冥.
호명
트리거 워닝 : 유기, 갑작스런 이별, 상해, 죽음 암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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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범은 가만히 자리를 깔고 앉아 먼 곳을 응시한다. 코 끝이 찡긋거리는 꼴이, 썩 기분이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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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이 시작될 즈음. 피어나던 생명도 다시 고개를 숙일 만큼 아주 차디찬 겨울날이었다. 눈발이 휘날려 한 치 앞도 분간키 힘들었을 정도였으니. 그곳에서 명의 기억은 시작되었다.
색색거리는 가쁜 숨소리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그 힘을 잃어갔다. 결국 소리가 끊어질 즈음 - 그 때는 이름조차 없었으니, 어떤 명부에도 이름이 적히지 않았을 터였다. 하니 차사도 찾아올 리 없었고. - 염라조차 어린 범의 이름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차디찬 눈밭 속에서, 온통 하이얀 세상 속에서. 다만 유일했던 묵색 티끌은 생을 맞이하고도 해를 넘기지 못하고 그 끝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린 범에게 있어 행운일지, 불운일지 모를 일은 그때 일어났다.
“이런, 어디서 요상한 소리가 들린다 싶더라니.”
제대로 숨조차 쉬질 못하는 차디찬 - 허나 아직 온기가 남아 생의 불꽃이 꺼지지는 않았으리라. - 몸뚱이를 들어올려 제 품에 넣은 나그네가 없었다면. 어린 범의 생은 그것으로 종말을 맞았을 것이다. 그것이 상제의 호의인지, 이름모를 누군가의 변덕일지는 모를 일이다.
“얘야, 네 어미는 어디 가고 이리 홀로 떨고 있느냐.”
썩 안타까워 보였는지, 나그네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 묻어나왔다. 추위에 발갛게 물든 두 뺨에도.
나그네의 오두막은 따뜻했다. 구들바닥은 없었으나, 벽채에 붙은 난로의 열기로 가득했다. 적당히 몸을 데우니, 끊어질 듯 했던 숨소리도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듯 했다. 이 쯤 명은 생각했다. 이 괴이한 자는 - 인간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 당췌 누구길래 나를 돕는가. 제 부모조차 내 눈이 뜨이기도 전에 컴컴한 굴 속에 저를 버린 것이 채 보름이 되질 않았는데.
“오, 정신이 드느냐? 녀석. 혹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했느니라.”
말투가 꽤나 고상했다. 산골의 오두막에 사는 이 치고는 문장 깨나 읊은 자 같았고. 물론 어린 범은 그것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말마따나, 제가 눈을 뜬 이후로 처음 본 생명이었기에.
캑- 캐액-
잔뜩 갈라진 목으로 새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쩍 골아 추위가 아니더라도 금방 의식이 끊어졌을 것이다. 생의 측면에서 보자면, 어린 범에게 나그네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평범한 나그네가 아닌, 다름아닌 신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꽤 나중의 일이었다.
“이름은- 없겠구나. 이제 네 이름은 명이다.”
알아들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 눈빛에 이유 모를 애정이 묻어남은 알 수 있었다. 또한 그제서야 비로소 염라와 차사의 명부에 그의 생이 기록되었다. 그 생이 언제 종을 맞이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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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장난꾸러기 녀석! 게 가만 있지 못하겠느냐!”
어흥- 하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고, 노인의 노호성이 함께 온 산을 울린다. 애꿎은 날짐승들이 이게 웬 법석이냐, 싶어 푸드덕- 날아오른다.
“헥- 헥. 하이고! 저 놈 보게! 아이고! 다 죽어가는 놈 살려놓았더니, 아주 고얀 놈이 따로 없소!”
헤헹!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물론 한낱 호랑이가 사람 말을 할 리는 없었지만. 호랑이를 뒤쫓는 노인의 모습은 몇 년 전 나그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연유가 무엇인고- 하니, 어처구니 없게도 제 몸을 씻기는 것이 귀찮은 고로. 노인의 얼굴에 성심성의껏 낙서를 해 놓곤 도망치는 꼴이었다.
“요 천방지축 꼬맹이를 보았나! 내 이 나이에 이리 뜀박질을 해서야 되겠느냐! 썩 이리 오질 못해!?”
결국에 역정을 내고서야 끼잉… 하는 시무룩한 울음소리와 함께 노인의 곁으로 다가온다. 몇 년 새에 덜썩 커 버린 것이, 벌써 노인의 허리께에 제 머리가 닿아 있었다.
