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비올] 메타포

메타포 中

by 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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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는 에델바이스가 들고 있던 무언가를 도로 가져갔다. 그고는 그의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에델바이스가 그를 불러보았지만, 비올라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비올라가 향한 곳은 어느 낡은 아파트였다. 그곳에 들어가고 나서야 손을 놓아준다. 비올라는 가죽장갑을 벗어 신발장 위에 위태롭게 올려두었다. 신발장에는 신발 대신 잡동사니가 놓여 있었고, 신발들은 모두 현관 앞에 무질서하게 넘어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다. 식탁 위에는 접시가 흩어져 있었고, 건조대에는 잔뜩 구겨진 옷 무더기 쌓여 있었다. 화분 속에는 말라버린 식물들이 겨우 화분에 몸을 걸치고 있었다. 비올라의 작업 공간인 듯 보이는 책상 앞 벽면에는 포스트잇이 한가득 붙어져 있었고, 책과 노트가 빼곡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비올라의 집이었다.

에델바이스는 비올라가 씌어준 모자를 벗고 어디에다 둘지 몰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왜 여기로 끌고 왔냐는 눈빛으로 비올라를 바라봤다. 비올라는 분명 에델바이스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 위에 있던 와인 잔을 들어 창문을 열고 밖으로 쏟아냈다. 적색의 포도주가 그대로 허공과 손을 맞잡았다. 에델바이스는 그의 행동을 보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너도 한 잔 마실래?”

정확히는 속이 울렁거렸다. 무언가 얹힌 듯 속이 안 좋았다. 에델바이스는 넥타이의 매듭을 당겨 느슨하게 풀었다. 그럼에도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근데 왜 저를…”

“너 거울이나 한번 볼래?”

에델바이스는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비올라의 말대로 신발장이 있는 벽면에 걸린 작은 거울을 보았다. 그 안에는 이마와 눈썹 부근, 앞머리에 피가 그대로 말라붙어 있는 채로 멍하지 서 있는 자신이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짧게 모음을 뱉었다. 아…! 손으로 덮어 가리지만 가려지지 않았다. 그걸 가리는 손마저 피에 젖어 있었다.

“내가 공범이 된 거라고 했지? 그래서 말인데…”

비올라가 에델바이스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에델바이스는 멍하니 서서 그를 오롯이 눈에 담을 뿐이었다.

“협박 하나 하자. 부탁 말고 협박.”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협박이 있을까? 에델바이스는 확실히 당황했다. 표정이 순식간에 비뚤어졌다.

“네?”

비올라는 어느새 에델바이스의 곁에 다가서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속삭였다.

“그러니까 네가 잠시 나로 살아줘야겠어.”

“네? 잠시만요. 비올라, 이게 지금 무슨…”

에델바이스가 항의할 새도 없이 비올라가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이름을? 너 나를 알아? 너도 내 팬이니, 뭐니 하는 그런 작자인 거야?”

비올라가 에델바이스에게 더욱 바짝 다가갔다. 에델바이스는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며 겨우 말했다.

“얼마 전에 인터뷰한 잡지사 에디터예요…!”

비올라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에게서 순순히 떨어졌다. 아… 무언가 떠올리는 듯 눈동자가 천장으로 향했다.

“그랬었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기억이 흐릿했어.

에델바이스는 속으로 경악했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니! 첫 인터뷰인데!

“그럼, 이야기가 빨라지겠네. 당신이 적은 그 글 때문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장난 아니게 오거든? 몇몇 극성팬들은… 뭐, 이건 이제 와서 필요 없는 얘기니까 이쯤하고. 아무튼 무슨 상황인지 알겠지? 어? 너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것 같던데 말이야. 네 덕분에 내 삶이 꽤 귀찮아졌고, 네가 내 행세 좀 해줘야겠다고.”

에델바이스는 손에 쥐고 있던 모자를 작은 거울이 걸려 있는 못에다 걸었다. 반절은 모자에 덮여 가려졌다. 거울 속에는 모자의 속만 비칠 뿐이었다.

“아뇨, 그러니까… 저는 애당초, 당신과 관계가 없어요. 당장 지금이라도 신고를…”

에델바이스의 발치로 나이프 하나가 차가운 금속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또 그렇듯 비올라가 에델바이스의 말을 잘라낸 것이었다. 그 나이프는 에델바이스가 주워주었던 신문지 뭉치에서 나온 듯하였다.

