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r Panoptik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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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 조지 오웰, <1984> 中
그는 ‘방법’을 안다.
여기, 아주 잘 설계된 감시탑이 하나 있음을 보라. 어찌나 잘 만들어졌는지 사람들은 그곳에 감시탑이 서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지나치게 은근히 자리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감시탑이 자신들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인지도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보기에 세상은 거대한 감옥이요, 이곳은 간수의 자리인지라. 언제나 누군가 들어 앉아 세상을 감시한다. 그리하여 시선에는 권력이 담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강제성이 담긴다. 그 우악스럽고도 비밀스러운 공간. 다른 이들을 본다, 듣는다, 냄새 맡으며, 맛을 본다. 때로 생각한다. 그렇게 은밀히 침범한다. 유쾌한 일인가? 당신이 알지 못한다면야 그런 것쯤 아무런 상관이 없는 법이다. 당신이 알게 된다면? 불유쾌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친절하게도, 그들은 때로 당신의 유쾌함을 지키기 위해 그 감시탑 안에 들어 앉아 자신을 숨긴 채로 이리저리 서치라이트를 돌려 대는 짓을 빼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서슴지 않는다.
간수의 직업이란 그런 것이다.
죄인의 이름이란, 인류의 역사가 흘러 온 이래 하도 많이 바뀌어 온 지라 모두가 헷갈릴 법 하다. 그렇잖은가. 어느 때에는 물에 가라앉는 여자가 죄인이었다. 어느 때에는 한센병자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었다. 여기, 이 감시탑이 자리한 곳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다윗의 자손들은 모두 죄인이었다. 그러나 간수의 이름은 바뀌지 않은 지 오래다. 그들 직업의 중심에는 단 한 가지의 업무가 들이박혀 있다. ‘감시자.’
이렌 하르트너는 감시자이다. 여기는 그만의 판옵티콘이다. 그는 간수이다. 우리가 언제나 잊는 사실 중 하나는 간수가 죄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행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다. 죄수는 어디에 자리해 있는가? 감옥에. 그렇다면 죄인을 감시하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감옥으로. 간수와 죄수는 언제나, 항상, 변치 않도록 긴 시간동안 같은 공간 안에 갇혀 있었다. 스스로를 가두는 것. 그것이 간수가 하는 일이다. 이제 그의 집무실을 보자, 아니, 그의 감옥을 보자. 그는 판옵티콘의 가장 정 가운에 선 감시자이며,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 죄수가 된 이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때로 맛까지 보아야 하는 일을 맡고 있지 않은가. 그곳에 프렐류드prelude가 흐른다. 바흐의 첼로가. 물론, 이렌 하르트너 그 자신이 고른 음악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이곳은 그의 공간이 아니다. 여기는 감옥이므로. 그것은 죄수의 음악이다.
이곳에 그 자신을 비추는 물건이 몇 개가 있던가. 저편의 창가에 들러붙은 메모지들에 담긴 것은 그의 글씨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적은 것은 아니다. 죽은 빛깔의 벽 위에는 마찬가지로 죽은 이들의 생생함이 담겨 있다. 아, 저 늘어진 몸뚱이들이 여기 아직 살아 있는가. 이렌 하르트너가 보는 시선 안에서만, 그들은 살아 있다. 그리고 종결 어미가 붙여진다 – 이제는 아니지만. 바흐의 선율이 흐른다. 프렐류드. 전주곡. 이것은 무언가를 예고하기에 참으로 적절하다. 이 공간에 어울리던, 어울리지 않던, 이렌 하르트너는 그 음악을 들어야만 한다. 그것은 자신의 죄수가 듣고 있는 음악이므로.
그런 고로, 이 감시탑 안에 간수 그 자신을 비추는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꼴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 공간을 보며 가슴을 죄여 오는 불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저기 수많은 모니터들을 보라. 마치 조지 오웰의 세상 속, 텔레스크린이 수없이 부착된 공간을 힘껏 압축하여 놓는다면 이러한 기분일 것일까? 일거수일투족들, 너무도 많은 행동들, 너무도 많은 소리들. 간수는 그것을 보고 있다. 이렌 하르트너는 안다. 아무리 바흐의 선율을 틀어도 그것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 슬프게도 그러하다. 이곳은, 마냥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채 뚝 떨어진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과 너무도 밀착되어 있는 곳 아닌가. 살갗 위에 꿰매어진 표식처럼 이곳은 그 누구에게라도 들러붙어 겨울을 나는 벌레처럼 피를 빨아 먹듯 정보를 빨아 먹는다. 핥고 깨물고 물어뜯어 그것을 마침내 죽여 버릴 때까지.
만일 여기가 홀로 떨어져 나간 망망대해 위 섬같은 곳이었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그렇게까지 느낄 이유 따위는 없다. 여기를 채운 것은 다만 남들의 숨겨야 할 치부와 그것에 대한 집착적 감시가 아니라. 이질감이다. 공간의 주인 자신이 느끼는 것. 이렌 하르트너는 알고 있다. 이곳은 자신의 집무실이지만 자신의 공간이 아니다. 죄수들의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저 화면 속의 남자와, 지직대는 소리 속의 는적대는 신음들이나, 혹은 골목을 따라 걷는 무거운 부츠의 밑창들이 내는 위협적 걸음 소리 같은 것들.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다.
