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밤사이에 우린

241121

by 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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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봐도 네가 불 피울 줄 아는 건 신기해.”

“하하하, 그냥 상식이랄까요?”

“능숙하잖아.”

“이건……”

“아~ 됐고. 배고프다.”

늘 그렇듯 비올라가 에델바이스의 말을 잘랐다. 이들의 대화는 언제나 같은 방식이었다. 에델바이스는 그럴 때마다 조금 멋쩍어졌지만, 굳이 이어 말하지는 않았다. 나름의 배려였다.

해가 짧아짐에 따라 추위가 심해져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모닥불 주위에 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이 어느 정도 바람을 막아주었다만, 그럼에도 추위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지금처럼 전기와 수도가 끊긴 마당에 난방을 할 수 없었다.

이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어느 주유소였다. 도시 외곽을 떠돌다가 운 좋게 발견한 곳이었다. 한 차례 폭격이 있었던 뒤로 제대로 된 건물을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이곳에 최대한 머물고자 했다.

비올라의 몸이 기울더니 에델바이스의 어깨에 머리를 톡하고 가볍게 대었다. 에델바이스는 아무런 말 없이 어깨를 내어줄 뿐이었다. 정적이 달빛에 잠겼다. 이렇게 완벽한 정적이 존재하는 지 아마 신도 몰랐을 테다. 문득 그 침묵을 깬 것은 에델바이스였다.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네요. 비올라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요.”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

“그럼요. 아직도 생생한걸요? 저는 잊을 수가 없죠… 당신 연주를 듣고 예술학교로 편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요.”

"그런데 너는….“

“그, 그건 편입생은 기부금과 추천서가 있으면 소리 정도만 낼 줄 알아도 편입할 수 있는 루트가 있거든요.”

“아~ 우리 학교가 그렇게 막 나가는 줄 몰랐는데.”

“막 나가다뇨… 아무튼, 경이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때의 현의 울림을 아직도 기억하는걸요. 필경 영혼에 새겨졌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어깨에 기대었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에델바이스는 뺨을 붉히며 정말 행복한 기억을 떠올린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비올라는 그런 에델바이스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당신의 연주는 그런 힘이 있어요. 우아하게 모든 것을 흐트러지고 스러지게 하죠. 그런 점이 참 좋았어요. 그러고 나서… 우연히 당신을 마주치게 된 게……”

“아, 그때라는 거야? 카터 자식이 복도에서 시비 걸었을 때?”

“어, 음… 네. 저는 당신의 연주가 좋은 만큼 당신이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말려야겠다 싶어서……”

“그렇다고 사람을 들고 튀면 어떡해!”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었나요…….”

비올라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에델바이스는 우물쭈물하며 무언가 말하려다가 곧 다시 입을 닫았다. 괜히 비올라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은 이제 됐고. 다른 얘기 없냐?”

“다른 얘기요….”

에델바이스는 한참이고 고민에 빠졌고, 비올라는 그를 충분히 기다려주었다. 모닥불이 허공을 태우는 소리, 그림자가 잔잔하게 회전하는 소리… 그런 소리들이 적막을 메꾸어 주었다.

“저는 지금처럼만 무사히 지낼 수 있으면 돼요. 물론 얼른 구조가 오거나… 그러면 좋겠지만요.”

“또 실없는 소리하네.”

“비올라가 다른 이야기해 보라면서요…!”

“이제 곧 해 뜨겠네. 난 잠이나 잔다.”

“네, 네…”

에델바이스는 단도를 들고 불침번을 서기 위해 나왔다. 건물 밖은 싸늘했다. 이젠 식물들이 뒤덮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에델바이스는 삭막하게 메마른 덤불을 바라보았다. 겨울이라 그것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긴 했지만,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에델바이스는 주유소 건물에 기대어 얼른 구조가 오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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