“그거 들고 그 꼴로 경찰서에 가 봐.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이건 그 흉기라고. 네 말을 믿어줄까? 내가 역으로 너한테 덮어씌우면? 난 지금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데?”

에델바이스는 횡설수설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동요하는 게 비올라에게도 전해졌다. 되려 비올라가 더 당당한 태도였다.

“지, 지금 이렇게 가면 안 되죠. 핏자국부터 씻어야겠어요. 수도 정도는 잠시 빌릴 수 있죠?”

에델바이스는 싱크대라도 찾으려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뗐고, 비올라가 그의 앞에 팔을 뻗어 벽을 짚어 막았다.

“누가 빌려준대? 생각 없으면 나가. 마침, 동이 트고 있네. 출근해야 할 시간 아니냐?”

에델바이스는 비올라의 뒤로 보이는 창을 바라봤다. 정말 창밖으로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울에 올려진 달의 무게가 무거워져 태양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처럼. 비올라의 뒤로 빛이 쨍하게 들었다. 역광을 맞아 비올라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비올라, 이런 무례는 저도…”

“난 협박하겠다고 미리 말했는데?”

다만, 그가 지금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짜증날 정도로 떳떳한 태도였다.

“그럼, 그대로 출근하던가~”

비올라는 손을 휘휘 저으며 침대에 털썩 누웠다. 에델바이스는 황당해 하며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피 묻은 나이프를 주웠다.

“이거… 정말 당신 것이 맞나요?”

“아, 사실은 어떤 조직을 상징하는 나이프인데 내가 거기에 휘말렸고 너까지 휘말렸다. 이런 건 어때?”

“하하하…… 소설가라 그런지 상상력이…”

“어쨌든 나가. 쉬고 싶거든? 나이프는 갖든가 말든가.”

비올라는 눈을 감았다. 에델바이스가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예상한 행동이었다. 에델바이스는 정말 사람을 해칠 배짱이 없었다. 그 나이프를 식탁 위에 올려두며 생각했다. 가지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정말 이게 사람의 피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만에 하나… 에델바이스는 비올라에게로 걸어갔다. 비올라는 그의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며 말했다.

“협력할 마음이 생긴 거야? 전에도 말했지만, 우린 한 배를 탄 거라고. 글도 지독하게 적어서 잡지에 실었던데, 응?”

에델바이스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저는 최대한 순화해서 적은 거예요, 그래도…”

비올라는 가만히 팔을 베고 누워서 발을 까딱였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에델바이스는 가만히 그 행동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기점으로 넌 평범한 인생 살기는 글렀다는 것만 알아둬. 네 말대로 자수하면 어떻게 될까? 난 네 이름도 말할 거야, 에델바이스 밀런.”

그렇게 말하고 비올라는 상체를 일으켰다. 에델바이스와 눈을 마주했다. 에델바이스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곤란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비올라는 이 긴 실랑이의 승리를 예감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평범하게 그냥 살고 싶잖아? 어떤 사람인들 안 그러겠어? 그러니까… 이 일은 묻어두자고. 아니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너를 신고할 수 있어. 유명 작가의 집에 침입한 강도. 이런 헤드라인은 어때?”

에델바이스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비올라는 힘에 못 이겨 떨리는 에델바이스의 손을 슬쩍 봤다.

“한 대 치겠네. 진정하고 들어. 내가 널 책임져주겠다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에델바이스는 불현듯 벽시계를 봤다. 시간은 조각되듯 시침에 깎여나갔다. 에델바이스는 무언가 생각을 해낸 듯 주먹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는 절벽에 내몰리듯 선택한 것이다. 그와 한 배에 타기를.

*

에델바이스는 불안한 마음으로 비올라의 집에서 나섰다. 마른 피가 씻겨나가 부드러워진 앞머리를 매만지며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피가 맞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문득 느슨하게 푼 넥타이가 생각났다. 넥타이를 고쳐 매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지금이라도 신고해야 할까? 그런데 그가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기에, 뭐 하나 충분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기에 조금은 꺼려졌다. 뉴스를 보다가… 살인 기사가 뜨면 그때 신고해도 된다. 에델바이스의 사고의 끝은 거기였다.

