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웅태섭] Small

윈터컵을 앞둔 북산은 팀워크 증진을 위해 3박4일의 합숙을 진행하기로 했다. 치수와 준호가 없는, 그리고 태섭이 주장을 맡은 첫 대회다보니 알게모르게 어려있던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함도 있었다.

 숙소로 잡은 여관은 방이 작아 2인1실로 방을 잡게 되었는데, 인원이 홀수인지라 한명은 독방이 예정되어있었다. 모두가 주장인 태섭에게 독방을 양보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태섭이 걍 형평성있게 제비뽑기로 하자고 주장하여 그들은 통에 꽂힌 나무젓가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있었다.

 “같은 그림이 나온 사람들끼리 한방이다! 독방은 별표! 바꾸기없음, 무르기 없음!”

 나무젓가락에 직접 그림을 그린 소연과 한나가 지켜보는 앞에서 다들 요란스럽게 젓가락을 뽑아가고, 태섭은 마지막 남은 젓가락을 들어 뒤집었다.

 브로콜…리?

 비뚤비뚤하게 그려진 브로콜리를 바라본 태섭이 주위를 둘러봤다. 강백호는…저게 뭐야, 새우? 달재는…리본. 누구랑 한방이지, 태섭이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다른이들의 젓가락을 살펴보다가 미동없이 가만히 들려만 있는 젓가락에 시선이 닿았다. 아 브로콜리.

 “…어, 태웅아. 우리 같은 방이다.”

 “넵.”

 젓가락을 들고있던 태웅이 물끄러미 태섭을 내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얌전한 대답에 피식 웃은 태섭이 대충 젓가락을 주머니에 넣고는 다른이들을 봤다.

 “으하하! 내가 독방이다!”

 “앗! 왜 정대만이 독방이야!”

 “어쩌겠냐 우린 홀수인걸.”

 팔팔 날뛰는 강백호를 향해 피식 웃어보인 정대만이 예쁘게 그려진 별이 있는 젓가락을 흔들며 멀어지고, 각자 뽑은 제비를 서로 살펴보던 농구부 인원들이 삼삼오오 룸메이트를 짝지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그 뒤로 다섯시까지 식당으로 모이라는 태섭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오랜만의 합숙이라 서로가 들뜬 모습이 여기저기 보여 태섭은 피식 웃었다.

 “자, 가자. 우린 207호야.”

 “…옙.”

  옆에 멀뚱이 서있던 태웅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살짝 친 태섭이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작은 새 주장의 뒷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웅이 잠시 태섭의 복실거리는 머리에 시선이 닿았다가 이내 폭이 넓은 큰 걸음으로 쫒아갔다.

 ‘작아….’

 끼긱! 끽!

 농구화가 체육관 바닥과 마찰하며 울리는 소음이 날카롭다. 땀에 젖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대충 털어낸 태섭이 기민한 눈동자로 사방을 살폈다.

 “디펜스! 강백호! 좀 더 달라붙어!”

 “눗…! 여기서 더 달라붙으면 파울이야! 주장이 왜 파울을 유도해, 태써비!”

 “오, 이제 어느정도면 파울인지를 알아 챌 정도야? 많이 컸네. 대만선배! 거기선 더 오른쪽으로 나올 수 있잖아!”

 “허억…헉…. 최선을…다 하고…있다고…!”

 넓은 코트 양끝을 뛰어다니는 소리, 태섭이 동료들을 채찍질 하는 소리, 죽겠다고 앓으면서도 그런 태섭의 채찍질에 순순히 움직이는 이들의 소음에 체육관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난히 조용한 구역.

 “….”

 날아오는 공을 받아 그대로 슛으로 연결한 태웅이 흘깃 태섭을 바라봤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한 사람을 본 것 마냥 작게 고개만 한번 끄덕 하고 바로 시선을 돌리는 태섭의 모습에 태웅은 조금 미간을 찡그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이 태웅의 머리를 한바퀴 휘감는다.

 콰당!

 “윽!”

 “강백호! 조심하라고 했잖아! 등 괜찮아?”

 “…멍청이.”

