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사자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하고 온다

OCN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 / 기혁문조

울먹이는 서문조의 두 눈이 보이지 않고, 막혀오는 숨이 끊겼다. 아득해지던 정신은 제 자리를 찾았고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마음이 찾아왔다. 몇년만의 자유였다.

"           ."

그리운 이름이었다. 유기혁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의 이름. 하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전혀 그립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방금 전까지 제 목을 조르며 배신감에 떨리던 목소리가, 한 평생 불러주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을 부르니 화가 났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서문조가 서 있었다.

"뭐예요?"

화를 냈지만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서문조가 아니다. 검은 정장이라니. 서문조는 흰 정장을 즐겨 입었다. 마치 고결한 것이라도 되는 양 밖에 나갈 때면 밝은 옷을 주로 입었다. 그런데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있다니. 게다가 제 이름을 부른다니. 하지만 서문조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얼굴에 유기혁은 저승사자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저승사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온대."

온갖 감정이 휘몰아쳐 그 자리에 주저앉는 유기혁을 보며 저승사자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이런 이를 많이 봐왔다. 사랑이 사랑인줄 모르고 평생을 분노와 헷갈려 하던 이를. 분노의 원인이 사랑이고 기대라는 것을 모르는 이를.

유기혁은 서문조를 사랑했다. 빌어먹게도 너무나 사랑해서 서문조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서문조가 일부러 놓았던 탈출구를 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놓지도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걸친채 서문조의 눈치만 보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시험이라 생각해서 망설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빌어먹을 사랑이었다.

서문조의 옆에 있고 싶었다. 한 번도 자신을 보지 않을 걸 앎에도 어떻게든 쓸모를 증명해서 옆에 있고 싶었다. 서문조가 다른 이를 볼 때면 느껴지던 초조함과 분노가 무엇인지, 유기혁은 이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유기혁은 서문조에게 버림받았다. 그 사실까지 깨닫자 허탈함이 밀려왔다. 어떻게해도 결국 닿지 못할 사람이었다.

"이제 갈 시간이에요."

목소리뿐만 아니라 말투마저도 서문조와 같은 저승사자를 보며 유기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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