비올라의 요구는 간단했다. 내일 있을 인터뷰에 비올라 알피나로서 대신 나가달라고. 물론 자신도 그 현장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에델바이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에델바이스는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비켜주세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정신 차려보니 이미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하루 종일 어떻게 일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에델바이스는 단 하나의 기억만 떠올릴 수 있었다. 분명 편집장에게 엄청나게 꾸중을 들었다.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울적하게 건물 밖으로 나오던 차에 비올라와 눈이 마주쳤다. 비올라가 입을 열려던 순간, 에델바이스는 깜짝 놀라며 비올라를 끌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향했다. 그러자 비올라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을 막 끌고 오면 안 되지.”

“그렇지만요… 비올라… 제 회사는 어떻게 알고……”

“했었잖아? 인터뷰.”

아… 에델바이스는 뭔가 깨달은 듯 짧은소리를 냈다. 그리고 할 말을 고르며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말했다.

“그래도 회사 앞에 불쑥 나타나는 건 삼가…”

“그건 됐고 따라와.”

에델바이스는 또 비올라에게 휩쓸리고 말았다. 비올라는 에델바이스를 이끌고 어제 그 아파트로 갔다. 305호. 동그란 타원에 적힌 익숙한 듯 낯선 숫자. 문을 열면 어제와 다를 게 별로 없는 장소가 보였다. 달라진 점은 살인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 정도. 나이프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집안을 훑어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에델바이스는 조심스레 다시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내일 인터뷰에 네가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것 때문에 다시 끌고 온 거니까 너무 불만 가지진 말고.”

비올라가 에델바이스를 부른 이유는 내일 있을 인터뷰 때문이었다. 비올라는 책상 앞에 서서 한참을 뒤적거렸다. 그가 책과 노트 무더기 속에서 찾은 것은 질문지였다.

“내일 인터뷰 질문지. 우선 이야기 정도는 맞춰보자고.”

비올라는 의자를 끌고 와 앉았고 에델바이스는 어디 앉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식탁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서로 마주 보고 앉은 뒤 이런저런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논의했다. 겨우 그 일이 마무리됐을 때 에델바이스는 의문을 제기했다.

“저기… 비올라. 인터뷰 정도라면 비올라가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시는지……”

“이유가 중요해? 넌 그냥 행동하는 데 집중하면 돼. 이유는 아무래도 좋지 않나? 너랑은 별 상관없잖아.”

“아뇨… 지금 이렇게 우리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이상 아예 상관없다고는 할 수 없죠. 목적 정도는 분명히 해둬야 제가 행동을 막힘없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네가 굳이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고. 네가 말했듯 애당초 너랑은 관계없다고. 너랑은 별 상관이 없다고. 우린 한 배를 탄 것뿐이지 남이니까. 저질 기자처럼 너무 사적인 것까지 캐묻지 말아 줄래?”

비올라는 질문지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에델바이스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약점이라면 에델바이스에게도 있었고, 언제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비올라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에델바이스는 그가 한 행동에 대해 캐물을 수 없었다. 단순히 묻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초적인 감각과도 같은 거다. 왜인지 그라면… 진짜 무언가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에델바이스는 많은 생각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럼 한 가지 더 질문할게요. 이 질문에는 꼭 대답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대답쯤이야, 뭐.”

비올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고, 에델바이스는 불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제대로요….”

“알겠어. 말해봐.”

“왜 하필 저예요…?”

그것은 근본적인 궁금증이었다. 인간이 순수하 악한 일에 휘말리면 당연히 드는 생각이었다. 왜 하필 나인가? 비올라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위에 올려진 포도주잔을 들었다. 그는 어제처럼 창밖으로 적포도주를 쏟았다. 번지는 어둠 속에서 잠시간 물소리만 났다. 적색의 포도주는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을 테다.

“그건 말이야…”

비올라는 창밖으로 잔을 털어냈고 식탁 위에 올려진 와인을 다시 따랐다. 투명한 붉은 색이 생명을 채우듯 다시 잔을 채웠다. 에델바이스는 긴장한 채로 비올라의 움직임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필 그날 네가 눈에 띄어서고”

비올라는 적당히 찬 포도잔을 들고 에델바이스에게 다가갔다. 에델바이스는 주춤거리면서도 비올라를 마주했다. 비올라는 부드러운 손짓으로 에델바이스의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넘겨 올려주었다.

