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13

어느 국회의원 후보의 반나절

탕 > 람

변두리 by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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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사태 이후, 좀비바이러스 대책 본부의 존립 여부가 문제되었으나 때맞춰 터진 문제들로 인해 누구도 필요 여부를 문제로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좀비 바이러스를 이용한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강남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퍼진, 좀비 바이러스와 치료제를 이용한 전반적인 기억력, 지남력, 암기력 상승의 미신이 돌았고 그것은 여전히 알음알음 유통되고 있었다. 좀비 바이러스를 신이 내린 심판이라 주장하며 구원을 받기 위해 메시아를 믿어야 한다는 신흥 사이비 종교는 본부의 끈질긴 법의 철퇴로 그 세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존속하며 좀비 바이러스를 다시 전국으로 퍼뜨려 인간을 계몽시키겠다는 포부를 접지 못했다. 한 시골 마을에서는 뱀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시켜 그것을 술로 담가 먹다가 동면 상태에 들었던 뱀에게 물려 한차례 피바람이 불었다. 좀비 대책 본부 앞에서 좀비들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시위가 벌어졌다가, 좀비 혐오 세력들과 난전이 벌어져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사태는 년 단위로 벌어지는 이벤트였다.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를 믿지 말고 우리가 만든 특제 즙을 마시라고 배포했다가 비위생적 환경과 간경화로 실려 나간 사람들이 대책 본부에게 항의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좀비 바이러스는 자연스럽게 낫는 것이며 오히려 치료제가 뇌를 망가뜨린다는 소문이 퍼져 치료제 거부 운동이 벌어졌다가 격화되어 본부 앞에서 계란과 고춧가루, 술을 살포하는 일이 가장 최근 뉴스였다. 왜 하필 계란과 고춧가루, 술이었냐는 말에 그 셋을 섞어 마신 뒤 한숨 푹 자면 좀비 바이러스가 씻은 듯이 낫기 때문이라는 인터뷰는 한동안 밈으로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좀바치’를 해먹겠다며 계란과 고춧가루, 소주를 이용한 요리를 올렸던 90만 유튜버는 여론의 물매를 맞고 사과 없이 모든 댓글란을 봉쇄하며 또 한 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사람은 변해도 대중은 변하지 않지.’

패드로 뉴스와 칼럼을 확인하던 유력 국회의원 후보는 안경을 벗었다. 콧잔등과 눈 앞머리, 미간을 순서대로 주무르며 다음 일정을 위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차내는 출근 시 라디오, 퇴근 시 클래식을 트는 것이 관례였으며 방향제는 금기였다.

“이 후보님. 여 회장으로부터 연락입니다.”

“주세요.”

다음 스케쥴의 상대였던 OO식품 회장이었다. 급한 일정 발생으로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말이었다. 최근 OO식품 내부의 후계자 승계 문제로 주가가 흔들리던데 관련 문제겠거니 짐작하며 알겠다 회신했다. 빚을 달아둔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었고, 어차피 오늘 일정은 인맥 관리용 접대였다. 선거까지는 2년 가까이 남았으므로 한 번 정도는 더 접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이후로 쭉 일정이 비어계신데, 어떡할까요.”

“집으로 가죠.”

“예. 알겠습니다.”

검은 세단은 부드럽게 차를 돌렸고 이 후보의 운전기사는 운좋게 이른 퇴근을 맞이하게 됐다. 어쩐 일인지 이 후보는 한 번 집에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다시 차를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미나 씨?”

집에 들어오자 눈을 동그랗게 뜬 자신의 주치의가 보였다. 오늘은 저녁을 먼저 먹으라 언질해 둔 터라 놀랄 만도 했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으니까.

“일찍 오셨네요. 약속 취소됐어요?”

“취소했어요.”

“왜, 왜요?”

“내가 천 씨 보고 싶어서요.”

농담인 줄 알면서도 얼굴이 확 붉어지는 천을, 미나는 빤히 쳐다보았다.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자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제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었다. 명절에나 얼굴을 비추는 혈육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미나는 소파에 앉고 제 허벅지 위를 손으로 두어번 쳤다. 그러자 천은 당연하다는 듯 미나의 허벅지 위에 살짝 앉았다. 몇 번 하게 시켰더니 처음에는 눈치를 보던 것이 이제는 거리낌이 없다. 그 흡족감. 미나는 기분이 좋아진 채로 천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아직도 빨갛네요.”

쪽! 그러자 마치 보복을 하듯 천이 미나의 뺨에 입을 맞췄다. 미나가 검은 눈으로 한참, 말없이 천을 바라보자 천은 아랫입술을 슬쩍 말아물었다. 진짜 민망할 때만 잠깐 나오는 버릇이었다. 기어코 자신의 연인에게서 승리한 미나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천의 허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오늘은 뭐 먹을래요? 저녁까지 비었는데.”

“어, 그럼 미나 씨 먹고 싶은 데로 가요.”

“흠……저번에 딤섬 잘하는 데를 가봤는데. 거기로 갈래요?”

딤섬 이야기가 나오자 천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흘 전쯤인가, 천이 VOD로 요즘 유행한다는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고 결심한 일이었다. 오늘은 변동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잘 아는 딤섬 가게로 가야겠지만 이틀 뒤에는 방송에 나온 중식 가게를 예약해둔 참이었다. 물론 이건 그에게 비밀이었다. 은근히 입이 짧은 제 연인 덕에 맛있는 중식 가게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그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남에게 길들여진다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그 사실이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도 너무 물러.’

그렇게 생각하며 미나는 천의 뺨을 한 번 더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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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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