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태웅태섭

*농구선수 루카와 카에데, 농구선수 겸 퇴마사 송태섭

*읽는 사람에 따라 공포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열람 전 유의 바랍니다.

*퇴마, 사진 어떤 부분도 지식이 부족합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반박할 시 당신 말이 옳습니다.

*펜슬 나왔다길래 시험삼아 올려봅니다. 글이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있습니다....



NBA 농구선수 송태섭. 북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의 대학교를 나와서 NBA에 바로 뛰어든 사람. 송태섭은 특이한 점이 딱 두 개라서 소문이 자자하다. 나쁜 쪽으로.

첫 번째, 송태섭은 현 NBA 최단신이다. 농구란 자고로 키가 커야 하는 거 아닌가? 누가 시비 걸기 위해 했던 말을 모두가 똑같이 한다. 존나 짜증 나서 못 살겠다. 비슷한 뉘앙스 하는 놈들의 정강이를 한 번씩 발로 까 주니까 살 만하다. 키 커서 좋겠다 씨벌롬들아. 주먹이 아니라 발길질이 날아간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빨 털리게는 안 해줬다. 그러게 얌전히 있기만 하면 반은 갈 것을. 송태섭은 같은 팀의 벤치에게도 정강이를 후려갈기는 소소한 개짓거리(이 대목에서 송태섭은 좀 억울하다)를 한 덕분에 팀 내에서 쉬쉬하면 무엇을 하나, 이미 NBA 모두가 올해의 또라이로 송태섭을 꼽았다. 물론 비공식적인 투표였고, 명확히 송태섭을 가리키는 것이긴 했으나 당사자가 정작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반쯤은 기꺼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이상한 놈 보려고 리그에 찾아와서 인원 채워주면서 야유 듣는 것은 북산과 산왕이 경기했을 당시를 떠올리게 하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리그에서 송태섭이 속한 팀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큰 점수 차에서 아주 간소한 차이의 역전으로 승리했다. 그것을 이끈 사람이 송태섭이다. 송태섭이 속한 팀은 유명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나오고는 있으나 송태섭을 모르는 본토 농구 선수는 없다. 이딴 방식으로 유명세를 얻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기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참고 살다가는 화병으로 죽어버릴 것 같아서 송태섭도 강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무난히 넘어갔다가 키가 작으니 상대적으로 인내심도 넓은 줄 알았던 놈들은, 송태섭의 끓는점까지 쉽게 도달해버렸고 이 사태가 발생했다. 뭐, 꼬우면 자기들이 잘 피했어야지. 아프기만 하고 선수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오는 시비 받아준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 키만 멀대같이 큰 놈들 탓이다. 송태섭은 진심으로 고하건대, 싸우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두 번째, 귀신 보는 놈이라고 소문이 났다. 송태섭은 이 소문에 대해서 할 말이 존나 많았지만 참았다. 어떤 말을 얹어도 소문이 잠재워지지 않으니까 입을 다물고 있는 현명한 처사를 택한 것이다. 현명한 것이 맞을까 고민하던 날도 있었으나, 귀신이랑 대화한다고 소문난 루카스가 일주일 내내 해명하다가 결국 귀신에게 빙의된 놈으로 오해받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판단이 현명하다는 것을 다시금 자각했다. 루카스는 해명하던 것을 관두고 현재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거지 같은 소문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끝도 없이 불어난다는 최악의 단점만 빼면 송태섭은 루카스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들리는 소문으로는(결국 또 소문이다. 또!) 루카스가 농구를 관두고 심리 상담을 받겠다는 말도 들려왔다. 유난히 마음 여린 놈이었는데 트래쉬 토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송태섭이 중심이 된 현재 떠도는 소문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나름 억울하다.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는가? 아니다. 뭔가 수상한 행동을 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송태섭은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좋은 사진기는 아니지만 인화했을 때 화질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을 미국에 와서 하나 구매했다. 취업도 하기 전의 유학생이 구매하기에는 거금이었으나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갔을 때 구매하지 않을 것이냐는 물음에는, 당연히 아니다. 그 카메라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일단 들어봐라. 사진기 들고 다니는 농구선수? 특이할 수 있다. 그러나 송태섭은 인물 사진 빼고 전부 다 찍는다. 이것도 이상하지 않다. 찍고 싶은 것은 자유니까. 그런데 사진을 불태워 버린 것을 웬 놈이 본 모양이다. 아 억울해. 송태섭은 당시로 돌아간다면 앞으로는 자취하는 집 앞에서 태워버려야 한다고 과거의 자신에게 고래고래 소리칠 것이다.