“하필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어서지.”

눈빛? 그런 눈빛이 도대체 뭔데? 그런 의문이 들었다. 갈고리는 무언가를 걸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었다. 물음표도 그러하다. 그러나 에델바이스가 생각해 내기에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가중된 혼란은 사유를 단절시키기 마련이다. 에델바이스는 좀 전과 같은 눈빛을 하고선 계속 비올라의 행동을 쫓아갔다.

“어쨌든 한잔할래?”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에게 잔을 권했다. 에델바이스의 앞으로 잔이 코 앞까지 불쑥 내밀어졌다. 포도 향이 아릴 정도로 퍼집니다. 에델바이스는 와인이 채워진 잔을 받았다. 얼떨결에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비올라를 주시하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비올라는 가느다란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는… 그래, 그 눈빛.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

다음날 에델바이스는 비올라와 함께 인터뷰할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들어가기 전 비올라가 에델바이스를 불러 세웠다. 에델바이스는 카페 문을 열기 전 비올라의 부름을 받아 멈춰 섰다.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옷매무새도 단장해 준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머리에 꽂아두었던 안경을 씌워줬다.

“이러면 작가처럼 보이겠지. 안 그래?”

“네… 그런가요… 하하하…”

“내 책은 다 읽었다고 했지? 그냥 적당히 알아서 대답해 주면 돼. 어제 말도 미리 맞췄으니까.”

“네… 그럼요, 비올라…”

“그럼 이제 가 봐. 난 근처에서 들을 테니까.”

에델바이스와 비올라는 그제야 카페로 들어갔다. 에델바이스의 맞은편에 타 잡지사 에디터가 앉고 그 뒤로는 비올라가 앉았다. 비올라와 에델바이스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비로소 아무도 될 수 없는 극의 막이 올랐다. 에델바이스는 에디터에게 악수를 청했고 악수를 주고받은 뒤에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에델바이스는 자신을 비올라 알피나라고 소개했다. 내가 될 수 없다니. 잠시 그런 좌절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에델바이스의 생각과 감정이 어떻든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인터뷰의 막바지가 되었다. 그쯤에 에디터는 에델바이스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에델바이스는 당황하며 비올라를 바라봤다. 비올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 모양으로 말한다. 그래서, 뭐? 얄밉게도 에델바이스가 할 수 있는 건 정중한 거절이었다.

“그게… 죄송합니다…. 오늘은 조금…”

“네? 아니 저희 잡지사에서 단독으로 얼굴 공개하시겠다고 했잖아요. 이러시면 저희도 곤란해요, 작가님.”

에디터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건 결국 에델바이스였다. 그의 입장을 헤아린다고 해서 곤란한 상황임은 바뀌지 않는다. 에델바이스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안경을 고쳐 쓰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네. 찍을게요. 번복해서 미안해요.”

에델바이스가 그렇게 말하자 비올라는 일어서 카페를 나갔다.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듯 말이다. 에델바이스는 당장이라도 쫓아가 따져 묻고 싶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에델바이스는 곧장 비올라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비올라는 카페 옆으로 난 골목길 담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에델바이스는 그를 발견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비올라. 이런 건 사전에 말 안 해줬, 엇?”

에델바이스는 비올라의 어깨를 잡아 돌렸고,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힘에 의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에델바이스는 그런 힘에도 비올라가 넘어질 줄은 몰랐다. 에델바이스가 비올라 위에 올라탄 민망한 모양새가 되었다.

“야, 뭐하냐?”

“이럴 의도는, 없… 하… 그게 문제가 아니라요.”

에델바이스는 몸을 일으키고 비올라에게 손을 내민다. 비올라는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에델바이스는 옷을 툭툭 털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이건 사과할게요. 하지만, 비올라도 제게 사과하세요.”

그 말에 비올라는 팔짱을 끼고 비스듬하게 섰다.

“내가 왜? 인터뷰라고 했잖아. 사진 한 두 장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 인터뷰에 사진도 있는 줄은 몰랐죠… 비올라, 저는 심각해요. 제 얼굴이 팔리게 된 거라고요…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로 오해받게 생겼…”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얼굴에 손을 괴팍하게 얹었다. 그 덕분에 에델바이스의 입이 틀어막혀졌다.

