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녘의 여로旅路에 입맞춤을
텐렌 添練
* 18TRIP(에이트리) 2차 창작
* 연정은 아닌데 마우스 투 마우스의 키스 존재
* 끝에 정말 살짝 카프카가 나옵니다
* 이것저것 다 끝난 이후라는 시점의 if 날조
전부,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좋아.
그렇다면 우리는, 같았던お揃い거였구나. 그 한마디가 너무나도 떨려서, 눈앞이 흐려서, 분명 나는 기뻤던 것 같은데. 내가 대답했을 때 텐은, 어떤 표정을 했었을까.
1
아침놀을 볼 수 있는, 항구도 전망대도 아닌 곳. 쉬이 갈 수 없는, 가는 데에 품이 드는 곳. 간단한 듯 어려운 그 문제의 답은, 오로지 혼자만이 고민해야할 문제였다. 상냥한 모두는 그런 나를 걱정해주거나, 도움을 주고싶어 했지만, 그래도 역시 혼자서 생각해 내고 싶어서 고집을 부렸다. 그리하여 그 답이 나오는 데에는 꼬박 이틀이 걸렸고, 그날은 텐이 사택—— HAMA 하우스를 나가기로 했던 전날이기도 했다.
심야, 평소라면 잠으로 어제와 오늘을 나누었을 아주 깊은 밤. 목표지를 띄운 화면을 텐에게 보이며 나는 물었다. 같이 가 줄 수 있겠어? 어쩐지 예상했다는 듯이 텐은, 놀라운 기색도 없었다.
더는 내 억지나 어리광을 받아줄 필요가 없어졌을 터인데도, 그는 의외로,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차 키를 빌려 오죠. 운전할 줄 알거든요. 심드렁하게 지나간 그 말에 그랬어? 라고 꼬리를 물면, 마치 얼뜨기라도 보듯이 얼굴을 찡그리고선 예에, 아무렴. 하고 고개를 돌렸다. 텐은 대단하구나, 그렇게 말하면 더욱 얼굴을 구겼다. 잘생긴 얼굴이 아까운걸, 이라고 말했을 땐 정말 지쳤는지 오히려 무던해 보였다.
“렌가 씨, 이런 타이밍에 웃는 거 되게 짜증나는거 알죠?” 텐이 쏘아붙이자 나는 가볍게 미안, 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던 그—적어도 텐이 말한 진짜 텐이 아닌 쪽은—는 언제나 그린 듯이 웃어주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게 싫었던 건 아니지만, 기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그러고 있노라면 텐은, 결국 한숨을 내뱉고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2
제대로 된 계획이라곤 그저 도착지뿐인—사실 시간을 들여 짰더라도, 나는 그런 데에는 영 젬병이었으니까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밤도 아침도 아닌 그 사이였다. 잠든 사쿠지로씨를 깨워서까지 빌린 키로 차의 엔진이 켜진다. 그 흔한 라디오도 음악도 없이 차는 하마의 도로를 나아간다. 한참을 지나 덜컹덜컹, 이따금 작게 고르게 포장되지 못한 곳을 바퀴가 넘나드는 소리만이 들린다. 한때 같이 술을 마시던 이자카야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전혀 닮지 않은 고요한 소음과 닮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차에서도, 내려서도,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순간에도, 나는 꺼낼 말을 찾지못하고 텐 또한 그런 나에게 어떤 말도 내밀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우리는 한평생을 걸쳐해도 모자랐을 아주 많은것을, 우리는 분명 이미 나누어버린 지 오래니까. 그래서 이제는 더는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무언無言의 행진을 계속한다.
——잃어버린 길 같은 침묵을 먼저 끝낸 건 다름 아닌 텐이었다. 유독 겹겹이 낀 구름 너머로 붉은빛이 울렁일 즈음, 파도가 밀려오듯이 텐은 입을 열었다. 한 발짝 앞에 있던 나는 등을 돌려 텐을 바라본다. 저, 이곳을 떠나게 되었어요. 당연한 사실을, 어떤 비밀을 밝히는것처럼 텐이 말한다.
