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태웅태섭]체크메이트

느와르AU

"이야. 우리 실장님 대단하시네."

빤질빤질한 낯짝이 왜 안 나타나나 했더니. 실장이라 불리는 남자는 그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주머니에 든 막대 사탕을 하나 까서 입안에 넣었다. 끈적한 딸기우유맛. 라임 맛으로 좀 사오라니까. 그딴 불만이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여전히 조잘조잘하는 말에도 대꾸 하나 하지 않았다. 턱, 터억, 쿵. 시체는 차곡차곡 비닐 안에 담긴다. 그대로 압축 포장. 저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실장 송태섭은 몰랐다. 물류 담당 팀장 정대만이나 알았지. 정대만이 누구냐면, 방금 그 사람. 말 존나게 많던.

"왜 대꾸가 없어요."

"대꾸할 만 해야 대꾸를 하죠, 팀장님."

실장, 팀장, 부장. 웩. 깡패짓 하면서 남의 장기 뜯어가고, 땅따먹기, 약 사고 파는 새끼들에게 직함도 새겨준단다. 하다하다 회사원 놀음하는 깡패새끼들.

 아, 맞다. 실장님. 일 끝나시고 본부장님 뵈러 가세요. 팀장 정대만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려다가 말았다. 송태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방 작아진 사탕을 까드득, 깨물며 물었다. 팀장님도 사탕 드려요? 입이 심심했던 차인지, 슥 내미는 손바닥 위로 딸기우유맛 막대 사탕을 두었다.

"이런 취향?"

"라임 맛이 좋은데, 없다잖아요. 취향은 무슨."

"사다줘요?"

"퍽이나요."

팀장 정대만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사탕을 까, 입안에 넣었다. 으, 달어. 작게 앓는 소리에 막대기만 남은 걸 까득까득 씹으며, 도축된 고기마냥 압축된 사체들을 바라보았다. 다 됐습니다. 짤막한 말에 정대만은 잘 다려진 자켓을 툭툭, 털고는 책상 끄트머리에 대었던 엉덩이를 떼어내었다. 실장님, 수고. 짤막한 인사, 가벼이 휘휘 흔들리는 손에 송태섭은 예. 하고만 말았다. 고요한 주변. 송태섭은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어 밀린 연락을 보았다. 밀린 연락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다. 오늘 저녁 8시. 송태섭은 연락을 지워버리고, 다른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자판을 꾹꾹 눌렀다. [포장 완료 됐습니다.]

[네. 고생하셨어요.]

[언제까지 가면 됩니까?]

[할일 다 하시고, 저녁까지 드신 후에.]

[네.]

송태섭은 마지막 연락을 보내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문장마다 묻어있는 다정. 웃기지도 않지. 저를 향해 인사하는 그들을 보며 송태섭은 직접 운전대를 쥐었다. 개인 사정.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엑셀을 밟았다. 그제야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집에 도착한 송태섭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내리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아까와는 달리 대충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미행은 붙지 않았으나, 혹시 모를 일을 위해 송태섭은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어떠냐."

"어떠긴요."

송태섭은 여지껏 모은 자료를 조심히 전달했다. 상대방 또한 티가 나지 않게 자료를 받아들며, 잔을 기울였다. 안 마시냐? 예. 송태섭은 소주가 지겨웠다. 초록병만 보면 구역감이 치밀어 올랐다. 바다에 몇 병을 들이부었더라. 그딴 생각이나 하며 엉덩이를 떼낸 그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조금 이른 만남, 그것보다 더 빠른 이별. 송태섭은 삶은 늘 그랬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이제는 사복보다 수트가 더 편했다. 젠장.

"본부장님 위층에 계십니다."

송태섭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정대만 낯짝만큼 빤질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무슨 연유로 저를 부르는 가에 대한 건 더이상 불필요한 의문이었다. 늘 상상이상으로 특이했으니까. 최고층.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덮힌 세상을 가장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곳. 이곳에 처음 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온다는 건 생각조차 안 했는데. 필요도 없었고.

"본부장님."

두 번의 노크와 조심스레 직책을 부르면, 문 넘어서에서 들리는 들어오세요. 하는 단정한 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즉 서류를 다 처리하지 않은 모양인지 여전한 얼굴에 그의 앞에 서서, 뒷짐을 진 채로 곧게 서 보였다. 남자는 여전히 서류에 눈을 둔 채로 입을 열고 부드럽게 말을 꺼내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요."

"아닙니다."

