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태웅태섭]사랑을 전하고 싶다든가

연령반전

*제목은 삽입된 노래에서 따왔습니다.

*뮤직비디오 시작과 동시에 천둥소리가 나오니 예민하신 분들은 노래로 들어주세요.

*루카와 카에데 고3, 미야기 료타 고1. 이 글 속에서는 미츠이, 루카와가 동갑입니다.

0.

미야기 료타는 루카와 카에데를 사랑한다.

비록 짝사랑이지만.

1. 19XX. 11. 7. 수요일. 날씨는 맑음. 

루카와 카에데의 아침 루틴은 간단하다. 1. 아침 연습이 없는 날에는 조금 이르게 일어나, 가볍게 조깅을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에, 2. 아침밥을 두 그릇씩 헤치우고, 3. 전날에 챙겨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선다. 4. 이어폰을 귀에 꼽고, 카세트에 담긴 노래를 재생시키고, 자전거 페달을 밟다보면 제 집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집 하나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제 자전거 뒷자리 주인의 집이었다. 제 집에서 걸어서 15분, 자전거로 5-7분. 5. 루카와 카에데는 미야기 료타가 나오기 전까지 그의 집 담벼락에 기대어 영어 단어장을 훑어 본다. 이것까지가 루카와 카에데의 아침 루틴이었다. 

cherish: [동사] 소중히 여기다. 아끼다. 오늘의 단어는 루카와 카에데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인 모양이었다. 매번 미야기 료타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만 나오더니. 그런 생각이나 하며, 루카와는 제 눈길을 사로잡은 단어를 한참이나 곱씹었다. 언제부터인가 제게 고백을 하던 옆집 꼬맹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를 이상한 옆집 사이.

한참 그런 생각이나 하다보면,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럼, 루카와 카에데는 이제 막 카세트에서 흐르기 시작한 나카모리 아키나의 노래를 끄고, 이어폰 줄을 잘 감아 주머니에 넣었다. 단어장을 더플백 안에 넣고, 세워둔 자전거를 세우면, 기다렸던 얼굴이 불쑥 튀었다. 안녕, 료타. 루카와의 얼굴을 보는 미야기 료타의 얼굴이 묘했다. 루카와는 그것이 고백의 징조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익숙한 아침 루틴.

"좋아해요."

언제부터인가 아침인사 대신, 고백을 갈기는 옆집에 사는 미야기 료타에 루카와 카에데는 그저 그래. 안녕. 하고 인사를 해주었다. 좋아한다고요. 아침 인사를 대신하는 고백을 무시를 했음에도 입술을 비죽이며, 다시금 내뱉는 말에도 그는 별다른 말없이 자전거에 훌쩍, 올라타며 그랬다. 안 탈 거야? 탈 거예요. 그의 말에 미야기 료타는 급하게 자신의 지정석이 된 그의 뒷자리에 올라타고는 웃긴 모양새였을 제 모습을 상상하며,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하, 진짜. 루카와는 그가 뒷자리에 타자, 그제야 세웠던 몸을 숙이고, 한 발로 바닥을 밀며, 자전거 페달을 가볍게 밟았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지나고, 곧 겨울이 와서 그러는 걸까. 유독 오늘따라 날이 끝내주게 좋았다.

"옷 잡아."

"......."

"허리에 팔 감던지."

그 말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 끝나자마자 냉큼 닿아오는 온기가 어이없어 헛웃음을 터뜨린 그는 페달을 밟는 속도를 살짝 늦추었다. 시간은 널널했고,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은 익숙했다. 얼만큼 밟아야지 지각을 하지 않는지, 그가 만족하는지, 찬 바람에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지. 루카와는 늘 하는 농구보다 그게 더 익숙했다. 미야기 료타는 페달을 밟는 속도를 늦추는 그의 발을 보며, 그의 등 언저리를 손톱으로 북북 긁었다. 고백은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다정하긴 왜 다정하냐고. 미야기의 불만을 알 리가 없는 루카와는 고개를 돌려, 뒤에 앉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바람이 차? 다정스레 묻는 말에 미야기 료타는 너무나도 억울해서 중학교 때처럼 냅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 1학년이므로. 울음 대신 불퉁한 말을 내뱉었다. 그냥요. 루카와는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바르게 하며 대뜸 그의 이름을 불렀다.

