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창. 아마 이게 죽음이란 거겠지? 그저 나로서 흐릿한 온 존재로 세상의 일을 관망하게 되는 게. 너에게 마지막 부탁을 한 걸 후회하기도 했어. 그렇게.. 그런 식으로 너의 삶을 스스로 내다 버리게 했으니까, 내가. 네가 우리 집에서 뛰쳐나갔을 때, 너를 붙잡지 못한 것도 후회한다. 그때라도 우리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뭐라도 달라
2004년 9월 21일(토) 디페스타 행사에서 발간 예정인 누아재인(ncp) 개인지 샘플입니다. (원래는 NCP 목적이 아니었는데… 다 그리고 보니 커플링 표기가 무색해질 내용이 되었습니다….) 출력소 마감 기간이 촉박한 관계로 선입금 페이지는 따로 없습니다. 대신 X(구 트위터)의 홍보 트윗으로 금월 행사 현장 판매/통판/25년도 1월 행사 판매분 수요
2023.01.14 물한잔 치얼쓰에서 판매한 회지를 유료발행합니다. 표지디자인 : 인생에 무슨 일이? @amazing_life_ap 하수창과 누구도 아닌 남자가 ___해야 나갈 수 있는 방에 갇힙니다. <베리드 스타즈>와 <회색도시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맨스, 섹슈얼 요소 일절 없음. 주의 소재 (드래그) : 메타 픽션 요소, 목을 조르는 행위,
2024년 8월 10일 개최된 《이게아냐2024》 행사에서 유료배포된 그홀(@Faitter_user)님의 《미지수 X의 헌신》 축전
류태현은 커피 향을 맡는다. 은은한 원두 향이 천천히 퍼지고, 카페 내부에 흐르는 클래식은 거슬리지도 않고 부드럽다. 커피잔을 쥔 손을 내려다본다. 계절감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장갑의 움직임은 꽤 자연스럽다. 어색하고 삐그덕거리던 것은 어느 거짓보다 더 진실하도록 보일 정도로 류태현의 시간은 '그날'로부터 끊임없이 멈춤 없이 계속 흘러갔음을 이야기한다. 유
주정재는 쉴 틈이 없었다. 경찰일을 할 때도, 표면적인 업무가 끝나고 나서도 일, 일, 일. 계속 일이었다. 누군가는 저 놈만큼 느긋하고 뻔뻔하게 일하는 놈도 없을 거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본인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주정재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오는 날이면 네까짓 놈이 내가 하는 일들을 다 아느냐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주는 게 일상이었다.
서재호는 삼복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었으나 올해는 달랐다. 초복에는 옛 친구 오미정과 함께 들깨삼계탕을 먹었는데, 엊그제 같았던 초복이 지나더니 중복이란다. 양시백이나 권혜연, 홍설희와 함께 몸보신 음식이라도 먹으러 갈까 했는데 다들 시간이 되지 않았다. 삼계탕을 또 먹긴 뭐하고 감자탕 같은 거라도 먹으러 가볼까. 할 참이었다. 집앞에서 가까운 감자탕집에
양시백은 가끔씩 서울을 배회했다. 도장은 여전히 폐업 신세여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있었지만 그동안 먹어온 세상 물정이 있어서 입 하나 정도는 풀칠하며 살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음에도 겨우 쥐어짜낸 여유를 짧게 만끽한 양시백은 따뜻하진 않지만 춥지도 않은 옷차림으로 도장을 나섰다. 날은 햇빛조차 얼음으로 빚어낸 것처럼 싸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
국회의원 살해 사건. 범인은 과거 서대문 인질극 사건의 피해자이자 박 의원의 부하였던 유 모 씨로 밝혀져... 딸을 잃은 슬픔과 자신을 비리 사실을 잡아낸 일로 박 의원에게 앙심을 품고... "멋대로들 말하는군." 남자는 신문을 접었다. 직접 겪지 못했을 뿐 대강의 이야기는 접했기에 더 살펴볼 필요성을 못 느꼈다. 불쾌하기만 했다. 유상일이 10여 년
...상일이가 죽은지도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매정한 노릇일지도 모르지만 어느덧 알게 된 사람들 모두 제자리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다. 재호 씨와는 앞으로도 백석을 쫓겠다고 했다. 나 역시 꼭꼭 감춰둔 것들을 풀어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서로들 몸이 나아지면 이야기를 해 보고자 약속을 잡았다. 양시 녀석은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낸 상태였고, 권혜연 씨
남자는 형사와 함께 종종 밥을 먹곤 했다. 매일 먹는 것은 아니었고, 일이 있을 때만이었다. 그마저도 점심 쯤이었고 형사의 경우 본 업무로 곧장 복귀해야 하곤 했어서 배를 채웠으니 술을 마시자! 는 상황은 두 사람 사이에서 거의 없는 일과 같았다. 밤에 '일' 이 떨어지지 않는 한에는. 하지만 백반집에서 배를 채우고 나오는 길에 담배를 물며 나오는 상황은
남자는 길을 걸었다. 한없이 익숙한 서울이었지만 때때로 눈에 익지 않은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전신을 얼음에 댄 듯한 낯설음을 느끼곤 했다. 그것이 불행을 예비하는 종류의 것이라면 경계하거나 마땅히 몸을 사려야 함이 맞으나 그런 종류의 낯설음은 또 아니었다. "은희 씨. 여보. 우리 설희 동생이 무어가 먹고 싶어하는지 알려주시겠소?" "글쎄요. 새큼한 게
"모두...꼭 이래야만 했던 겁니까?" 으득, 남자가 이를 갈았다. 육신의 상처만이 모든 상처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 점에 입각한다면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죄다 엉망진창이었다. 죽어가는 자와, 그의 옆에 선 자. 그 이전에 마주 보았던 자들 모두가.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는 중년의 말과 함께 철커덕 하는 쇳소리가 강압적으로 눌린 침묵에 울려퍼졌다.
자박. 복도의 침묵을 깨던 걸음소리가 멎었다. 두 소리가 겹쳐진 걸음소리 중 하나가 멎은 셈이었다. 멈추지 않은 걸음소리가 자박자박자박 중간에서 끝까지 계속되었다. 소리가 멎은 곳에서 걸음이 멈추고 끽 문이 열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중첩된 걸음소리가 그 안으로 스며들듯이 끌려들어갔다. "오랜만이지." "..잘, 지내셨어요?" 안경을 쓴 남자는 옅게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남자를 아는 누군가가 그 모습을 봤다 해도 말을 붙이기 힘든 분위기에 눈길을 주거나 다가서지 못 하고 등을 돌렸을 것이다. "야, 오늘이 생일이라고 했지?" 주정재는 일할 때 빼고는 남자와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일단 대외적으로 형사였기 때문에 제게 맡겨지는 일을 처리해 나가느라 바빴고, 그 일을 할 때에도 서로 맡겨진
-나는, 권현석 경감님의...친구란다. 여자아이는 눈물을 그득 담은 얼굴로 남자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하얀 빗살 섞인 눈물은 희게 흐드러져 볼을 타고 방울져 떨어졌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어라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 했다. 여자아이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런 위로를 겉치레로도 건넬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