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라크라 메세티 (2)
여관 주인은 주안의 요구에 따라 일행을 2층 끝 방으로 안내했다. 어물거리며 문을 열어 보인 그가 주안의 눈치를 보았다.
오래되어 상태가 조금 그렇다는 말이 사실인 듯 문을 열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풍겼고 회색빛 먼지가 내려앉은 바닥이 보였다.
‘아무리 아들이 타지에 갔다지만 이 정도로 청소가 안 되어 있을 줄은…….’
히엘리를 비롯한 모두의 생각이 비슷했다. 여관 주인이 우물쭈물하며 ‘역, 역시 조금 좁더라도 미리 청소해둔 다른 방을 쓰시는 것이……!’하고 말했지만 주안은 심드렁한 얼굴로 받아쳤다.
“괜찮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도록.”
그러고는 거리낌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덜컥 닫아버렸다.
여관 주인의 등에 송골송골 맺히던 식은땀이 비로소 흘러내리기 시작할 무렵, 주안이 다시 문을 열었다.
“됐다. 히엘리, 필레니케. 이제 들어오도록.”
히엘리는 주안의 말에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먼지는 온데간데없고, 반질반질하게 청소된 방이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
여관 주인은 얼굴에 ‘오오, 이것이 마법!’이라고 번듯하게 적힌 듯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목욕물, 식사 준비는?”
주안이 주인을 향해 재차 언질하자 그는 그제서야 두 손을 모아쥐고 웃으며 ‘아차차, 금방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욕실로 사라졌다.
이윽고 주인이 욕실에 목욕물을 준비해 두었다고 일컬었다. 주안은 두 아이에게 씻고 나오라며 등을 떠밀었고 히엘리와 필레니케는 순순히 욕실로 들어가 훌렁훌렁 옷을 벗었다.
***
주안의 무덤덤함 일색인 얼굴이 충격으로 조금 깨어진 것은 아이들이 어설프게 몸을 씻고 나왔을 때였다.
“……그러니까, 다 씻었다고……?”
히엘리는 당당하게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쫄딱 젖은 단발머리를 동네 들개처럼 푸르르 털었다. 주안은 그런 히엘리의 꼴을 보고선 힘주어 말했다.
“히엘리, 머리를 그렇게 털지 말아라. 그나저나 어떻게, 씻었다는 아이들이 여전히…….”
주안은 히엘리가 털어낸 머리칼의 물을 보고 눈만 여실히 깜박였다. 갓 청소해둔 반질한 바닥에 거무튀튀한 물이 흘러내렸다. 채 땟국물이 빠지지 않은 아이들의 행색에 참담한 표정이 되어서. 어쩐지, 너무 빨리 씻고 나온다 했더니 물만 묻힌 수준이었다.
‘가르칠 것이 정말로 많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주안은 아이들을 다시 욕실로 밀어넣었다.
“둘 다. 다시 씻어야겠구나.”
아이들에게 머리 감는 법, 비누 쓰는 법, 몸을 헹구고 닦는 법까지 일일이 가르쳐야 할 판이었다.
‘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군…….’
주안 마거릿은 아이들 모르게 쯧, 하고 혀를 찼다. 위생과 청결을 중요시해 어딜 가더라도 오물 하나 떨어져있는 모습을 보기 힘든 제국에서의 삶이 지나치게 익숙해졌다는 감상과 함께. 대륙 변방인 스라하르의 일반적인 교육 상태가 무척이나 암담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주안은 아직 김이 폴폴 나는 나무 욕탕에 아이들이 다시 들어가도록 시켰다. 그러다가 문득 히엘리를 멈춰세웠다.
“잠깐.”
그러고는 히엘리의 등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밝은 피부에 검은 얼룩이 있었다. 단지 씻지 못해서 생긴 흔적이라기엔 모양새가 달랐다. 아이들의 몸에는 갖가지 구르고 찢어진 흉터와 생채기가 많았지만, 그것들과도 또한 달랐다.
“이건…….”
스라하르를 덮쳤던 괴생명체, ‘독액’이 분명했다. 그것이 히엘리의 몸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히엘리가 주안을 향해 고개를 한껏 젖히며 물었다. 주안은 아슬아슬하게 마주치는 히엘리의 눈동자에 답하는 대신 필레니케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같이 씻을 때도 이런 얼룩이 있었니?”
필레니케는 눈을 모로 굴리고는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곤 비로소 기억난 듯이 말했다.
“아니요?”
그의 대답에 주안은 가느스름하게 실눈을 뜨고 얼룩을 바라봤다.
“그럼 지금 막 생겼다는 건데…….”
히엘리의 두 날개뼈 사이에서 검은 얼룩이 미세하게 일렁였다. 그것은 얼룩의 형태임에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히엘리의 피부 위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며 제 모습을 과시했다.
주안은 그 얼룩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천천히 문질렀다. 그러자 얼룩이 점차 희미한 회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연기처럼 흩어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필레니케가 나지막히 말했다.
“……사라졌네요.”
“내 마력으로 조금 덮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빨리 조치가 필요하겠어.”
