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삼계탕
파블로프 씨는 누구의 개입니까? 그것은 정말로 재미없는 농담이었다고 이반은 회고했다. 그러나 종종 그 말을 떠올리는 것이다. 20세기의 중엽을 내달리고 있는 레닌그라드에서 밥을 먹다가, 책을 읽다가, 창가에 서 있다가, 넥타이를 매다가. 화장실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칠 때는 꽤 자주. 일상에 침습한 말과 사상이 어디 한 둘이겠냐만은. 근본없는 농담,
이 세상에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총격전, 난투극, 배신, 그리고 고문. 이 정도. 섹스는요? 반대겠지. 아, 이런 내가 또 틀렸군요. 마테오는 집무실 소파에 앉아 럼을 반 컵 정도 따랐다. 십분의 일이나 팔분의 일 쯤 따르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럼의 강렬한 참나무 향이 공간을 꽉 채웠다. 마테오는 막 공사를 마친 건물의
잘 가꿔진 정원에서 오는 정갈함.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불렀고 세네레이스는 그 말 역시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움보다는 통제가 본질을 좀 더 잘 설명하는 단어일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이곳은 자신들의 구역이라는 표시. 자라나는 생명을 임의로 재단할 수 있는 권력. 수백년, 혹은 수천년 그 자리에 있었을 종
인간은 타인이 될 수 없다.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 자기 자신으로 죽는다. 그러나 연속성이란 허상이 아닌가? 선과 면도 결국 점의 집합이듯 삶이라는 연속체는 무수히 많은 단절을 포섭하고 있다. 예컨대 시간. 흔히는 사건. 혹은 욕망. 아르네 가예웨스프는 과거 어느 한 점을 떠올린다. 바로 그때. 아르네 가예웨스프의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뒤집혀 버렸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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