“어휴. 언제쯤 철이 들 것이냐. 요 맹랑한 꼬맹이.”
하며 허연 호랑이의 머리통을 꽁. 하고 쥐어박는다. 맹수를 대하는 태도치고는 퍽 겁이 없는 모양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어린 명에게는 아비같은, 노인에게는 손주같은 존재였으니.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사이였다.
“말은 언제쯤 배울 것이냐. 내 이리 열심히 가르치고 있건만.”
뭐… 바라는 것이 조금 과하긴 했다.
어린 범의 세상은 한 뼘 남짓의 눈밭에서, 나그네의 오두막으로. 오두막에서 온 산에 이르기까지 넒어지기만 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직 넓기만 하여, 어린 범은 종종 눈을 감았더랬다. 제가 무엇을 보는 지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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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나 이제 영물인데.”
“그럼 무엇하느냐. 여즉 맹랑한 꼬맹이이긴 매한가지이건만.”
부루퉁한 목소리에 예의 노인의 목소리가 퉁명스레 화답한다. 아웅다웅 못 잡아먹어 안달인 듯도 싶다. 그러면서 하는 모양은 주름이 자글한 손으로 정성껏 거대한 백호의 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돈하고 있는 것이었다.
“... 내 나이가 몇인데. 어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부루퉁한 목소리는 변하질 않는다.
“네놈 나이가 뭐 어떻다고?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정도껏인 것이다, 요 건방진 녀석아. 고작해야 삼백이나 살았을 녀석이.”
삼백이면 호랑이 치고는- 아니 어느 짐승과 비교해도 꽤 오래 산 것이지만, 노인의 입장에서야 갓 태어난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명이 이놈. 내 그렇게 정상에 소나무를 어여삐 가꾸라 일렀거늘!”
노인은 짐짓 역정을 내며 웃는다. 명을 데려왔을 무렵, 첫 봄날의 싹이 틀 무렵에 바위 사이로 심어둔 소나무 묘목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 말을 하면서도, 늘상 묘목을 돌보는 것은 노인의 일이었다. 그야 호랑이의 손으로는 묘목을 해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으니.
“아, 할배 잔소리도! 걔야 알아서 잘 크고 있잖수? 곧 있으면 나랑 말도 하겠더구만.”
심드렁하니 답하는 퉁명스런 목소리에는 불만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나름 제 친우랍시고 구해다 준 것이, 소나무라니! 적어도 짐승이길 바랐건만. 나무는 말도 안 통하지 않는가. 뭐 슬슬 나무도 삼백이면 영기가 어린다고, 가끔 둥치에서 잘 때에 그늘을 덮어주는 듯도 싶었다.
“어허 이놈. 네가 어여삐 가꾸어 주고 돌봐 주어야 그 아이도 네게 말을 걸어줄 것이 아니더냐. 목령은 섬세한 존재라 몇 번을 일렀건만!”
그 즈음 노인이 한 그루 한 그루 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이 커다란 산을 뒤덮고, 하나의 숲을 이룰 만큼이었다. 아직 그 크기가 다 자라지 않아 여전히 가꿈이 필요해 보였지만.
“아, 알겠다고! 거 할배 지치지도 않아? 아주 잔소리만 시작했다 하면 끝이 없수.”
“끌끌. 건방진 녀석. 내 염라를 뵙는 앞에서도 기어코 네놈 잔소리만 늘어놓을 터이니, 소용 없음이야.”
노인은 퍽 섬짓한 소리를 하면서도, 낄낄 웃는다. 그 꼴을 상상했는지, 명은 몸을 부르르. 하며 떤다. 이 괴팍한 할아방탱이. 참말로 그럴 법도 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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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감탱이. 그리 평생을 함께 할 것 처럼 말해 놓고는. 아주 홀랑 산신자리를 넘기곤 선계로 떠나버리다니! 거 책임감이라곤 쥐뿔도 없는 노인네. 콱! 천존께 꿀밤이나 맞아버리라지. 벼락이라도 맞아버려라지!
온갖 저주를 씨부렁거리며 애꿎은 돌맹이나 발에 채이는 대로 뻥뻥 차는 것이, 아주 심통이 제대로 난 성 싶다. 어떤 연유인고 하니, 줄곧 함께할 것 같던 노인-당연하게도 신선이었다.-이 홀라당 산신의 자리를 벗어던지고, 선계로 달아나 버렸다나.