송태섭의 카메라는 세상을 담는다. 사실 광각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은 배운 사람만이 찍을 수 있나?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은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요, 취미로 찍는 사람들은 모두 불법이니까 싸그리 잡아가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말이겠지만. 찍은 사진들은 분명 처음에 곱게 앨범 안으로 넣어두었던 것 같다. 그것이 송태섭의 사진이 불태워진 시초가 되었다. 싫은 것들을 찍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필름 값이 얼만데 굳이 그런 일을 행하겠는가. 찍고 싶은 것들을 골라서 찍었고 그리하여 추억을 간직한다. 살다 보니 남는 것은 온통 추억 뿐이더라. 긴 시간을 산 것은 아니지만 겪은 일이 다양했던 송태섭이 나름 교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얻었다면 고작 저 한 문장이 될 것이다. 카메라를 무작정 들이밀다가 필름이 부족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집에는 온갖 필름이 쌓여있다. 그렇다면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송태섭이 불태워버린 사진들은 어디로 가는가. 송태섭은 이 말에 확신을 담아 대답할 수 있다.

지옥으로 간다.


사실 그딴 소문들 거의 신경도 안 쓴다. 이젠 다 필요 없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들. 송태섭은 길 가다가 멈춰서 사진기 든다. 그리고 고개 살짝 기울인다. 오늘도 사진 찍는 NBA 광인의 모습을 비출 때가 되었다. 실상은 전혀 아니지만. 길 가다가 멈춰서 카메라 드는 것은 그의 습관으로 비추어지는 수많은 모습들 중 하나였고, 이것만큼은 송태섭도 인정하는 요소 중 하나다. 비스듬하게 넘어가는 시선 따라 카메라 렌즈가 부드럽게 눈앞까지 도달한다. 해가 저물고 있는 노을이 계단 안쪽까지 빛을 딱 비추는 찰나.

찰칵!

카메라가 윙윙대며 돌아간다. 그리고 천천히 필름이 나온다. 해가 지는 와중에 걷다가 멈춰서 찍은 사진. 누가 보면 사진에 미친 놈인 줄 알 텐데 송태섭은 그런 모습은 개의치 않았다. 평소와 같은 삶을 살다가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지금, 남들의 시선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쓸 건덕지가 못 되었다. 굳이 고민이 있다면 사진이 제 모습을 갖추는 시간이 조금 더 빨랐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 고민에 대해 생각하다가 천천히 색을 되찾는 필름을 손바닥 위로 올린다. 계단이 있었던 부분의 중앙이 새까맣게 탄 것처럼 거멓게 지워져 있다. 송태섭은 확인하자마자 필름 곱게 접어서 주머니 안으로 쑤셔 넣었다. 오늘은 운이 좋다. 필름 한 번 써서 바로 찾아냈다는 것이.

송태섭은 NBA의 농구선수다. 동시에 퇴마 일도 좀 한다. 남들에게 의뢰 받아서 일을 할 정도는 아니고, 정말 약한 영안이 있다. 잡귀는 거의 안 보이고 지독한 놈만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정도? 사진을 찍으면 잡귀든 악령이든 송태섭의 손아귀에 쥐어진 필름 안에 갇힌다. 이것은 아마 송태섭만 가지고 있는 특수한 능력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진 찍어서 퇴마하는 퇴마사들이 넘쳐났을 것이고, 송태섭이 이상하게 보일 일도 전혀 없었을 테니까. 사진을 찍고 필름이 나온 형태를 보았을 때 어떤 것들이 찍혔는지 이제 슬슬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새까맣게 탄 부분이 필름 위에 뜬다면 잡귀. 형태가 뚜렷하거나 인간의 형상을 하던 것들이 얼굴 새까맣게 태워진 채로 눈만 시뻘겋게 되어있다면 독한 놈이다. 그것들을 처리하는 방법이 불태우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주변에 있는 잡귀도 줄이려고 사진 찍어댄다. 처음에는 카메라 설정을 잘못한 것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냥 귀신들이 찍힌 것이더라. 사람과 헷갈릴까 봐 일부러 인물 사진은 안 찍었다. 괜히 잡귀랑 멀쩡한 사람이랑 같이 찍혔다가 귀신 없애겠답시고 태워 먹으면 기분 나빠질 것 같아서.