"료타."

"네."

제 대답 뒤로 나오는 답이 없어 뭐예요? 하고 물으면, 자전거 주인은 고개를 내저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냥. 그게 놀리는 걸 아는 미야기는 기어코 주먹으로 그의 등을 쳤다. 퍽 소리와 함께 자전거는 크게 휘청였으나, 그대로 쓰러지는 대신, 냉큼 방향을 다시 잡은 루카와가 페달을 밟으며 바르게 세워졌다. 아파, 료타. 단촐한 대답에 입술을 삐죽이던 그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 자전거에서 내려와 보도블럭 위에 섰다. 뻔히 보이는 투정에도 루카와 카에데는 그를 달래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을 먼저 건너지도 않았다. 자전거를 끌며 나아가는 속도를 미야기 료타의 발걸음 속도에 맞출 뿐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미야기 료타는 제 스스로가 한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애처럼 굴면 안 되는데. 어느날, 티비에서 송출되던 연상의 마음을 차지하려면, 어린 애처럼 굴면 안 된다던 누가 했는지도 모를 말을 들은 뒤로. 미야기 료타는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으나, 짝사랑은 그것마저 허락해 주지 않아 자꾸만 그의 마음을 이리저리 들쑤셨다.

안 그래도 인기많은 그가 누구를 덜컥 사귀면 어떡하지. 그가 농구 밖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지 않는가. 어느날 저 잘난 남자 옆에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그녀 때문에 더 이상 자기를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고, 이름도 모를 그녀를 뒤에 태우고 먼저 갈지. 제 구역을 온통 그녀가 차지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그 누구도.

"......미야기!"

그러면, 정말 그러면 그때에 나는 어떡하지?

"료......!"

고백조차 못하고 접어야 하는 마음이면? 그건 좀 억울한데. 진짜 너무 억울한데.

"료타!"

"......허억!"

제 앞을 매섭게 지나가는 바이크에 놀란 것도 잠시, 괜찮아? 하며 불쑥 드리워지는 얼굴에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뒤이어 보이는 걱정으로 온통 점칠되어 있는 표정, 제 팔을 잡고 자기 품으로 당긴 자세, 귓가에 울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심장소리. 그런 것들이 차근차근 쓸데없는 상념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온 미야기 료타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그 대답을 듣고나서야 잡았던 팔을 놔준 그는 한숨을 폭 내쉬며 그랬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불러도 못 들어. 걱정스러운 말. 차마 그 말에 이름도 모를 여자애가 형 옆에 있는 상상을 했다고는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내저었다. 루카와는 혼자서 별별 생각을 했을 그가 뻔히 보였지만, 그의 태도에 더는 묻지 않았다. 제가 묻는다고 대답해 줄 꼬맹이는 아니었으니까.

"가자."

그 말을 끝으로 앞서 걷는 그의 등을 보며, 미야기 료타는 제 가방끈을 꾹 쥐었다. 가까이 다가왔다는 이유만으로 심장이 펄떡이던 저와 달리, 별다른 티가 나지 않는 그의 심장이 미웠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짝사랑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아침부터 차곡차곡 쌓인 억울한 마음과 서운한 감정에 미야기 료타는 이제는 조금 더 멀어진 넓은 등판을 보며 가운뎃 손가락을 날렸다.

그리고 보기 좋게 그걸 봤다.

누가?

루카와 카에데가.

미야기 료타는 그대로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2. 오하아사 12위. 행운의 열쇠는?

미야기! 미야기 생일은 언제야?