변덕이 죽 끓듯 사람이 무슨.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여전히 그러고 서 있으면, 남자는 서류를 보던 시선을 올려 다시금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실장님. 제가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제야 남자의 몸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잠시만 앉아 계세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말씀 드릴게요. 남자의 경고는 일회성이다. 그 다음은 알아서. 그리고 빠릿하게. 몇 대 처 맞아본 적 있는 몸은 배움이 빨랐다.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 그세 몇 번 깨먹었는지 달라진 게 보였다. 미친새끼.

"실장님."

"네."

"이번 일은 직접 하셨다면서요."

송태섭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네. 정리만 했습니다. 포장은 팀장님이 맡으셨고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왜 그러셨어요? 송태섭은 그 말에 무어라 답을 해야할지 몰라 눈만 깜빡였다. 이제는 일을 해도 지랄인가? 물론 이번 말도 속으로만 생각했다. 비위도 약하시면서. 뒤이어 나오는 말에 아. 하는 얼굴로 그는 입을 열어 조심스레 말을 내뱉었다. 일은 해야죠.

그 말과 동시에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했다. 검고 검은 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눈. 송태섭은 저 눈을 보고 나서야, 왜 이곳에 주인이 어린 놈인지 알았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큰 놈들만 잡아 먹고 올라온 육식동물이었다. 송태섭은 뒤늦게 시선을 피하면, 남자는 타박도 없이 고생하셨어요. 하며 서류철 하나를 덮고는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와, 야경을 뒤로한 채로 일렬로 늘어져 있는 커피 머신을 하나 작동 시키며 물었다. 커피? 송태섭은 고개를 고개를 끄덕였다. 뭣 모르고 안 먹는다고 몇 번을 거절했다가 이마가 깨진 적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미안했어요."

"네?"

"커피잔으로 후려 친 거요."

알긴 아냐. 차마 그 말도 할 수가 없어 그저 고개를 숙였다. 커피 잘 안 마시는 거 알아요. 그런데 그날은 다른 놈들도 있는데, 다르게 대할 수가 없었어서. 남자는 그리 말하며, 커피가 아닌 따뜻한 캐모마일 티 한 잔을 그의 자리에 놔두고는 커피를 챙겨 맞은 편에 앉아 손짓했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궁금하죠. 제가 실장님 부른 거."

"아닙니다."

송태섭은 차를 홀짝이며 재빠르게 대꾸했다. 남자는 가만 그를 보다가 커피를 한잔 마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며칠 경찰 분들과 동선이 겹치는 것 같아서요. 송태섭은 평온하게 차를 마시고는 다시금 입을 열어보았다. 알아볼까요.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일으켜, 제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친.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저에게 붙은 그림자들은 제가 실장직으로 오며 다 떨어져 나갔고, 그 전에는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송태섭이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남자는 서류를 하나 집어 들고 찻잔 옆에 두고 다시 맞은 편에 앉아 입을 열었다.

"쥐새끼가 숨어든 거 같아서."

"……."

처리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여전히 나긋한 어조. 긴 속눈썹이 팔랑이는 눈두덩이. 당연히 할 것이라 믿는 어조. 이건 떠 보는 것인지, 아니면 믿는다는 확신인지. 송태섭은 제 앞에 앉아 있는 젊은 보스를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 자가 경찰 쪽에 자료를 넘기고 있었더라고요. 생판 모르는 남자. 사실 그 자리에는 제 사진이 올라와야 함이 맞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건.

"못하겠으면 정 팀장님한테 넘기면 되는 거라서요."

"왜 저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노인네들이 당신을 의심하길래."

"……."

저는 우리 송 실장님 믿거든요. 보스 서태웅. 서열이 가장 중요한 이곳에서 모든 이들을 잡아먹고 자리에 앉은 이단아. 노인네들은 순 병풍이다. 꾸미기 좋은 말. 쁘락치를 잡아야 하는데, 의심가는 사람은 있어도 증거가 없으니 애매한 것이다. 빠르게 정리하고 싶은데, 닥치는대로 죽일 수가 없으니까. 송태섭은 가만 그를 보다가 차를 다 마시고, 서류를 챙기며 입을 열었다. 자리는……. 제가 만들 겁니다.

"네."

정말 괜찮겠어요? 송태섭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태웅은 그 대답에 입꼬리를 올려 조금 웃어보이며, 팔을 뻗으면 송태섭은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겨들었다. 오늘 진짜 고생했어요. 부드럽게 풀리는 목소리, 목덜이에 닿는 머리칼, 애교를 부리듯한 행동에 송태섭은 그를 마주 앉아주며 속삭였다. 너 이럴 때마다 무서워 죽겠다. 어? 그렇게 무서워요? 아까와는 달리 축 내려 앉은 눈썹에 하하, 웃으며 송태섭은 그의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었다. 어. 무서워.

"서운해요?"

"서운은 무슨."

