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ㅈ (범사에 그를 인정해)

예수는 오지신 분 (오지구요)

예수는 진리신 분 (진리구요)

나를 창조하시고

사랑의 본체이신 주

ㅇㅈ (범사에 그를 인정해)

ㅇㅈ (범사에 그를 인정해)

주는 나의 모든 것

나의 최애 되신 주님 ……. ₁

₁CPR 「오진 예수」中


“뭐든 인용하며 활용하기 나름인지라….”


(아이브 레이)

#페르소나存續골든타임 #浮遊리미노이드 #메타몰포시스이론

명휘연

2-8(18) 

연극영화과 ─ 연극 전공

F / 165 / 52


“금주의 달성 미션은 테이블 워크입니다. 찬양 연극 발표가 단 열흘 뒤거든요.”

테이블에 둘러 앉은 십대 청소년들 사이, 가느다랗다 못해 뼈마디가 고스란히 드러난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는 여자애. 청년부 리더인 A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언권 하사한다.

“질문이 있는데. 열흘 밖에 안 남았는데 테이블 워크를 지금에서야 하는 건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딱히 바른 수순이 아닌 것 같은데요.”

수준 미달의 공연을 올릴 바에야 그냥 없던 셈 치고 밴드 세션이나 부르지 뭘. 느린 하품이 정적과 함께 지속되다 일순간 뚝 끊긴 것은 A의 당황한 헛기침이 장내를 울렸을 때였다. 당황보다는 분노가 맞는 표현 같았다. 그의 얼굴은 곧 터질 것 같은, 잔여 시간 일 밀리초의 시한 폭탄과 비슷한 색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주의 어린 양께서 감히 제기한 질문. 그것도 곧 다가올 신년에, 명망 높은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인 소위 전공자의 지적이라는 것은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주 예수에 대한 사랑과 사회적 명성 앞에서 들이닥친 딜레마 상황. 현대 사회에는 아주 편리한 도구인 다수결 투표라는 것이 존재했으나 실질적으로 이 공동체는 한 명의 의장과 발언권 전무하다시피 무력한 골빈 청소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니 건방지게, 한국인 답지 못하게 손가락 다섯 개 모조리 피지 않고 검지 손가락 오롯하게 든 채 문제를 제기하는 여자의 존재는 이단의 탄생과도 같은 것. 

“큼!”

인사치레와도 같은 헛기침이 표결의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결말부 : 발언권 기각과 함께 청년부 위원 명휘연의 명예 사퇴. 입교의 목적은 명분이고, 결국 코뮤니타스에 융화되지 못하고 홀로 발광하는 리미노이드의 고치를 벗어던지지 못한 예술인의 말로였다. 신앙 앞에 이기는 사람 없는 것이 아니고 제멋대로 그것을 명분 삼아 알량한 권력 행사 해대려는 반푼이들의 정치판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안도한 것은 아주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모 교회 청년부 사이에서 오래도록 떠돌았다. 잊혀질 권리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추진력을 잃고 시들해져 마모될 때까지. 고리타분한 CCM의 밴드 편곡과 상투적인 찬양 말씀 아래 모서리가 닳은 성경책을 읽는 것은 따분해지던 참이었다. 성경을 너무 오래 붙잡은 채 골몰하다보면 곡해가 믿음이 되고, 눈이 머는 것에 비례해 맹신은 두터워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신뢰와 신앙 아무튼간 信와 神이 붙은 것들은 영 못미덥다는 결론에 다다랐음에도 향하는 발걸음이 모든 것을 포용할 거대한 공동체 속으로 파고들게 된 것은 아주 명백한 아이러니가 될 것이다. 

“학교 온다고 새로 산 신발인데. 뭘 좀 밟은 것 같애.”

“신발 밑창을 확인해 봐.”

“깨끗하네.”

“알베르 카뮈가 되려하지 말라.”

“『불행』개그는 재미 없어졌어.”