 습관적으로 날아가던 공을 잡아채곤 넘어져버린 백호로인해 잠시 연습이 멈췄다. 백호는 멀쩡하게 일어났지만 태섭도, 한나도, 그 외 다른 인물들 모두가 백호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다 나았다고 괜찮다며 호쾌하게 웃는 백호를 바라보던 태웅의 시선이 그의 까끌한 빨간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주는 작은 손에 닿았다.

 ‘…작네.’

 먼저 씻고있으라던 태섭의 말을 순순히 들은 태웅은 따듯한 물로 푹 씻고 나왔음에도 아직 방에 들어와 있지 않은 상대를 향해 보이지않을 인상을 찡그렸다.

 ‘…금방 들어온다더니.’

 하긴, 직전 전국대회때 그 산왕을 이긴 학교로 과분한 관심을 받고있는 북산의 새 주장인 태섭이니 굉장한 부담일 것이다. 하교할때 마주치던 태섭은 언제나 다른 학교를 분석한 노트를 붙들고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엔 신경을 쓰지도 못한 채 걸어가곤 했다. 그 뒤에서 태웅이 자전거를 끌고 조용히 쫒아오는 것 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언제나 깔끔하게 셋팅된 머리, 그 머리에 달랑달랑 달고 가던 가방. 은근 건들거리던 걸음걸이. 노트에 집중하느라 살짝 뒤에서 봄에도 확연히 보이던 톡 튀어나온 입술.

 “…아.”

 “엇, 태웅아. 일어났어? 좀 시끄러웠나.”

 태섭을 기다리는 그 잠깐사이에 잠이 들었는지, 설핏 정신을 차린 태웅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막 샤워하고 나왔는지 경기 말미처럼 곱슬머리가 밑으로 내려온 태섭이 몸에서 따끈한 김을 뿜으며 물기를 닦고있었다. 태웅은 저도모르게 그런 태섭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물방울에 시선이 닿았다. 쇄골 사이를 지나 굴러가는 물방울은 이내 가슴팍에 튀어나온 돌기를 스쳤다. 그리고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태웅의 시선이 그 돌기에 고정되어버렸기에.

 “…? 왜.”

 “아무것도….”

 태웅의 시선이 진득해지자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태섭이 고갤 갸웃 하며 묻는다. 태웅은 고갤 도리도리 저으면서도 여전히 태섭의 몸에 시선이 닿아있었다. 한참 작은 덩치임에도 오밀조밀하게 꽉 들어찬 근육들. 그 사이를 흐르는 작은 물방울들. 허리에 두른 하얀 수건으로 흡수되어 사라진 물방울에 이유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태웅이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돌기에 다시 시선이 닿는다.

 태섭은 어느새 머리를 터느라 그런 태웅에게서 관심을 거둔 상태였다.

 ‘…작아.’

 합숙 마지막날. 연습이 모두 끝나고 짧은 강행군에 지친 이들이 코트에 제각각 널부러져 힘든 신음을 내뱉고있었다. 태섭은 그런 그들 하나하나를 챙겨 씻으라고 방으로 보내곤 피로에 굳은 뒷목을 가볍게 주물렀다.

 주장은 이걸 어떻게 다 한거야. 진짜 대단해 난 벌써 힘들어 죽을거같다구요-. 주장 돌아와….

 혼자 남고나서야 겨우 조그마하게 내뱉어보는 피로함. 소란스러운 원숭이들이 따로 없을만큼 요란한 북산 농구부를 앞으로 최소 1년은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다시금 짓눌러왔다.

 그런 태섭의 작게 움츠러든 어깨를 체육관 입구에서 바라보던 태웅은 부러 기척을 내었다. 끽-하고 농구화가 코트에 미끌어지는 날카로운 소음에 태섭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한 손엔 타월, 한 손엔 물병을 든 태웅이 저벅저벅 태섭에게 다가왔다.

 “주장. 이거.”

 “아. 고마워.”

태웅이 내민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물병을 받아 든 태섭이 씩 웃고는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런 태섭의 목덜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웅이 고개를 돌렸다. 둘 밖에 없는 빈 코트는 섬뜩하리만치 고요하면서도, 이상할정도로 안정감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평소 느끼던 그런 것과는 달리, 조금은 울렁거리는, 설레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도 함께.

 “태웅아.”

 “…옙.”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

 “아니, 너 요즘 계속 할 말 있다는 눈으로 나 쳐다보고 있는거같아서.”

