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믿음에 관한 메르헨

잡탕 by 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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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죽음만이 가득한 땅에 축복을 내리사 인간을 굽어 살피소서. 주여 어린 양을 갸륵히 여겨 원죄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 주여….

우리를 구하소서.


에링스도르프는 독일의 작은 마을 중 하나이다. 주민들의 수를 모두 합해 이백여 명 남짓한 시골. 이곳에 패리쉬 성당은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성당은 언제나 신도들로 가득하다. 주일 예배는 어느 누구 하나 빠지는 법이 없다. 물론, 그들 모두가 종교에 열광적인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한 인물 때문에 그렇다.

“좋은 아침이에요, 미카엘 신부님.”

“네, 좋은 아침입니다. 안나 수녀님.”

미카엘 신부로 말하자면 굉장한 미남자다. 그의 외모는 어느 누구라도 감탄과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이 뛰어나다. 우아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과장되게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같다”고 표현한다. 그들은 천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공교롭게도 “대천사 미카엘”의 미카엘이니 이런 우스갯소리도 일리가 없진 않다. 그는, 정말로 잘생겼다. 잘생겼다는 표현으로 부족할만큼 타고난 미모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또한 사제의 영도 함께.”

신도를 끌어들이는 것은 오로지 사제의 능력이다. 그는 파견된지 얼마 안되어 젊은 축에 속했으나 이것만으로도 신도들 마음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많은 여성 신도들이 그를 몰래 흠모하고 있을 것이다. 미카엘 신부는 외모는 물론 성격적으로도 완벽한 남자였다.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서 성무를 집행하는 신부에게 감히 마음을 품겠냐만은, 단언컨대 그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남성은 드물다. 곱게 뻗은 백금색의 찬란한 머리카락과 늘씬하게 빠진 몸매, 억지로 못생김을 찾는대도 없을 빼어난 이목구비.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끼기라도 하면 뭇여성들의 마음도 같이 흔들리고는 했다.

“형제 자매님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자애를 가지시고 여러분을 보살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는 신의 은총을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몸. 신부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품는 일이야말로 가장 불경하고 더러운 짓이다. 더군다나 여성의 경우 이른 나이에 좋은 집안의 남자에게 시집 가는 것이, 부모에게는 효고 자신에게는 덕이니. 아쉬운 대로 믿음직한 신도가 되길 택한 것이다. 종교란 누구에게나 참된 것이 아님은 물론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도 존재한다. 각각에게 같은 의미로 와닿을 리 없으니 저마다 사연도 달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간혹 가다 미카엘 신부를 자신의 사연 삼고자 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경우 개인에게는 몹시 해롭고 위험하지만, 성당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쯤되어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신도로 하여금 사랑 받는 미카엘 신부는 그들을 막상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어…. 미카엘 신부님?”

“네, 안젤라 수녀님. 부르셨나요?”

오랜만에 오셨군요. 자주 보면 좋을 텐데요. 저를 부르는 소리에 답하며 덧붙였다. 그는 어디까지나 신도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해 문제 삼지 않았으나 상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여성의 낯빛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주일엔 가게 일을 도와야 해서요. 아! 물론, 예배 드려야 된다고 하면 사정을 봐주실 수도….”

“아닙니다. 따라와주시려고 하는 건 좋지만, 무리해서 실천하려 들면 오히려 해를 입기 마련이에요.”

“네, 네에…. 저, 그럼- 아까 전에 미처 참여하지 못했던 고해성사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다렸는데 차례가 안 오신 건가요?”

“네, 가게 일을 돕고 바로 온 건데도…. 제 앞에 딱 끊겨버려서, 그 다음 순서인 미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셨습니까. 한숨을 토해내듯 짧게 내뱉고 잠시 정적이 일었다. 그 탓에 여성 신도는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지만, 동시에 입을 연 신부에게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준비는 해오셨나요?”

“아. 아…! 네, 네. 그럼요!”

“그렇다면 고해소에서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저도 준비를 한 뒤 찾아뵙겠습니다. 얼마 안 걸릴 거예요.”

“괘, 괜찮아요. 오래 걸려도요…!”

싱긋 웃고 미련없이 돌아선 신부에게 여성 신도는 묘한 감정을 자각했으나 내색 않으려 애썼다. 그 부던한 노력은 모습을 감추었던 신부가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났을 때도 계속되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네, 고해한 지 두 달 됩니다….”

“…….”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는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교회의 직무를 통하여 몸소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용서합니다.”

용서….

“아멘.”

그런가.

“자, 주님은 좋으신 분이시니 찬미합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정말?”

“네? 죄송하지만, 잘 못 들어서…. 방금 뭐라고 하셨었나요?”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군요.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화로이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안나 수녀님. 이만 돌아가보셔도 됩니다. 가실 때 문단속철저히 해주세요.”

“네, 신부님. 평화로운 밤 되시기를….”

미카엘 신부는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이다. 그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없기에 하느님의 수하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의 믿음은 어디에서 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개인의 신앙심에 관해 의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중 옳고 그름을 따져봐야 입만 아플 테지만 말마따나 그의 내면은 뭘로 이루어졌으며, 또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애당초 그 자신은 진정 신을 믿고 있을까? 수많은 의문점이 존재하지만 각자의 궁금증이 해소되려면 먼저, 미카엘 신부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그는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이니 웬만큼 곁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의문은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가지만, 답에 대해서는 영원히 미궁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미카엘 신부는 여전히 미카엘 신부고, 당신이 그의 신도라면 자비를 선사할 테니. 그가 하는 말이 비록 진실과 멀더라도 당신은 이전처럼만 그를 대하면 된다. 그는 당신의 열렬한 믿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코 다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당신이 그의 유일한 신도로 남아주기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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