고리타분한 제목을 사용해 말장난 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빛이 바래는 것처럼 오래된 희곡은 필연적으로 현대적 해석을 거쳐 작가에게 잉태되기 마련이었다. 무대 위 재구성은 때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신념을 다루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면 아주 새로워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환골탈태 하여 본연의 의미를 잃는 경우 허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구성하는 새로운 신앙에 대해 고찰해보자면 시대를 타고 구전되는 것들의 형태가 훼손되지 아니하고 견고한 피조물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주 미세해서 알아볼 수 없는 미묘한 변화들을 알아채지 못하는 건 어쩌면 자신이 아닐까. 불신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불확정 형태의 자아, 유사어로 대체해 문장을 재구성. 슬럼프. 존속되던 페르소나의 전복. 필연적 리미노이드의 출현으로 미루어보자면 이것은 어떤 통과 의례였을 것이다. 이름을 명명하기엔 대표성을 상실하여 그저 무명의 제의로 일컬을 수밖에 없는 부유의 연속. 

천재의 고뇌는 이런 느낌일까?

자만해본다. 기숙사 침대에 온 몸을 부서져라 던진 채로. 삐걱대는 매트리스가 숨을 죽인 것에 대해 책임을 아주 면피한 채로. 푹 꺼진 덴트의 문양을 따라 허리가 꺾인 채로. 

“골몰하지 마. 관둬.”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고뇌는 신께 얘기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나?”

“아마도. 그러니까 온전히 몸을 맡기라고.”

“어디로 투신하면 좋을까?”

“이 땅에.”

“맨 땅에 헤딩을?”

“뒤지지 않을걸. 높은 곳에서 낙하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 꺼져버려.”

“꺼질 곳을 네가 막고 있어서 못 가.”

띵. 녹음의 끝을 알리는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2009.01.01 녹음파일 01 : 위치 강원도 횡성군 신성호…」가 저장된다. 다이얼로그가 아니라 모놀로그임이 밝혀지는 것은 막의 가장 끝에서. 

그리고 커튼콜.

침대 위에 우뚝 선 채로 부스스하게 일어난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헤집으며 손질한다. 안경이 제멋대로 이탈하지 않게 중지로 지탱한 뒤 구십 도 각도로 인사. 볼륨 제로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백스테이지로. 암전. 

파편화된 페르소나를 발산하며 사는 삶이라면 고리타분한 신(믿음 or 전능자)과 함께라도 괜찮은 것 같다. 가끔 (고해할 수 없는 것) 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끼지만.



⑴ 明輝衍 921002 RH+B

⑴-1 경기도 용인시 출생. 이후 서울시 성동구로 가족이 이주하여 신율예고 입학 전까지 생활했다.

⑴-2 시립 수석 무용수였던 발레리노와 인문학 교수의 결혼은 혼후 곧바로 이어진 발레리노의 은퇴선언으로 불필요한 말을 들어야만 했다. 누군가는 비난의 돌을 던지던 시기에 휘연이 태어났다.

⑴-3 형제 없음. 덕분에 관용은 부족하고 제멋대로 기질을 억누르지 못한 채 자랐다.

⑴-4 심한 난시로 안경과 렌즈가 없으면 수업 참여가 어려운 수준이다. 

⑴-5 모태 신앙은 개신교. 다만 청년부의 워십 연극 워크샵이 아니면 출석이 제멋대로였다. 

⑵ 신율예술고등학교 2008 신입생을 환영합니다

⑵-1 신율예술고등학교에 일반 전형으로 입학. 

⑵-2 특별반 입반 시기는 2008년도 1학기.

⑵-3 입반 사유는 별 것 없다. ‘특별’반이니까 이상한 사람 많은 집단일 것이라는 생각에.

⑵-4 2009년도 특별반 부반장. 

⑵-5 연극영화과 부대표를 역임 중.

⑵-6 특별반 문양은 왼편 손목에 새겼다.

