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 주인은 주안의 요구에 따라 일행을 2층 끝 방으로 안내했다. 어물거리며 문을 열어 보인 그가 주안의 눈치를 보았다. 오래되어 상태가 조금 그렇다는 말이 사실인 듯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풍겼고 회색빛 먼지가 내려앉은 바닥이 보였다. ‘아무리 아들이 타지에 갔다지만 이 정도로 청소가 안 되어 있을 줄은…….’ 히엘리를 비롯한 모두의 생각이 비슷했다
“저 애는 이상해요!”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높이 묶은 여자아이가 앙칼지게 외쳤다. 수수하지만 잘 다려진 깨끗한 튜닉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이는 품에 털이 노랗고 보드라운 토끼를 한 마리 안고 있었다. 아이는 한 손으로 토끼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토끼의 등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이 울먹이는 눈으로 히엘리를 쏘아보았다.
주안은 거기에 잎살이나무의 잎을 여러 장 깔았다. 그 위에는 주박나무 열매를 갈아서 뿌렸다. 주안은 이것이 짭짤하면서 시큼한 맛이 난다고 했는데 히엘리는 먹어본 적 없는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웠다. 또 그 위에는 늑대의 가슴살을 얇게 저며서 필레니케가 따온 여름배추를 포함한 갖가지 야채들과 번갈아가며 쌓았다. 향이 알싸한 풀도 몇 잎 구해 가장 위에 올렸다.
그는 오른쪽 옆구리에 꼿꼿하게 검을 틀어쥔 채 늑대를 향해 직선으로 돌진했다. 늑대가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두 아이는 침을 꼴딱 삼켰다. 저렇게 달려들어도 괜찮은 거야? 히엘리는 은빛늑대와 싸우는 법을 이론으로만 배웠다. 몸이 날쌘 한 명이 늑대의 표적이 되고, 늑대가 방향을 틀어 속도를 늦추도록 유도한 뒤 다른 한 명이 등에 올라타서 목에 밧줄을 감는다
“저는 필레니케가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 둘 뿐인 친구 중에 하나였고…… 돌아갈 곳이 없어졌으니까. 필레니케를 살려주세요, 주안.” 단순하고도 명료한 요청이었다. 주안의 눈동자가 필레니케를 향했다. “허하마.” 필레니케가 멈칫했다. 허한다고. “예상 밖의 일이지만…… 히엘리의 뜻이 그러하다면 동행을 허하겠다. 이름이, 필레니케라고 했나?” 부산스러운 금발
바닷마을의 짠내가 풀내음으로 바뀌고 마을이 손톱만하게 보일 때까지도 둘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저 무릎 높이까지 자란 잡초가 옷깃에 스치는 소리, 풀벌레와 작은 새들의 울음만이 그들 사이의 적막을 흩뜨려 놓았다. 머릿속에 지도를 펼쳐든 것처럼 망설임 없이 산을 오르던 마법사가 한 길목에서 걸음을 멈췄다. 무성한 잡초들 사이로 희미하게 틔인 그것은
그런 동화를 읽은 적이 있었다. 마음씨 착한 거지가 온종일 구걸해 얻은 음식을 친구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가 끝내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 신은 그를 가엾게 여겨 두 번째 생을 내렸고, 거지는 귀족 가문의 막내딸로 다시 태어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문장으로 동화는 끝이 났다. 까마득한 어둠이 자신을 덮치기 직전. 히엘리는 다섯 별의 신에게 빌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