“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요?!”
히엘리는 제 등을 보지 못해 답답한 듯이 팔을 휘저었고 주안은 ‘그만, 그만.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물이 식기 전에 씻자꾸나.’라며 아이들을, 정확히는 히엘리를 타일렀다.
***
한바탕의 목욕 소동이 끝나고 주안은 아이들이 갖춰입을 옷을 마련했다면서 아공간 가방에서 옷가지를 술술 꺼냈다. 어깨부터 종아리까지 천 하나로 이어지는 튜닉을 주로 입는 이 지방의 복식과는 달랐다. 단추가 달린 새하얀 셔츠와 어두운 갈색 바지, 모자가 달린 검정색 로브까지. 군더더기없는 엘노아 제국식 복장이었다.
“우와아아……!”
히엘리는 정말로 이걸 저희 주시는 거냐면서 옷을 몸에 대어보고 빙글빙글 돌면서 눈을 반짝 빛냈다. 주안은 아이들에게 옷을 차분하게 입혀주면서 말했다.
“제국 통행증은 항상 허리띠의 주머니에 넣고 다니거라. 튼튼하게 만들어서 혹여 소매치기 당할 일은 없겠지만…… 잘 띄지 않게 로브로 가리고 다니는 게 좋다.”
그런 식으로 제국 복식을 입혀놓고, 지저분한 머리칼도 반듯하게 빗어내리니 아이들은 제법, ‘스라하르 출신’에서 멀어 보였다. 이 정도면 ‘한 눈에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옷을 걸친 멀대 같은 마법사’ 뒤를 따라다녀도 충분히 동일한 일행으로 보일 것이었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첫눈에 밉보이지는 않을 거다.”
소매치기 부랑아로 의심받을 일도 없겠지. 주안이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의 옷가지를 정리해 주었다. 필레니케는 목에 닿는 셔츠깃이 불편한지 조금 꼼지락댔고, 히엘리는 활동성 좋게 쭉쭉 늘어나는 바지에 때깔 고운 부츠가 마음에 드는지 연신 발을 쿵쿵대 보다가 되물었다.
“밉보이지 않는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너희를 제국 사람처럼 대해 줄 것이라는 뜻이다.”
“흐음. 그렇군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히엘리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빙글 돌아보며 자기 행색을 내려다보는 히엘리의 앞으로 주안이검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조용히 하라는 듯한 그 제스처에 아이들이 입을 합죽 다물고 서로를 흘깃 바라보았다.
주안은 자신의 적갈색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고, 귓불 끝에서 달랑거리는 마름모 모양의 금빛 귀걸이에 손을 가져다댔다.
“뭐라고?”
“?”
“……?”
“지금 말인가?”
주안의 귀걸이가 통신 마도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은 ‘주안이 혼잣말을 한다’면서 속닥거렸다.
[그~러니까. 너 어차피 대륙 끄트머리에서 마탑으로 오는 길이잖아? 몇 개월은 걸릴 거 아냐? 뭐, 일곱 밤 정도 더 늦어도 상관없으니까 잠깐 들러달라, 이 말이지~]
“하아……. 마을 이름이 뭐라고?”
주안은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데니테. 네가 있는 메세티 마을에서 마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사흘 정도 가면 나올 거야.]
“알겠다.”
[아마 거기에 들렀다가, 미라 평원까지 오면 나도 합류 가능할 것 같아. 그 쪽에 일이 생길 예정이거든~]
“……굳이 합류할 필요는 없다.”
[에이, 겸사겸사 얼굴 좀 보자 이거지~ 그럼 부탁할게~! 통신 끊는다!]
그렇게 뚝 끊겨버린 통신을 뒤로하고, 주안은 천장의 나무 무늬를 한 번 바라보며 얕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히엘리가 눈을 반짝반짝하게 빛내면서 주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 한 거예요, 주안? 혹시 그 귀걸이도 마도구인가요?”
“그래. 마탑과 잠시 연락했어. 데니테에 볼일이 생겼다.”
“우와아아, 그렇게 작은 통신 마도구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엄청 고급이겠다. 저 봐도 돼요? 주안, 한 번만 고개 숙여주시면 안 돼요?”
“…….”
히엘리가 마도구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폴짝폴짝 뛰는 사이, 필레니케가 조금 커진 눈으로 주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안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주안을 흘끔 올려다보는 것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라, 주안이 선뜻 운을 떼었다.
“할 말이라도 있느냐?”
“아, 그…… 데니테, 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만.”
그러자 필레니케의 연보라색 눈동자가 선뜻 반가움을 담았다.
“제, 제가 그 마을 출신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어요. 세 살 때 즈음에, 누나랑 함께 스라하르로 쫓겨나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요…….”
한껏 반짝이던 눈동자가 다시금 실의에 차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 주안이 답했다.
“뭐, 다시 가 보면 기억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우선은 식사를 하러 가자꾸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네, 네!”
“야호, 밥이다!”
아이들은 밥 소리에 재깍 고개를 들며 환호했다. 주안은 아이들을 데리고 여관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내려갔다.