“야, 쫑알쫑알 되게 시끄럽네. 일단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고. 집으로 가자.”

비올라는 에델바이스의 얼굴에서 손을 떼 앞장서서 걸었다. 에델바이스는 뒤늦게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비올라, 이건 저에게 심각한 문제라고요… 분명 평범한 삶을 보장해 주겠다고……”

“야.”

비올라가 우뚝 멈춰서는 바람에 에델바이스가 비올라에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날 새벽에 부딪혔던 것처럼 어깨가 부딪혔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오만하냐?”

“네?”

“얼빠진 표정부터 어떻게 해. 그리고 나한테는 지금 제 삶이 평범한 거야. 우리가 평범한 삶의 기준은 안 정했잖아?”

비올라는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에델바이스는 깨달았다. 비올라 알피나에게 완전히 속았다.

***

언제나 그렇듯 비올라의 집으로 향했다. 305호라고 적힌 문이 닫히자, 에델바이스는 다시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올라가 에델바이스의 말을 끊었다. 어제 에델바이스에게 권했던 그 잔을 벽에 던져 부쉈다. 하나의 온전한 유리컵이 벽에 부딪혀 수십 개의 파편이 되었다. 산산조각 나는 그 소리가 너무나 비명 같아서 에델바이스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이제야 닥치네.”

에델바이스는 멍하니 그 벽을 바라보았다. 잔에는 언제나 그렇듯 적포도주가 담겨 있었는지 벽에는 사방으로 포도주가 튀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어수선한 분위기가 마치 살인 현장 같았다.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에델바이스를 다시 현실로 묶어둔 것은 다름 아닌 비올라의 목소리였다.

“그럼, 뭐 당장 어디로 도망가기라도 하게? 그래, 도망갈 거면 가. 어차피 곧 다들 너를 비올라 알피나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하…… 일단… 저는 당장 퇴사해야 하고요. 그리고… 도망갈 생각은……”

에델바이스가 비올라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거짓말을 할 때면 보통 사람이 그러고는 했다. 비올라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더 화내기 시작했다.

“진짜 도망갈 생각이었던 거야?”

“아뇨, 아뇨… 그… 아예 생각 안 한 건 아니고…”

“하! 솔직함이 너무 지나쳐서 짜증날 정도네.”

비올라는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손으로 훑었다. 에델바이스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비올라는 너무 겁먹은 그를 보고 순간 화를 누그러뜨렸다.

“그래, 그게 좋겠네. 퇴사하면 시간이 더 많아지잖아?”

“비올라… 그게 문제가 아니라…”

“책임질 수 있어. 너 정도는 어떻게든 책임질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네, 네? 책임을…”

“퇴사하든 말든 그것쯤은 알아서 하라고.”

비올라는 얼빠진 에델바이스를 뒤로 한 채 손을 휘휘 저으며 침대에 힘없이 누웠다. 누군가에겐 달콤한 소리로 들렸을 테지만 에델바이스에겐 심각한 문제였다. 굳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됐지만… 에델바이스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본인을 책임질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이며, 오히려 퇴사해 버리라니? 에델바이스 밀런은 또다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정보가 부족하다.

“비올라, 우리 대화를 할 필요가 있겠어요. 우선 그날…”

“그날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비올라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역시나 에델바이스의 말은 잘랐다. 에델바이스는 굴하지 않고 질문을 했다.

“그럼, 이것만 알려주세요. 정말 사람을 죽인 거예요?”

비올라는 아무 말 없이 에델바이스를 바라봤다. 서늘한 제비꽃 같은 눈동자. 제비꽃 두 송이가 에델바이스를 노려 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눈매와 입매에 어떠한 동요도 없어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당장 신고하게?”

“아뇨. 그, 그게 아니라… 진정해요…”

“맞는 것 같은데.”

“아, 아뇨… 그게 아니에요. 저희 공범이라면서요….”

“그렇지. 내가 쫓기던 와중에 너를 마주친 거니까.”

“그 양아치들한테 쫓기던 거였어요?”

에델바이스는 기겁하며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일이 복잡해지니 말이다.

“그건 아니고. 그냥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 됐냐?”

“네, 네에…. 충분한 설명이……”

에델바이스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생각보다 큰 사건에 휘말린 것 같았다. 이젠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엮이지 않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것 또한 원초적인 감각으로 도출해 낸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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