사진 찍으면 귀신이 나오니까 너 찍어주기 싫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시하고 있던 소문에 부채질 하는 꼴이다. 부채질만 하면 다행이다. 더 거지 같은 소문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송태섭은 그냥 괴짜로 살겠다며 다짐했다. 지금도 귀신들이 종종 귀찮게 해서 정신 사나운데,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들까지 귀찮게 굴면 분명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쓰러져버릴 것이다. 아직 안 겪어봤지만 확신할 수 있다. 진짜 쓰러질 수도 있다.



귀신 이야기는 여기까지. 당장 중요한 귀신이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경기에 집중해야만 한다. 송태섭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서른이다. 미국 본토에 와서 농구를 한 기간도 똑같이 흘렀다는 소리다. 오늘 경기를 치루는 팀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겪어본 적이 없다. ...아니, 들어봤는데 까먹어버렸거나. 북산 만큼이나 관심 못 받는 팀에 있는 송태섭은 비슷한 정도의 팀과 마주하는 일이 잘 없었다. 매번 태산처럼 큰 팀만 마주했었는데. 이런 팀과도 만나보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되겠지. 경기 전에 영상을 자주 돌려봤던 것 같은데 며칠 전에 갑자기 스타팅 인원의 대부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이 대목에서 송태섭은 진심으로 유감을 표했다.) 현재 재활 중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벤치 인원들이 다수 들어왔다.

"제임스, 오늘 만나는 포인트 가드 이름이 뭐랬지?"

"뭐랬더라... 루카와? 그런 이름이었는데."

"루카와?"

일본 사람인가. 눈 끔뻑거리면서 바라보고만 있자, 제임스가 어깨 으쓱인다. 그래 니 잘났다. 제임스는 센터에 서는 놈이라 그런지 이미터가 훌쩍 넘어서 앉아있을 때가 아니면 목 존나 아프게 올려다봐야 한다. 얘도 첫날에 시비 걸었다가 정강이 한 대 맞은 이후로는 송태섭이랑 대화할 때 슬쩍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루카와? 난생처음 들어본다. 이번에 처음 들어온 신인인가. 송태섭이 나름 몇 년 여기서 굴렀고, 정신 나갈 정도로 큰 놈들만 마주쳤으면서 만났던 모든 포인트 가드들에게는 서로서로 유대가 있었다. 술 같이 한잔할 정도의 친분만큼은 쌓아뒀단 소리다. 그래야 언제든 농구 한 판 해보자고 하지. 송태섭은 있는 사회성 없는 사회성 다 끌어모아서 나름 포인트 가드들이랑은 친하게 지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루카와라는 이름은 무언가 어색했다. 그리고 이게 이름의 끝은 아니겠지. 한국처럼 루, 카와. 라고 부르지는 않을 테니까. 카와라고 불러야 하나. 당사자가 들었으면 기함을 토할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루카와... 이름을 일곱 번쯤 곱씹으면서 생각해도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심각하게 땅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제임스가 불쌍했는지 한참 뒤에서야 입을 열었다,

"송, 루카와라는 놈은 이번에 처음 온 신인이라고 들었어. 아니, 작년인가?"

"...... 그래? 그러니까 내가 모르지."

그제야 고민하고 있던 것이 해결되었다는 듯 만족스레 뒤 돌아서 이온 음료나 하나 뽑아볼까, 라는 생각으로 카메라 들었다. 또 시작했네 사진광. 닥쳐 제임스. 고상하게 카메라 몇 번 만지작거린다. 이젠 너무 자주 찍어서 익숙해질 지경이다. 제임스는 올 때 지도 포카리 하나 사달라면서 손 흔들어준다. 송태섭은 들은 체도 안 한 표정으로 등 돌려서 반대편에 있는 자판기로 걸어간다. 기필코 콜라를 흔들어서 선물하겠노라. 깊은 다짐을 한 것도 그때였다. 사진기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모습은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다. 언제 어디서든 렌즈 너머로 귀신을 확고하게 잡을 수 있는 송태섭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춘 채로 칠 초쯤 멈춘다. 송태섭처럼 영안이 열려있는 사람들에게는 잡귀가 근처에 있어도 힘들어져서 일부러 피사체 근처로 다가가기 전에 사진을 찍는다. 자판기를 향해 천천히 렌즈를 맞추다가, 속으로 칠 초쯤 세었을 즈음에 찍으려는 찰나, 사람이 불쑥 들어서서 같이 찍혔다.

