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그 신에게서 벗어나는 방법 2화

2. 동상이몽

MUNIVERSE by Sir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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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그 분’께서 오늘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우리의 바람대로 ‘그것’들에 관심을 가지시더군….”

“그것 참 잘 됐군요. 혹시 그분을 맞이할 때 다른 점은 없었습니까…?”

미하일은 바로 본론을 꺼내려는 듯 했지만, 너무 경계하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기에, 루스를 슬쩍 떠봤다.

루스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기에, 미하일의 의중을 단번에 눈치챘다.

“나를 비롯한 장로들만 그분을 뵈었으니, 걱정할 것은 없네.”

“아, 그렇습니까.”

담담한 어조로 답했으나, 속으론 아주 날아갈 듯하여 미하일의 눈이 빛났다.

“그래. 그건 그렇고, 상아탑에 갔던 건은 어떻게 되었는가?”

“성과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다만?”

“그들도 그 ‘신탁’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전에서는 기밀로 했는데, 그걸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당황한 루스의 질문에 미하일은 말 없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협력을 원한다면, ‘그 분’과 추가 병력을 보내 자신들을 호위해달라고 하더군요.”

“호위병력을 원하리라고는 예상했지만, 그 분을 내놓으라 하다니….”

루스는 머리가 아파 왔다. 관자놀이를 짚고서 잔에 담긴 물을 한번에 전부 들이켰다.

그런 소식을 전하는 미하일 또한 기뻐하지 못했다. 이런 식이라면 분명 계속해서 하인델에게 밀려 대신관 후계자 보직에 올라가지 못할 테니, 그로서는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똑똑.

“하인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루스는 하인델의 방문에 제 앞에 서 있던 미하일을 잠시 쳐다보곤, 이내 매무새를 정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 들어오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급하게 정복으로 환복하고 온 듯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푸르른 강물 같은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가졌는데, 아무리 열심히 빗어넘겨도 금세 다시 뻗치는 바람에 늘 부시시해보였다. 그의 눈은 태양 같은 금빛이었는데, 늘 활기차고 열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에게서는 바람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차분하고 극도의 단정한 이미지의 미하일과는 정 반대의 남자였다. 하인델은 자유로운 사내였기 때문에, 틀에만 얽매여 있는 것을 종종 답답해했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정복 대신 사복을 입는 것을 더 선호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조차도 루스를 보러 갈 때만큼은 반드시 정복을 갖추어 입고서 걸음했다. 신전에서의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관님을 뵙습니다. 아, 미하일 님도 계셨군요.”

“예. 오랜만에 뵙는군요, 하인델 님.”

“그래, 하인델 신관. 최근 경계 상황은 어떤가?”

루스가 빠르게 용건만 마치고 그들을 해산시키고자 인사가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아, 경계 말입니다. 요새 좀 어수선한 것 같습니다.”

“어수선하다고? 그건…, 이맘때 쯤이면 자주 있는 일 아니었나?“

”으음-. 그건 맞는데, 전에 없는 불안정한 기운이 느껴져서요.”

“불안정한 기운이라면, 필시 사기(邪氣)가 문제겠군….”

“그렇습니다. 예년까지는 일정 수치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어수선하더라도 금세 다시 안정화되었지만…. 올해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하인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경계지대의 이상 징후를 보고했다.

본래 경계는 인외존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 중 과반수가 인간들과 같은  신을 섬기고 있었으나, 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가 인간들과 잘 맞지 않아, 경계를 사이에 두고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신전을 세우고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기도를 올리고, 정화 의식을 행했다. 그러나 경계 너머의 인외종족들은 대부분이 소수 집단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력의 영향을 적게 받고 있었기에 신전의 신도들에 비해 사기를 더 많이 품고 있었다.

게다가, 신을 믿지 않거나 이단 신을 섬기려는 이들 또한 꽤 수가 많았기에 그들이 품고 있는 사기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신전에서 경계를 순찰하고 그들의 사기가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도록 정화 의식을 펼치기도 했다.

“아, 그것 말입니다. 안 그래도 상아탑에서 경계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가만히 듣고 있던 미하일이 입을 열었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돌아온 참인데, 잘 되었군요.”

“상아탑에서는 경계의 일을 신전보다 먼저 눈치챘다는 건가…. 계속 말해보게.”

“그들의 사기가 상아탑에 불온인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께서 상아탑에 와주시길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아! 오는 길에 얼핏 들었습니다. 신탁의 ‘그 분’께서 오늘 오셨다지요?”

“그래. 오늘 오셨다가, ‘레브시온’에 대해 조사하실 것이 있다고 나가셨네.”

“그 분께서 직접 그들을 조사하신다고요?”

하인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다는 분이, 가장 큰 골칫거리를 벌써부터 손대려고 하시니 의뭉스러웠다.

“그 분꼐서 뭔가… 알고 계셨나요?”

하인델의 질문에 루스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께서 신탁까지 내리시며 보내주신 분이니, 필시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런데, 신탁에서는 그분의 외양을 간단하게만 소개해주시고, 그분께서 영웅이 될 거란 말씀 외엔 별다른 예고가 없었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러게요. 신께서 보시기에 ‘이 세계를 위협하는 사특한 존재들’이 가리키는 대상이 저희의 판단과 다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자네, 말조심하게!”

“하인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신탁의 본질을 꿰뚫는 하인델의 질문에 루스와 미하일이 거의 동시에 화들짝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엇…, 방금 말이 뭔가 잘못…됐나요? 죄송합니다. 조심할게요…!”