나? 나는-

오하아사 12위. 이래서 아침부터 대차게 운이 안 좋았구나. 미야기는 여자애들이 보여준 운세집을 돌려주며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가운뎃 손가락을 보며 어이없어하는 그를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을 끝낸 미야기 료타는 그대로 내달렸다. 재빠르게 지나가는 저를 보던 시선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해, 한숨을 폭 내쉬었다. 당황한 표정의 그를 지나쳐 온 그는 교실에 들어온 뒤로부터 영 맥을 못 추렸다. 이 미친새끼. 스스로에게 걸걸한 욕을 날리면서도 오랜만에 보는 그의 바보같은 얼굴에 베시시 웃었다가, 급히 입꼬리를 갈무리하며 책상에 이마를 들이박았다. 뭘 좋다고 웃어, 망할 미야기 료타.

"미야기."

"아. 야스다."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아무것도."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은 미야기 료타는 몸을 일으켜, 다음 교시 교과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어차피 수업은 듣지 않을 거였지만, 그래도 책이라도 꺼내둬야 눈총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올려만 두고는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불현듯이 부 활동 때 그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야스다는 교실로 오는 길에 들었던, 가운뎃손가락 사건이 그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그는 그 말을 하는 대신에 오늘은 점심 먹고 그 이후부터 쭉 부 활동인가봐. 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진짜?"

"응. 아야코가 알려줬어."

아, 망했다. 그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불쑥 튀는 마음 같은 거 조금만 참아볼걸. 시시각각 변하는 제 친우의 표정에 어색하게 웃은 야스다는 나 망했어요. 하는 표정인 그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말 안 해주면, 영영 안 해줄 제 친구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제 알 바인가?

시간은 그날따라 빠르게도 흘러갔다. 미야기 료타는 잊을만 하면, 불쑥불쑥 튀는 당황한 얼굴에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며, 맥아리 없이 있다가 자꾸만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어차피 피하는 거는 불가했으니,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패기좋게 온 체육관을 조금 뱅뱅, 돌고 나서야 겨우 락커룸에 들어서면. 타이밍 참 좋게도, 때마침 그가 그곳에 있었다. 오하아사 12위. 끝내주는 운세에 미야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락커룸을 열고, 유니폼을 집어들면, 저보다 한참 위인 곳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나한테 할말 없어? 그 말에 미야기의 고개가 삐걱삐걱 올라간다. 저를 내려다 보는 루카와와 눈이 마주친다.

"네?"

"할말 없냐고."

화났을 줄 알았던 표정과 달리, 큰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표정과, 그 안에 담긴 장난스러움에 그제야 안심한 미야기 료타는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 태도에도 여전한 표정에 완벽히 마음이 풀어진 그는 아. 진짜. 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었다. 아니, 그러니까 먼저.......  사실 너무 무서워서 지릴뻔 한 건, 아까의 표정으로 휘발된 건지. 한참 조잘이는 그를 가만 보던, 루카와는 그의 말을 자르며, 단호히 말했다. 그래서 할말 없냐고. 미야기는 그제야 가리비처럼 입을 다물고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말로 해."

"......."

"대뜸 욕하지 말고."

타박 아닌 타박을 건넨 루카와는 깔쌈하게 올린 그의 머리를 살짝 흐트러뜨리며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다정한 루카와. 다정한 루카와. 다정한 루카와. 아까의 일로 화를 낼 법도 한데, 화 한 번을 내지 않고 그렇게 일을 덮은 루카와의 다정에 미야기 료타는 방금까지 그의 손길이 닿은 머리를 몇 번 쓸어보고 나서야 아대를 챙겨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따라 체육관에 들어서면, 아직은 다 오지 않은건지. 아무도 없는 빈 코트 위에서 공을 튕기고, 드리브를 하고, 림을 향해 슛을 던지는걸 가만 보았다. 곧게 뻗은 몸, 미츠이와 다른 슛폼. 그가 던진 공이 림 안으로 매끄럽게 들어가는 걸  입을 벌린 채로 보고 서 있으면, 길고 예쁜 손이 까딱였다.

"슛폼 봐줄게."