어, 미친. 이러면 다시 찍어야 하는데. 찍어버린 것이 인간인지 분간하기 위해 일단 필름 꺼내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더벅머리에 고양이를 닮은 예쁘장한 눈. 송태섭의 취향이라고 하기엔 애매했다만, 객관적으로 미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단 현실에서 보이니까 사람인지 귀신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역시 사진을 봐야겠는데. 렌즈 너머에서도 잘 보였고. 그러다 문득 다시금 얼굴 올려다본다. 예쁘네. 농구선수만큼 키가 큰데? ... 아니, 농구 선수가 맞나? 그런 생각 하다가 아직 희끄무레한 필름 잠시 보고 자판기까지 걸어갔더니 눈 마주쳤다. 진즉부터 여기 보고 있었던 놈처럼. 무슨 생각 하는 것인지도 모를 새까만 눈 마주하던 송태섭이 왼쪽 눈썹 기울이며 다가간다. 키 큰 놈들은 꼭 저런 눈으로 송태섭을 바라본다. 송태섭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농구 선수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들고 설쳐대도, 딱히 별다른 티를 안 내도 경기장 잘 쏘다니는 놈이니까 관계자로는 안 보이고 운동 하는 사람으로 보여서. 그리고 보통 그런 작은 사람을 본 키 큰 농구선수들은 인성과 키가 반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니꼬운 눈빛이다. 단순하게 말해보자면 기분이 꽤 나쁘다. 그러니까, 농구 하는 놈들 사이에서 깨나 퍼진 미친개 송태섭 모드로 다가갔단 소리다. 눈앞의 상대는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초면이니까. 강하게 보여야 한다.

"왜요?"

"...... 사진 찍으셨길래요."

아 맞다. 송태섭은 지금 자신의 실수부터 사과해야 할 순간이다. 워낙 큰 놈들이 시비 거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송태섭도 시비 걸려고 생각을 해버렸다. 반성해야지. 반성. 송태섭은 필름 보여줄 생각도 차마 못 하고 사진기 만지작거리던 거 멈추더니 목에 건다. 그리고 구십도로 허리 숙인다.

"미안해요. 사람 있는 줄 몰랐거든요."

"...... 괜찮습니다."

어깨 툭툭 치는 손길. 별로 세게 느껴지지도 않길래 송태섭은 허리 슬쩍 든다. 그리고 찍힌 사진이라도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인화된 사진 팔랑거리다가 멈칫. 사진에는 자판기밖에 없다. 분명 사람이 렌즈 앞으로 끼어든 것을 자각한 이후 셔터를 눌렀다. 초점을 맞추고 나서 렌즈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는 송태섭으로서는 알 수밖에 없다. 자판기를 비추고 몇 초나 가만히 서 있었고, 찍기 직전이 되어서야 사람이 끼어들었다. 형체가 들어온 것까지 확인하고 셔터를 눌렀다. 귀신일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보이지 않던 잡귀가 찍힌 적은 많았고, 보이던 놈들이 보이는 것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귀신이랑 대화하는 일도 아주 가끔이지만 있어서 카메라에 찍히기만 했으면 귀신이든 사람이든 둘 중 하나로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처음이다. 덕분에 송태섭 인생 최고로 당황스러운 순간을 마주했다. 눈앞의 놈은 그러던가 말던가 키 큰 거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필름 보더니 찍히지도 않았는데요 뭐... 하고는 고개 꾸벅 숙이고 제 갈 길 간다. 아니, 잠깐만. 저거 이대로 보내도 되나? 송태섭은 멀어져 가는 사람 붙잡지도 못하고 한참이나 입을 멍하니 벌리고 서 있었다. 하도 안 돌아오는 송태섭 찾으러 온 제임스가 너 뭐 하냐고 어깨 흔들 때까지.



