 연기는 썩어빠진 살점의 악취를 풍기다가 끝끝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과하게 뒤틀렸던 자비에의 몸이 원의 형체를 되찾았고 병실을 휘감던 냉기도 사라졌다. 비로소 영광스러운 평화가 도래했다.

*

창공에 무지갯빛의 찬란한 구름이 낀 날씨였다.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 지방에 있는 한가한 교구. 작고 고풍스러운 성당. 뒷마당에는 검은 사제복이 영광스러운 햇볕에 걸려 펄럭였다. 에델바이스는 이 자그만 성당이 마음에 들었다.

에델바이스는 손바닥에 난 화상 자국을 보며 그때의 일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꽤 그럴싸한 영웅담이 되어 에델바이스의 그림자를 따라다녔다. 그 일이 있었던 뒤로 비올라는 영을 다친 채 곧바로 리베르타 교구로 떠났다. 거짓말같이 장마가 끝나고도 그의 또 다른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에델바이스는 요즘 고해성사를 베풀어주느라 바빴다. 타지역까지 에델바이스의 고해 성사 베풀어주는 솜씨가 소문났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저녁이 다 되어서야 신자 상담과 고해 성사가 끝났다. 사제석에서 나가려던 그때 신자 측 고해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아마 마지막 신자일 듯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자 측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아멘. …고해한 지 한 달 됩니다. 본래는 사제직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구마 사제로서 주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구마 예식을 진행하다가 영에 상처를 입게 되어… 도망치듯 사제직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죄는…… 하느님 곁에서 도망친 것입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교우님, 사제직을 그만두신 것은 영을 다쳤기 때문입니까?”

“네. 신부님은 부마자의 예언을 아십니까?”

“네…. 그 예언과 관계있습니까?”

“예언이라기에는 저주에 가까웠지만요. 악령이 제게 그러더군요. 제가 사제복을 벗게 될 것이고 그에 대한 죄라면 이 자리에 있는 인간에게 마음을 준 것이라고요.”

“…그렇게 되었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우습게도 같은 사제를 사랑하게 되었죠. 그걸 깨달은 순간 도망친 것입니다. 자각하고 나니 전에 나누었던 대화, 움직임 하나까지 모두 신경 쓰였습니다. 언제부터일지… 아마 처음 봤을 때, 그때였을지도 모르죠. …그를 위해 저주라고 칭하고 싶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저주라 생각했습니다. 네, 죄라면 그것이겠네요. …신부님은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합니까?”

“…아뇨. 죄가 아닙니다.”

“그렇겠죠….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요. 이만 나가겠습니다.”

에델바이스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신자 측 고해소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났다. 에델바이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기! 교우님!”

에델바이스는 묘하게 어떤 이의 향기가 난다는 것을 떠올렸다. 4월의 봄꽃 같은… 그러니까 제비꽃을 닮은……

“아…….”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에델바이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에델바이스는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고해소를 뛰쳐나왔다. 사람의 흔적과 향은 온데간데없고 저녁노을만 에델바이스를 반겼다. 에델바이스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그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작은 성당 주변을 서성이다가 결국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어느새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아, 왜 하필… 밤하늘은 그의 눈동자를 닮은 보라색이라…

그래, 이건 당신이 먼저 다정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지독하고 모멸적인 저주로 인해 당신에게 단단히 홀리고 만 것이라고. 그때 당신과 눈동자를 마주하면 안 됐었다고.

에델바이스는 소리 없이 숨죽여 되뇌었다. 그러니까 이건…

저주의 모습을 한 구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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