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밤사이에 우린

희미한 밤사이에 우린 (8)

by 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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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린 공연장에서 콩쿠르가 열리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지정된 곡을 연주하는 참가자들. 악보를 충실히 따르는 해석들. 콩쿠르는 원래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쯤 한 참가자가 나왔다. 걸음걸이부터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는 무대 중앙에 서자마자 꾸벅 인사한 뒤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옅어지기도 전에 연주를 시작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소음이 사그라들었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현의 울림이 영혼까지 흔들었다. 우아한 예민함. 매력이라는 건 찰나라지만, 이 유혹은 영원과도 같았다. 수평선 위로 아득하게 펼쳐진 무한의 공간을 그려내기도 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수평선 아래로 깊이 처박기도 했다. 그의 연주 앞에서 사고란 것은 덧없는 것과도 같았다. 그저 그를 우러러보고, 동경하고….

그의 음악은 신비로 가득 차 있었다. 부러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상관없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 실재함을 압도하는 경험이 단어로 표현하는 것을 참으로 부질없게 만들어 버렸다. 이 음악을 어찌 한 손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두 손을 모아 손바닥을 마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현에서 활을 떼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불가항력과도 같았다. 나 또한 홀린 듯이 박수를 치고 말았으니.

연주자 이름이 뭐라고? 비올라 알피나, 몰라? 그런 웅성거림은 다음 참가자가 겨우 자세를 잡고 난 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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