경기는 잘 풀렸다. 필름은 필름이고 농구는 농구다. 정신을 반쯤 빼놓고 경기할 뻔했지만 교체당하는 것은 죽어도 싫은 송태섭이 기어코 풀코트 뛰었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삼십 분을 넘게 뛰려고 하는 집념이 송태섭을 스타팅 인원으로 남겨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났던 뭔지 모를 놈 이름이 루카와라는 것도 알아냈다. 상대 팀 포인트 가드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얼굴 덕분에 팬층이 존나 두꺼운 것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만한 얼굴이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 하지. 송태섭도 나름 납득 되는 이유였으므로 고개 끄덕이고 말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그놈의 얼굴이 아니다. 루카와라는 애는 경기 끝나자마자 패배를 인정하고 경기장을 빠르게 떠났다. 패배에 대해서 먼저 상기시켜보면 송태섭은 오늘 패스가 적재적소에 잘 보내졌다는 것도 생각 했는데, 루카와라는 애가 패스보다는 지가 치고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다. 왜 포인트 가드로 들어간 거지? 생각해보니 인원이 대거 빠졌다고 했는데 포인트가드가 너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채워진 거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같은 팀이었으면 절대 송태섭을 대신하여 포인트 가드로 쓸 것 같지 않은데. 훌륭한 슛 성공률에 비해 남에게 패스를 자주 하는 모양이 아니다. 애초에 본인이 치고 나가는 것이 습관인 놈에게 무얼 바라겠는가. 이제 막 들어온 신인이라고 했던가? 이 년이면 신인 계약기간이 슬슬 끝날 즈음이다. 우리 팀에 들어오라고 해봐야 하나. 팀 내에서 키가 가장 작은 것 때문에 포인트 가드를 떠맡은 것 같았다. 원래 그 포지션이 아닌 모양이겠지. 주전으로 나갈 수 있는 나름의 기회이기도 했을 테니까. 그러나 송태섭의 입장에서는 새파랗게 어린 애 잘못 굴리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다시 루카와라는 놈을 생각해보자. 팬층도 두껍고 농구도 존나 잘 한다. 그럼 일단 잡귀라던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송태섭은 하필 음료수 마시겠답시고 자판기에 간 자신을 패고 싶었다. 경기하는 내내 귀신인지 아니면 잡귀까지 눈에 보이게 된 것인지 혹은 아예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인지 모르겠어서, 경기 끝나자마자 술자리를 피해서 온갖 곳을 찍으러 다녔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면 뭐 어떤가. 오늘 슛도 열한 번은 채워 넣어서 송태섭이 넣은 점수가 꽤 된다. 슛 되는 포인트 가드가 확실히 쓸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루카와라는 놈에 비해서는 적긴 했다만 애초에 송태섭은 덩크를 찍어누를 수 있는 키가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은 천천히 인화되어 송태섭의 손안에 있다. 여전히 잡귀들은 적지 않은 수로 찍혔고 아무도 없던 골목에서 전부 태워버렸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잡귀들까지도. 최근 들어 큰 놈들을 잡아본 적이 없어서 내가 헷갈리는 건가? 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애매하다. 죽어버린 영혼들은 송태섭의 사진기에 필시 담길 수밖에 없다. 원한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영안이 열려있는 송태섭의 눈과 현실을 담아내는 렌즈가 함께하는 순간, 그 당시에 머무르고 있는 영혼이 다시금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된다.

전부 불태워진 것을 확인한 송태섭이 고개 들자, 그 앞에는 루카와가 서 있었다. 속으로 욕하면서 혀 씹은 송태섭이 사레까지 들렸다. 사람이 보고 있는 줄 몰랐는데. 지워버린 사진에는 오늘 찍었던 자판기도 있었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었어서. 우리 팀으로 데리고 오고 싶은 농구선수라는 것은 맞지만 송태섭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존재다. 이걸 어떻게 대해줘야 하지. 할 말을 고민하는 송태섭과는 달리 루카와는 이미 하고자 하는 말이 정해진 것처럼 굴었다. 그러니까 송태섭의 말을 기다리고 있단 소리였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사레가 멈췄고, 멀뚱히 서 있던 놈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어우... 깜짝 놀랐네. 별거 안 했어요. 왜요?"

"팀 이적하려고요."

"네?"