"거짓말."

진짜야. 보스의 정인, 조직의 실장. 송태섭이 여기까지 오려고 무슨 짓을 벌였는가. 사람들 살리겠다고 맹세한 손은 피로 범벅이 된 지 오래 되었고, 선서는 빛 바랜지 오래였다. 그래도 이새끼들 대가리에 총구멍이라도 내주겠다고 버텨온 나날이다. 이제는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먼저 가 있을게."

"네."

송태섭은 제 허리를 감아오는 팔을 조심스레 풀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평온을 가장한 발걸음을 흉내내며 그는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써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지나, 화장실로 향하자마자 문을 걸어잠구고 구역질을 토해냈다. 우욱, 욱. 캐모마일 티가 식도를 역류하여 눈물처럼 쏟아졌다. 서류에 박힌 사진이 토악질을 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씨발, 씨발. 정대만이 이 일을 하던, 남이 하던 어차피 그는 죽을 테였다. 안 되는데. 살릴 방법이 없음에도 송태섭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경우의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진에 박힌 낯이 지워지지 않고 자꾸만 동동 떠다녔다. 안녕, 태섭아. 늘 단정하게 인사하던 그. 제 동기. 발에 불이 나게 쫓아다니면서도 웃던.

"달재야……."

송태섭은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손 안에서 종이가 우그러진다. 그게 꼭 제 심장 같아서. 송태섭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

"제가 할까요?"

송태섭은 당장이라도 이죽이는 정대만의 입을 틀어막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해야만 했다. 분명 연락을 받았을 텐데. 생포되어 제 앞에 있는 건 사진 속의 그 남자였다. 아, 제발. 송태섭은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여기서는 남과 남이어야 한다. 어쩌면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실낱같은 확률을 무시해서는 안 되니까. 이 바닥은 진창이다. 송태섭은 눈을 질끈 감았다.

"본부장님이 우리 실장님 시킨 건 알지만, 못하겠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정 팀장님."

"네, 송 실장님."

본부장님이 그거 아시면, 가만 두실 것 같습니까? 송태섭은 제발 저새끼가 조용히 하길 바랐다. 속이 시끄럽다 못해, 미식거렸다. 정대만은 그대로 입을 다물고는 뒷짐을 선 채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이건 시험이다. 저 자를 죽이지 못하면, 저 자리에 앉는 건 저일 테다. 송태섭은 총을 고쳐 쥐고는 총구를 바르게 두었다. 그는 흔들림없이 총구를 바라본다. 눈을 마주하지만, 그 무엇도 나누지 않는다. 정대만은 거기에서 이미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는다.

타앙. 방아쇠는 당겨졌고, 몸은 넘어간다. 송태섭은 총을 뒤에 서 있는 이름 모를 이에게 넘겨주고는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정대만은 별다른 말없이 죽어버린 경찰을 보고는 밑에 있는 자들에게 지시한다. 처리해. 뚜벅뚜벅. 송태섭에게로 걸어온 정대만은 말없이 담배를 내민다. 안 합니다. 송태섭은 담배 대신 주머니에서 꺼낸 막대사탕을 입에 넣었다. 입안에 가득 차는 라임 맛. 송태섭은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실시간으로 죽어가던 눈을 곱씹었다.

"본부장님이나 뵈러 가세요."

"예."

정대만은 필터를 빨며, 앞대가리에 불을 붙였다. 실장님이 이해하세요. 요즘 본부장님을 늙은이들이 달달 볶나봐요. 매끄러운 말에 송태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 냄새와 라임 사탕의 냄새. 끈적하고 매캐한 향. 저 남자는 흔하디 흔한 무덤도, 유골함도 없을 테였다. 그저 임무 중에 사망했다는 통지만 갈 테였다. 송태섭은 한참 있다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정대만은 예. 하고만 말았다. 모든 건 다 짜여진 판인데. 송태섭만 몰랐다.

"태웅아."

[네.]

"처리했다. 정리 다 했고."

[직접 하셨나요?]

"엉. 자기가 직접."

[그거 악취민 거 아시죠, 보스.]

정대만은 킬킬 웃으며 그러냐? 하고 말았다. 정대만은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네가 가지고 싶다며, 그럼 책임은 져야지. 여전히 끊기지 않은 전화 사이로 그 말을 내뱉으면, 상대방은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미 경찰 쪽에서는 꼬리 잘랐어요. 정대만은 그가 쏘았던 권총을 가만 보다가 입을 열었다. 신고식 해줘야겠지?

[진짜 악취미.]

"그래서 내가 싫다고 했잖아."

[그래도 거기가 어울려요, 당신은.]

"태웅아."

[네.]

"준비하자."

