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노트를 위한 거
BL을 도전
제목: 너와의 계약
어느 평범한 일상 중 하나였다. 언제나처럼 편의점의 물자를 옮기던 중, 낯선 이가 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탁 석웅,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나는 누가봐도 음침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국인답게 새까만 머리카락, 눈을 거의 가리는 앞머리 길이. 정돈 되지 않게 잘려 목까지 덮었다. 이런 음침한 모습과 같게 대인관계도 좋지 못하다. 애초에, 내가 사람을 믿는 성정은 아니기도 했고. 그래도 나름 착실하게 살고 있다. 제대로 된 취업은 못했지만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웬 아르바이트냐고? 그야 그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요즘은 대부분 ‘이능력’이란 것이 생겨 갑자기 나타난 던전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 ‘헌터’라는 직업이 대세니까. 하지만 각성 급이 낮고, 각성조차 못한 사람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 나는 급이 낮은 헌터에 속했다. 그래도 힘이 좋아 커다란 짐을 옮기는 직업엔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이거로 돈을 다른 사람보다 더 받아 눈총을 받긴 하지만… 나름 이것도 타고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나도 마음에 걸리지만 나도 살아야하긴 했다.
그렇게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드디어 찾았다. 날 배신하고 가더니, 이런 일이나 하고 있어?”
영문 모를, 새하얀 사람이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예?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지금 나 모른 척 하는 거야? 내 얼굴을 까먹었다고?”
내가 알던 사람인가? 아니, 하지만 저런 얼굴을 가진… 그러니까 누가봐도 이쁘고 곱다 생각할 새하얀 사람을 쉽게 잊을리 없을텐데.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니 상대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나를 빤히 봤다. 그러곤 이상하다, 왜지? 어쩌면… 같은 여러 혼잣말을 한 뒤에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나타나서 나에게 아는 척을 하더니 이젠 나를 두고 자기 세상에 빠져있다니.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어쨌든 결론이 난 것 같으니 이만 가도 되냐는 말을 하려는 순간 저쪽이 먼저 빨랐다.
“그럼 나랑 계약하자.”
“아, 네.”
대충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고, 당연히 잘못 봤다는 말이 나올 줄 알고 대답한 건데. 음?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네? 계약이요?”
계약이라니. 갑자기 무슨? 요즘 새로나온 사기 수법인가. 하지만 이런 거로 먹혀드는 사람이……. 어쩌면 그의 얼굴만 믿고 이렇게 허술하게 하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뜩 들고 말았다.
“뭐야? 네라고 답했잖아?”
“그건 무심코…….”
상대가 고운 얼굴을 찌푸린다. 먼저 이상한 말을 한 건 저쪽인데 왜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곤란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당최 알 수가 없다.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흘끔 눈앞의 이를 바라보다 살짝 뒷걸음질 했다. 그러자,
“어디가. 나는 가도 좋다고 말한 적 없는데?”
덥썩, 상대가 내 팔을 잡아챘다. 어찌나 힘이 쎈지 들고 있던 상자를 떨어트렸다. 아, 이거 내가 물어줘야하는 거 아니야? 내가 깨지기 쉬운 걸, 뭉개지기 쉬운 걸 가져왔던가. 아니… 이건 상대가 책임져야 하는 거…….
“내 말 안 들려? 나 무시하지마.”
생각의 꼬리를 물다 다시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들어 상자에게서 상대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가까이서 보니 속눈썹이 굉장히 길고, 눈의 색깔도 빛나는 것처럼… 그래, 마치 유리구슬을 박아놓은 듯 이뻤다.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부터 드는 건 이상하지만서도.
“그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계약이라뇨…?”
나의 질문의 그도 드디어 아, 하는 소리를 내고 표정이 풀어졌다. 강한 힘으로 잡고 있던 팔목도 풀어주고. 하지만 빨간 자국은 남아버렸다. 상대도 헌터인가? 급이 높은? 그러면 어차피 지금 도망쳐봤자 좋을 게 하나 없다. 어차피 뿌리치지도 못할테니까. 저절로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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