“... 꼬박 천 해를 지겹게도 함께했건만. 할아범은 늘상 제멋대로구려.”
이제 제법 나이를 먹었다고, 고상하게도 말을 한다. 하늘에서 어쩐지 요놈아- 그리 말해도 아직 꼬맹이니라-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싶다.
“영감탱이.”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산신의 업을 이어받는다. 신령스런 기운이 명의 몸을 감싸고, 손에는 전에 없던 흑색 접선이 쥐여졌다. 예의 노인이 쥐고 다니던 접선과 똑 닮은 모양이었다.
“허연 범에게 흑색 접선? 할아방탱이 취향 한 번 고약하구만.”
다시 혀를 차지만, 행동은 소중히 접선을 접어 제 품 속에 갈무리한다. 이 또한 간직해야 할 노인과의 시간일 터였다. 터덜터덜 걸어가 노인이 있던 오두막에 들어섰고, 명의 눈에는 수상한 쪽지가 들어왔다. 당연히도 노인의 필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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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명이 보아라.
내 천존의 부름을 받아, 부득이 네게 산신의 좌를 일찍이 물려주게 되었구나. 네 친우, 송명에게도 말 전해 다오. 내 바삐 올라가게 되어 천천히 인사 나누지 못해 미안하구나.
몇 가지 당부할 것이 있으니, 꼭 마음에 새겨 행하도록 하여라. 마지막 가르침일 지니.
(앙큼한 표정의 수염을 기른 노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첫째로, 끼니는 잘 챙기거라. 네녀석에게 살생을 멀리하라 그리 일렀지만, 무얼. 호랑이는 고기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허니 꼭 거르지 말고 챙겨먹도록 하여라.
둘째로, 네 아래의 아이들에게 항상 따뜻하거라. 네겐 그저 많고 많은 아이들 중 하나이나, 그 아이들에게는 네가 유일한 산군이자 이제 산신일 터이니. 후후. 내 잘 가르쳐 두었으니, 이것은 걱정일랑 하지 않겠느니라.
셋째. 지켜봄을 소홀히 하지 말거라. 신이란 본디 모든 이를 굽어 살피는 자이니라. 네녀석 또한 신 - 산신도 신이니라. - 이니 말이다. 또 하물며 네놈은, 거 하늘을 퍽 좋아하지 않느냐. 땅 위를 달릴 녀석이 별길을 달려서야 원. … 뭐, 그렇게 되었으니 어쩔 도리야 없다만. 그런 김에 온 세상을 굽어 살피어 주거라. 이는 내 개인적인 부탁이란다.
넷째. 이는 중요하니 필시 마음에 새기도록 하거라. 어떤 것도 결코 네 부덕이 아니니라. 그저 그런 명운인 것이고, 그리 정해져 있는 것들이니.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여라. 모든 업은 결국 돌고 돌아 제 스스로에게 돌아오니라.
마지막으로. … 이거 원. 지면으로도 꽤 부끄럽구나.
…
사랑한다, 아명아.
못난 할애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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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은 한참 말이 없었다. 가면 간다, 인사라도 하고 갈 것이지! 하고 역정을 냈던 것이 무색하게도, 거 어차피 갈 거면 곱게 사라질 것이지. 끝까지 잔소리는. 하며 투덜거린다. 하여간에 빌어먹을 영감탱이.
“끼니, 아이들에게 따뜻할 것. …지켜봄. 또한 지켜봄.”
정말로 마음에 새기듯이 중얼거린다. 그래도 제게 나름 막중한 책무를 맡겨 주었으니, 보란듯이 잘 해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세상을 지켜보는 것은, 그의 오랜 취미였으니. 허나 이것이 그에게 지독한 굴레이자 업보, 크나큰 죄가 되어 그를 둘러싸게 될 것은 모를 일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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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쉭, 쉭! 예끼 이놈! 저리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구렁이 한 마리와 대치중인 명. 언젠가의 오후였다. 가을이라 하기에는 조금 늦고, 겨울이라기엔 아직 따스한 - 딱 이맘때 쯤의. - 시기였더랬다. 구렁이의 아가리 앞으로는 다친 듯 보이는 작은 다람쥐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여즉 숨은 끊어지지 않은 듯, 쌕쌕- 힘겨운 숨을 이어나갔다. 제 산에서 살생을 금한 지가 언제인데. 감히 옆 산에서 흘러들어온 구렁이 따위가.
