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바라보는 방식

3492자, 악귀멸살 타입

실상, 영원이라는 것은 말만 번지르르한 것일 뿐 지킬 수 없는 볼품없고 낡아가는 약속에나 가깝다. 모든 것에는 끝이 존재하며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색이 바랜다. 앞에 두고 영원을 약속했으나, 볼품없이 낡아 스러진 존재 앞에서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이 누구 있으리. 그럼에도 후일 썩어갈 자신을 생각지 않고 언제나 지금에 충실해 살아가는 사내가 있었으니 귀살대의 폭주爆柱, 무라사키 바쿠하여라. 그는 영원을 사랑했지만 맹신하지는 않았으며, 끝이 없음을 기약했으나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 않는 사내였다.

귀살대의 당주, 우부야시키 카가야는 사람의 마음은 불멸이라고 말했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제 이름을 나긋이 속삭이면서 하는 말들에, 바쿠하는 자신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었다. 어르신 앞에서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세라 다행이다, 하고 생각할 즈음. 그의 속내를 들여다봤다는 듯이 카가야는 말했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무엇이?

어떤 게?

영원히 네 곁에서 웃고 싶다고 말해주었던 형이 죽어버렸다.

내 곁에서 바뀌지 않고 계속 같이 멸살을 할 것 같았던 일륜도가 부러졌다.

하물며 제자를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마음도 어느 날 들이닥쳐 온 한 계집아이에 의해 바뀌었는데.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무라사키 바쿠하는 화가 났다. 하지만 무엇에? 당주님을 존경한다. 그에게 화난 것은 아니다. 영원에게는 일찌감치 기대를 버렸다. 이것에 화난 것도 아니다. 지키지 못하고 끊어지는 얄팍한 마음에 화난 건가? 무라사키 바쿠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 숙여 우부야시키 카가야에게 인사를 한 후 우부야시키 저택을 나왔다.


두 번의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잃은 것이 많았다. 딸처럼 여긴 아이도. 사랑하는 소년의 한쪽 눈도.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도. 마냥 어리게만 비추어졌던 대원들도. 3년이 지났고, 환상통이나 부재의 자리는 금방 익숙해진 탓에 딱히 문제라던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당주의 말씀이 떠올라 안대를 쓴 눈의 부분을 툭툭 치며 벚꽃나무 근처 툇마루에 앉아 고민 중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

무엇이?

어떤 게?

"바쿠하 씨!"

"어어, 카마도."

생각을 위해 부러 만들어낸 정적은 한 소년에 의해 깨졌다. 한쪽 팔과 한쪽 눈을 잃고, 이마에 상처 같은 반점이 있고, 눈이 붉은 소년이었다. 지겹도록 봤으면서도 전혀 지겹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나의 소년. 카마도 탄지로. 

"웬일로 여동생이랑 같이 안 있고?"

"네즈코는 아오이 씨랑 있어요. 반점을 발현하고 몇 년이 지난 이상, 반점을 발현한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다 같이 모이고 싶다는 네즈코의 바람이 있었다나 봐요. 그래서 무라사키 씨를 데리러 왔는데··· 제가 방해했나요?"

카마도 탄지로는 그렇게 해맑게 웃으며 무라사키 바쿠하의 옆에 자리 잡았다. 벚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느릿하게 하늘을 올려다본 바쿠하가 입을 열었다.

"영원이라는 게 실존할까?"

"영원···이요?"

무라사키 바쿠하는 줄곧 그것이 궁금했다.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만약 없다면 사람들은 환상의 존재를 맹신하고 내세우며 거짓을 당당하게 고하는 것이 되는 거다. 하지만 있다면? 영원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래도, 그래도··· 모든 것은 빛이 바래지 않나. 추억도, 잊어버리게 되지 않나. 마음이란 것도 언젠가는 약해지지 않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듯이. 세상에, 영원한 건...

"있어요."

있지 않을까요, 도 아니고 있어요. 자신이 한참을 고민했던 질문을 이 소년은 바로 칼로 자르듯이 결단내버렸다. 무라사키 바쿠하는 괜히 변론하듯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뭐든 퇴색되기 마련이잖아. 계절은 바뀌고 시간은 지나니까. 같이 훈련했던 그 시간들도 이제는 아득하고, 널 여전히 사랑하지만 예전만큼 불타오르는 건지는 모르겠어. ···널 안 사랑한다는 게 아니다, 알지?!"

"알죠."

"크흠. 뭐든 간에, 끝이 있잖아······. 시간도. 마음도. 생명도. 그러니까 영원이,"

"기간적으로 생각하면 영원이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바쿠하 씨."

바쿠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흔히들 영원을 시간이 바꾸지 못하는 단단한 무언가라고 칭한다. 그런 영원을 어째서 기간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괜히 마음이 답답했다. 소리칠 대상은 소년이 아닌데도 목소리를 높이려 하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카마도 탄지로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령 저희가 함께 훈련했던 그 때의 여름."

"······?"

"저희가 처음 입맞췄던 날 밤, 이불의 감촉이라던지. 네즈코를 처음으로 바쿠하 씨에게 인사시켰던 날, 바쿠하 씨가 제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라고 조언해주신 날.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봄도요." 

"하지만 그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 않냐. 그 때 느꼈던 마음도···,"

"바쿠하 씨, 저희가 기억해야만 그것들이 '존재하는 게' 되는 걸까요? 저희가 꼭 그 마음을 간직해야만, 온전히 보관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저희는 그것을 느꼈어요. 여름의 열기를, 이불의 감촉을, 첫인사의 기쁨을, 조언을 듣고 난 후의 벅차오름을. 無(없을 무)와 忘(잊을 망)이 정말 같을까요? 그 때의 저희는 분명히 느꼈잖아요. 바쿠하 씨, 추억이라는 건. 마음이라는 건··· 꼭 끝까지 가지고 가야 불멸하고 영원인 건 아니에요. 반드시 처음 것 그대로 간직해야만 영원한 건 아니라고요. 그 때의 우리는, 존재했으니까. 그 때의 우리는, 마음을 먹었으니까."

"······아."

"어떤 추억과 마음은 때로 영원하답니다."

바쿠하는 소년에게서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소년을 바라보았다. 반쯤 벌어진 입은 그가 벙쪘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살랑, 정신을 차리라고 등을 두드리듯 타이밍 좋게 바람이 불었다. 그렇구나. 내가 잊어버렸다고 그 시간들은 변하는 게 아니니까. 적어도 그것들은 전부 진짜였으니까. 그거였어. 큰 어르신이 말한 영원은, 그거였구나······.

"그러니까 저는 영원이 있···다고······. 에엑! 바쿠하 씨?! 왜 우세요!! 제가 뭔가 잘못 말했나요?! 아니면 바쿠하 씨 마음의 무언가를 건드렸나요? 죄송합니다아아!!!"

"시끄러, 탄지로. 그런 게 아니걸랑······."

"네···?! 그것도 아니면, 뭐가···."

"정답을 알게 됐을 뿐이야. 자! 가자. 모두가 기다려."

무라사키 바쿠하는 눈물을 하오리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울었다는 거, 내 제자한테는 비밀이다?!"

"시라이시 씨요? 아~ 알겠습니다!"

······.

실상, 무라사키 바쿠하는 영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모두와 함께 느낀 추억과, 마음과, 제 자신이 허사가 된다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서, 없었던 것이 된다면.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역사에, 기억에 남는게 전부가 아니니까. 적어도 그 때 우리들은 존재했으니까.

그는 이제부터 영원의 고민에 사로잡히지 않고 남은 계절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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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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