⑵-7 특별반 소속이 됨으로 인해 ‘신수재림교인’이 되었으나 실상 이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느끼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앙에 대한 구분으로 인해 생긴 해프닝 보다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에 큰 애착이나 관심을 주지 않는 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⑶ Dramaturg · Run-Through · Backstage Signs

⑶-1 연극영화과 연극 전공. 각본과 연기 및 연출에 모두 관심 있는 편으로, 사유를 규명하자면 ‘연극은 모든 것을 잘해야만 하는 예술이라’는 믿음이다. 형이상학적 독백이 돋보이는 무대를 자주 올리는 편이며 일인극 또한 자주 연기한다. 창작극보단 각색극에 흥미를 보이는 편이다. 각색에 대해 제한이나 형식을 지키지 않는 일이 허다하여 궁극적으로 옛것의 이름만을 빌린 창작극이라는 지적을 자주 받고는 했다. 

⑶-2 2008년도 연극제에서 신입생 신분으로는 과감한 시도를 단행했다. 총 150분 길이의 일인극을 준비하여 무대 동선과 변형을 포함한 대사와 행동 지문, 나레이션을 홀로 소화하여 최우수상 석권에 성공했다. 

⑶-3 2008년도 서울시에서 개최한 아마추어 연극제에 연출 및 배우로 참여하며 우수상 수상. 당시 스스로 꾸린 극단 ‘카뮈가 되지 말라’는 말버릇 처럼 달고 다니던 농담 아닌 농담에서 기인한 이름이다. 특유의 난해하고 현대적인 접근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관한 각색이 과장된 호평과 사나운 혹평 모두를 긁어모았다. 

⑶-4 2009년도 하반기 대한민국 연극제 출전을 목표로 강원도청 소속 연극단의 일원이 되었다. 금번의 무대에서는 배우 외 다른 직책을 맡지 않았다. 교내 극단 활동과 추계 공연 준비 또한 진행되고 있어 그런 것으로 보인다. 

⑶-5 연극부 소속. 극단 ‘카뮈가 되지 말라’는 동아리 내부 공연을 위해 형성된 소그룹으로, 당시 대외 활동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⑶-6 여러모로 과내에서 주관이 지나치게 또렷한 예술가 타입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최소한의 소통을 위한 노력은 기울이는 편이며, 예술관이 맞다고 간주할 시 셩격의 상성과 무관하게 제멋대로 친애의 감정 가지고 다가가는 경우 허다하다. 반대로 마음이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예술적 신념이 어긋나면 불같이 싸우고 잽싸게 화해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null_

(∞) 5회의 카르마. 6회차의 인생. 

(∞) 세번째 드라마 리허설과 네번째 런스루. 잔존하는 기억의 전부다.

(∞) 네번째 런스루 도중 스스로의 작업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공연 철회했다. (당연하겠지만, 작업물은 곧 = 인생.)

(∞)+1 = 0

(∞)+1 가지각색의 안경들과 검은 곱슬 머리 

(∞)+1 창백한 안색과 죽은 안광

(∞)+1 새파란 동공은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심해처럼

(∞)+1 새까만 발목 양말 그리고 앞코가 더러운 갈색 구두

(∞)+1 왼손 잡이



가제 : 썩은 시체가 고향의 문을 두드렸다

2011(5) 대학 입학 후 벼락같은 신춘문예 달성은 곧바로 명휘연을 서울 소재의 중극장 당선작 초연으로 이끌었다. 당시 당선되었던 작품은 『소소한 죽음을 뇌까린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이니셰린의 밴시’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하여 창의적인 죽음에 대한 변명과 유머를 담아냈다는 평이었다. 

2014(5) 극단 『부유』입단. 대학 졸업 직후의 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재학할 당시 쌓았던 수상 실적이나 경력 차치하고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행보에 대한 주변인들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낡아빠진 소극장에서 본격적으로 입봉작을 올렸다. 연극 『갈매기』에서 마샤 役 을 맡았다. 

.

.

