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밤사이에 우린

240314

by 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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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긴 뜨는구나.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멸망해버릴 줄 알았는데. 그런 도피적인 감상부터 들었을까? 어쨌든 아침이 밝았다. 에델바이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비올라를 바라봤다.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제저녁을 대충 챙겼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조리실이라도 털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커튼을 살짝 젖혀 창밖을 봤다. 식물 같은 무언가가 하나같이 운동장에 멍하니 서서 햇빛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몇몇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기괴하게 꺾어대더니 꽃가루를 뿌렸다. 노란 안개가 자욱했다. 꽃가루에 노출되어서 좋을 건 없어 보였다. 이건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멍하니 커튼 틈으로 창밖을 보고 있을 때 비올라가 기지개를 켜며 에델바이스에게 다가왔다.

“일단 식량부터 구해야 하지 않을까.”

“네, 그렇네요. 학교에 식량이 있을 만한 곳이라면 조리실이겠네요.”

“응, 그렇지. 거기로 가자.”

“그런데 잠겨 있지 않을까요?”

“흠… 확실히….”

“혹시 열쇠가 있을 만한 곳을 알고 있나요, 비올라?”

“옆에 통합관리실 있잖아. 거기 가면 될 것 같은데.”

“아, 좋은 생각이에요, 비올라.”

“그렇게 보호자처럼 말하지 말아줄래?”

어쨌든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열쇠를 얻기 위해 통합 관리실로 향했다. 바로 옆 교실이긴 하지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에델바이스의 발밑으로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보통 복도를 밟을 때 나는 소리하곤 달랐다. 비올라와 에델바이스는 자연히 발밑을 살펴봤다. 꽃을 밟았다. 불안감이 닥쳐올 때쯤 사람보다 2배는 둔탁한 발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왔다. 거대한 그것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서 피해야 했다. 비올라는 무심코 통합 관리실의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다행히 열려 있었다. 재빨리 몸을 숨기고 문을 닫으려던 그때 문틈 사이로 그것의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비올라와 에델바이스는 힘을 합쳐 겨우 문을 닫았다. 그들의 발밑에는 툭, 하고 그것의 잘린 손가락 몇 개가 떨어졌다. 그것이 본래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붉은 혈액이 흥건했다.

쾅! 문이 흔들렸다. 그것은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다가 결국 돌아간 듯 다시금 고요를 되찾았다. 이제 열쇠 꾸러미를 찾을 차례였다. 잠시도 긴장을 놓으며 안심할 새가 없었다. 통합 관리실을 둘러보면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경비복을 입은 것을 보아 학교 경비원인 것 같았다. 비올라는 멀리서 지켜보았다. 에델바이스는 그에게 다가가 의식을 하기 위해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에델바이스가 그를 깨우면… 그는 깊은 물에서 겨우 빠져나온 것처럼 숨을 급하게 들이삼키며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아주 새까맸다. 흰자가 보이지 않았다. 별안간 피를 토해냈다. 에델바이스에게도 진득한 혈액이 묻었다. 그는 피를 토해내며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기 시작했다. 손가락 관절부터 팔… 다리까지. 모든 관절을 역방향으로 꺾어댔다. 괴이한 비명을 지르면서. 그러다 곧 소리가 멎고 벌린 입으로는 식물 줄기가 세차게 뻗어나왔다. 곧 그의 몸 전체에 뿌리내리듯 줄기와 잎이 휘둘러졌다. 빨리 열쇠 꾸러미를 챙겨 밖으로 나가 문을 잠그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비올라는 가까스로 에델바이스를 붙잡아 일으키고, 벽에 걸린 열쇠 꾸러미를 챙겼다.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통합 관리실을 빠져나온 뒤 문을 잠궜다. 그걸로 비로소 급박한 일이 마무리되었다.

“죄, 죄송해요. 비올라….”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교복을 내려다봤다. 그 경비원의 피로 부분 부분 야단스럽게 젖어있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의기소침한 에델바이스의 모습에 짜증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낼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화를 내면 에델바이스는 더 위축될 지도 모르니까.

