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르나 이야기

니가르나 이야기 2화

이무기

“누구, 야⋯?”

“내 이름은 다이리온. 윤회를 관장하는 십대 용왕 중 하나다.”

자신을 다이리온이라고 소개한 자는 천천히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를 천천히 걷어냈다. 온전히 드러난 그의 외모는 잿빛의 뱀보다도 훨씬 신비로웠다.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뒤로 펼쳐진 밤하늘처럼 뭇별과 은하가 자아내는 푸른빛이었다. 특히 눈동자는 뱀과 같은 세로동공을 품었지만 그 형태가 마치 반짝이는 별과 비슷했고, 용을 상징하는 별자리가 박혀 있어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전반적으로는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그렇게 간단히 단정짓기에는 무엇이라 형용하기 어려운 초월적인 신위가 뿜어져 나왔다.

“다이, 리온⋯. 넌, 내가⋯ 안 무서워⋯? 용, 이⋯ 뭐야⋯? 이무기, 는⋯ 또 뭐고⋯? 넌⋯ 용왕⋯?”

그것은 갑작스레 나타나 의미 모를 말을 늘어놓는 다이리온에게 궁금한 것을 마구잡이로 질문했다. 그가 수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흥분해 있었다.

“질문이 너무 난잡하군. 하나씩 천천히 대답해 주겠네.”

다이리온은 유창하지 못하지만 필사적으로 질문을 던진 뱀을 유한 태도로 진정시켰다. 전부 대답해 준다는 말에 뱀은 방금까지 들끓었던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난 그대가 전혀 무섭지 않다. 애초에 무서웠더라면 이런 식으로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겠지. 지금은 그저 특이한 뱀에 불과한 그대가 어디가 무섭겠는가?”

“응⋯ 그렇, 네⋯.”

잿빛의 뱀은 마음속에서 꿈뜰대며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저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그 마음이 환해졌는지 끊어지는 말투 속에서도 그 순수한 기쁨이 드러났다.

“용이라는 것은 신수, 그러니까 신성한 동물의 일종이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가 가능하고, 일반적인 존재들보다 뛰어난 마술적 재능을 갖고 있다네. 물론 관장하는 영역에 따라 그 힘은 제각각이다만, 신수 중에서도 가장 불멸에 가까운 존재지. 그 고귀한 힘 때문에 종종 숭배되기도 하네. 여기까지는 이해했나?”

다이리온은 용에 대한 정보를 간략하지만 핵심만 잡아서 얘기했고, 제대로 이해했는지 물어보며 갓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는 잿빛의 뱀을 배려해줬다. 그것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음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무기라는 것은 용이 될 자질을 지닌 채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들은 뱀의 형상을 띄고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힘과 지성을 갖고 현세에 나타난다네. 그렇게 세상을 배회하다가 나와 같은 용왕을 만나 자신이 용으로 승천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하지.”

“응⋯ 이해, 했어⋯. 넌⋯ 그럼⋯ 용들, 의⋯ 왕이야⋯?”

“그렇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용 10마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것은 말해주기 어려울 것 같군.”

“그럼⋯ 위대, 한⋯ 너, 한테⋯ 질문, 할게⋯.”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순식간에 전해 들은 그것은 문득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태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궁금했고, 다이리온의 답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정,말⋯ 내가⋯ 특별한⋯ 존재면⋯ 왜⋯ 다, 들⋯ 나를⋯ 싫어해⋯? 나는⋯ 왜⋯ 선택, 받은⋯ 거지⋯?”

뱀은 자신이 왜 선택받은 것이며, 왜 선택받았음에도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분명 다이리온의 설명대로라면 이무기라는 존재는 인간들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이나 존경을 받아야 하는데, 막상 그것이 하루 동안 겪은 것은 모멸과 멸시뿐이었다.

“⋯우선 그대가 겪은 쓰라린 고통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태어나자마자 그런 일을 겪었으니 분명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을 테니 말일세.”

다이리온은 뱀의 질문에 쾌활하던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진심 어린 연민을 표했다. 자신에게 잘못한 것은 그가 아니었음에도 그런 태도로 나오니 그것은 살짝 당혹스러웠다.

“그 이유는 인간들은 용이 태생부터 용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로 그렇지만, 그대와 같은 이무기가 용이 되는 특이한 경우는 드물기에 인간들은 잘 모르지. 인간은 우리보다 연약하기에 무지에 대한 공포가 더욱 크다네. 그대는 아직 그들에게 있어 생소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 래⋯?”

“그대가 선택된 이유는 아직 알려줄 수 없네. 현세에 속한 자에게 많은 정보나 도움을 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아직⋯ 알 수 없, 는⋯ 것들이⋯ 많구나.”

용왕 다이리온이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도, 자신이 왜 선택받은 채 태어난 것인지도 알 수 없으니 잿빛의 뱀은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이무기에서 용이 되는 경우 거의 확실하게 용왕에게 점지되어 일반적인 용들보다 훨씬 비범한 권능을 얻게 된다네. 신의 권속이나 다름없는 점지자로 각성한다면 그때는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겠지.”

“알, 겠어⋯. 어쨌든⋯ 용이 되면⋯ 인간, 들이랑⋯ 잘 지낼 수⋯ 있는 거지⋯?”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는 정보들은 아쉬웠지만, 인간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런 감정은 사사로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뿐이었고, 지금 눈앞에 있는 신비한 존재의 말을 듣는다면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그건 그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갈 수도 있겠지.”

다이리온은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뱀의 머리를 약하게 쓰다듬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결의 열기가 비늘 사이사이로 전해졌다.

“그럼⋯ 어, 떻게⋯ 해야⋯ 용이⋯ 될 수 있, 어⋯?”

그것은 결의를 다지고 다이리온에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질문했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용이 되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용으로 승천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했다. 절망 속에서 겨우 피어난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선 그대의 수련을 위한 선물을 줘야겠군.”

이무기의 각오를 확인한 다이리온은 방긋 미소를 지었고 마치 구슬의 겉면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양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찬란하고 샛노란 빛이 태양빛처럼 따스하고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해져 갔다. 빛이 잠깐 반짝인 이후 그 자리에는 황금 보주가 둥둥 떠 있었다.

“이, 건⋯ 뭐야⋯?”

그 눈부신 빛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떨궜던 잿빛의 뱀은 천천히 머리를 들어 그 영롱한 보주를 바라봤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매끄러운 구 모양에 꽃잎과 유사한 장식이 붙어 있는 모양새였다.

“모든 이무기들은 용 승천의 자격을 나타내는 징표로 보주를 받게 되지. 이것은 그대와 앞으로 함께할 ‘공(空)’의 보주라네.”

다이리온은

“공(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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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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