"잠시만요."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발걸음 옮겨 코트 위에 서서는 그가 건네준 공을 바닥에 튕겨보다, 그대로 림을 향해 공을 쏘았다. 오하아사 12위. 행운의 열쇠: 농구공. 비록 오하아사는 꼴찌였지만, 행운의 열쇠는 딱 들어맞는 모양인지 말끔하게 들어가는 공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으면, 루카와는 옅게 웃어보였다.

"잘했어."

아, 저렇게 웃는 건 반칙 아닌가. 미야기 료타는 그의 미소에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혹시라도 들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어주며 다시 해봐. 라고 할 뿐이었다. 두번째 슛도 말끔하게 들어섰지만, 아까의 행동은 모두 꿈이었는지. 쏟아지는 잔소리에 미야기 료타는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야. 빠르다, 빨라."

"료칭, 안녕!"

문이 열리고, 인사를 건네는 미츠이와 사쿠라기에게 꾸벅 인사해 보인 미야기는 루카와를 따라서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호다닥 발걸음을 옮겼다. 타올과 물통을 벤치에 둔 그들은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몸을 가볍게 풀다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미츠이가 불쑥 말을 꺼내었다.

"야, 루카와.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뭔데?"

"가운뎃 손가락이 뭔 얘기냐?"

본격적인 스트레칭을 하기 전에, 불쑥 튄 미츠이의 물음에 미야기는 푸학, 하고 기침을 토해냈고, 루카와는 아, 그거. 하며 평이하게 입을 열었다. 료타한테 한방 먹었어. 간단명료한 말에 눈만 깜빡이던 미츠이는 상황파악이 끝나자 으학학, 하고 웃으며 역시 루카와를 멕이는 건 미야기뿐이라며, 한참을 그렇게 놀렸다. 그 놀림에도 대꾸하나 없이 스트레칭에 임하던 루카와를 보던 미츠이는 웃음을 겨우 그친 채로 물었다. 그런데 왜?

"글쎄. 그건 료타만 알아서."

"뭐야! 당장 말해!"

"시끄러워."

아리송한 말로 말을 끊어낸 루카와는 그대로 스트레칭에 돌입했고, 미츠이와 사쿠라기는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인 얼굴로 그를 쿡쿡 찔러 보았으나, 스트레칭이나 하라는 말만 돌아와, 결국 그들도 입을 다물고는 얌전히 스트레칭에 돌입했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체육관 안을 뛰며 미야기 료타의 가운뎃 손가락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그 사건의 주인공은 보았다.

그건 료타만 알아서. 하고는 옅게 웃던 루카와 카에데의 입술을.

젠장. 젠장.

귀가 벌겋게 익는 기분이었다. 그의 이름에 박힌 단풍처럼.

3. Q. 같은 동아리 선배가 저만 아이스크림 다른 거 사줬는데, 사귀자는 걸까요?  / A. 진도를 너무 빼셨네요.

아이스크림 내기 할 사람? 빡센 부 활동 뒤에 오는 내기는 오늘도 절찬리 진행 중이었다. 먼저 입을 연건, 하나미치. 그거에 응하는 건, 히사시. 미야기는 그들의 내기 권유에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 상태는 지금 당장 농구 코트에 토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으니까. 매번 좋아요. 하던 미야기가 없자, 그 둘은 타켓을 루카와로 바꾼 듯 싶었다. 하자, 루카와. 수건을 얹은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양 옆에 붙어 이리저리 흔들면, 그는 세상 귀찮다는 얼굴로 그들을 밀어내었다. 저리 가. 아, 하자! 하자아! 한 번 문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 두 사람이기에. 루카와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결국 내기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야기! 빨리 나와!

"저요?"

"여기에 미야기가 너 말고 누가 있어."

아, 오늘은 너무 힘든데. 어차피 거절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 농구부지만, 이상하게 미야기는 그런 게 어려웠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고 했던 루카와의 말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그런 말은 입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한참 머뭇거리던 그가 몸을 막 일으키려던 찰나, 루카와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료타는 빼. 오늘 너무 무리했어."

"그랬나? 그럼 빼."

"료칭까지 빼면, 셋인데. 셋이서 뭘 하냐고오."