“그 작은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부모로 모자라 그 아이마저 노리느냐! 썩 꺼지거라! 썩-!”
노호성을 내지르자, 산군을 거스르는 것은 역시나 부담스러웠던 구렁이가 연신 쉿쉿대며 물러났다. 대번에 달려가 다람쥐를 제 품에 안아들었고.
“썩 물러가거라. 내 이 아이를 보아 따로 벌하지는 않을 터이니.”
맹수의 서슬퍼런 눈동자를 스산히 빛내자, 억울하다는 표정의 구렁이가 스스슥- 하며 사라진다. 그도 퍽 억울할 터였다. 뱀이 쥐를 잡아먹는 것이 어디 문제이던가.
다만 그것이 명의 산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서슬퍼런 눈빛으로 구렁이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그 방향을 노려보다, 아차. 하며 제 품의 다람쥐를 살핀다.
“아이야, 아이야.”
연신 아이야, 하고 부르며 의식을 찾는다.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 자그마한 몸으로 노력하는 성 싶었다. 가여운 아이야. 네 이제 부모도 없이 어찌 살아간단 말이냐. 이리도 작은 아이가.
허리춤의 부채를 펼쳐 조심스레 바람을 부쳐 준다. 천기에 반하는 일이나, 선계의 영감이 알아서 막아 주겠지. 하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지껄인다. 영감탱이. 자네가 한 짓거리를 그대로 하고 있으니, 내 욕은 말게. 흥.
한참을 바람을 부치자, 조금씩 가쁜 숨이 잦아든다. 이내 새근새근 편안한 숨을 내쉬는 것을 보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야. 내 네게 생을 주었으니, 이제 내가 네 아비가 되겠구나. 아니, 할아비일까. 다시금 소중히 미물을 품에 안아들고는 제 굴로 향한다. 본이 호랑이인 지라, 가옥보다는 굴이 편하다는 것이 이유렸다.
“아이야, 오늘부터 네 이름은 율이다. 알겠느냐.”
그 날이 꼭 음력 10월 1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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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 할배!”
아직 앳된 목소리. 이제는 만년송이라 불리우는 거대한 소나무 아래서 곤히 잠을 청하는 커다란 호랑이에게 다가서는 아이의 모습이 퍽 귀엽다. 머리통 위로 동글동글한 갈색 귀에, 등 뒤로는 퐁실한 꼬리가 제가 다람쥐라는 것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이 살랑거린다.
“할배!”
허나 불러도 답이 없다. 깬 기색은 역력하나,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할배 잔다.”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백호의 말에, 대번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뚱한 표정을 짓는 아이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재미난 생각이 났다는 듯 씨익 웃는 아이였다.
“흐흐흐…”
조용히 돌린 고개 쪽으로 총총 걸어가더니, 냅다 백호의 수염을 잡곤 확! 뜯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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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내 수염이 짝짝이가 되었지 않느냐. 요 맹랑한 꼬맹아.”
꽁! 꽁!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화한 명이 연신 율의 머리통을 두들긴다. 아, 이제는 율선생이다. 제 나름대로 신선이랍시고 선생 자를 붙였단다.
“아야, 아야! 아프다니까 할배!?”
“요놈아, 여즉 반성을 못했구나! 요놈, 요놈!”
영 화가 풀리질 않는지, 다시금 머리통을 두들긴다. 울상으로 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꼴이, 퍽 우습기도 하다…
“그러게 부를 때 곱게 대답하면 좀 좋아? 아야! 아프다고!”
여전히 반성은 없는 모습이다. 맹랑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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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간의 상념이 끝나고,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다. 제 눈앞에 흘러가던 많은 것들이 살며시 사라져 간다. 지켜봄이란 눈을 감아도 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히려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하게도 느껴졌다. 언제부터였는지, 눈을 감고 있자면 세상의 희로애락이 선명히 느껴지곤 했다. 그것이 발전하여 온 천지가 눈에 선해지게 된 것이 대략 오천 해 쯤 되었으니. 인세에 그가 모르는 일일랑 없다 하여도 무방했으리라.
“...”
드물게도 명은 말이 없었다. 본디 잔치가 아니었다면 제 굴이나 만년송 아래에서 벗어날 일조차 없는 자였으니. 드물다는 말도 틀린 말이겠다. 오히려 이맘때야말로 그가 드물게 소란해지는 때였으니.
“할아범. 오늘따라 그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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