 “…별로요.”

 물병 꼭지를 입에 문 태섭이 피식 웃자 태웅이 시선을 돌렸다. 그랬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제 시선의 끝에 항상 태섭이 있었다. 이유는…모르겠다. 그냥. 그냥 그렇게 시선이 갔다.

 “싱거운녀석.”

태섭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쿵- 무언가가 가슴안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태웅은 가만히 가슴을 쓰다듬었다. 뭐지.

 마지막 남은 물을 한방울까지 짜내려는 듯 물병을 쭉 빨아당기는 태섭의 입술에 태웅의 시선이 닿았다. 홀쪽하게 들어간 뺨. 입을 뗀 순간 보이는 붉은 혀…. 방금 런닝을 끝낸 것 마냥 갑자기 심장이 달음박질 치기 시작하자 태웅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머릿속엔 여전히 태섭의 입과 혓바닥이 아른거렸다.

 ‘…작았어.’

 “온-천이다!!”

 “뛰어들지 마 강백호!!”

 마지막 밤은 온천이었다. 언제나처럼 날뛰는 백호를 말리기위해 뛰어드는 태섭의 등을 바라보던 태웅은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어 가슴을 쓸었다. 이번 합숙 내내 태웅은 자꾸만 자기 멋대로 날뛰는 심장을 제어하기 위해 신경을 쏟아야 했다. 농구 하나만 생각하기에도 벅찬 태웅의 머리에 조용히 자리잡고 날뛰기 시작한 남자 때문이었다.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저 빨간머리의 품에서 맨몸으로 물을 튀기며 웃는, 작은 주장.

 “으아아!”

 “어엇! 송태섭 조심!”

 “야, 송태섭! 너도 조심 좀 해라.”

 뒤로 넘어가려는 작고 동그란 어깨 위로 커다란 손이 감싸쥔다. 리바운드 만큼은 인정하는 풋내기의 손이다. 또다른 큰 손이 얇은 허리를 쥔다. 3점슛은 믿고 패스할 수 있는 남자의….

 “아하하하! 안 미끌어진게 다행이네! 엇, 태웅아?”

 “아까 농구하다가 허리부터 넘어졌잖아요. 주장 힘들게 하지 마, 너.”

 “뭐?! 이 여우자식이!”

 백호의 무릎위에 주저앉아 깔깔 웃음을 터트린 태섭의 배에 팔을 둘러 달랑 들어올린 태웅이 몇걸음 물러나 앉았다. 그런 태웅의 옆에 나란히 앉게 된 태섭이 얼굴에 한가득 물음표를 피워올리곤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걸 흘긋 바라본 태웅은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했단 사실에서 피어오르는 미묘한 만족감에 입꼬리를 작게 끌어올렸다. 옆에서 황당하다는 듯, 혹은 어이없다는 듯 하? 하고 작게 반응하는 태섭의 목소리조차도 자신을 향함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요즘 여우녀석 뭔가 이상하지 않아? 자꾸 송태섭한테만 붙어있으려고 하고.”

 “그런가?”

 “뭘 또 붙어있는대! 너야말로 내 말 좀 들어라 강백호 이녀석아!”

 옆에 앉아있던 태섭이 수근거리던 백호와 대만에게 달려들어 또다시 투닥투닥. 언제나의 모습이었다. 태웅에게만 조금 달갑지 않은. 어느새 다들 허리에 걸치고 있던 수건은 날려버린 채 맨몸으로 신나게 물싸움 중이었다. 물보라를 묵묵히 얻어맞으면서도 태웅은 기민하게 시선을 돌려 목적한 남자를 찾아냈다. 사흘간 같이 방을 썼음에도 한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맨 하반신이 눈에 들어온다. 올곧게 뻗은 허리선을 따라 밑으로, 쭉 뻗은 다리를 따라 위에 올라붙은…엉덩이가…

 태웅은 물위로 떠오르려는 수건 끝을 꾹 누르곤 다리를 꼬았다.

 ‘생각보다…더 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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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대전 가기 전에 쓰고싶었던... 조꾸만 주장을 의식하는 태웅이로 탱태가 쓰고싶었....

 까페에서 호로록 쓰고 호로록 올려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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