“음, 그래요. 아버지가 전근을 가시게 됐거든요. 사실 어머니는 JPN 출신이 아니신데, 이번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고향으로 발령이 나셔서. 그래서 가족끼리 아예, 이사를 가는 거죠.”
거짓말.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유려한 이야기에 그렇구나. 라고 말했다. 텐은, 내 대답을 듣고는 한번 금붕어처럼 빠끔, 입을 달싹이더니 다시 하, 하고 숨을 뱉는다. 요근래의, 텐이라는 존재가 두 겹—혹은 아주 많이 겹겹이—으로 이루어진 걸 알게 된 후로부터 텐은 마치, 물속에서 나와 지상에서 첫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자주 한숨을 쉬었다. 보글보글. 보이지 않는 물거품이 튀어나오듯이.
그리고 텐은, 뭐라 표현키 어려운 얼굴로 웃었다. 텐의 그런 얼굴 처음 봤어. ”아무래도요.“ 어쩐지 마음을 읽혀서, 당황스럽게 할 말을 고르고 있으면 이번엔 텐은 어이없단 듯이 이마를 찡그리곤, 가늘게 뜬 눈으로 입꼬리만 비죽 꺾어 올린다. ”렌가 씨, 방금 말했으니까, 그거.”
나는 아차 싶어, 스스로도 놀랄 만큼 눈을 크게 뜨고선 정말로? 라고 되묻는다. 텐은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그 얼굴도“처음 보는 거라고요?” 그러면 나는 입을 떡 벌리고는 ”역시 생각을 읽을 줄 아는거지?“ 라고 말하는 수밖에. 그런 내 질문은 들은 체 만 체 텐이 내 너머, 어딘가 멀고, 하지만 정말 가까운 곳을 바라보며 ”해가 뜨고있어요.“ 라고 말했다.
“이사 가고 나면, 편지 보내도 될까?” 아까까지 텐이 그러했듯 내 동문서답에, “원하신다면.”이라고 텐은 대답한다. 될 수 있으면 달마다 보낼게. “그래요, 생각나면 답장할게요. ” 거짓말.
“렌가 씨, 아까부터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고 있어요.”
알고 있어.
텐의 눈에 빛이 들어와, 텐은 눈을 가늘게 뜬다. 해가 넉살 좋게 얼굴을 들이밀면 달이 제 자리를 내어주듯이, 가늘어진 그 눈의 얇은 초승달이 사라진다. 그의 얼굴을 비치는 부신 빛이, 내 등 뒤로 태양이 고개를 드는 풍경이 펼쳐져 있노라고, 연신 힘주어 말한다.
“눈부시네요.” “아름답지?”
“글쎄. 애초에 나, 아침 해 같은거 좋아하지 않아요. 좋은 점이라곤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렌가 씨와는 다르게.” “그래도 나는, 텐이랑 보고 싶었어.”
“하나도 보고 있지 않은 주제에.” “ 그렇지만 지금 봐버리면, 해가 떠오를 때마다 텐을 기억하게 될 거야. ”
그건 싫을 거잖아. 그리고 침묵.
이번엔 텐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윽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갈라진 목소리로 웃는다. 그리고 낮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말을 흘려보낸다. 멍청한 들개 주제에, 마지막에 한방 먹이기는. 그다지 감출 생각도 없어보이는, 화내는듯한, 이젠 정말 질려버렸다는듯한.
“그래요,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라쿠모 텐을. 솔직히 곤란하거든요.”
바람, 따스한 아침햇살이 채 끌어안지 못한 조금 서늘하고 맑은 바람결을 가르며 텐이 손을 뻗었다. 그렇게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뒤이어서 뺨을, 마지막으로 엄지가 가볍게 아랫입술을 꾹, 누른다.
“대신, 그래……, 한가지는. 한가지는, 기억해도 좋아.”
