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왜 겁부터 먹고 그래?”

설이도 19 돌격소총

177cm 표준

쾌활한 강직한 고집쟁이 시원한 침착한 그러나 호전적인

차가운 두뇌 뜨거운 심장 브레이크 없는 레이싱 카

(1) 177cm 검은 머리 백색 눈 왼손 검지에 은반지

(2) 8월 2일생 사촌 천세희(16기 흑귀반 - 생존)

(3) 신체 능력 우수 - 빠른 기동성과 순간적인 화력이 특기

(4) 好: 홍삼캔디 민트초코 손바느질 | 不好: 장마 팥

어린아이는 가끔 기상천외할 정도로 충동적이고 무모한 판단을 내린다. 열하나의 설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16기 흑귀반 생존자 천세희. 그는 설이도의 사촌이자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한 살 많은 세희를 누나처럼 따르던 이도는 2016년, 천세희가 흑귀와 계약하며 처음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열하나의 설이도는 오열하는 이모와 그의 등을 토닥이는 엄마를 방문 뒤에 숨어 지켜보았다. 그렇게 작은 애가 어떻게… … 하필 흑귀와 계약을 해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던데. 어린 나이에 듣기에도 심상치 않은 문장이 연달아 쏟아졌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아직 어려웠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희가 엄청나게 힘든 곳으로 가버렸다. 요괴한테 괴롭힘당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곳이랬다. 거기서 어른이 될 때까지 버텨야 한댄다. 하지만 죽을때까지 같이 놀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은 꼭 지키고 싶은데. 나도 그 학교에 들어간다면 세희랑 계속 놀 수 있을 텐데.

영특한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뜨거운 심장.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는 거침없이 날뛴다. 열셋의 설이도가 가진 재능이자 저주였다.

그날부로 옛살비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이 섰으나 요괴와의 계약은 인간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친에게 그 방법을 물었으나 괜한 소리 하지 말라며 꾸중을 들었다. 설이도는 매일 밤 요괴와 계약을 하게 해달라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러는 사이 두 해가 흘렀다. 세희가 속한 16기는 벌써 2반이 되었다. 같은 반이 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설이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도 함께 작전에 나갈 수 없게 되었는데도… 같은 학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무모함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열셋의 설이도에게도 요괴와의 계약 기회가 주어졌다. 의외로 반대는 심하지 않았다. 2년의 기도를 지켜보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판단한 것인지… 설이도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옛살비의 옥상으로 향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즈음에는 제 신체에 꼭 맞는 크기의 돌격소총이 품에 안겨 있었다.

세상에는 오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열아홉의 설이도는 아직 이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어린시절의 낙관론은 16기 흑귀반이 작전에 투입되던 날까지도 버리지 못했다. 천세희가 생환할 확률보다 부고로 돌아올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그 확률에 자신은 일절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차가운 현실을 깨달을수록 오기와 반항심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었다. 설이도의 열정은 푸른 불꽃과도 같아서, 부드럽고 침착하게 타오르다가도 어느 지점을 넘으면 큰 폭발로 이어졌다. 그 발연점은 십중팔구 그가 마음에 품은 이들과 관련이 있었다. 가족, 천세희, 18기 아이들. 설이도는 그들에게 깊은 정을 품었으며 그들의 앞날이 순탄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들의 사건 하나하나에 제 일인 것처럼 함께 울고 웃었다. 특히나 6년의 시간을 함께한 18기 아이들은 더욱 각별했다. 벼락치기 하는 친구에게 여태 공부 안 하고 뭐했냐며 잔소리 하면서도 과외선생을 자처했던 것, 요괴에게 시달리는 룸메이트의 손을 밤새 잡아주었던 것, 사감 선생의 눈밖에 날만한 행동을 몰래 눈감아준 것… … 딱딱할 정도로 원칙주의자인 그였으나 18기 앞에서는 호쾌한 기분파에 가까웠다.

그렇다. 18기가 자주 잊어버리고는 하는 사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설이도는 FM에 가까웠다. 반복되는 훈련과 시험, 교육과 단체생활이 체질이 녀석이었다. 요괴에게 유난히 시달린 날만 아니라면 덤덤하고 조금은 가뿐해보일 정도로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자신에게 엄격한만큼 타인에게도 엄격해서 사감 선생 다음으로 잔소리가 많은 사람으로 통하기도 했다. 요괴를 대할 때도 다를 게 없어서 그와 계약한-날개 두 쌍이 달린 백발백안의 미청년-요괴에게 교내에서는 비행 금지라며 잔소리를 퍼붓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한숨도 못 자게 해주겠다는 요괴의 협박도 코웃음으로 넘기고는 했다. 근거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설이도의 요괴는 비교적 온순한 편에 속했으며 설이도는 그의 공격을 버틸만한 정신력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언제든지 영혼이 먹힐지도 모른다는 위험만 없다면 둘의 사이는 허물없는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천문대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도 안 돼.”

“수학여행 내내 잠도 못 자게 해주랴?”

“이거 봐, 또 궁시렁거린다. 안 되는 건 안 돼. 문화재라고.”

헬기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언제나처럼 실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언제나와 같은 하루였다.

그 즈음 16기의 소식이 들려왔다. 천세희가 살아있다는 소식도.

소중한 이의 생환에 사로잡힌 시야는 이번 작전의 사망자가 생존자의 3.5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열아홉의 설이도는 여전히 시한폭탄과도 다름없는 낙관론을 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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