데메지에르의 친구들이 건물 안을 메웠다.
지난 사흘 동안, 하르트너는 들었다. 보고, 냄새 맡았다. 사냥개가 하듯 본능을 좇아가는 작업을 해냈다. 죄인의 이름은 너무도 자주 바뀌어 그도 이제는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으나. 그럼에도 그는 착실히 그 뒤꽁무니에 칼끝을 들이대고 좇았다. 이틀 쯤 되었을 때 그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을 알았다. 왼손잡이며, 점심으로 라구 펜네를 두 번, 정력제로는 물소 고환을 쓰고, 정사 후에는 발포 비타민을 탄 탄산수를 마신다는 사실을, 불륜 상대는 누구인지까지도. 하르트너는 사흘 째 되는 날, 그를 위하여 면접 서류를 대신 써 줄 수 있을 만큼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그 남자 –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요나스 크람이라는 남자 – 가 어느 호텔에서 누구와 뒹굴고 있는지를 직접 지켜보아야 하는 일 정도는 그 자신에게도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이제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좀 좋은 곳으로 갈 것이지, 요한나 보르크만이 그의 집무실에 들러 감시 대상이 자신의 불륜 상대와 열정적으로 서로의 입술을 빨아 대던 호텔 방의 꼴을 보고서 내뱉은 말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쉴 새 없이 삐걱대는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삼십 분 정도 듣고 있어야 하는 일이 유쾌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것마저 이제는 상관이 없어질 예정이 되었다.
이렌 하르트너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양 귀에 단단히 들러붙어 머리를 조이고 있는 헤드셋을 쓰고. 듣는다. 눈은 본다.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 체취에 절여진 싸구려 호텔 방의 곰팡내 젖은 시트의 향과, 남자가 마시기 위해 둔 발포 비타민 넣은 탄산수의 지나친 향을. 그의 감각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것이다. 그러므로 까딱하면 그는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주 낯설게 보이는 때’ 같은 것에. 여자는 잠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던 남자는 호텔 방 한 구석의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바흐의 음악이 흐른다. 남자가 라디오를 이리저리 돌린다. 어긋난 버튼이 성가신 잡음을 낸다. 이렌 하르트너는 그런 남자를 보다가, 우습게도 목청을 가다듬었다.
“어떤 쥐새끼야.”
“브루게너 양과는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정사를 마친 남자들은 으레 그러하듯 목소리는 씩씩대며 기계 너머의 상대를 들이받아 버릴 것처럼 내쏘지 않겠는가. 가끔은 그것이 우스웠다. 그에 대고 청명하고 맑은 목소리로 답하는 일이 즐거웠느냐고? 아니. 하르트너는 그저 상대와 자신의 차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 그렇게 답했다. 죄인과 간수인 그 자신을 기어이 구분해 보기 위해서. 그 얼굴에는 석고처럼 뻣뻣하게 뜨거운 열이 오른다. 이제 정말로 아무 것도 상관이 없다.
“어디서 보낸 거지? 어디까지 알고 있고?”
“보기와는 다르게 음악 취향이 고상하시군요. 바로크 음악이 기운을 북돋아 준다고 누군가 추천하덥니까? 아니면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남자가 고개를 황소처럼 돌려 대며 이곳저곳을 살핀다. 이렌 하르트너는 손짓이라도 하여 카메라가 있는 곳을 알려 주고 싶은 심정을 느꼈다. 답답함에서. 그러나 간수가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가 아는 소통은 늘 그런 프로토콜을 따라 왔다. 간수는 죄인을 본다. 언제나. 상대는 간수를 보지 못한다. 아주 일방적이기 짝이 없는 대화. 상호작용함이란 그가 하는 일 속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아니,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럴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유리된다. 곧 죽을 저 남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그의 살아 있음을 마지막으로 목격해야만 하는 이렌 하르트너 그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남자가 소리를 질러 대는 통에 그는 마이크의 볼륨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똑바로 대답 안 하면 오늘 안으로 네놈 모가지를...!”
“아, 칸타타 4번 또한 유명하지 않던가요. 무반주 첼로도 좋지만 전 그게 더 마음에 들더군요.”
“대답 똑바로 안 하면 당장 죽여 버리겠어!”
“두 번째 절에 붙여진 제목은 생각해 볼 법한 질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잠시간, 헤드셋 너머로 고함 소리가 이어진다. 다른 한 편에서는 부츠 밑창이 낡은 호텔의 마룻바닥을 두들기는 소리가 난다.
여기는 미치광이의 상상 속 감시탑이 아니다. 이곳은 감시탑의 주인이 자신을 지우고, 남들을 선명히 하여, 드러내어진다면 유쾌할 것 하나 없는 일들만을 누르고 눌러 숙성시켜 둔 어느 중세 성의 지하감옥이나 다름없다. 이렌 하르트너의 판옵티콘. 묵은 정보들 또한 송장의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와 당신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공간의 주인, 이렌 하르트너는 알고 있다. 공간이 담은 수없이 많은 냄새를 홀로 품고 저기, 그가 앉아 있다. 산송장처럼 죽은 이들의 생생함을 품은 부조리한 인간. 그는 자신만의 바위를 굴려 나간다. 이제 막 그것에 또 한 가지 무게가 더해질 참이다.
