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 / 기혁문조
칼에 찔려 피를 뿜어내느라 뜨거워진 목에 더 뜨거운 손이 얹어졌다. 반대쪽에 차가운 주사바늘이 꽂혔고, 더 차가운 액체가 몸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몸은 이완되기 시작했고 서문조를 보던 눈은 감기면 죽는다는 직감에 떨리면서 버텼다. 배신감이 휘몰아쳤고 동시에 분노가 솟아올랐다. 유기혁은 그 손길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빠져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어떻게든 틈을 찾아서, 도망가서, 복수하겠다고.
살기위해 정신을 놓지 않는 유기혁의 머리에 서문조의 손이 얹어졌다. 귓가 뒤쪽을 만지는 그 찰나에 유기혁은 서문조의 얼굴을 봤다. 그 짧은 손길에서 애정 비슷한 것이 느껴졌으니까. 서문조의 애정어린 손길이라니. 아무리 갈구해도 받을 수 없어 포기한 것이 주어지자 유기혁은 이미 자신이 죽은 건가 싶었다.
'왜?'
그리고 마주친 눈동자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빼앗긴 아이같았다. 뜨거운 손이 목 위에 얹어졌다. 더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유기혁은 계속해서 억지로 눈을 떠 서문조의 눈을 바라봤다. 죽어가는 짧은 시간이 조여오는 숨 탓인지 길게 느껴졌다.
"윽, 하아..."
온 힘을 다해 뜨거운 손이 뜨거운 목을 조였다. 유기혁은 그런 서문조의 눈가에 물기가 맺혀가는걸 봤다.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선생님은 평생 선생님 손으로 절 죽인걸 후회하며 살거예요.'
바람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처음으로 느낀 손길과 처음으로 보는 표정에서 배신감과 실망과 억울함 그 뒤에 있는, 집착과 같은 모습을 한 사랑을 유기혁은 찾을 수 있었다. 서문조는 관계에 있어서 갑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집착은 유기혁을 24시간 제 손바닥 안에 두며 멋대로 휘두르고 감시하는 방식으로밖에 표현될 수 없었다. 그리고 손을 벗어난 유기혁을 죽이는 것 말고는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유기혁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건, 그건 적어도, 유기혁이 느끼기엔 사랑이었다.
그리고 눈이 천천히 감기며 속이 시원해졌다. 유기혁은 어떤 방식으로도 서문조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서문조는 유기혁의 그림자를 보며 평생을 후회할 것이고, 그림자가 되어서라도 그렇게. 아니.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서문조에게 큰 존재가 되었다면 유기혁은 조금은 만족스러웠다. 지금 관심을 가지는 그 작자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 될 지는 몰라도, 유기혁은 계속해서 그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하나의 장치가 될 것이다. 이 고시원 사람들은 그를 화나게 하기 위해 분명 유기혁을 계속 언급할테고, 그렇다면 계속해서 화나고 후회하는 짓을 계속 반복할 것이라 생각하니 유기혁은 기꺼이 눈을 감아줄 수 있을 정도로 속이 시원해졌다.
지금 이 순간은 서문조에게 있어서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큰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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