하나미치의 말은 깔끔히 무시한 둘은 무어라 쑥떡거리더니, 그를 데리고 체육관을 빠져나간 두 사람 덕분에 농구 코트에는 정적만이 가득찼다. 미야기 료타는 오늘 저와 많은 것을 나누지도 않았음에도 다 안다는 것처럼 굴던 그를 곱씹으며 눈을 감았다. 그가 다정하게 굴 때마다 미야기 료타는 속이 상했다. 이유없는 다정함은 죄라던데. 자꾸만 제게 다정하게 구는 짝사랑 상대 때문에 저만 이상해지는 것 같아,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오늘은 선배가 쏜다."

"반반 냈잖아."

아, 알았어! 선배들이 쏜다! 됐냐? 타박 아닌 타박과 함께 들어온 그들은 검은 봉투 안을 가득 채운 아이스크림과 함께 복귀했다. 그걸 본 부원들이 우와아, 하며 봉투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 향하면, 이미 하나미치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은 채로 봉투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한움큼 꺼내어 하루코를 포함해, 자기들 친구들 몫을 건네주고 있었다. 봉투를 들고 있던, 두 사람은 부원들이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바닥에 놔두고는 안 챙긴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미야기는 봉지 앞으로 우르르 모인 그들을 제치고 갈 생각은 없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익숙한 손이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채로 불쑥 튀어나왔다.

"이거는 하나 밖에 없더라."

"......감사합니다."

그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은 미야기 료타가 자주 먹는 가리가리군이었다. 아이스크림을 건네준 그는 금세 멀어졌고, 미야기는 그를 가만 보다가 소다 맛이라고 적힌 아이스크림 봉지를 가만 바라보았다.

사실 아이스크림 자체는 통일이었지만, 맛은 미야기 료타만 달랐다. 다들 레몬 맛을 먹는데, 그만 유일하게 소다 맛이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봉지를 뜯고, 아이스크림을 이제 막 베어물었을 때. 언제 온 건지 미야기 근처 벤치에 앉은 미츠이가 그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루카와가 그거 너 준다고, 봉지 맨 아래에 숨겨 두더라."

"네?"

"너만 다른 맛이라고."

그의 말에 당장이라도 네에?! 하고 소리칠 것 같아, 급히 아이스크림으로 제 입을 막으며 눈만 깜빡였다. 그럼 미츠이는 그의 반응에도 그저 제 아이스크림을 흔들어 보이며, 평이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다 레몬 맛이거든.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옮긴 미츠이는 봉지를 들고 다니며, 아이스크림 봉지와 막대를 수거했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루카와가 그와 같이 움직이며 쓰레기를 정리했다. 미야기는 아이스크림이 녹는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미야기, 아이스크림 녹는데? 하는 아야코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한번에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바보같이.

"그걸 한입에 다 넣으면 어떡해!"

걱정하는 아야코의 말에도 그저 웃어보인 미야기는 띵해지는 머리와 차가운 입안에도 괜찮냐고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깨물어 먹었다.

사각사각.

루카와의 다정이 아이스크림과 함께 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시리고 달달한 아이스크림만큼 다정한 루카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이스크림은 차가웠다. 그것도 존나게.

미야기 료타는 다시는 아이스크림 따위 한입에 집어넣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제 앞으로 온 검은 봉지 안으로 쓰레기를 집어넣었다. 차디찬 입안 탓에 몸을 부르르 떨면. 아까까지 봉투를 쥐고 있던 커다란 손이 제 이마를 덮었다. 그 따뜻한 감촉에 고개를 살짝 들어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보면,

괜찮아?

하고 입모양으로 묻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먹색보다 더 검은 머리칼, 새하얀 피부에 긴 속눈썹,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그 사이를 가르는 오똑한 코, 그 아래에 자리잡은 그린 듯 그어진 입술. 한참 그 얼굴을 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추워요."

그러자 미야기 몸 위로 익숙한 품의 저지가 덮어졌다. 루카와의 다정이 미야기 몸안에서 세차게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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