2016(5) 연극 배우 ‘명휘연’이 일순간 자취를 감추고 행방불명 됐다. 최측근도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7(5)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뜬금없이 명휘연의 목격담이 들려왔다. 진위여부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깨진 사진 한 장.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2018(5) 신춘문예 작품을 실었던 출판사 앞에 원고가 발송됐다. 제목은 『카뮈가 되지 말라』. 지은이 명휘연. 일종의 회고록이었다. 재판은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은 누락되어 행방이 묘연한 명휘연이 생존해있다는 유일한 증거인 그 책은 전국 각지에 비치되었다. 

.

.

2024(5) 명휘연(으로 추정됨. 시체 훼손이 극심하여 신상 확보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다.)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 『카뮈가 되지 말라』의 전례 없는 흥행으로 귀국길에 올랐던 명휘연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 2024년 05월 10일의 사고였다. 그녀의 시신은 유가족에게 무사히 인계되었고, 장례식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Side TRACK : 외면은 변형되어 결국 불행이 된다

2024(4) 명휘연(으로 추정됨. 시체 훼손이 극심하여 신상 확보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다.)이 출판사 앞에서 분신자살했다. 모든 직원이 출근한 시각인 오전 열 시. 타르와 신나를 뒤집어쓴 탓에 쉽게 불길을 제압할 수 없어 약 삼십 분간 연소했다. 사망추정 시각 2024년 7월 15일 오전 열 시부터 열 시 반 사이.

“죽음이 다가올 때를 깨달은 것 같아.”

“마치 이니셰린의 밴시처럼.”

“등이 굽진 않았지.”

“할머니도 아냐.”

“음흉한 건 비슷하네.”

“기억해. 그리고 이 모든 걸 승화시킬 방법을 떠올리면 돼.”

“제일 잘하는 방법으로.”

“…….”

Comment on the Drama : Words from Dramaturg (Who?)

2011(1) 대학 입학 후 중앙 연극 동아리 『소실』 에 입단하여 대한민국 대학연극제에 참가했다. 각본과 연기 분야에 참여해 만든 창작극 『고꾸라진 비극에 대하여』 는 여러 호평을 불러 일으키며 명휘연의 커리어의 시작을 밝혔다.

2015(1) 대학 졸업 직후 학교 선배의 제작사와 계약을 체결하며 극작가이자 배우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소극장과 중극장을 넘나들며 때로는 패기있고 언젠가는 오만하며 가끔은 끔찍한 행보를 보였다. 여러 평가가 명휘연을 구성했다.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중론은 ‘심오한 인디의 매력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2017(1) 돌연 미국 유학을 택했다. 다양한 극장 문화와 전혀 다른 창작 환경을 마주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연극에만 국한되지 않은, 확장된 ‘행위 예술’에 골몰하며 자신의 분야를 넓혀갔다.

2018(1) 자신의 첫 상업극 『꼴사나운 ‘카니발’ism』 과 함께 귀국했다. 성공적인 초연을 올린 것과는 달리 이후 재연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

.

2022(1) 연극 무대를 벗어나 매체 연기에 도전한다. 부천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30분 가량의 흑백 모놀로그 영화 『하소연』 . 감독은 휘연의 열일곱 연극제에서 올린 일인극의 독백을 인상깊게 봤다고 말했다.

2024(1) 이후 다시 연극 활동에 전념하다 7월 경 동쪽 해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둔기와 같은 치명적인 무기로 후두부를 가격당한 것. 사망 시기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시체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2011(2) 이하 동일

.

.

2024(2) 7월 경 동쪽 해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날카로운 것으로 급소를 찔려 발생한 과다 출혈. 사망 시기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시체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2011(3) 이하 동일

.

.

2024(3) 7월 경 동쪽 해안에서… (이하 동문. 한편, 동일 시각….)

“잠깐. 이대로 죽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네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아.”

“아, 맞네. 난 이미 죽었지.”

“너무 죽었지.”

“주마등을 스쳐 지나가는 이 대화독백를 기억해.”

“난 정말 카뮈(의 마르타)가 되어버렸구나.”

“전복시켜!”

“겨우 죽음을?”

“겨우 죽음을.”

UNRecorded DiaMonologue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