‘어느 부분이… 문제였던 걸까….’

하인델은 사과의 말을 꺼내면서도 자신이 한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혹여나 신전에서 행하는 일이 세계를 위협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신께서 보시기에 신전의 신관들이 사특한 존재라는 말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그 분꼐서 신전으로 돌아오시면 여쭤봐야겠어.’

“그럼 나는 다음 일정이 있으니, 자네들은 이만 가보게.”

“시리우스님의 빛이 함께하길.”

하인델과 미하일은 인사를 올리고 즉시 문 밖으로 나섰다.

“하인델 신관, 다음 일정이 있습니까?”

“저, 저 말인가요? 아뇨…! 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혹시 달리 하실 말씀이라도…?“

”아, 아닙니다. 그저 오랜만에 봐서 해본 말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뭐지…?’

하인델은 미하일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잘 몰랐지만, 그가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 즈음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잘 없었는데, 평소답지 않았다.

‘나, 뭔가 잘못한 걸까…?’

‘에이, 신경 쓰지 말자. 그분이 오실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려 봐야지.’

“안녕하세요, 신관님! 혹시 오늘 오신 ‘신탁의 그 분’께서 머무시는 방이 어딘지 아시나요?”

“아, 하인델 님! 오랜만입니다! 이 신전 본관에서 가장 큰 방에 기거하시게 되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안내가 필요하신가요?”

“앗, 안내까지는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시리우스님의 빛이 함께하길!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인델은 가벼운 걸음으로 본관 천궁(天宮)으로 향했다. 하늘이라니, 그 방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고 호화롭게 짜인 것인지 단번에 유추되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신전에서 그레이스에게 보이는 마땅한 성의였고, 사자께 바치는 제물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 시각, 그레이스는 세계를 둘러보겠다며 경공을 써서 달리다 경계 부근에까지 다가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힘이 신력이라고 했지. 그럼 저건…, 사기, 아니면 마기겠군.’

‘저 힘의 근원이 뭐지?’

그레이스는 그 힘의 근원을 찾아내 흡수해보려고 했다. 쓸 수 있는 힘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아니, 그 전에. 자신이 가진 힘들 중에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마법은…, 안 되는군. 이곳엔 마법이라는 게 없나? 그럼 마법사도 없을 테고….”

그레이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 기운을 불어넣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여기서는 이 힘도 사용할 수 없나 본데, 그럼 내가 가진 신력이라는 게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쯧.”

‘역시 무력으로 상대하는 수밖에 없나. 하지만, 너무 비효율적이고 상징성이 없어.’

그레이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감정이 약했나?’

그는 자신을 이런 곳에 던져둔 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득 담아 다시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의 본질은, [감정]이었다. 신이 추구하는 것과 바라던 것, 그 당시 그가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주가 되어 생명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레이스였으니, 그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강한 힘은 감정을 실체화하고, 그것을 부리는 것이었다. 

‘됐다…! 생명체까지는 힘들 것 같으니, 검이 되어라.’

그의 생각대로, 자신의 분노와 원망으로 만들어진 검이 만들어졌다. 그가 방금 매개체로 사용한 것은 자신의 머리카락이었기 때문에, 그 검은 그를 닮은 모습이 되었다.

희고 빛나는 검신에, 우아하고 화려해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눈을 닮은 보라색 손잡이가 달린 검이었다.

그가 깃털처럼 가볍게 대한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았다. 롱소드가 어떻게 깃털같겠는가!

“검기도 실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군.”

그는 길게 검을 휘둘러 보았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검에 [힘]을 실어보았다.

‘버텨라, 제발 버텨라…!’

그레이스의 손에 쥐여져 있던 검이 순간 흐트러지더니, 금세 형체를 잃었고 본 매개체였던 머리카락이 뚝 끊어졌다.

“매개체가 약해서 그런 건가? 그렇다기엔…, 아니다.”

‘역시 [그것]이 내 수중에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레이스의 매개체는 자신과 닮은 미형의 인형이었다. 신이 손수 만들어 낸 모습이었다. 신이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레이스를 만들어 낼 적에,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며 사용한 [감정]에 관한 권능을 깃털 모양의 장식품에 봉인해 두었는데, 그것이 있어야 그레이스가 제대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 이 양반. 지난 번 까지는 아예 금제까지 걸어 두고 혈혈단신으로 던져두더니, 이번엔 무슨 속셈이지?”

생각만 해서는 답을 알아낼 수 없다. 설령 그의 창조주가 또 이상한 생각으로 허튼 일을 벌인 것일지라도, 자신에게는 회피할 방도가 없었으니.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겸사겸사 신전도 망쳐 주지.’

“오늘은 밖에서 더 알아낼 만 한 것은 없는 듯하니,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할까.”

신전은 크고 눈에 띄게 설계되어 있었기 떄문에, 어디에서나 신전을 찾으면 방향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였다. 경계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는데, 누구든지 너무 멀리 나와 길을 잃었을 때 고개를 들어 신전을 보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랜드마크가 있는 것은 좋지. 하지만 그게 신전이라니,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싶은 건가?’

그레이스는 이를 탐탁지 않아 했다. 허영심이 짙어 보였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이곳의 신관들이 자신들을 신과 동격으로 추켜세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여간에 신탁 내용도 그렇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별로 없는 세계로군.’

한달음에 신전으로 복귀한 그레이스는 자신의 방문 앞에서 쪼그린 채 잠든 한 신관을 보고야 말았다.

‘뭐야? 왜 여기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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