지근거리에서 숨을 불어넣듯이 중얼거리던 입술이 바들거리던 내 입술 위로 겹친다. 나는 막연히, 텐은 입술조차도 차갑구나, 라고 생각한다. 여름날, 그 서늘한 온도에 신세를 많이 지곤 했었지. 그런 나를 꾸짖듯이 텐이 속삭인다. 잊지 말아요, 당신이 날 죽였다는 걸. 살벌하다면 살벌한, 그렇지만 어딘지 쓸쓸한 목소리로 내게 건넸던 그것에서, 어렴풋이 작별의 키스라는 말을 느닷없이 떨어진 종이 쪽지 처럼 떠올린다.
나는 되돌려줄 말을 찾지 못한 채, 하지만 저도 모르게 마치 심술부리듯, 떼어진 입술에 제 것을 다시 맞부딪히고서, 입을 굳게 다문다. 그러면 텐은, 내가 그때 떠올릴 수 있던 모든 순간 중에 가장 슬픈 얼굴로 내게,……——언제나 그랬듯 서투른 그 행동을, 마치 어떤 대답이라도 된 것처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입 맞춰 주는 것이었다.
3
달려온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다지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것으로 충분했을것이다. 이제 가죠. 텐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마 하우스 앞에 세워둔 차 안에 챙겨둔 짐을 꺼내며 말 없이 텐이 내 손에 차 키를 건네준다.
그럼, 나는 가볼게. 나는 짧게 인사하고 기숙사 건물로 향한다. 돌아보지 않는 게 좋아요. 내 등 뒤로 텐은 아마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잠깐, 멈춰 섰지만. 이내 건물 문을 열고,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방까지 나아간다. 방문 앞에 서 있던 카프카가, 어서 와. 라고 인사해 주는 것에, 나는 어째선지 한순간 답변을 망설인다.
“피곤하면 가서 더 자는 게 어때? 오늘은 휴일이니까.”
정 그러기 싫다면 사장 명령이라고 해둘까나. 카프카의 상냥한 목소리. 나는 그제야 겨우, 고마워. 라고 했다. 천만의 말씀. 가볍게 으쓱거린 카프카는 그럼 이따 봐, 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주임의 방 방향이었다. 그러고 보면, 텐이 알려주었던 거지만, 카프카는 이전부터 꽤 자주 자리를 비워주었다는 것 같다. 눈치 빠른 꼬맹이. 악담처럼 말하면서 꽤나 즐거운 얼굴이었었지.
방문을 닫고 들어왔을 때,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어 그대로 문에 기대선채 멍하니 방안을 둘러본다. 이제는 정말로 2인실이 된 방의, 3인용 침대도 눈에 들어온다. 나는 홀린 듯이 내 침대를 뒤로하고 쇠 파이프를 꾹, 손에 힘주어 쥐고 맨 위로 올라간다. 통야通夜의 밤이 지나간듯한 침대의 3층 칸. 마지막 어리광으로 몸을 뉘인 그곳. 말끔히 정리된 매트리스 위를, 하염없이 어지럽힌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나는 잊지 않으면 안 된다. 잊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고 직감한다. 아마도 나는 분명, 그 어디에도 덧씌울 수 없는, 나조차 알지 못하는 아침녘에 몰래 그를 새겨넣고 싶었던거겠지. 그렇게한다면 분명,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가끔 그를 떠올리게되는 것을, 용서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수십, 수천 번을 기억해도 그가 돌아올 일은 없고, 내가 텐이 본 아침놀을 영원히 알 수 없듯이, 몇 번이고 같은 아침이 오더라도, 오늘 이 순간의 아침은 지나가 결코 같은 아침은 오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 사실을, 그때의 입맞춤으로 불어 넣어진 지혜로 알아버리고 말았으니까. 너는 여느 동화처럼 결코 돌아올 일이 없는데, 어쩐지 나만이 동화처럼 새겨진 사실과 함께 너에게 버려진 채로.
너무한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너도나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도토리 키재기였을지도. 아, 그때. 작별의 포옹이라도 되돌려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몸뚱아리의 그림자만큼이 사라진 햇살이 내 위로 빗발치듯 떨어지고 있었다. 후회가 눈물지어 포근한 얼룩의 관 안으로 스미었다. 그런 이별이었다.
+사담 (프세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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