“방금 지그Gigue까지 듣고 끄셨으니 잘 되었습니다.”
간수는 판옵티콘을 지킨다. 자신이 눈으로 보는 이들은 감시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사형 당한다. 그것이 간수의 원칙이다. 문장의 끝이 맺어지기 전에, 그는 감옥 문을 열라는 신호를 보냈다. 보잘것없는 나무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너덧 명의 발자국 소리가 어지러이 고막을 두들기고, 화면 안에는 들이밀어진 검은 감시자의 눈이, 총구가 보인다. 죄수는 마지막 고함을 질렀다. 마침내 그는 카메라를 찾아내었는지, 삿대질을 하려 들지 않는가.
“바흐 음악은 그게 끝이 아니니 칸타타 4번도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카메라로 손이 뻗어지기도 전에, 그 검은 총구들이 먼저 그 남자와 침대 위의 여자에게 삿대질을 보낸다. 신체 내부를 두들기는 노크 서너 발과 함께. 탕! 탕! 탕!
“물론 시간이 나신다면요.”
그 법정 안에서, 법봉은 총구로 대신 되고, 판결문은 서너 마디 말로 대신 된다. 변호인도, 검사도, 판사도 오로지 한 사람이 대신한다. 고함과 대답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화약의 향은 안타깝게도 맡아지지 않았다. 맡았다면 그 자신이 이번 일을 아주 확실히 끝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성취감을 느꼈을 것인가? 이렌 하르트너는 고개를 젖혀 깊은 숨을 들이켜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한숨은 나오지 않은 채 검은 목구멍을 지나 위장의 지하에 처박히고. 이제는 성취감이던, 그 무엇이던 간에. 상관이 없었다. 화면 너머의 시체 두 구가 그것을 상관없게 만들어 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부에서 건질 것이 있거든 본부로 보내시면 됩니다.”
그는 말했다. 목소리가 탁해진다. 이제 굳이 목청을 가다듬을 필요가 없다. 카메라가 있는 방향으로 누군가 인사를 보낸다. 이렌 하르트너는 그것에 습관적으로, 어쩌면 바보처럼, 답했다. 행동은 결코 보이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화면 속 ‘친구들’이 다시 어지러이 움직인다. 그는 통신을 끊었다.
그는 잠시간 서글펐다.
죄수의 것이 모두 사라진 공간 안에서,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간수도 일어선다. 그는 잠시간 서치라이트의 불을 껐다. 그는 잠시간 간수의 일을 내려두었다. 여기, 자신만의 감시탑 안에서. 언제나 그렇듯 남들의 삶에 들러붙은 자신의 불유쾌함을 생각한다. 방 안을 둘러본다. 누군가 느끼듯이, 그는 가슴 조여드는 불안감을 느낀다. 내 것이 없는 공간. 그는 판옵티콘의 충실한 간수로서 일했다. 죄수들도 알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존재도 모를 만큼 비밀스럽게. 자신의 것 하나 없이 타인의 것으로만 만들어진 그 성채 안 가운데서. 그는 문득 외로웠다.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벽에 들러붙은 사진들을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것들이 내게 필요한 것인가. 그는 탄탈로스의 심정을 느꼈다. 이곳에서, 그는 어쩌면 필요한 것에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하고, 필요한 것을 향해 숙여도 닿지 못할 처지가 아닌가.
어떤 종류의 간수는 죄수를 향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하루를 스스로 철창 속에 가두었다가, 하루 뒤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으로서 자신과 죄수를 나눈다. 그런 간수들에게는 돌아갈 공간이 있어 철창 속에 갇힌 자신을 자각하는 일이 결코 낯설지 않다. 그곳은 애초에 그 감시자에게 낯선 공간이므로.
그렇다면 이렌 하르트너는 어떠한가.
그 간수는 이제 지쳤다. 한 켠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그는 죽은 빛깔 천장을 바라보았다. 낯설다. 이 판옵티콘 안에서, 그는 때로 자신이 죄수인지 간수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생각뿐이다. 잠시 서치라이트를 껐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언제나 자신에게는 타인을 향한 감시탑이 될 것이다. 그의 역할을 감시자이므로. 문득 그는 이곳이 너무도 낯설어 구역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만두었다. 그저 시트를 끝까지 올려, 영안실 한 구석의 시체처럼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그는 ‘방법’을 알았으나, ‘이유’에 대해서 질문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바흐의 칸타타 4번이 흘러나온다. 2절이 성급히 시작된다. 그 누구도 죽음을 이길 수 없네Den Tod niemand zwingen kunn.
마침내, 그것은 간수의, 감시자의, 아니, 이렌 하르트너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잠시간 이질감에서 벗어나려 고요히 발버둥을 쳐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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