여관에서 내온 음식은 그럭저럭 풍성한 편이었다. 호밀빵은 다소 질겼지만 그런대로 씹을 만했고, 버섯을 큼직하게 썰어넣은 수프는 따뜻하게 속을 데우기에 좋았다. 무슨 동물인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알맞게 구워진 고깃덩어리도 배를 불리는 데에 한몫을 했다.
주안으로서는 그것들이 성에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묵는 이가 있기는 한지 의심이 될 정도로 외진 여관에서 내어온 것치고는 양질이었으므로 부러 타박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먹는 아이들이 그것들로 배를 채우며 맛있다, 새롭다, 신기하다는 소리를 연신 퍼부었으니 충분한 일이었다.
칭찬 일색으로 식사를 마친 히엘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필레니케는 깜짝 놀란 와중에도 넘어지기 직전의 의자를 재빠르게 잡아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막았다.
“주안 주안! 저 마을을 구경하고 싶어요!”
주안은 헝겊으로 입가를 두드려 닦고는 말했다.
“딱히 볼 것은 없을 텐데? 게다가 내일 바로 데니테로 떠나는 마차를 타야 하니 오늘은 여관에서 푹 쉬어두는 편이 좋을 거다.”
“그래두요! 주안,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라하르 밖에 나와본 거란 말이에요. 좀 더 돌아다녀 보면 안 돼요?”
히엘리가 마치 길 잃은 새끼 고양이처럼 울망울망한 눈으로 주안을 올려다보았다. 주안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와! 감사해요, 주안!”
우렁차게 인사함과 동시에 히엘리는 자리를 박차고 여관 밖으로 달려나갔다. 메세티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피로에 찌들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활기찬 모습이었다.
“히, 히엘리! 같이 가!”
필레니케가 히엘리를 향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주안을 흘끔 보고 머뭇거렸다. 필레니케의 눈동자가 여관 입구와 주안 사이를 혼란하게 오가자, 주안은 옅은 미소와 함께 턱짓했다. 그 허락을 받고서야 필레니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잰걸음으로 여관을 나섰다.
주안은 한 발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의 몇 걸음 뒤에서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스리크 산맥의 끝자락, 거친 흙먼지가 날리는 메세티에는 투박한 돌로 벽을 쌓고, 나무로 기둥을 세운 양식의 가옥이 일반적이었다. 집집마다 낮은 울타리 너머로 자그마한 밭을 일구고 있다는 점에 히엘리는 가장 호기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이 밭에서 키우는 식물은 스라하르 쪽 산에서 본 적이 없는데 이름이 무엇인지, 산에서 따다가 심었는지 씨앗을 주워서 심었는지 따위를 아무렇게나 물어보고 다니느라 히엘리는 초면의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재잘거리며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히엘리는 어떤 집 앞에 섰다. 그리고는 지붕을 올려다보면서 필레니케에게 말했다.
“레니, 이것 봐! 이 마을에서 이 집이 제일 크고 좋아 보여!”
필레니케는 히엘리의 옆에 서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그렇네.”
“다른 집들은 전부 한 층 짜리인데 이 집만 층이 두 개야. 집 위에 집을 쌓을 생각은 도대체 누가 처음 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며 히엘리가 턱에 손을 가져다대고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울타리 너머에서 나무로 된 문이 열렸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집 밖으로 나오던 사람은 아이들을 보고 우뚝 멈춰섰다.
“……너, 너는.”
자그마한 체구의 양갈래 머리의 여자아이가 히엘리를 보더니 말을 더듬었다. 얼굴을 굳히고 히엘리를 바라보는 아이의 품에서는 조금 전에 보았던 ‘라라’라는 이름의 토끼가 폴짝 뛰어내렸다.
“너 아까 걔구나. 이게 네가 사는 집이었어?”
히엘리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말했다. 그러나 이름 모를 양갈래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온갖 감정이 뒤섞인 듯한 표정으로 히엘리를 얼굴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올렸다. 옆에 있는 필레니케에도 같은 방식으로 눈길을 주다가, 아이는 불안한 듯이 눈을 빙빙 굴리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모습에 히엘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할 즈음 아이는 까딱 목례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맡은 듯한 복잡한 얼굴이었다.
“그, 아, 아까는 죄, 죄송했습니다!”
그러더니 아이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대문이 쾅 하고 닫혔다.
“잠깐 기다…….”
기다리라는 말을 마칠 틈도 없이 사라진 아이의 모습에 히엘리는 멀뚱히 서서 볼만 긁적였다.
“가버렸네.”
“그러게.”
히엘리가 중얼거리자 필레니케가 대꾸했다. 히엘리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왜 사과한 거지? 갑자기 존댓말까지 쓰고.”
“글쎄…….”
필레니케에게 물어도 그럴듯한 답이 돌아오지 않자 히엘리는 팔짱을 척 끼고서는 눈을 깜빡였다. 아이가 사라진 울타리 너머에서는 혼자 남은 라라가 까만 눈을 빛내며 탐스럽게 자라난 채소를 오물오물 뜯어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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