“됐고… 갈아입을 옷 같은 건 없겠지. 일단 조리실로 가자.”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조리실로 가기 위해 식당 문을 열어보았다. 식당 안은 고요했다. 그들이 조리실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였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잠깐 정지. 여긴 식량을 구하러 온 건가? 살아있었다는 게 놀랍네, 비올라 알피나.”

“카터 추종자인 주제에 말이 많아.”

“저 자식이!”

“뭐, 한 대 때려줄까?”

“지, 진정해요!”

에델바이스는 겨우 비올라를 뜯어말렸다. 그들의 소란에 조리실에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나왔다. 총 다섯명이었다.

“야, 쟤네 다 쓸어버리고 식량 털면 안 되냐?”

“아, 아뇨. 비올라… 저는 살아있는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요….”

“뭐? 여기서 그딴 거 따질 때야? 그냥 반만 조져두자니까?”

“비올라, 저한테는 중요한 문제예요.”

 

에델바이스는 비올라가 갑자기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그의 한쪽 어깨를 꼭 붙잡았다. 그러자 주먹을 말아쥐고 있던 비올라가 손에 힘을 풀었다.

“비올라, 일단 나가서 얘기해요.”

비올라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에델바이스의 손을 치웠다. 수긍하는 태도였다. 에델바이스와 비올라가 싸움을 포기하고 돌아가자 뒤에서는 그 둘을 한껏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비올라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것을 본 학생 무리는 서로 자기가 비올라를 반쯤 죽여두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비올라 또한 다시 달려들려고 했고, 에델바이스가 비올라를 번쩍 들어올려 식당 밖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식당 문을 잠궜다.

“비올라… 상대해주지 말라니까요. 기어코…”

“야! 말리지 말아봐!”

“비올라.”

에델바이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비올라는 흠칫 떨며 행동을 멈추고 에델바이스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에델바이스는 다시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제가 식량이 있을 만한 곳을 알아요. 따라오세요, 비올라.”

에델바이스는 비올라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에델바이스가 비올라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학생 상담실이었다. 에델바이스는 상담 선생님 자리 근처를 뒤적거리다가 초코 과자 한 박스를 꺼냈다.

“찾았어요! 배는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을 거예요. 조금 질리겠지만…….”

“저딴게 식량…?”

에델바이스는 비올라의 말에 난처하게 웃을 뿐이었다. 비올라는 하는 수 없이 학생 상담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비록 주전부리가 전부겠지만.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디겠나. 하지만, 상담 선생님께서 평소 정리 정돈을 잘하시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비올라는 쿠션이나 방석, 담요 등등 먹을 수 없는 것만 잔뜩 찾았다. 비올라의 표정이 식어갈 때 쯤 에델바이스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손 줘봐요, 비올라.”

비올라는 아무 생각없이 에델바이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올라가 손을 주면 에델바이스는 그의 빈 손가락에 보석 반지 사탕을 끼워줬다.

“오늘 화이트데이잖아요. 마침 저기 하나 있더라고요.”

 

상황이 심각하더라도 일말의 애정은 피어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란 그런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비올라는 소름 돋는다는 표정으로 에델바이스를 바라봤다. 정작 에델바이스는 어리둥절하게 비올라를 바라봤다. 그의 태도를 보자 비올라는 자신이 과민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져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에델바이스가 내일은 학교 밖으로 나가보자고 했다. 그는 이곳에 더 이상 식량이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비올라는 가만히 에델바이스의 말을 듣다가 반박했다. 밖에 돌아다니는 ‘그것’들의 정체가 확인되면 나가자고. 에델바이스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다시 그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240314 2일째

음… 많은 일이 있었다.

거처는 완벽하지만 식량이 부족하다…

이건 차차 해결하면 되려나……

생각이 많아진다.

학교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비올라가 학교 안에서 상황을 파악하자고 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비올라의 말이니…

구조대가 도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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