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태웅태섭]동거

*태웅태섭 전력: 동거

"저희 같이 살면 안 되나요?"

서태웅은 종종 가늠조차 어려운 말을 하고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꽁꽁 숨겨두고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내뱉는 말. 그의 말은 꼭 감기 같아서. 저는 매번 매순간 그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꼭 전염이 된 것처럼, 그렇게.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랑 같이 살겠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물으면, 그는 저만 알 수 있게 입술을 삐죽이며 부연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사귄지 오래 됐잖아요."

"그렇지?"

"그러면 같이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동거. 집에 누군가가 있고, 반겨주고, 체온을 나누는 그 무언가. 함께 집에 가는 길을 걷고, 함께 티비를 보고, 한 침대에 누워, 하루를 읊는 일. 그걸 서태웅과 함께. 거절을 할 수 있는 문제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오. 에 가까웠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의 말은 감기와도 같아서, 저는 그걸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한 명제와 같이.

"나랑 같이 살고 싶어?"

"네. 당신의 구역 한 부분을 차지하고 싶어요."

그는 한 번씩 제 마음을 꿰뚫고 들어섰다. 단단한 문을 잡아 당기는 대신, 몇 번의 노크 끝에 벌어지는 틈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한 구역. 한 부분. 내어준 마음이 모자라다는 말을 그는 길게도 했고, 뻔히 보이는 제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말을 저런 식으로 했다. 동거 제안은 제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선수를 뺏기고 말았다. 좀 얄밉네.

거절하면? 떠보는 말이 분명함에도 그는 눈을 끔뻑이다가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럼 기다려야죠. 준비가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대신, 제가 제일 잘하는 걸 하겠다는 말. 송태섭은 그게 참 좋았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 제게 주도권을 쥐여주는 그가. 고집을 부릴 때는 그만큼 세다는 것도 아는데. 그는 밀려나야 할 때와 고집을 부려야 할 때를 아주 잘 알았다. 노련한 선수마냥.

"안 불편하겠어?"

"미국에서도 붙어 지냈잖아요."

서태웅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참 잘했다. 어차피 같이 지내봐서 서로를 잘 알고 있으니 괜찮지 않냐는. 송태섭은 이제 더는 무를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늘 그와는 함께 지내고 싶었으니까. 먼저 미국에 가 있고, 그가 뒤이어 미국에 따라 왔지만. 먼저 갔던 시간만큼 먼저 돌아온 시간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전화선 넘어로 들리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체온을 나누고 싶었던 건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니 송태섭에게는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 누구보다 그를 원했으니까.

그래, 같이 살자.

씩, 웃으며 내리는 허락에 서태웅의 입꼬리가 옅게 올라간다. 아니, 조금 더. 아니다. 조금 더. 송태섭은 환히 벌어지는 입, 그만큼 솟은 광대, 살짝 찡그러진 코까지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서태웅은 가장 환하게 웃고 있다는 걸. 꼭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송태섭의 얼굴은 짙은 노을보다도 더 붉어진 채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영영 지워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늦었네요?"

이렇게 늦을 줄은 몰랐어. 밥 먹었어? 누군가가 집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채도가 바뀌는 경험. 송태섭은 신발을 겨우 벗고, 제 가방과 옷을 받아주는 이를 끌어안고 작은 숨을 내뱉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그에게 같이 살자고 말할걸. 아쉬운 마음은 지내는 만큼 채우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아쉬움은 점점 커져가는 듯했다.

힘들었어요? 다정하게 묻는 말에 고개를 내저은 그는 저를 매달고 다니는 그의 등에 붙어 발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서태웅은 그런 그를 매달고서도 가방을 정리하고, 빨랫감을 나누면서도 제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을 쓰다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송태섭은 널따란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그제야 눈꺼풀이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야 제가 힘들었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니까."

"네."

"힘들었던 것 같아."

송태섭의 어리광. 서태웅은 그의 어리광을 사랑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긋던 선이 없어진 것 같아서. 온전히 저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거냐며 부렸던 투정은 먼 이야기가 된 듯했다. 여전히 그는 혼자 끌어안고 있는게 많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은 제게 나눠주고 있으니까. 그것마저 서태웅은 좋았다. 그렇게 조금씩, 비에 젖듯이, 물감을 칠하듯이. 번져가면 되는 거니까.

일찍 자요. 아니면, 내일 쉬니까 뭐라도 해드릴까요? 서태웅의 허벅지는 이제 송태섭의 전용 베개가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그의 허벅지를 베고, 길게 누워 있으면 차분하게 내려온 앞머리를 매만지는 가벼운 손길과 적당한 낮은 목소리가 섞여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뭐 해줄건데? 느리게 흐르는 말을 기다려준 그는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그와 똑같이 느릿하게 답을 건네주었다. 저번에 좋아해주셨던 볶음 우동도 있고, 가벼운 토스트도 있어요. 요거트에 그래놀라도 있고요. 송태섭은 그제야 감았던 눈을 뜨며 팔을 들고, 여전히 흰 뺨을 톡 치며 장난스레 대꾸했다.

"서태웅은 없어?"

그의 말에 눈을 조금 동그랗게 뜬 그는 이윽고 옅게 웃으며 고개를 내려, 그의 얼굴과 뺨, 눈두덩이, 이마, 코끝, 턱, 피어스가 박힌 귓볼, 관자놀이, 머리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에 입술을 내리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걔는 후식인데요. 송태섭은 그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이제는 젖살이 다 빠져 날렵한 턱선만 남은 곳에 고개를 들고, 입술을 맞추고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 볶음 우동 먹을래. 서태웅은 그 말에 머뭇거림도 없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요리사님 좀 맵게도 되나요?"

"내일 속 아픈데."

나는 맵게 먹고 싶은데. 송태섭은 냉장고를 뒤지며, 대꾸하는 그를 빤히 보다가 느릿하게 식탁으로 향하며 툭 내던지면. 서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항상 송태섭의 말이면 다 들어주는 얌전한 연하였으니까. 부엌에만 불이 켜진 집안은 조금 어두움에도 그 누구도 어둡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몰랐고. 이 시간은 그 둘만의 시간이니까.

서태웅은 요리를 하면서 그가 오늘 하루 어땠는지를 물었고, 송태섭은 식탁에 앉아 요리하는 그를 보며 제 하루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고 나면, 그는 서태웅의 하루를 물었고, 서태웅은 가끔 식탁에 앉아있는 그를 보며 제 하루를 읊어주었다. 대부분은 서로의 생각에 곤란했다는 말이었고,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는 말이 대다수였다. 송태섭은 오직 저를 위해 움직이는 그를 보며 애정을 느꼈고, 서태웅은 그걸 모두 알고 있다는 것처럼 굴었다.

"내일은 우리 데이트 할까?"

"좋아요."

접시에 음식을 담고, 그의 자리에 놔준 서태웅은 맞은편에 앉아 가만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같은 팀원이 소개해준 곳이 있는데요…….

송태섭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옅게 웃어보였다. 이대로면 좋았다. 이대로가. 대단치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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