준비해 두겠습니다. 상대방은 그 말을 이후로 전화를 가차없이 끊었다. 아, 너무하네. 정대만은 그리 말하면서도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정대만은 욕심이 많은 자였다. 가져야 하는 것은 모조리 가져야 성이 풀렸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송태섭을 서태웅에게 준다고 한들, 그들을 제 발 아래에 두어야했다. 송 실장. 정말 그 직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대만은 가라앉는 시체들을 보는 아래 직책의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고 나서야 그 자리를 떴다. 이제는 정말 송태섭만 남았다.

시체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가는 동안, 송태섭은 눈이 가려진 채 다른 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대가리를 어찌나 세게 후려친 건지, 아직도 얼얼한 기분도 잠시. 끌려가는 동안, 대놓고 흘리는 그들의 말에 송태섭은 그제야 모든 퍼즐이 끼워 맞춰 지는 것을 느꼈다. 수상할 정도로 젊은 보스, 늘 제 곁에 있던 팀장, 경찰 측에서 잘라버린 꼬리. 모두가 짜고 치는 판에 덩그러니 놓인 송태섭. 모든 게 뒤틀렸다.

가려진 안대를 치워내자 눈꺼풀 아래로 내리쬐는 불빛에 눈가를 찌푸렸다. 송태섭은 겨우내 눈을 떠, 앞을 바라보면 늘 제 옆에서 치근덕대던 남자가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 젠장. 젊은 본부장님은 그의 바로 뒤에 서서, 곧게 뒷짐을 선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송태섭은 그의 눈빛에 담긴 걱정스러움을 바라본다. 송태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송 실장님."

"……."

"아차. 이제는 송태섭 경위라고 불러야 하나?"

뭐, 팀장이 조금 더 입에 붙기는 하네. 정대만은 피가 흘러 굳은 관자놀이를 보며, 혀를 츳 차내었다. 살살 다루라니까. 작은 타박에 저를 후려쳤던 사내의 몸이 조용히 넘어간다. 송태섭은 제가 이달재를 쏘았던 총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쓰러진 남자를 치우는 건 다른 놈들이었다. 송태섭은 역겨움을 느끼는 동시에 원초적인 두려움에 입안 살을 짓씹었다.

"어찌나 많이들 보냈는지."

"……."

"솎아내느라, 애 좀 썼어요?"

정대만은 여전히 말이 없는 그를 바라보았다. 송 팀장님 팔 좀 풀어드려. 정대만의 말에 서태웅이 다가와, 밧줄을 풀어주었다. 밧줄이 풀리자마자 서태웅의 흰 이마에 매끄러운 총구가 닿았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거기에 있는 자들은 흔들림이 하나 없었다. 하하, 진짜. 송태섭은 이 와중에도 총구를 당기지 못하는 제가 역겨웠다.

"송 팀장님이라면, 서태웅은 기억할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말에 매서운 눈길이 정대만으로 향한다. 정대만은 여전히 흰 이마에 닿아있는 총구에도 여전히 평이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딱 5년 전에, 웬 새파란 경찰 하나가 우리 쪽에 대놓고 잠입을 한 적이 있거든요? 어려서 그랬나, 아니면 냄새를 맡은 게 티가 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꼬리가 덜렁 잘렸길래, 오늘처럼 내가 물었어요. 내 밑에서 일할래, 죽을래. 그랬더니 걔가 뭐라고 했더라.

"악취미시네요."

서태웅의 대답에 정대만이 웃었고, 송태섭이 입을 다물었다. 송태섭은 천천히 총구를 내렸다. 어린 애새끼 찾아 와야 한다고 비밀기지에서 윽박지르던 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팀장님! 그는 죽었어, 송태섭. 그때는 정말 죽은 줄 알았다. 오늘처럼 꼬리가 잘린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송태섭은 제 옆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 좆같네. 서태웅은 그의 옆에서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정대만은 이제 송태섭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래? 송태섭은 총을 바닥에 내려두고는 입술을 짓씹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정대만은 그런 그들을 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 서태웅은 그대로 송태섭을 데리고 나서며 아무런 말이 없다가 화장실로 몸을 틀어 어디 한 구석으로 데려가 입을 틀어막고는 속삭였다.

"거의 다 왔어요."

"……."

"죽이고 싶잖아요. 나도, 저 사람도."

"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요. 거의 다 왔어요. 그의 말에 송태섭은 그대로 그의 멱살을 잡고는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죽여버릴거야, 모두 다. 서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젖기 시작하는 그의 뺨을 닦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송태섭은 입술을 짓씹다가 그대로 그의 입에 입을 맞추며 눈을 내리 감았다.

체크메이트. 완벽한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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