뭔 소리 하냐는 표정으로 루카와 존나 빤히 봤다. 진짜 무슨 소리지. 그런 건 감독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송태섭도 루카와를 데리고 오고는 싶었지만 송태섭이 속한 팀은 내세울 것이 전혀 없었다. 굳이 뽑지만 NBA에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는 포인트 가드인 송태섭 하나 정도? 이거 하나로 밀고 가는 팀은 아니긴 했다만, 그런데도 현재 떠오르는 신인인 루카와가 굳이 올 이유가 전혀 없단 소리다. 아니면 송태섭이랑 같은 과인 놈이던가. 밑바닥부터 기어가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놈. 송태섭도 이 팀 안에서 모두와 함께 성장했고 이름 꽤 날리는 데다가 돈도 많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거 아닌가. 비록 작년의 MVP에 비해서는 월급이 절반이지만. 그러나 루카와라는 애는 모르겠다. 얘는 도통 말수가 적고 처음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해석하는 것 조차도 오래 걸린다. 송태섭은 이유라도 알자는 듯한 표정으로 루카와 빤히 본다. 얘가 정녕 무엇을 원해서, 얻고 싶은 게 뭐길래, 바라는 것이 있어서 이러는 것인지 듣기라도 하자는 것처럼.

"왜요?"

"...... 그냥요."

"그냥이라고 하기에는 이 판에서 팀 이적은 중요하잖아요. 조만간 리그도 시작하지 않나? 계약이 애매할 때 됐네요."

"아 제가 여름 학기에 졸업해서...."

그럼 졸업한 애를 바로 계약 체결해서 데려왔단 소린가. 그럼 스물 다섯 정도는 되는 건가? 이제 막 서른이 된 송태섭으로서는 루카와가 한참 어린 애로 보일만도 했다. 물론 본인 입으로 스물 다섯이라고 한 적은 없지만. 이적한다고 하는 애를 말릴 수 있는 힘은 딱히 없다. 당사자가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면 이건 이것대로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감독님에게 먼저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원래 속한 팀의 감독님과는 제대로 대화를 나누고 온 것인지, 혹은 젊은 놈의 치기 어린 객기인지도 모르겠다. 송태섭에게 있어서 루카와는 온통 비밀에 싸인 사람이다.

그러나 송태섭은 오늘 있었던 일을 잊지 않았다. 자판기 말고는 아무 것도 비치지 않던 필름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이한 현상. 해결책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분명히 나중에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또 당황할 것이다. 그러니까 왜 그런 것인지 알아야 한다. 영안이 트인 이후로 주변을 신경 쓰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자꾸 대비하려고 하는 습관이 송태섭을 만들었다. 목에 항상 걸려있는 익숙한 카메라를 한 손으로 들고서 들어 올린다. 이거 보라는 듯. 루카와가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는 몰라도 눈 내리깔고 카메라 응시한다.

"제 소문 들은 거 있어요?"

"...... 아니요."

"운이 좋네. 없는 건가? 본토 농구 선수 중에서는 사진을 광적으로 찍는 미친개가 하나 있거든요."

"......."

"그게 저예요. 송태섭."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아서 텅 비어버린 손 내민다. 멀뚱히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 기울인다. 손 안 잡아? 당장 잡아. 그런 시선으로 몇 초 꼬나보니까 큰 손이 느리게 다가온다. 송태섭은 손을 잠시 보다가 루카와 올려다본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시선과 마주한다. 밤하늘 같다. 고양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빤히 보던 것을 멈추던 송태섭이 입꼬리 올려 웃는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사진 찍는 취미가 있거든요. 같은 구단에 있을 거면 제 모델이 좀 되어주시죠?"

"네."

"...... 아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진짜 괜찮아요?"

덤덤하게 들리는 말에 송태섭이 오히려 당황했다. 얘 이거 사기 잘 당하는 관상이었나? 루카와는 오히려 뭐가 문제냐는 듯 눈 동그랗게 뜨고 송태섭 빤히 본다. 아, 얘 일본인이지. 그냥 한국어를 못 알아먹어서 쳐다본 거였다. 순간 머쓱해져서 머리 쓸어내리다가 다시 영어로 통역해준다. 미안해요, 당황해서 한국말이 나왔거든요. 모델 하는 거 괜찮냐고 다시 물어봤어요. ? 저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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